마디1. 자유(自由)의 우리말 뜻매김
한자 우리말 “자유(自由)”의 낱말 뜻은 ‘스스로 말미암음’ 또는 ‘제 마음으로 하기’이다. 먼저, ‘스스로 말미암음’은 어떤 일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쓰인 “말미”라는 토박이 우리말은 그 뜻이 오래고 깊다. “말미”는 ‘합당한 까닭이 있어 얻어낸 겨를이나 쉼(휴가)’을 뜻한다. “王 가아 말 엳고”(석보상절 6-15)는 “왕께 가서 까닭을 여쭙고”이고, “내 오 말야 오라”(박통사언해-초간 상-49)는 “내가 오늘 휴가를 내어 왔다.”이다. 여기에 쓰인 보기말들은 “말미”라는 낱말이 까닭(연유)과 휴가(동안, 겨를)라는 두 가지 뜻이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말미암다”는 “말미삼다”가 바뀐 것인데, “삼다”는 15~16세기에는 ‘(어떤 것을) 하다, 짓다, (어떤 것이) 되다’ 등의 의미로 쓰였지만, 현대에는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만들거나 여기다’의 뜻으로 쓰인다. 이에 따를 때 “말미암다”는 ‘말미를 하다’나 ‘말미로 여기다’를 뜻한다. ‘말미’가 하나의 사건이 누군가의 말이나 어떤 행동 또는 다양한 사건들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을 때의 그 불러일으키는 것을 일컫는 한, “나는 신경통으로 말미암아 휴강을 해야만 했다.”라는 보기말은 내가 휴강한 까닭이 신경통 때문이었음을 밝히는 말이 된다.
‘말미암다’는 어떤 결과(보람이나 열매)가 그에 앞선 원인으로부터 비롯되는 관계를 나타낸다. 말미가 되는 말은 귀신이나 신의 말, 즉 공수―신에 접(接)한 무당이 신의 말을 옮기는 것―나 예언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무속신화 「바리공주」는 한 여성과 그 일족(一族)이 무신(巫神)이 되어 가는 ‘말미’, 곧 그 연유(緣由)나 사유(事由) 그리고 유래(由來)에 대한 이야기로서 본풀이(本-) 또는 본향풀이(本鄕-)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말미암음’은 현재 나타난 열매나 사건을 그것이 자라나거나 생겨나거나 발생한 씨앗이나 밑바탕이나 근원으로부터 풀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낱말 풀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말미암음”의 뜻매김을 펼쳐 보자. ‘스스로 말미암음’은 누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일이 그 일을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뜻한다. 그런데 이때 “스스로”는 무슨 뜻인가? “스스로”는 “스스+로”로 볼 수도 있다. “스스”는 “도사(導師) 法 앗외 스스니 如來 시니라”(석보상절(1447) 13:16) 여기서 “스스”는 ‘사(師)’의 뜻과 같고, “앗외다”는 ‘앞서 이끌다’의 듯이니 “도사(導師)”는 중생(衆生)을 부처님에게로 이끌어 그 말씀의 뜻(불법, 佛法)을 깨닫게 해 주는 선생(先生)을 말한다. 이러한 낱말 뜻은 우리말 “스님”의 풀이, 곧 ‘승려가 자신의 스승을 이르는 말’에 그대로 녹아 있다. “스스”는 “사부(師傅)”인 셈이다. 이에 따를 때, “스스로”는 ‘선생의 도움으로’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뜻을 ‘스승’에게로 매기는 순간 ‘스스로 말미암음’의 꼴(사태)은 완전히 일그러지고 만다. 사실 “스스”가 스승을 뜻한다는 앎에 대한 증명이나 증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스스로”의 옛말은 “自 스스리 ”(광주천자문, (1575)에 보이는 것과 같이 “스스리”로 나타나기도 하고, “인야 그를 지 스싀로 계노라”(번역소학(1518), 8:8)에 보이는 것과 같이 “스싀로”로 쓰이기도 했다. 이에 비춰 보자면, “스스리” 또는 “스싀”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 “스스로”는 명사와 부사가 모두 될 수 있는데, 명사 “스스로”는 “스스리”로, 부사 “스스로”는 “스스+로”로 풀어볼 수 있다. 이러한 풀이에 따를 때, “스스리”는 ‘스스를 하는 사람’, 말하자면, ‘저가 저를 이끄는 사람’인 셈이다.
우리가 “스싀로”의 말놀이에 따라 ‘스스로 말미암음’의 뜻을 새긴다면, 그것은 어떤 것의 말미가 ‘스스로’에게서 비롯되는 관계(매듭)를 나타낼 수 있다. 이는 ‘스스로 말미암음’에 대한 우리의 앞선 뜻매김과 그 결이 같다. 우리는 ‘스스로 말미암은 일’에 대해 그것의 본풀이, 달리 말해, 그것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을 속속들이 들려줄 수 있다. 그 까닭은 그 일이 ‘저 자신(스스리)’로부터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을 펼쳐간 사람도 ‘저 자신(스스리)’이기 때문이다. 그 일이 벌어진 유래(由來)는 ‘저 자신’이 그 일을 하고자 했다는 데 있고, 그 일이 그렇게 벌어진 까닭 가운데 하나는 ‘저 자신’이 그 일이 그렇게 되도록 몸소 실천했다는 데 있다.
다음, 자유(自由)는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이 현종의 명을 받들어 1669년 찬(撰)한 『어록해(語錄解)』에는 “제 쥬변다(自由)”와 “제 으로 다(自由)”로 풀이되어 있다. 이 책은 당시 중국에서 사용하는 속어인 백화문을 풀이한 책이다. 여기에 쓰인 두 낱말을 현재 우리말로 바꾸면, “쥬변”은 “주변”이고, “”은 “마음”이다. “쥬변”은 ‘어떤 일을 처리하는 솜씨’를 뜻하는데, 이는 주선(周旋)과 변통(變通)의 줄임말처럼 보인다. ‘주선’은 누군가 일이 잘 되도록 여러 방면으로 힘을 쏟는 것이고, ‘변통’은 형편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낱말 뜻에 따를 때 “자유”는 ‘제 일 처리’가 되어 자유의 뜻이 크게 줄어든다.
그런데 “쥬변다”는 동사로서 ‘독단으로 하거나 자유로이 하다’는 뜻도 있다. “가며 오미 쥬변야 心體 린 업소미 곧 이 般若ㅣ라”(<<육조법보단경언해(1496) 상:55>>) 여기서 “쥬변하기”는 오고 감에 막힘이 없을 뿐 아니라 몸과 마음에 걸림이 없는 슬기, 곧 반야(般若)와 같은 말이다. “자유”는 한편으로는 “쥬변하기”의 동사적 의미에 따라 무엇이든 막힘과 걸림이 없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뜻하고, 다른 한편으로 주선과 변통이라는 “쥬변”의 명사적 의미에 따라 누가 어떤 일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과 같다. 주무름은 그는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중간에 어떤 일이 생기든 자유자재로 잘 둘러대거나 돌려막는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줄여 보자. 우리는 “자유(自由)”를 한쪽에서는 ‘스스로 말미암음’으로 새길 수 있음을 보았고, 다른 쪽에서는 ‘제 마음대로 하기’로 풀어낼 수 있음을 알았다. “스말암기”(스스로 말미암기)는 ‘어떤 일의 일어난 말미(원인)가 사람에게서 비롯되었고, 그 비롯됨도 그가 스스로(자발성, 自發性) 한 바’로부터 시작된 사태를 나타내지만, “맘대로 하기”는 사람이 어떤 일을 저가 하고 싶어 한 까닭에 시작(자발성)했을 뿐 아니라 그 일 처리도 제 주변에 따라 또는 제 멋대로 해 나가는 상황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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