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억 / 승인 2022.01.05 09:00
<교수신문>은 2022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특별기획을 마련해 연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연재하고 있는 ‘대학의 내일을 말한다’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 ‘선도 국가란 무엇인가’에 이어 ‘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을 새롭게 시작한다.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복합 연구가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첨단연구의 현장을 찾아 지식생산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체화된 마음 연구 : 몸-뇌-세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체화인지연구단’이다. 체화인지연구단은 최근 인지과학 분야에서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체화된 마음 이론(theory of embodied mind)’을 2021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인문사회분야 일반공동연구 지원사업(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주관)으로 수행하고 있다.
체화된 마음 이론은 내재주의와 뇌 중심주의에 치중하고 있는 현재의 ‘마음 연구’를 극복하기 위한 인지과학 이론으로, 1990년대 이후로 해외 학계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체화인지연구단에서는 철학, 문학, 미학, 인지과학, 법학, 영화학, 의학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모여 융복합적으로 체화된 마음을 연구한다.
연구단의 책임자인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는 “마음이란 뇌-몸-세계의 역동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므로, 뇌 중심주의적 관점을 극복한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며 연구 배경을 밝히고,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마음 모형을 개발하고, 마음과 관련된 다양한 학문에 대한 학문적 근거를 제공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연구단은 인지철학의 권위자인 숀 갤러거(Shaun Gallagher) 멤피스대 교수(철학과)와 이영의 고려대 객원교수(철학과), 의철학자인 강신익 부산대 교수(치의학전문대학원), 강태경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팀장(법무정책연구실), 김종갑 건국대 교수(영어영문학과·몸문화연구소장), 박길수 강원대 교수(철학과), 이상욱 동의대 교수(신문방송학전공), 정혜윤 명지대 교수(예술학부 아트앤멀티미디어전공), 한곽희 영남대 교수(철학과)를 포함한 10명의 연구자로 구성돼 있다. 연구단은 매년 몸-뇌-세계를 주제로 한 연구 총서를 발간하고,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력해 학술대회와 세미나, 워크숍, 대중강연을 개최하는 등 학문과 사회를 유기적으로 소통시키고 통합하는 발판을 구축할 계획이다.
<교수신문>은 특별기획 ‘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_ 체화된 마음 연구’를 10회에 걸쳐 격주로 연재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연재를 시작하며 ‘체화인지연구’의 주요 내용을 대담 형식으로 소개한다.
대담에는 최재목 영남대 교수(연구책임자)와 이영의 고려대 객원교수, 숀 갤러거 멤피스주립대 교수가 참석했다. 지난해 11월부터 12월 사이에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연재 주제와 필진>
·몸이란 무엇인가_ 최재목(영남대), 한형조(한중연)
·몸된 자유란 무엇인가? 추상적 자유를 넘어서_ 김종갑(건국대), 이택광(경희대)
·체화된 인지와 도덕_ 한곽희(영남대), 노양진(전남대)
·체화된 인지와 예술_ 정혜윤(명지대), 심광현(한예종)
·인간, 몸과 몸 사이 : 동양철학과 현대의학의 만남_ 강신익(부산대), 김시천(상지대)
·유학의 심신론과 체화주의_ 박길수(강원대), 유권종(중앙대)
·체화된 마음 이론과 신경법학_ 강태경(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장대익(서울대)
·영상미디어에서 이미지의 체화·탈체화_ 이상욱(동의대), 정찬철(부경대)
·행화주의와 예술 공연하기_ 숀 갤러거(멤피스대), 다니엘 후토(울런공대)
·체화된 마음과 뇌_ 이영의(고려대), 정재승(카이스트)
사회_ 김봉억 교수신문 편집국장(이하 사회) : 안녕하세요. 코로나19 상황이지만 이렇게 온라인으로 첨단연구의 현장을 찾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세 가지를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는 체화인지의 핵심은 무엇인가, 둘째는 왜 체화인지를 연구해야 하는가, 셋째는 체화인지에 대한 대담 참석자의 이론에 대해 듣고 싶다. 자유롭고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기 바란다. 우선, 체화인지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영의(이하 이) : 체화인지이론은 인지, 사고, 마음이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가진 유기체와 세계 간 역동적 관계에서 창발한다고 본다. 체화인지 이론은 단일 이론이 아니라 인지를 뇌-몸-세계 간의 역동적 관계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핵심 주장을 중심으로 뭉친 여러 가지 이론들로 구성된 느슨한 연구 프로그램이다. 현재 체화인지 이론은 흔히 ’4E‘라고 불리는 체화된 인지, 내장된 인지(embedded cognition), 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 행화적 인지(enactive cognition)를 포함해 분산된 인지(distributed cognition), 상황적 인지(situated cognition)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숀 갤러거(이하 숀) : 체화인지는 정신적 삶에 대해 신경적이거나 신경외적 과정이기도 하는 몸(=신체)적 과정이 인지에 대해 이바지하는 것을 강조한다. 인지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몸적 과정을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다. 어떤 접근은 감각 운동의 우연성을, 다른 접근은 정서를, 또 다른 접근은 자율계-내분비계-내장계를 포함한 내부 수용 감각과 다양한 몸적 체계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인지 과정을 조정하는데 관련된다는 것이다.
최재목(이하 최) : 동양철학 넓게는 동양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기본적으로 ‘뇌-마음-몸-환경(세계)’을 통합적, 일체적(합일적)이라 전제하고 출발한다. 동양에서는 서양과는 다른 상황과 조건이 있다. 예컨대 동양의 지성사에서는 애당초 뇌-마음-몸-환경이 분리되지 않았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전인 명말청초까지 두뇌에 집중적인 관심이 없었다.
우선 몸을 들여다보는 방법으로서는 심장(心臟. heart)을 중심으로 하며 오장육부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수평축’의 설명 방법이 있다. 중국 고대의 수리(水利)공학, 도시계획이 투영된 것이다. 다음으로, 두부(頭部. head)에 대한 흥미를 계기로 나타난 수직축의 설명 방법이 있다. 도교 의학의 영향으로 뇌가 투시술의 대상이 됐고, 그 흐름 아래 명나라 말기의 이시진(李時珍)에게 투시술 중시의 발언과 뇌의 중요성이 언급됨을 볼 수 있다. 이즈음 철학사상 분야에서도 이런 점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심에서 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16세기말 이탈리아의 선교사 마테오리치와 그 이후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가지고 온 서양의학 덕분이었다. 그때까지 중국과 그 영향에 있었던 동 아시아에서는 ‘’뇌-마음-몸-환경(세계)’을 통합적, 일체적(합일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회 : 왜 체화인지를 연구해야 하는가.
숀 :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로서 나는 우리가 인지체계를 완전히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뇌가 인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 뇌와 몸은 함께 진화하며, 그 두 가지는 구조와 기능에서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인간이 손이 없는 존재로 진화했더라면 뇌는 어떻게 진화했겠는가? 그 경우 뇌는 현재와 매우 달랐을 것이고 인지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철학자들도 인간에게 손이 없었더라면 합리성 개념은 현재와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 체화인지는 결국 ‘나(인간)는 누구인가’를 묻는 작업이다. 그것은 내가 있는 곳의 ‘위치-위상-관계성’을 짚어가면서 ‘의미’를 열어가는 작업이다. ‘나’라는 존재는 ‘뇌’인가? 뇌로 환원되는가? 마치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을 때, 나라는 존재를 ‘사유=뇌(혹은 신경)’로 환원시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 ‘나’라는 존재는 ‘뇌-마음-몸-환경(세계)’을 통합적, 일체적(합일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너, 그(그것), 그리고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의식적·무의식적 감응, 소통의 결과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은 당연히 다양한 학문, 다양한 사유 속에서 설명돼야 하며, 결코 어느 한쪽(뇌, 몸, 환경)으로 떠밀어(=환원시켜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더구나 AI 시대, 디지털시대를 맞이해 우리의 몸은 전자 칩, 스마트폰, 차량, 우주선, 천체망원경 등을 통해서 확대돼 더 먼 곳, 더 깊은 곳으로 연결돼 가기도 한다. 심지어는 애완동물, 숲, 하천 등으로 연결되고 저 먼 곳으로도 향해가기도 한다. 그러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물음은 지금 다시 시작되고 설명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체화인지’의 중요성이 살아나고 있다고 본다.
이 : 우리가 인지를 체화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인지가 몸을 가진 유기체의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활동이라면, 당연히 인지를 그 세 가지 요인의 관계 속에서 인지를 탐구해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인지는 이성과 뇌를 중심으로 연구됐다. 인지를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인지과학은 1950년대 창립 이후로 인지를 뇌 안에서 이뤄지는 계산으로 간주하는 인지주의와 인지를 뇌의 작용으로 보는 신경과학적 접근이 주도했다. 체화인지 이론은 인지주의와 신경과학적 접근의 공통된 한계, 즉 뇌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필요하다.
둘째, 그동안 인지는 철학, 심리학, 인공지능 등의 분야에서 뇌 중심주의를 중심으로 연구됐다. 그러나 인지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활동이므로 위에서 말한 두세 가지 분야에서만 연구될 주제가 아니다. 체육, 무용, 예술 등 행위와 관련된 분야뿐만 아니라 생태학, 인류학 등 세계 속에서 유기체와 행위자의 삶을 이해하려는 모든 분야가 참여할 필요가 있다.
사회 : 체화인지에 대한 당신의 이론은.
최 : 몸은 마음을 드러내는 형식이고, 마음은 몸을 주관하는 주체일 뿐이다. ‘몸’이란 ‘마음이 체화된 것’ 즉 ‘마음이 물질화된 형식’이며, ‘마음이 생활면에서 운용=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란 ‘몸의 인지적 자각점’으로서 ‘몸의 주재성(=중심)’을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몸에서 마음으로(몸→마음)’이거나 ‘마음에서 몸으로(마음→몸)’라는 시간적, 논리적 순서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양자는 동시적 등질적 공명(共鳴)으로 있다.
다만 ‘몸으로서의 마음’, ‘마음으로서의 몸’이라는 표현방식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몸은 세계로, 사물로, 다양한 심리적 미적 매개를 통해 확장되고, 거꾸로 저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물리적 형식(눈, 코, 귀, 입, 피부, 신경)이 된다. 마음은 그 형식에 따라 내용을 인지하며(=느끼고, 판단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며) 의미를 찾아낸다. 그래서 마음은 ‘숨어 있는(=보이지 않는) 몸’이고, 몸은 ‘드러난(=보이는) 마음’이라 표현하고 싶다.
결국 어느 한쪽의 환원적인 방법이 아니라 ‘뇌=마음=몸=환경(세계)’이라는 일원적?통합적 지평에서 체화인지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본다. 이런 방법이 ‘모든 것을 알고,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인간의 오만함과 끝없는 욕망을 되돌아보게 하고, 또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지구적 차원의 인문학(=지구인문학)에도 기여할 겸허한 철학적, 인간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체화인지’가 여전히 인간을 이해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자 ‘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 체화인지에 대한 나의 관심은 행화적 인지와 확장적 인지를 적절히 융합하는 데 있다. 행화적 인지의 초점은 인지는 몸적 활동이라는 것이고, 확정적 인지의 초점은 인지는 몸의 경계를 벗어나 확장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인지 이론 간에는 본질적인 갈등이 있다. 그 두 가지 이론은 인지를 위해 몸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몸이 필요한지에 대해 서로 다른 대답을 제시한다. 행화적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는 현재 인간의 몸을 기반으로 성립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몸이 향상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면 인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함축한다.
그러나 확장된 인지는 비록 현재 인간 몸이 생물학적-기계적 요소들과 결합하더라도 ‘인지적 기능’을 수행하는 한 인지는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트랜스휴먼과 사이보그 등 향상된 몸을 가진 휴먼을 고려할 때 그 두 이론 간 갈등을 조정하고 인간 몸의 위상에 대한 적절한 이론이 필요하며, 나의 접근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숀 : 체화인지에 대해 다양한 철학적 접근이 있다. 그중에는 뇌를 다시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접근도 있고 환경의 중요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접근도 있다. 나의 접근은 신경생물학자 바렐라(Francisco Varela)가 개척한 행화적 접근(enactive cognition)에 속하는데, 깁슨(James Gibson)이 주장한 ‘행위유도성’(affordance)으로 이해될 수 있는 행위 지향적 과정과 생태학적 요인을 강조한다. 나의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동적 관계에 놓인 뇌-몸-환경을 하나의 기능적 체계로 고려하는 데 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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