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결혼이주여성에게 효성을 강요하는 한국언론

사이박사 2009. 6. 12. 10:44

[논평] 여성인권은 국가적 “치욕”의 문제 아니다
조선일보의 베트남 여성 상품화 물의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필리핀과 베트남 등지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이 기실은 ‘매매혼’의 성격을 띠고 브로커들과 각종 중개업체들의 상술과 맞물려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미 광범위하게 제기된 가운데, 조선일보가 버젓이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기사를 실어 국가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한국 예비신랑이 베트남 예비신부들을 고르고 들여오는 과정을 ‘재미있게’ 관찰하고 있는 해당 기사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결혼중개업체의 광고와 흡사한데다가, 여성들의 사진까지 공개하고 있어서 뻔뻔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 측이 ‘사실보도’라 변명할 지 모르지만, 기사에서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보여주는 보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니터를 통해 가슴에 번호표를 단 여성들을 보고 신부 감을 점 찍는 과정, 대화도 거의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결혼,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예비신부를 보며 답답해하는 예비신랑의 모습까지 아무 문제의식 없이 기술하고 있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관련 기사에서 베트남이 제사, 효(孝), 교육열 등 “한국과 비슷한 문화”이고 “결혼 사기가 적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이를 권장하는 보도인 것이 분명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사람>지에 오수연씨가 쓴 <‘천국의 계단’너머 지옥에 오다>(2004년 6월)라는 글이 떠오르더군요. 남녀간 연애 판타지를 그리고 있는 한국드라마들을 보고서 베트남과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과 한국남성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결혼까지 하게 됐지만, 막상 결혼의 과정과 한국에서의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는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희망의 땅”과 “지옥” 사이의 간극은 혼인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상황 차이가 아니라, 관찰자 혹은 기록자의 성 평등의식과 인권의식의 차이일 것입니다.

조선일보 보도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 것은 한국에 유학 중인 베트남 여성들이 항의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베트남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하고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지요. 베트남 유학생들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항의집회를 하며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이고, 베트남戰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와 버마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단체인 ‘나와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한국남자에게 시집 왔냐’는 질문이 너무 듣기 싫다는 한 베트남 유학생의 말은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편견들을 돌아보게 하지만, ‘한국남자에게 시집을 온’ 베트남 여성들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한국사회의 편견에 저항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베트남 정부와 사회의 반응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드디어 베트남이 자국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에 대해 뭔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할 것인가 하는 기대를 갖게 되면서도 동시에, 지금까지는 몰라서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의 자국 여성에 대한 상품화가 ‘치욕’스럽다는 반응은 여성인권침해에 대한 분노라기보다 국가이미지 손실과 같은 다른 원인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최근 보반끼엣 베트남 전 총리가 하티키엣 베트남여성연합회 주석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습니다. “(중략)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내가 이 문제를 더욱 아프게 받아들이는 것은, 이것이 바로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우리 베트남 여성들의 치욕스러운 이미지이기 때문이야. (중략) 이래서야 어떻게 우리 베트남 여성의 전통을 지켜나갈 수 있겠는가? 도대체 누가 이 치욕을 씻고 이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단 말인가?” (2006년 5월 1일 보도)

“이래서야 어떻게” 베트남 여성들의 혼인을 통한 한국 유입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이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단 말입니까. 외국인 눈에 비치는 치욕스러운 이미지와 베트남 여성의 전통을 논하는 보반끼엣 베트남 전 총리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여성인권의 문제가 또다시 ‘국가’적 치욕이나 경제불평등의 문제로만 부각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됩니다. 그러한 관점으로는 절대 여성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베트남과의 우호적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워질 수 있다며 대책을 촉구하는 한국측 반응은 더욱 심란하지요. ‘가해’에 대한 성찰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무엇이 문제가 되는 사안인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베트남 처녀” 문제가 한국여성을 비롯한 각국의 수많은 이주여성들의 문제이며, 해당 보도의 ‘베트남 여성비하’는 국내 여성비하와 맞물린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키 큰 여성을 데려 오라고 신신당부했거든요. 어머니 밥 차려 드리는 것 보는 게 소원이에요.”라고 말하는 조선일보 기사 속 한국남성은 본인이 직접 어머니에게 밥 차려 드릴 생각은 하지 못하는 ‘효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여성이라면 누구라도 진저리를 치는 한국남성들의 흔한 사고방식이죠. 아내의 존재,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 남성의 생각과 이를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 언론의 태도는 한국사회의 여성차별의식과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들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세계 각국 여성들이 유입되는 국가이자, 자국 여성과 외국인 여성들을 송출하는 국가이며, 인신매매 국가로도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한국언론의 “베트남 처녀” 상품화 보도로 인해 불거진 논란을 한국과 베트남 간, 한국과 미국 혹은 일본 등 국가들 간 공조를 통한 매매혼 및 불법업체들과 브로커, 인신매매를 처단하는데 힘을 모으는 것으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국내에 이주한 국제결혼여성들의 삶이 어떤지, 차별을 받고 있다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 목소리들을 상세히 담아내고 ‘인권’의 관점으로 기록, 분석하여 알려내며,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일입니다.

 

 기사입력: 2006/05/03 [01:04]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