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상표’로 취급되는 이주 여성들

사이박사 2009. 6. 12. 11:26

‘상표’로 취급되는 여성들
국제결혼업체의 광고와 거래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저희의 경험상으로는 베트남 여성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순종적이며 순진하고 무엇이든 남편과 눈 높이를 맞추려고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잘 적응하십니다.” (A 국제결혼업체. 홈페이지 Q&A 중)

“출산 후에도 체형이 안 변해요”

4박5일 또는 3박4일의 짧은 방문 기간 동안 만남에서 결혼까지 진행되는 “국제결혼시장” 속에서 여성들은 한 사람이 아니라 거래되는 물건과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 국제결혼업체가 제공하는 정보나 광고 글을 보고 있으면 마치 여성들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베트남 여성’, ‘몽골 여성’, ‘한족여성’이라는 상표처럼 취급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A국제결혼업체는 자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필리핀 여성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필리핀은 전 국민의 90프로 이상이 카톨릭 신자입니다. 그래서 필리핀 사람들은 낙태나 이혼 등은 생각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칠 정도여서 아무리 힘들거나 어려워도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는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요.”

B업체는 베트남 여성의 장점에 대해 “신체적인 특징 중 하나가 출산 후에도 몸매의 체형이 임신 전 체형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도 말한다.

인격 아닌 ‘기능’

철저하게 ‘기능’에 초점을 맞춰 국제결혼을 광고하는 글들은 국제결혼 과정이 대상 여성을 철저히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국제결혼 업체를 이용하는 남성들도 결혼 이후 아내의 ‘이혼’이나 ‘가출’의 문제가 생길 경우 알선업체에게 보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국제결혼’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닌 ‘구매행위’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늠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업체들의 광고들은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노골적으로, 극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3세는 서구화 되어서 얼굴이 희고 신장이 늘씬합니다. 따라서 2세의 체질개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거나 “필리핀은 표준어로는 따갈로그어를 사용하지만 공용어로는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2세 교육에서도 상당히 유리합니다.”라는 표현 속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아이 낳아주는 도구’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C 업체는 심지어 조선족 여성에 대해 “중국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무역을 열어갈 분들입니다. 젊은 분들은 중국인과의 결혼이, 생존경쟁에서 외국어를 구사하는 비서를 갖는 것이 되며, 타인보다 성공이 보장되는, 앞서가는 양질의 삶이 될 것입니다. 생활력이 약하신 한국의 남성분들께는 부지런한 중국인과의 결혼이 최상의 삶의 방법임을 말씀 드립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구하는 것은 ‘배우자’가 아니라 ‘만능 도우미’인 셈이다.

매매혼의 구조부터 깨야

각종 매체를 통해 국내 사회에 적응하고 행복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는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도 소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수의 국제결혼가정들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지난 해 10월 성남여성의 전화가 10개국, 108명의 이주여성을 조사한 결과, 32퍼센트가 남편에게 폭행 당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중 43.5%의 여성은 “일상대화가 욕설”이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 시집 왔으니 한국 것만 따르라"는 식의 문화적 배경을 인정 않는 순응 강요나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갈등, 경제권을 쥔 통제 등 국제결혼 가정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대부분 부인을 배우자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물로 여기는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2005년 9월 아시아이주여성인권 국제포럼에서 김상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담실장은 <상담사례를 통해본 한국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의 삶>이라는 발표를 통해 국제결혼 이후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은 “부인을 동반자가 아닌 통제의 대상,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임 실장에 따르면 이들 남성이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고 서로 적응하려는 노력보다는 부인에게 일방적으로 순종을 요구하고, 서로 지지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을 무조건 따라와 줄 것을 기대”하며 이러한 태도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부인의 문화와 배경을 무시하는 인종차별, 그리고 가부장적인 사고가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결혼 과정에서 상당부분 예고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과 ‘동반자의 관계’를 맺는다는 기본적인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이주해 오는 여성들의 한국사회 적응문제는 결혼과정부터 인격적으로 논의되고 수립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는 국제결혼업체를 통한 매매혼의 구조를 깨는 것이 요구된다.

 

기사입력: 2006/04/18 [02:47]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