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한국 불교 배우는 몽골 여학생 인터뷰_외국인이 본 한국의 정체성

사이박사 2009. 6. 12. 09:41

그녀의 작은 앨범
한국불교 공부하는 오랑치맥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정선영

수능시험, 해탈문, 불교전문통역사, 남녀 평등…. 몽골인 여성 오랑치맥(23세)의 한국어에는 거침이 없다. 외국인을 만나면서 이렇게 편하게 한국말을 써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혹시 한국말을 하다 실수나 하지 않을지 조심해야 할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몽골 국립대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지금 금강대 불교학부에서 한국 불교를 전공하는 학생이다. 게다가 몽골에 있을 때 한국 여행사에서 6개월 정도 근무를 했단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이제 한국에 대해 알만큼은 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아는 체’하지는 않는다. 대신 자신이 경험한 한국과 몽골의 문화 차이에 대해서, 몽골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장단점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 한국어를 좋아하고 지금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즐겁지만 한국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은 아닌 것 같다. 그는 몽골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몽골인의 순수한 삶의 가치를 존중한다.

불교적 ‘인연’

그의 꿈은 한-몽 불교전문 통역사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불교를 공부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 꿈을 갖게 된 건 몽골국립대 재학 시절 한국에서 온 교수님을 만나면서부터다.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교수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마다 종종 한국어와 몽골어가 유창한 오랑치맥에게 통역을 부탁했던 것.

어쩌면 지금 그에게 불교전문 통역사라는 직업은 몸에 꼭 맞는 ‘맞춤 정장’과도 같아 보인다. 불교도가 85% 이상인 몽골에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했고, 대학 시절에서는 한국어를 전공으로 택해 열심히 공부해 왔으니까. 오랑치맥에게는 이 모든 일이 불교적 ‘인연’이다.

같은 불교인데도 한국 불교와 몽골 불교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몽골 불교는 밀교라서 경전과 주문을 중요시하는 반면 한국 불교는 명상과 참선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불교 국가인 몽골에선 한국에서처럼 일반인들이 참선을 하거나 기도하는 일은 드물다.

얼마 전 경주 남산에 답사를 다녀 왔다. 사찰의 구조와 불교 유적을 둘러보면서 몽골 불교와 다른 한국 불교를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어려운 한자로 된 경전을 배워야 해서 요즈음은 한자 공부까지 하고 있다고 하니, 그의 한국 대학생활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난감한 질문들

가끔은 한국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지나칠 정도로 남에게 관심이 많고 질문을 많이 하는지 모르겠단다. 지금까지 제일 많이 들어본 질문은 “학교 갈 때 말 타고 가나요?”다. 그리고 제일 많이 난감한 질문은 바로 “남자 친구 있어요?”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했는데 이제는 ‘지금 즈음 남자친구 있는지 물어보겠군.’하면 바로 이 질문이 날아온단다.

한국 남자들에 대해서는 이제는 할 말도 없다. 왜냐면 몽골 여행사에서 근무 할 때 술집, 나이트, 가라오케에서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고 돈으로 여자를 사려는 한국 남자 여행객들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줄 알고 기다릴 줄 모르며 곧잘 화를 내는 일부 한국 사람들. 그가 돈 많은 한국인보다 순수한 몽골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 대한 열기와 반감

1990년대 이후 몽골의 민주화로 몽골 사회는 많이 변했다고 한다. 과거 공산주의 시절 몽골은 아주 잘 살지는 않았지만 평등하게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빈부의 차가 극도로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보고 깜짝 놀랄 만한 외제 승용차가 울란바토르 시내를 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더 이상 고등학교에서 러시아어를 배우지 않는다. 대신 영어가 인기 교과목이 되었다. 특히 한국어는 인기가 최고다. 변호사나 공무원, 교사 같은 직업보다는 한국어를 배워서 월급을 많이 주는 한국 회사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많은 몽골 여성들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려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몽골에는 한국어 학원과 한국 취업을 주선하는 회사들도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걸 에너지 일정의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에 대한 뜨거운 열기만큼 한국에 대한 반감도 똑같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불법 체류하다 쫓겨난 사람들, 공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들. 바로 이들이 안고 오는 한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에너지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만약 그에게 울란바토르 시내를 달리는 한국산 중고차와 몽골 초원을 달리는 말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몽골이 생산한 자동차를 모두가 평등하게 타고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

오랑치맥은 작은 앨범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가족사진, 대학 동기들 사진, 여행사에서 일할 때의 사진 등이 있었다. 낯익은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어 물어봤더니 몽골에 있는 한국 미용실에서 디지털 파마를 한 것이란다. 그리고 경찰관 아버지, 재단사 어머니, 체코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 그리고 디자인을 공부하는 동생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만든 전통 몽골 옷을 입고 몽골 초원에서 찍은 가족 사진도 있었다. 몽골의 수도에서 1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인데 게르라는 몽골식 가옥도 볼 수 있는 시골에서 살고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존경하는 여성 명상지도자의 사진도 있었다.

오랑치맥의 얼굴에 깃든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은 몽골 우유차처럼 담백한 인상을 가진 그의 가족과 일상화된 그의 오랜 명상 습관에서 배어 나오는 것 같다.

 

기사입력: 2006/06/13 [23:31]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