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몹쓰리)의 문제/ 정당방위

영화로 보는 미국의 문학_시민 자경단(自警團)과 「데쓰 위시」(죽고 싶은 마음_거리의 복수로 이어짐)

사이박사 2014. 11. 4. 13:22

시민 자경단()과 「데쓰 위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던 시절로 예전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가 있었다. 마을에 보안관이 있었지만 보안관이나 보안관보의 힘만으로 모든 분쟁을 다 해결할 수는 없었고, 또 싸움이 꼭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으며 무법자는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인정된 것이 정당방위권과 사유지 수호권이었다. 법이 미처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당방위권의 행사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사유재산권은 침입자로부터 자신의 가정과 터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생겨났다. 예컨대 총을 빨리 뽑을 수 있는 자가 최후의 승자로서 정의의 사나이가 되기도 했으며, 실수로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사람을 사유재산권을 빙자해 사살하는 일도 생겨났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여기는 사유지임. 들어오는 자는 기소할 것임’이라는 살벌한 팻말이 사방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얼마 전에는 길을 물으러 자기 집에 접근하는 일본인 유학생을 미국인 주인이 강도로 오인해 사살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모두 서부개척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시대는 변했고, 미국인들에게 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법은 여전히 멀어서 우선 주먹이나 총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뉴욕 같은 대도시의 길거리에서는 범죄가 워낙 자주 일어나며 미국의 법이 피의자를 처벌하기보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서 능력 있는 변호사만 구하면 얼마든지 법망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한 고소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법의 그러한 특성상 가해자는 쉽게 풀려나 다시 거리를 활보한다. 전 미국을 뒤흔들었던 O.J. 심슨 사건은 그 좋은 예가 된다. 물론 진범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피살당한 부인측 가족이 볼 때 O.J. 심슨을 체포한 경찰관의 인종차별주의를 문제삼아 무죄평결을 이끌어낸 심슨의 변호인들과 그것을 허용한 미국의 법제도가 대단히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한 미국인들의 누적된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보여 준 영화가 바로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데쓰 위시(Death Wish)」라는 영화다. 뉴욕의 평범한 어느 건축기사가 자신의 아파트에 무단 침입해 아내와 딸을 강간하고 무참히 살해한 불량배들을 경찰이 잡지 못하자, 자신이 직접 나서서 밤마다 뉴욕의 인간 쓰레기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범법자를 처벌하기보다는 보호하는 데 더 효과적인 미국의 사법제도에 불만을 품은 많은 미국인들의 찬사를 받아 이후 무려 4편까지 속편이 만들어졌다.

경찰이 수배중인 흉악범들이 하나 둘씩 시체로 발견되자 시민들뿐 아니라 뉴욕 경찰도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민 자경단원(vigilante)의 출현을 반긴다. 경찰은 찰스 브론슨을 의심하다가 드디어 증거를 포착하지만, 그가 뉴욕의 범죄율을 현저하게 떨어뜨렸음을 감안해 그를 체포하는 대신 다른 도시로 떠나라고 압력을 가한다. 그래서 영화는 찰스 브론슨이 뉴욕을 떠나면서 끝난다. 「데쓰 위시」 속편들의 배경은 로스앤젤레스 같은 범죄율이 높은 대도시이고, 그곳에서 그는 또 한번 시원하게 거리의 인간쓰레기들을 청소한다. 비록 속편으로 가면서 과도한 폭력 장면이 난무하고 작품의 질이 현저하게 낮아졌지만, 그래도 「데쓰 위시」는 미국 대도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영화가 히트한 이후 뉴욕에서는 한 지하철 승객이 자신을 흉기로 위협하는 강도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뉴욕시민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그 사람의 정당방위를 주장하기도 했다. ‘데쓰 위시’라는 말은 원래 ‘죽고 싶은 마음’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은 브론슨은 처음에 ‘데쓰 위시’에 시달린다. 법이 그의 좌절과 분노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오직 신속하게 정의를 실천하는 ‘거리의 복수’였을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민 자경단(自警團)과 「데쓰 위시」 (영화로 보는 미국-헐리우드 영화의 문화적 의미, 2003.6.30,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