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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어로서의 영어_최은경

사이박사 2014. 5. 2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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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의 역사 2 세계어로서의 영어 2 영어의 특징
     
    영어가 세계어로 자리 잡게 된 언어적 특성



    1. 고정된 어순


    현대 영어의 어순은 비교적 잘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독일어처럼 엄격한 문법적 통제를 받거나, 라틴어처럼 변화무쌍하지도 않다. 영어의 어순은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지나치게 고지식하거나 자유분방하지 않아 문화와 관계없이 기본 뼈대는 유지하면서도 특수성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영어학사전》1990에서는 굴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굴절은 시제, 인칭, 수, 성, 서법, 태, 격을 표시하기 위하여 접사를 붙이거나 man-men과 같이 모음 변이mutation에 의하거나, child-children과 같이 음소 교체에 의하여 한 낱말이 다른 낱말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 낱말의 형태가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인도•유럽 어족의 대부분의 언어는 굴절어이다. 굴절어에도 어순에 일정한 원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굴절어에서는 문장에 들어 있는 낱말의 위치를 옮겨 놓아도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데 별로 지장이 없다.

     

    고대 영어는 굴절어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굴절이 상실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굴절이 수평화되거나 탈락한 현대 영어로 변하게 되었다. 현대 영어는 다시 말해 분석적인 개혁을 통해 원래 굴절형이 나타냈던 여러 가지 뜻이나 문법 관계를 조동사와 전치사를 이용하는 우언적 표출periphrastic expression 방법으로 바꾸게 되었다.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학습해 본 사람은 명사와 동사의 경우 특히 그 굴절형, 활용형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들에 비하면 영어의 명사나 동사는 다루기 간단한 품사이다. 현대 영어는 복잡한 굴절형을 대부분 떨쳐 버리고 조동사나 전치사를 대대적으로 등장시키는 우언법을 사용하기에 다른 언어에 비해 배우고 활용하기에 비교적 간단하다.

     

    현대 영어는 이 우언법의 등장으로 배우기 쉽고 섬세한 어간의 차이를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특히 영어의 be동사에는 am, are, is, was, were 등 약간의 불규칙한 활용법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이외의 동사는 대부분 조동사의 도움을 받기만 하면 각종 시제형tense form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영어에는 원래 반과거형인도ㆍ유럽 어족의 로맨스어 따위에서, 아직 완료되지 아니한 과거 시제를 이르는 말이 없고, 미래형을 만들 때도 will, shall 또는 진행형을 등장시키면 된다. 영어는 have, will, shall뿐 아니라 do, did, may, might, can, could 등 다양한 조동사가 있어 라틴어나 프랑스어의 복잡 다양한 굴절형을 대신할 수 있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현대 영어는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의 낱말이 굴절형을 대부분 상실하였다. 굴절어의 상실과 어순의 고정 사이에는 필연적인 인과 관계가 내재해 있는 것 같다. 굴절형이 쇠퇴하여 그 결과 어순이 고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반대로 어순이 점차 고정되면서 복잡한 굴절형이 불필요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영어의 복잡한 굴절형이 사라지면서 강세와 억양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영어의 강세는 대단히 까다롭다. 원래 영어가 속한 게르만어에서는 강세에 어간root이 붙은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외국 낱말이 들어오자 영어의 강세 체계가 흔들렸다.

     
    말의 역사 2 세계어로서의 영어 2 영어의 특징
     

    어구나 문장에서도 억양이 달라지면 그 뜻이 달라진다.

     
     Is he coming 상승 억양 의문, 놀라움의 표시
     He is coming 하강 억양 질문에 대한 답이나 진술
     Is he coming or not 혼합 억양
     

    위와 같이 영어는 강세와 억양이 까다롭지만 다른 언어에 비해 현재 복잡한 굴절형이 없고, 어순 또한 적절하게 고정되어 있다. 영어가 세계어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는 데 이런 이유가 한몫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영어의 유연성과 간결성


    영어는 발달 과정에서 거침없이 외래어를 도입했다. 한마디로 말해 영어의 어휘는 이질적이고 세계적이다. 영어가 이렇게 몸집을 불려 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새로운 어휘를 무리 없이 수용해 낼 수 있는 언어•문화적 유연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원래 게르만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던 영어는 외국과의 빈번한 접촉을 거치며 라틴어를 비롯하여 로맨스어Romance Language: 라틴어가 분화하여 이루어진 언어를 통틀어 이르는 말. 로마 제국이 망한 후 그 언어가 분화하여 형성된 것인데, 이 가운데 한 나라의 공용어가 된 것에는 포르투갈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따위가 있다.에서 많은 어휘를 도입하였다.

     

    켈트어Celtic: Dower, London, Shamrock
    스칸디나비아어Scandinavian: Viking, window, they, their, ski
    프랑스어: castle, prison, government, duke, question, practice, reservoir, rouge
    스페인어: alligator, anchovy, armada, cannibal, cargo, deck, pueblo, ranch
    포르투갈어: albino, bossa nova, flamingo, pagoda
    이탈리아: duo, violin, allegro, duet, balcony, cameo, grotto, gondola
    독일어: boom, buoy, cruise, deck, dollar, cobalt, noodle, plunder, poodle
    아랍어: amber, cotton, mattress, orange, sugar, alchemy, algebra, lemon, magazine, coffee
    산스크리트어: curry, teak, shampoo, pajamas, bungalow, jungle, ginger, yoga, nirvana
    페르시아어: spinach, chess, shawl, bazaar, jasmin, caravan, khaki
    슬라브어Slavic: sable, intelligentsia, ruble, steppe, czar, robot, Bolshevik
    중국어: silk, tea, japan, ginseng, chop suey, chow mein, tong
    일본어: banzai, geisha, kimono, sake, samurai, soy
    아메리칸 인디언: moccasin, squaw, toboggan, moose, pecan, skunk, woodchuck, bayou, catalpa
    오스트레일리아어: kangaroo, boomerang
    말레이어: rattan
    폴리네시아어: taboo, tattoo, ukulele
    아프리카어: voodoo, gorilla, juke, jazz, banjo, gumbo, jigger, tote
    헝가리어: goulash, hussar, paprika, vampire
    터키어: khan, fez, shish kebab, tulip, turban

     

    위에 나열된 세계 어휘 이외에도 한국어, 몽골어, 에스키모어, 네덜란드어, 필리핀어, 사모아어, 타히티어, 통가어, 우르두어, 웨일스어, 서인도제도어, 베트남어 등에서 영어로 차용한 어휘는 다양하며 화려하다. 지금도 영어는 세계 각 문화권의 어휘를 계속해서 받아들이며 어휘의 목록을 날로 증가시켜 나가고 있다.

     

    영어는 점차 어순을 고정하고,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어휘를 받아들였다. 또한, 우언법을 발전시켜 유연성을 확보하였다. 영어의 자유로운 품사의 기능 전환은 어휘의 품사를 의식하지 않고 자유자재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했다. 그 예를 보자.

     

    line
     
    a dotted line
    His line is busy. 통화 중이다
    in the line of duty 공무 중에
    line one’s pocket 개인의 욕심을 채우다
     

    go
     
    She seems to be on the go. 바쁜 것 같다
    All systems are go. 모든 장치가 정상 가동
    No go. 아무 소용 없는

     

    위에서 line과 go는 자유롭게 기능을 전환해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어는 간결성을 추구한다. 관계 대명사의 생략, 격언에서 볼 수 있는 병렬 구문의 사용으로 낱말이나 어구를 최소한으로 줄여 그 의미를 간결하게 표현한다.

     

    Like father, like son.
    No root, no fruit.
    First come, first served.

     

    또한 자유롭고 간결한 언어 사용을 위해서는 철자법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데, 영어가 오늘날의 철자법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755년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영어 사전 출간은 영어의 철자를 고정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영어 자음의 경우 그 철자가 상당히 분명하게 소리에 가깝게 표기되어 있고, 다른 언어에서 볼 수 있는 음성 구별 기호가 없으며, 영어 철자의 국제화는 많은 사람에게 오히려 친숙함을 더해주고 있어 외래어가 음성적으로 바꾸어 표기된 것보다 유리하다고 포터S. Potter는 주장하고 있다.
     

    영어의 철자는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는 과정에서 표음 문자이면서도 시각적으로나 의미상으로 뜻의 단위로서의 인상을 강하게 풍기며 표의 문자적인 성격도 아울러 지니게 되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침략자의 언어인 게르만어는 5세기 중엽 영국에 안착하여 영국의 모국어인 영어로 오랜 세월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과정에서 세계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영어는 급속도로 국제적인 성격을 띠며 세계 무대에서 사용되는 제1 언어로 부상하였다. 세계 어디서나 누구나 앞다투어 영어를 공부하고, 유용성 면에서도 다른 언어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어나 프랑스어가 공인된 언어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최강국으로 부상하고, 영어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군사적인 면을 포함해 거의 모든 면에서 단연 우위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말의 세계화의 해법은?

    영어는 다른 언어와 달리 지난 1,000년 동안 비모국어 영어 사용자를 무섭게 파고들어 세계어의 자리를 구축하였다. 그 자리에 한국어가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전 세계 한국어 사용 인구는 약 8천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80여 대학, 일본의 45개 대학에 한국어과가 있고, 미국에는 주말 한국어 학교가 1,000개 이상 운영되고, 미국 대학 입시SAT II에 한국어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학 연구소는 세계 20여 개국에 설치되어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1990년부터 국제 봉사단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네팔을 비롯한 4개국에 44명을 파견하는 것으로 시작한 봉사단은 2009년부터는 해마다 1,000명 이상의 봉사자를 세계 각국에 파견한다. 이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개발 도상국은 특히 한국이 가난을 벗고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경험을 배우고 싶어한다. 국제 봉사 지원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국력을 키우는 길이며, 한국 문화, 우리 언어 보급에 직•간접적으로 공헌할 것이다.

     

    한국어는 국제특허협력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의 국제 공개어로 공식 채택되었다2007년 9월 27일. 종전까지 PCT 국제 공개어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등 8개였으나, 2007년 한국어와 포르투갈어가 추가되었다. 국제 공개어의 지정으로 한국 기업이나 발명가들은 굳이 영어 등으로 번역할 필요 없이 한국어로 서류 절차를 진행하면서 특허상 가능 유무에 대한 PCT의 예비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한편 한국어능력시험TOPIK은 외국인과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하여 시행되는데 1997년 1회를 시작으로 29회2013월 1월 20일까지 시험 응시자 수의 누계가 1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위의 몇 가지 예는 이제 한국어가 한반도를 뛰어넘어 더 크게 세계로 도약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국인의 부단한 한국어 사랑, 국외 봉사, 국력의 신장, 한류의 확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세계화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숫자와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언어 사용자 수 증가를 위해 우리나라가 해외 우수 인력의 자국민화를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은경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와 하와이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의 런던대학교에서 초빙 교수로 강의하였고, 현재는 덕성여대 영문과 명예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영어로 펴 보는 한국》, 《영어 회화로 엮은 한국과 한국의 전통》, 《영어 숙어의 길잡이》, 《영어 이야기ㆍ언어 이야기》, 《영어 구동사의 벗》, 《English Dialogue on Things Korean》, 《영국적 특성과 영국ㆍ영어 이야기》 등이 있다. 역서로는 《붉은 무공훈장》, 《길을 묻는 그대에게》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는 《진실의 순간》, 《창문을 두드리는 천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