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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말들, 되살아나는 말들_장영준

사이박사 2014. 5. 21. 13:04

  •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10%의 언어
     
     

    2010년 1월 28일 지구상에서 언어 하나가 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인 보어의 마지막 주민이 인도 안다만 제도에서 숨을 거둠으로써 7만 년 된 언어가 사라진 것이다. 2012년 10월 4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크로마티어를 사용하던 마지막 사용자가 숨을 거둠으로써 또 하나의 언어가 사라졌다.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팔라에서 쿠페뇨어가 사라졌고, 1974년에는 맹크스어가 사라졌으며, 1777년에는 콘월어가 사라졌다. 세계 곳곳에서 매일 언어들이 죽어 가고 있다. 7천에 가까운 언어들이 마치 생명체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향한 질주를 하고 있다.

     


    언어,
    왜 사라지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사라진 언어들은 사용자가 수십 명에 불과한 작고 약한 언어였다고. 그리고 한국어는 사용자가 8천만이나 되는 커다란 언어니까 굳이 죽음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말로 약한 언어만이 숨을 거두는 것일까? 가장 강력한 제국이자 천 년을 넘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라틴어가 사라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 유럽과 북아프리카, 소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의 언어가 사라진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거꾸로, 겨우 1,600년 전 소수 민족의 언어였던 영어가 브리튼 섬으로 이동한 뒤 오늘날 10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거대 언어로 성장한 것은 어떤 요인 때문이었을까? 정반대의 운명을 맞이한 라틴어와 영어를 생각한다면, 언어의 탄생과 사멸을 단순하게 사용자 숫자로만 판단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사용자 수가 많다고 해서 그 언어가 오래 살아남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언어는 왜 사라지는가? 언어의 사멸은 언제나 정치적 권력의 작용이나 경제적 빈곤과 관련이 있다. 앵글로색슨Anglo Saxon 족이 브리튼 섬을 지배하게 되면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콘월과 웨일스의 공무원들은 영어를 사용했고, 공문서도 영어로 작성되었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받았다. 사회적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런던에서 쓰는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게일어Gael를 사용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고, 게일어를 쓰다가 걸리면 목에 막대기를 거는 처벌이 행해졌다고 한다. 무려 1960년까지 이어진 형벌이었다. 아일랜드에서도 게일어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벌을 내리는 관행이 주로 18~19세기에 널리 행해졌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탄압을 통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콘월, 웨일스에서 켈트어는 사라지고 영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 켈트어: 인도유럽어족의 한 어파. 고대 대륙 켈트어인 '갈리아어', 웨일스어•브르통어•콘월어를 포함하는 '브리타닉어', 아일랜드어•스코틀랜드게일어•맹크스어의 3종을 일컫는 '게일어'의 세 종류로 나뉜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언어 탄압을 경험했듯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언어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터키의 동부와 이란 서북쪽에 거주하는 수백만의 쿠르드인들은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다. 2001년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일단의 터키 대학생들이 쿠르드어를 선택 과목으로 배우게 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가 퇴학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물리적 탄압이 아니더라도 언어를 사라지게 하는 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다. 미국의 많은 인디언들은 자녀 세대가 대도시로 떠나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고, 사용함으로써 부모 세대의 죽음과 더불어 언어의 사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호주, 러시아, 중국의 여러 소수 민족들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인들의 자발적 선택 역시 언어 사멸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켈트어는 영국의 식민지라는 정치적 이유에 덧붙여 경제적 궁핍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었다. 19세기만 해도 아일랜드에서는 약 4백만 명이 게일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1845년에 아일랜드를 강타한 극심한 흉년으로 약 백만 명이 굶어 죽었고, 약 2백만 명이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과 미국 등으로 향했다. 결국 남은 사람들은 영국의 세력이 강한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영어를 배워야 했고, 영국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서라도 영어를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마주하는
    소수 언어의 위기

     

    미 대륙의 원주민인 포모족이나 유키족의 인디언 언어도 머지않아 곧 사라질 것이다. 일본에서도 아이누족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고, 호주의 원주민어도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이 경우들은 모두 경제적 이유에서 모국어를 선택하지 않은 경우들이다. 이런 추세라면 백 년 후에는 전 세계에 약 600개 정도의 언어만이 남게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 중 90퍼센트가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매해 백여 개의 언어가 사라진다고 하니 2주마다 한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죽는 셈이다. 세계 인구의 90% 이상이 100대 상위 언어를 사용하는 반면, 나머지 10%의 인구는 6천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확실히 사용자가 수십 명에서 수천 명밖에 안 되는 소수 언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전체 언어의 절반 이상이 금세기를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언어학자들은 관측한다.

     

    수잔 로메인Suzanne Romaine은 저서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에서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기 이전에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의 창'이기 때문에 한 집단의 언어는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각 집단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인류가 쌓아 온 지식의 절멸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태평양 팔라우 섬의 어부들은 수백 종의 물고기 이름과 서식지, 수많은 어종들의 음력 산란 주기를 알고 있다. 북극의 이누이트족은 어떤 종류의 얼음과 눈이 사람과 개, 카약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알며, 얼음과 눈의 강도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필리핀 민도로 섬의 하우누족은 450여 종의 동물과 1,500여 종의 식물을 구별할 수 있다. 로메인은 이러한 언어들이 죽음으로써, 인류의 지적 자산이 사라진다고 지적한다. 멕시코 작가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도 "언어가 소멸될 때마다 인간의 모습도 하나씩 소멸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David Crystal도 언어의 소멸에 대해 “우리는 지금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정신적인 재앙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언어들이 죽어 가고 있는 사이에 몇몇 거대 언어가 점점 더 몸집을 불려 가고 있다. 사용자 10억 명 이상의 중국어, 사용자 5억 명에 이르는 스페인어, 역시 사용자가 5억 명이 넘는 영어가 그렇다. 그리고 이들 거대 언어는 점점 더 그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언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계속된다면, 《언어의 역사》를 쓴 스티븐 피셔Steven Fischer의 지적처럼, “머지않아 세계의 모든 언어들이 아주 적은 몇 개만을 빼고는 다 사라져 버릴 것이며 마지막에는 전체 인류를 위한 단 하나의 언어가 남을 것”이다.

     

    언어의 사멸은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언어가 태어나고 사라졌다는 사실과 더불어 언어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는 7천여 가지나 되는 많은 언어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어의 수가 줄어들면 우리는 그만큼 외국어를 배우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영어 하나만 알아도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어렵지 않게 소통이 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영어 공용화론이 제기되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공용화론자들은 소위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 영어 실력이 출세와 소득까지 결정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는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영어 공용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은 영어 공용화가 말 그대로의 공용화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은 우리말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 근거를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두 언어의 균형 잡힌 공존보다는 어느 한 언어의 쇠락이라는 결과를 우리는 자주 목도한다.

     
     
     

    사라질 것인가, 지속될 것인가
    사용자의 의지에 달린 언어의 운명

     

    언어는 일방적으로 사라지기만 할 뿐인가? 물줄기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가? 오늘날 사라진 언어들을 되살리려는 노력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언어들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사멸 위기에 처했던 바스크어가 되살아나 현재 약 70만 명이 사용하는 튼튼한 언어로 재탄생했고, 아일랜드에서는 빈사 상태에 있던 게일어가 되살아나고 있으며,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어가 죽음의 문턱에서 일상어로의 행복한 질주를 시작했다. 1974년 네드 마드렐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던 맹크스어도 되살아나 1992년 맨 섬에서 맹크스어 수업을 개설했을 때 학생의 20% 정도가 수강 등록을 했다고 한다. 맨 섬의 정부는 맹크스어로 된 책의 출간을 장려하고, 언어사무국을 설치했을 뿐 아니라 맹크스어 전담 공무원까지 두고 있다. 정글의 법칙에 맨몸으로 노출되었던 소수 언어들이 이제 인위적 보호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우리말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자 수나 정치•경제적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떠나서 한 언어의 운명은 오로지 그 사용자들의 의도와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영어 공용화가 우리말을 죽일 것이라는 주장에도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죽음을 맞았던 소수 언어들이 되살아난 적지 않은 지역이 바로 영어가 모국어인 지역들이기 때문이다. 정치•경제적 상위 언어만이 살아남는다는 주장에도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3백 년간 상류층의 언어였던 불어가 사리지고 무지렁이 백성들의 언어였던 영어가 마침내 영국의 언어로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운명이 어디에 달려 있는가는 이제 묻지 않아도 분명해진 것 같다.



     
     

    글_장영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하버드대학교 언어학 박사. 현재 한국언어학회 전문 학술지 《언어》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언어 속으로〉, 〈한국어 통사 구조 새로 보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