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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인쇄술의 발전_홍혜정

사이박사 2014. 5. 16. 15:32

인쇄술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수도원의 수도승들이 직접 필사하여 책을 만들었다. 책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 보통 3년 이상 걸렸으므로 책은 아주 귀중하게 여겨졌고, 지식은 소수의 상류층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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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사업 수완이 만들어 낸
독일 인쇄술의 발전

 

15세기까지 독일에 존재하던 인쇄술은 나무나 금속에 글자 또는 그림을 새겨 찍어 내는 방식이었으며, 인쇄물은 대부분 흑색이었다. 15세기 말에 들어서야 회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과 그림을 한꺼번에 인쇄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발달하기 전이라 순차적으로 인쇄를 해야 했고, 이에 따라 글과 그림이 같은 색깔로 인쇄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금속으로 이동식 활자를 만들어 이를 인쇄기로 찍어 내는 기술을 발명한 후로 짧은 시간에 대량의 책을 펴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발명가이자 사업가였던 구텐베르크는 인쇄기 발명에 투자한 막대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교회를 상대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면죄부를 많이 찍어 냈고, 성경은 아주 귀하게 다루어져 교회 안에 비치된 성경은 도난 방지를 위해 무거운 자물쇠를 채워 놓을 정도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교회에서 읽어 주는 성경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구텐베르크는 그의 신기술을 가지고 주로 기독교 관련 인쇄물을 펴내기 시작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당시 활발한 무역을 통해 전 유럽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1462년 전까지 독일에는 마인츠Mainz 외에는 인쇄소가 없었지만 16세기 뉘른베르크Nürnberg 지역에는 24대의 인쇄기에 수백 명의 직원을 두고 운영할 정도로 큰 인쇄 공장이 생겨났다. 이 공장의 주인인 안톤 코베르거Anton Koberger는 성공적인 경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베네치아, 밀라노, 파리, 리옹, 비엔나에 지점을 두었다.

 

16세기에는 루터의 저서가 전체 인쇄물 중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점점 인쇄물의 내용도 다양해져서 종교 개혁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내용을 담은 인쇄물도 많이 나왔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잡지 형식의 인쇄물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단신이나 떠돌아 다니는 소문, 가정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혜, 점성술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민속적인 내용을 담은 책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막시밀리안Maximilian의 명으로 아주 섬세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책들도 인쇄되었다. 그러나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소수였으므로 여전히 인쇄물은 그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인쇄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아져 요즘 독일 뉘른베르크 성탄 시장에서는 다양한 인쇄 관련 제품이 팔리고 있다.
 
 
 
문명의 성쇠와
운명을 함께 한 인쇄술

 

한편, 인쇄물에 쓰인 언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5세기 인쇄물의 4분의 3은 라틴어였지만 16세기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인본주의 사상이 널리 퍼짐에 따라 라틴어는 지식을 전달하는 유일한 언어로서의 지위를 서서히 잃어 갔고, 그 자리를 독일어가 대신하게 되었다. 독일어로 인쇄된 책이 15세기에 3만 종류에서 16세기에 9만 종류로 늘어났다. 학술적인 책은 주로 스위스의 바젤Basel에서 인쇄했는데, 이는 인쇄물의 이동 경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당시 인쇄물은 북이탈리아에서 바젤을 거쳐 독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젤에는 인쇄공협회가 설립될 정도로 인쇄 문화가 발달했다.

 

인쇄술은 문명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했다. 17세기 중반 신교와 구교가 30년 동안 독일에서 종교 전쟁을 치르면서 독일 전역은 초토화되었고, 이 기간에 인쇄 문화도 퇴보했다. 현존하는 당시 인쇄물의 종이나 인쇄물의 색깔 등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1740년경에는 인쇄 문화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인쇄술에 능한 기술자들이 많이 나타났으며 목공 인쇄술이 다시 발달했고, 연판 인쇄술과 전기판을 이용하는 기술도 발명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전시회 안내 책자가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인쇄물에 쓰인 언어도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거의 모두 바뀌었다. 특히 시민들의 요구에 맞춘 인쇄물이 많이 나왔는데 새로 나오는 인쇄물의 약 5%는 소설이었으며 도덕, 종교, 철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인쇄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시민 사회의 문학적 표현 도구로 활용되었다. 또 인쇄물에 동판 조각술로 책에 삽화를 넣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특히 식물, 동물, 새, 곤충에 관한 책들은 아주 섬세한 동판 조각술로 인쇄되어 사람들에게 구매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고속 인쇄기를 발명한 독일의 프리드리히 쾨니히 사진 출처_www.wikipedia.org


손으로 끼우던 이동식 활자에서
디지털 인쇄술에 이르기까지

 

18세기까지 이동식 활자를 손으로 끼워 맞춰 책을 인쇄하는 방식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1812년 프리드리히 쾨니히Friedrich Koenig가 고속 인쇄기를 발명하면서 인쇄 속도는 이전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만큼 빨라졌다. 또한 새로운 활자체를 새기는 등 미적인 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1930년까지는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에 혁신을 가져올 만한 변화는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활자를 맞추는 작업은 기계화되었지만 납으로 된 활자를 사용하던 기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 사진 식자가 활용되면서 인쇄 작업에 큰 변화가 생겼다. 요즘은 책은 거의 모두 오프셋 인쇄 방식으로 찍어 내고 잡지나 카탈로그 인쇄에는 요판 인쇄를 사용하며, 최신 기술은 디지털 인쇄술이다. 오프셋 인쇄는 인쇄판을 만들어야 하지만 디지털 인쇄술의 경우 인쇄판을 만들 필요가 없으므로 수요에 따라 책을 인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독일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체들이 인쇄를 예술적인 표현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인쇄술이 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다.

 

1) 오프셋 인쇄: 보통 인쇄가 판면에서 직접 종이에 인쇄하는 데 비하여, 인쇄판에 바른 잉크가 원기둥을 거쳐 전사轉寫하여, 이것을 다시 피인쇄체에 인쇄한다.
2) 요판 인쇄: 찍어 내고자 하는 글자나 그림을 오목하게 파낸 후 그 홈에 잉크를 남겨 찍어 내는 방식



 
 

글_홍혜정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독일 함부르크대학 역사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함부르크에서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함부르크 한글 학교에서 독일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