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는 영어만큼은 아니라 해도 알고 보면 꽤 많은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이는 언어이다. 독일어는 현재 유럽 연합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에서 공용어公用語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이며, 사용 인구수도 유럽 연합 안에서 쓰이는 언어들 가운데 가장 많다.
독일어권 국가들의 공용어 지정 현황을 나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일어만을 공용어로 쓰는 나라
리히텐슈타인1개국
-리히텐슈타인리히텐슈타인 후국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작은 독립국으로, ‘후작’ 작위를 가진 군주가 국가 원수로 재임하고 있다. 1719년에 신성 로마 제국 소속 후국侯國으로 수립된 이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인근 연방에 가입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해 온 나라인 만큼 주변 지역과 같이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의 독일어 구어는 스위스와 비슷한 알레만 방언이지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표준 독일어Hochdeutsch’를 공식 문어로 사용하고 있다.
국가 전체의 공용어는 독일어뿐이지만 지역별로 복수 공용어를 채택한 나라
독일, 오스트리아2개국
-독일독일 연방 공화국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는 말 그대로, 독일은 ‘독일어Deutsch를 쓰는 나라Land’이다. ‘도이치Deutsch’라는 독일어 단어는 본래 ‘민중의 것’이라는 뜻으로, 이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자기 민족과 자신의 언어를 다른 민족과 다른 언어에 상대해서 일컫던 말이다. 그런 만큼 1871년에 민족 국가로서 통일된 독일국Deutsches Reich을 근간으로 하여 1949년에 수립된 독일 연방 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은 독일어 하나만을 국가 전체의 공용어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브란덴부르크 주와 작센 주 일부에서는 오랫동안 소르브어를 사용해 온 슬라브계 주민들이 6만 명가량 살고 있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그 주민들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소르브어를 독일어와 마찬가지로 재판을 비롯한 행정 업무에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다만 터키어 등 20세기 후반 이후에 새로 유입된 민족 집단의 언어들은 그 사용자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아직까지 공용어로 지정된 바가 없다. 한편 독일에서는 주요 시설명과 건물명에 오직 독일어만 적어 놓은 경우가 많으므로, 독일을 여행할 때는 독일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것이 유리하다.
1) 흔히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 공화국
독일과 함께 대표적인 독일어권 국가로 꼽히는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국가 전체의 공용어로는 독일어 하나만을 지정하였지만 일부 주에서 그 주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언어들, 즉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헝가리어 등을 복수 공용어로 채택하였다.
국가 차원에서 여러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였으며 독일어가 그중 하나인 경우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나미비아4개국
-스위스스위스 연방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등 4개 언어를 연방 차원에서 공용어로 지정한 나라이다. 주별로 공용어가 각각 달리 지정되어 있는데, 독일어 사용 지역은 전체 26개 주 가운데 21개 주에 이르며, 이 가운데 17개 주는 독일어 하나만을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사용 인구로 보아도 독일어 사용자가 가장 많다. 스위스 통계청의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스위스 국적자의 73.3%가 독일어 사용자라고 한다. 베른, 취리히, 바젤 등 스위스의 주요 도시들이 거의 모두 독일어권에 속한다. 다만 한국에 ‘제네바’라는 이탈리아어식 이름으로 알려진 주네브Genève는 프랑스어권에 속한다. 스위스의 도로 표지판과 주요 시설명의 경우 주별 공용어만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나, 여러 주를 오가는 기차 또는 스위스 국경 세관 등 스위스 연방 전체와 관련이 있는 시설물에는 특정 주와 관계없이 여러 공용어들이 병기되어 있다.
-벨기에벨기에 왕국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가 공용어로 지정된 나라이다. 벨기에는 본래 프랑스어만을 공용어로 사용하던 나라였으나 1873년에 네덜란드어도 공용어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제1 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19년 독일에서 벨기에로 편입된 지역에서는 독일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다. 벨기에의 독일어 사용자는 1% 남짓에 불과한데도 독일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것은, 유럽 사회에서 독일어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룩셈부르크룩셈부르크 대공국
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였다. 룩셈부르크어는 사실상 독일어 방언의 일종이지만 독립국 룩셈부르크에서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언어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룩셈부르크에서 공용어로 쓰이는 독일어는 다른 독일어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표준 독일어이다. 말하자면 룩셈부르크는 표준 독일어와 독일어의 특정 방언구체적으로 ‘모젤 프랑크 방언’의 한 갈래이 동시에 공용어로 지정된 나라인 셈이다.
-나미비아나미비아 공화국
유럽 이외의 지역 가운데서 유일한 독일어권이라 할 수 있는 나미비아는 제1 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른바 ‘위임 통치령’ 시기를 거쳐 1990년에 독립한 이후 독일어를 아프리칸스어 등과 함께 여러 ‘민족어Nationalsprache’들 가운데 하나로 지정하였다. 현재 나미비아의 공용어는 영어로 규정되어 있으나 사실상의 복수 공용어 개념인 ‘민족어’를 공용어와 별도로 지정한 것이다.
국가 전체의 공용어는 아니지만 일부 지역의 복수 공용어로 독일어를 지정한 나라
이탈리아1개국
-이탈리아이탈리아 공화국
이탈리아의 국가 공용어는 이탈리아어뿐이다. 하지만 북동부 트렌티노쥐트티롤Trentino-Südtirol 주는 오스트리아계 주민들이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관계로 주 정부에서 독일어를 복수 공용어로 지정하였다. ‘쥐트티롤Südtirol’은 독일어로 ‘남부 티롤’이라는 뜻인데, ‘티롤’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서부 지방과 이탈리아 북동부 지방을 아우르는 지명으로서 트렌티노쥐트티롤 주는 오스트리아 티롤 주와 맞닿아 있다. 2) 이는 독일어식 이름이며, 이탈리아어식 이름은 트렌티노알토아디제Trentino-Altoadige이다.
독일어가 공용어는 아니지만 일부 지역에서 독일어가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나라
프랑스1개국
-프랑스프랑스 공화국
현재 프랑스 영토로 되어 있는 알자스-로렌 지역 역시 독일어권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이 중에서도 특히 독일어로는 ‘엘자스Elsass’라고 불리는 알자스Alsace 지역은 오랫동안 신성 로마 제국 영토였다가 근대 이후 프랑스와 독일 사이를 여러 차례 오갔던 곳으로, 1944년에 프랑스로 귀속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독일어 방언 가운데 하나인 엘자스 방언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도로명 표지판 등 주요 시설물에도 프랑스어와 독일어 엘자스 방언이 병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비록 독일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한 독일어권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지명들도 대부분 독일어에서 유래하였는데, 예컨대 중심 도시인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독일어로 ‘거리의 성채’라는 뜻을 가진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를 프랑스어식으로 표기하고 발음한 것이다. 다만 이 지역은 1944년 이후 프랑스 정부에서 독일어를 ‘외국어’로 간주하고 독일계 주민들까지도 프랑스어를 쓰게 하는 언어 정책을 추진한 결과 독일어 사용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역 언어인 독일어 엘자스 방언을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독일어는 이처럼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이다. 그런 만큼 각 지역 및 국가의 독일어 사이에도 방언 차이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더구나 독일어 사용 지역은 오랫동안 명목상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작은 나라들로 갈라져 발전해 온 탓에 지역별 방언 격차가 작지 않았고 구어의 경우 오늘날까지도 지역별 방언 차이가 매우 큰 언어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어는 독일어권 전체에서 ‘표준 독일어Hochdeutsch’ 한 가지가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방송 매체에서도 기본적으로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독일인들이 자기 지역의 구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오면서도 글을 쓸 때는 여러 지역 사람들이 두루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쓰고자 하였고 또한 그 언어로 된 수준 높은 글들이 많이 나와서 독일인들은 물론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까지도 표준화된 문어 독일어를 널리 배우게 된 덕택이다.
3) 현대 표준 독일어의 근간이 된 언어로, 직역하면 ‘고지 독일어’이다. 이것은 다시 ‘중부 독일어’와 ‘상부 독일어’로 나뉜다.
다만 표준 독일어는 독일 중동부 지방 방언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중립적인’ 방언으로서, 한국어의 표준어가 서울 방언을 토대로 하여 규정된 것과 달리 특정 지역의 방언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립국어원이나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와 같이 ‘올바른’ 언어 표현을 규정하는 국가 기관이 독일어권 국가에는 없는 것도 특징이다. 다만 독일어 사용자들은 글을 쓸 경우 또는 방송 매체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언어를 전달할 경우 관습적으로 더 선호되는 표현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표현을 표준 독일어로 간주하는 것일 뿐이다. 독일어에서 사실상 어문규범집 역할을 하고 있는 두덴Duden 사전에서도 각 지역별 방언을 표준 독일어로 간주되는 표현과 동등하게 등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독일어권의 역동적인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독일어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존중하는 독일어 사용자들의 혜안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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