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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검찰총장의 '철저 수사 지시'_정권의 발등에 떨어진 불

사이박사 2014. 2. 25. 18:01



“국정원 관련 의혹사건 일체는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인 만큼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 2013년 4월18일 오후, 채동욱 검찰총장의 ‘철저 수사’ 지시가 떨어진다.

대검청사와 구내 식당 연결 통로. 김봉규 기자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의) 중대한 의미를 잘 알고 있다.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겠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운명’은 아마도 이때 이미 결정돼 있었을지 모른다. 2013년 4월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자리였다. 그는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에 날카로운 칼을 박아 넣으려고 했고, 권력은 본능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인물의 약한 고리를 찾아들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 속에는 애초 ‘채동욱’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박 대통령 쪽에서 염두에 두고 밀었던 인물은 검찰 출신 ‘공안통’인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김학의 대전고검장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퇴임 직전 꾸려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박 대통령 쪽의 기대를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사상 최초로 외부 인사가 참여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2013년 2월7일 안창호·김학의 두 사람을 제쳐놓고 채동욱 서울고검장, 김진태 대검찰청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을 3배수 후보로 확정해 청와대로 밀어올렸다. 청와대는 한달이 넘도록 검찰총장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세 후보를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2013년 3월15일 이런저런 약점들이 있던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결국 채동욱 서울고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다. 대신 박 대통령은 검찰총장 후보로 내심 점찍었던 김학의 전 대전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임명한다. 채동욱 후보자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검찰총장 경쟁자이기도 했던 인물의 차관 임명을 두고 ‘채동욱 체제’를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얼마 뒤 ‘성 접대 의혹’으로 낙마하며 박 대통령 ‘수첩 인사’ 실패 사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2002년 피의자 사망으로 위기에 처한 검찰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명재 검찰총장 이후 11년 만에 임명된 정통 수사검사 출신의 검찰총장이었다. 정무적 판단에 능한 공안검사나 기획검사들과 달리 수사검사들은 정권의 의중을 살피기보다는 수사 논리에 충실하기 마련이다. ‘나오는 대로’ 수사하다 보면 정권에 칼을 겨눌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관련 의혹사건 일체는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인 만큼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 대선에 개입한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하영씨 사건이 검찰로 넘어온 2013년 4월18일 오후, 채동욱 검찰총장의 ‘철저 수사’ 지시가 떨어진다. 서울중앙지검은 즉시 ‘특수통’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린다. 검사 6명, 수사관 12명, 디지털포렌식 요원 등 수사지원 인력 10여명이 배정된 대규모 수사팀이었다. 2013년 6월4일 <한겨레>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검찰의 방침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제동을 걸고 있다는 보도가 실렸다. 황 장관이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적용은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한 뒤에도 채 총장이 ‘수사팀 의견은 절대 바꿀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채 총장이 사표를 낸 지 보름만인 9월28일, 박 대통령은 그제서야 채 총장의 사포를 수리한다.

채동욱 욕보이기ㆍ망신주기, 그리고 찍어내기가 완성된 뒤였다.

언론단체들이 2013년 9월16일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보도를 규탄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2009년 11월19일 조선일보 박정훈 사회정책부장(당시)의 '공직자 사생활 보호' 칼럼

황 장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빼라’고 지시한 이유는 자명했다. 공직선거법을 적용할 경우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밟아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의 정당성은 그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청와대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검찰에 전달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머리털부터 발가락 끝까지’ 권력의 향방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공안통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황 장관의 ‘지시’는 사실상 청와대의 ‘지시’였다.

6월11일 윤석열 특별수사팀은 결국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한다. 그러나 수사팀은 기어이 원세훈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과 국가정보원법 제9조(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를 적용한다. 국정원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조직적으로 선거에 불법 개입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세훈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되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는 선에서 ‘절충’한 것이다. 청와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8월5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올드보이’ 체제로 청와대가 개편됐다. 김기춘 실장은 무려 21년 전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인물로,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감정 조장을 모의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공작정치’ 대가의 면모를 보였던 이다. 홍경식 민정수석도 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6기수 선배였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까지 노회한 공안통 3인방이 채 총장을 ‘포위’했다.

2013년 9월6일 아침 <조선일보>를 받아든 검사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한다.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는 시커먼 글자가 신문 1면에 박혀 있었다. 이미 석 달 전부터 시작된 ‘채동욱 찍어내기’ 작업이 사실상 ‘화룡점정’ 직전이었음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채 총장은 “(보도의) 저의와 상황을 파악중이다.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에 굳건히 대처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일반적인 취재로는 확보할 수 없는 출국일, 가족관계등록부 내용 등을 속속들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보도 1주일 뒤인 9월13일 채 총장은 사의를 밝힌다. 검찰총장 임명 5개월여 만이었다.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채 총장을 청와대는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틀 뒤인 9월15일 “사표 수리보다 진실 규명이 우선이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밝힌다. ‘채동욱 망신주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선전포고였다. 황교안 장관은 “감찰은 없다”던 기존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더니 청와대의 의중을 따라 채 총장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다. 채 총장이 사표를 낸 지 보름 만인 9월28일. 박 대통령은 그제야 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한다. “채 총장이 전혀 조사에 응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아 이 문제가 장기간 표류할 수밖에 없고, 검찰 수장 자리가 계속 공백 상태가 되는 상황이 됐다”고 사표 수리 배경을 설명했다. 채동욱 욕보이기·망신주기, 그리고 찍어내기가 완성된 뒤였다.

얼마 뒤 황 장관이 과거 부장검사 시절 삼성그룹에서 거액의 상품권을 받았다는 뇌물수수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황 장관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고, 그 한마디에 어떤 감찰도 진행되지 않았다. 채 총장이 물러난 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은 산산조각이 났다. 10월17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 대한 체포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에게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고 원래 보직인 여주지청장으로 복귀시킨다. 대선개입 증거가 백만·천만 단위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나흘 뒤인 10월21일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법무부의 외압과 검찰 지휘부의 수사방해를 작심하고 털어놓는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은 점차 사실인 것으로 굳어져 갔지만, 특별수사팀 수사에 대한 청와대·국정원·보수언론의 ‘조직적 반격’에 혼외자 문제가 활용됐다는 사실 역시 자명해져 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1년을 코앞에 둔 2013년 12월2일.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이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어린이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본적을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에게 알려주며 확인을 부탁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해당 국장은 이튿날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 행정관이 어린이의 신상정보 확인을 부탁한 이후 감사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청와대 행정관이 혼외자로 지목된 어린이의 신상정보를 서초구청 국장에게 전달한 날짜는 2013년 6월11일이었다. 이날은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이 황교안 장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원세훈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날이었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2013년 9월13일 사의를 표명한 뒤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채동욱 검찰총장의 퇴임으로 직무대행을 맡게 된 길태기 대검 차장. 뉴시스

조이제 서초구 행정지원국장이 2013년 12월18일 영장실질심사 뒤 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는 이후 해당 행정관의 ‘윗선’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이는,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듯한 대처로 의심을 키웠다. 이 와중에도 법무부는 12월18일 ‘항명’ 논란을 일으킨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에게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결정한다. 이 소식은 박 대통령 당선 1년이 되는 12월19일치 신문에 일제히 실린다. 2014년 1월4일. 국정원 정보관(IO)이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교육지원청에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정보를 캐고 다닌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또 ‘2013년 6월’이었다. 법무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월10일 부장검사급 정기인사를 통해 국정원 특별수사팀에 몸담았던 윤석열 여주지정창,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을 ‘한직’인 대구고검·대전고검으로 좌천시키는 인사를 낸다. 반면 특별수사팀과 갈등을 빚었던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감찰 조사가 진행중인데도 대구서부지청장으로 이동하는 데 그쳤다. 2014년 2월6일 서울중앙지법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를 축소·은폐해 공직선거법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용판 전 청장은 웃으며 법정을 떠났다. 2014년 2월25일 현재 청와대 행정관과 국정원 정보관의 개입 사실이 드러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관련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전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 적혀 있지 않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아웃’됐다. 하나 확실히 해두자. 박 대통령이 어느덧 자신의 ‘치적’으로 돌려버린 전두환 미납추징금 전액 환수는 채 전 총장의 작품이다. 검찰은 채 전 총장의 지시로 특별환수팀을 꾸린 뒤 109일 만에 전두환 일가로부터 자진납부 약속을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