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다스리기)/ 프레임

윤창중과 박근혜의 수첩인사

사이박사 2014. 2. 25. 18:04


윤창중이 누구인가.

칼럼과 방송 출연을 통해 야권을 향한 막말 수준의 폭언을 퍼부었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인 인사였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2012년 12월27일 인수위원장을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지난 연말 모 외신에서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 성추문 사건이 2013년 세계 8대 굴욕사건으로 선정된 것 알고 계시죠?”

2014년 2월12일 오전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고 있던 국회 본회의장. 유승희 민주당 의원이 정홍원 국무총리를 상대로 윤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이 ‘현재진행형’임을 상기시켰다.

-성추문 사건이 지금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미국에서 사법 절차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한국문화원이 사건을 묵살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정부에서 이 부분에 대해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데 계획은 뭐가 있나?

“은폐하려고 했던 일은 없었다고 알고 있다.”

-조사를 한 적 있나?

“그건 뭐 미국에서 형사사건을 수사하는 데서 할 것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미국 문화원이 미국(의) 문화원이 아니지 않나?

“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있으면 당연히 미국에서 조사할 일이고, 우리 내부적으로는 그런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시 한번 조사해 달라.

“…”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직권면직’된 지 9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윤창중, 이름 석 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 ‘수첩 인사’의 상징으로 박혀 있다. “경질하세요”라고 말했다는 박 대통령의 단호함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식’ 화법은 서로 맞닿아 있다.

2012년 12월24일 오후 6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단행한 ‘1호 인사’가 ‘윤창중’이라는 사실에 대한민국은 경악했다. 이날 새누리당 공보단장 출신인 이정현 최고위원은 당선인 수석대변인과 인수위 대변인으로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 최고위원도 “발표 20분 전인 오후 5시40분에 당선인으로부터 명단을 받았다. 이름만 알려줬고, 별다른 배경 설명은 없었다”고 했다.

윤창중이 누구인가. 그는 자극적 어휘로 야권을 맹비난하는 등 극렬 보수층의 정서에 부합하는 ‘격문’을 양산해 온 보수우익 논객이었다. 칼럼과 방송 출연을 통해 야권을 향한 막말 수준의 폭언을 퍼부었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인 인사였다. 대선 하루 전날인 2012년 12월18일 칼럼에서 여권에 있다가 대선 기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 윤여준 전 장관,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에 대해 “정치적 창녀”라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또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김정은이 보낸 축하 사절단이 대통령 취임식장에 앉아 종북시대의 거대한 서막을 전세계에 고지하게 될 것이다. 종북세력의 창궐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도 썼다. 반면 박 대통령에 대해서만은 무한대의 찬사를 보냈다. 그는 <월간조선>에 쓴 글에서 “(박근혜는) 단언하건대 권력의 심장인 청와대에 들어가면 국민들에게 ‘박정희+육영수의 합성사진’을 연상시키고도 남을 만큼 대쪽 같은 원칙과 책임의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썼다. 윤 대변인 발탁을 두고 박 대통령 주변에서는 “당선인이 평소 관심을 가져온 칼럼니스트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윤 대변인의 발탁에 경악한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대선이 끝나고 이틀 뒤인 2012년 12월21일 당선 인사를 통해 “갈등과 분열의 정치, 제가 단번에 끝낼 수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완화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으신 분들의 뜻도 겸허히 받들고 야당을 진정 국정의 파트너로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인 20일,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대통령 당선자 박근혜,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섣부른 감상주의, 낭만에 빠져서는 절대 안 된다. 전통적 지지세력부터 더욱 강고히 만드는 작업을 소홀히 말라”며 대통합론을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그런 ‘대국민 약속’을 하고도 윤 대변인 같은 인물을 ‘박근혜 1호 인사’로 낙점한 것은, 앞으로 있을 ‘박근혜식 마이웨이 수첩인사’의 서막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과거 정치권과 언론을 거듭 넘나든 윤 대변인의 ‘처세’도 도마에 올랐다. 게다가 윤 대변인은 대선 이틀 뒤인 12월21일 한 종편방송에서 ‘인수위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제 영혼에 대한 모독이다. 윤봉길 의사 보고 이제 독립됐으니까 문화관광부 장관 하라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 의해 대변인으로 발탁되자 바로 말이 바뀐다. 사흘 뒤인 12월24일 “윤봉길 의사가 제 문중 할아버지다. 윤봉길 의사가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2013년 1월6일 박근혜 당선인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인수위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제 영혼에 대한 모독이다. 윤봉길 의사 보고 이제 독립 됐으니까 문화관광부 장관 하라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 의해 대변인으로 발탁되자 바로 말이 바뀐다.

조선일보 2012년 12월26일자 사설, 야당 배격한 인사 비판

만약에 대한민국 정부의 첫번째 인선에서 제안을 받았다면 애국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해 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윤봉길 의사 기념 사업회’는 “윤창중씨는 한번도 윤 의사 추도식이나 기념식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했다. 파평 윤씨 전국 대종회 쪽은 “윤봉길 의사와 윤창중 대변인은 촌수로 34촌에 해당한다. 파도 다르지만 ‘문중 할아버지’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2013년 5월7일 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W 워싱턴호텔 지하 1층 와인바. 첫 해외순방에 나선 박 대통령 방미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밤. 대통령의 ‘입’인 윤창중 대변인이 술에 취해 여대생 인턴 지원요원의 엉덩이를 움켜잡는 성추행을 저질렀다. 자정을 넘긴 8일 새벽 숙소로 쓰이는 호텔로 돌아와 또다시 성추행을 했다. 청와대 인사들은 이 지원 요원의 호텔방을 찾아가 무마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미국 경찰이 출동했고, 윤 대변인은 ‘도망자’가 되어 혼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5월9일 오전 미국 현지에서 성추행 사실을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경질하세요”라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대변인 임명 당시 자질 부족과 부적절한 언행을 이유로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셌지만 기어이 자신의 ‘수첩인사’를 지켜냈던 박 대통령은 그렇게 미국에서 ‘박근혜 1호 인사’를 잘라냈다. 박 대통령이 귀국한 5월10일 밤 10시40분.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청와대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이른바 ‘셀프 사과’였다. 4문장에 불과한 사과문은 윤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을 ‘개인적인 잘못’으로 돌리며, 윤 대변인을 임명한 장본인으로 성추행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박 대통령에게까지 사과를 했다.

여론은 더 싸늘해졌다. 5월11일 오전 서울 하림각.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 명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윤 전 대변인은 “허리를 툭 쳤을 뿐 성추행은 없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5월12일 허태열 비서실장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사과했지만 때는 늦었다.

결국 5월13일 박 대통령이 세번째 사과에 나서야 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윤창중 사태’를 불러온 근본 원인인 자신의 독단적 인사 스타일, ‘수첩인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보여주지 않았다. 청와대는 5월15일 윤 대변인을 직권면직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5월16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전문성을 기준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한번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그런 대로 절차를 밟았는데도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저 자신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윤창중 전 대변인이) 그런 분이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참 민망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5월23일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의 사표가 수리됐다. 두달여 뒤인 8월5일에는 “지쳤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뜻을 밝혀온 허태열 비서실장이 교체되고, 신임 김기춘 비서실장의 ‘시대’가 열렸다. 2013년 마지막날인 12월31일에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에 가려 존재감이 전혀 없던 김행 청와대 대변인이 대변인 직에서 물러났다. 새 정부 출범 10개월 만에 2명의 청와대 대변인이 모두 청와대를 떠나게 된 것이다.

한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던 청와대 대변인 자리는 2014년 2월5일에야 채워졌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아침까지도 <한국방송> 편집회의에 참석했던 ‘따끈따끈’한 현직 언론인인 민경욱 <한국방송> 전 앵커를 새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2006년 4월25일 <문화일보>에 쓴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이라는 비유는 포괄적이지 못하다.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입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