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가 2013년 3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을 따라 환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오석 부총리가 2013년 7월31일 새만금 투자 기업인 OCISE(주) 김재신 대표를 업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박정희 경제발전 모델에 깊숙이 발담궜던 그는 당연하게도 '성장우선론자', '시장중시론자'였다. 그는 2011년 '차기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복지 확대'를 꼽기도 했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또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제 자신의 신중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 드리고 의원님들께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지금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번에 공직자의 말의 무거움을 느끼고 공직자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들릴지를 잘 가려서 듣는 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
2014년 2월1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카드사 개인정보 대량유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다. 현오석 부총리는 한 달여 전인 1월22일 “금융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태를 수습하는 일이다”라고 말해,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털린 국민들의 심정에 불을 질렀다. 현 부총리는 논란이 커지자 이튿날인 1월23일 “금융소비자도 금융거래시 좀 더 신중하자는 취지에서 말씀드린 것이며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 역시 ‘소비자의 책임’을 거론한 것이어서 또다시 몰매를 맞았다.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망언”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1월24일 현 부총리는 허리를 90도로 숙여야 했다. “진의가 어떻든 정책의 대상이 되는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해명이 아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현오석 경제팀’에 믿음이 없었던 새누리당에서도 개각의 필요성이 번지는 등 파장은 커져 갔다.
결국 국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년 전 현 부총리 임명을 강행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나섰다. 1월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현오석 재신임’을 밝힌다. “최근 공직자들이 적절하지 못한 발언으로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신을 키우는 일들이 발생하곤 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재발하면 그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언론들은 박 대통령이 ‘옐로카드’로 경고만 했을 뿐 ‘퇴장’시키지는 않았다고 썼다. 박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비등하는 현 부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1월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개각은 없다”고 못박은 터에 20여일 만에 경제팀 수장을 교체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경제부총리를 경질하면 줄줄이 추가 개각 요구가 잇따를 수 있다. 자신이 임명한 인사들이 인사청문회에서, 혹은 인사청문회를 거치기도 전에 줄줄이 나가떨어진 경험은 박 대통령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은 현 부총리를 그냥 유임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 유탄은 엉뚱하게도 얼마 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맞게 된다. 전남 여수 기름유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열린 당정협의에 참석했던 윤 장관은 “1차 피해는 GS칼텍스, 2차 피해는 어민”이라고 말했다가 그동안 누적된 ‘옐로카드’ 때문인지 한번에 경질된다.
2013년 2월17일. 박 대통령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명한다. 그의 발탁을 두고 역시나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는 장·차관 승진을 못한 채 12년 전인 2001년 공직 생활을 마감한 인사였다. 그의 경력에는 경제기획원(EPB)과 한국개발연구원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두 기관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된 경제개발 모델 생산을 주도한 곳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역점을 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참여하면서 ‘박정희 시대 압축 성장’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는 ‘성장우선론자’, ‘시장중시론자’였다. 그는 2011년 ‘차기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복지 확대’를 꼽기도 했다. 복지정책 확대와 경제민주화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박 대통령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MB노믹스’를 적극 지지한 대표적 성장론자인 그를 경제정책 사령탑인 경제부총리로 임명한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현 후보자는 임명 다음날인 2월18일 그동안 내지 않던 장남의 증여세 485만원을 ‘지각 납부’한다. 3년 전인 2009년에 냈어야 하는 세금이었다. 그의 장남은 고교 재학 때인 2000년 이미 2000만원 상당의 금융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3년 2월 장남의 금융 자산은 1억4000만원으로 불었다. 그는 증여세를 지각 납부하면서도 이마저도 6100여만원에 대한 증여세만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장 시절 주말에도 판공비 622만원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 역시 전액 반납하기도 했다. 그가 기획재정부에서 퇴임한 뒤 연구용역 수행자로 선정돼 1억여원의 용역 수행비를 받았다는 ‘전관예우’ 의혹도 제기됐다.
현오석 부총리가 2014년 1월22일 개인정보 유출 대책 당정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실련이 2014년 1월27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현오석 부총리 등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현오석 부총리가 2014년 1월24일 한국능률협회 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14년 1월1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한 현오석 부총리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성장우선론자인 그는 인사청문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코드’에 맞춘 듯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성장론자에서 정권 입맛에 맞춰 경제민주화와 복지로 말을 바꿨지만 소신이나 실행 의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 인사청문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현 후보자를 지명한 지 34일 만인 3월22일. 박 대통령은 그에게 임명장을 줬다. 같은 날 ‘비리 백화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사퇴했다. 현 후보자가 ‘살아남아’ 임명장을 받아들 수 있었던 것은 김병관 후보자의 낙마 덕이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5월 들어 여권을 중심으로 ‘경제부총리가 안 보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 부총리의 ‘이중 플레이’가 시작된다. 6월18일 현오석 부총리,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김덕중 국세청장, 백운찬 관세청장이 조찬 회동을 위해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현 부총리는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 과도하게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 이런 법안이 마치 정부 정책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도록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적극 대응하겠다”고 했다. “공정위나 국세청, 관세청이 법 집행 과정에서 기업의 의욕을 저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달라”고도 했다.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와 탈세 등을 조사·감독하는 부처에 ‘적당히 일하라’는 주문을 한 셈이다.
갑작스런 현 부총리의 ‘유턴’에는 배경이 있었다. 현 부총리는 그동안 “경제민주화는 경제의 상수” 등의 발언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정작 박 대통령의 ‘원칙’이 변하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 관련 ‘과잉 입법’을 우려하는 발언을 조금씩 내놓기 시작하던 박 대통령은, 현 부총리가 조찬 회동을 하기 하루 전인 6월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급기야 이렇게 말했다.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과 입법은)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왜곡되거나 변질돼서는 안 된다.” 현 부총리의 ‘소신 없음’이 또다시 빛을 발한 것이다.
7월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부총리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서 주무부처와 협의해 개선 대책을 수립해 보고해달라”고 말한다. 이에 힘을 얻었는지 현 부총리는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안경을 닦아드려야 하느냐”며, 여권에서 제기되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반면 당장 경제로 심판받을 일을 걱정해야 하는 새누리당내 지도부와 경제통 의원들 사이에서는 “경제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현오석 경제팀이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안일하다”는 공개 비판이 연일 쏟아졌다. 현 부총리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수첩인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박 대통령은 7월23일 국무회의에서 ‘현오석 재신임’을 밝힌다. “새 정부 출범이 늦어지면서 경제부총리가 제대로 일할 시간이 4개월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오셨다고 본다. 이제 하반기에는 국민이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더욱 열심히 해주시기 바란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힘을 얻은 현 부총리는 7월31일 지역의 발전소 건설 부지를 찾아 한 투자자를 업어 보이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투자를 하는 분들은 업어드려야 한다. 내가 이러려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 ‘투자자를 업어드리라’는 것은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 박 대통령은 앞서 7월11일 제2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 정말 이분들이 경제를 살린다”고 말했다.
2013년 8월8일 현 부총리가 청와대·새누리당과 협의해 내놓은 박근혜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여론의 거대한 역풍을 맞는다. 조세의 핵심인 ‘형평’을 간과한 탓이었다. ‘유리지갑 털기’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박 대통령은 8월12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현 부총리는 불과 하룻밤 사이에 ‘땜질식 수정안’을 만들어 이튿날 곧바로 세법 개정안 수정안을 발표한다.
정책의 부작용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대통령이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관료 출신 경제부총리와 그가 이끄는 경제팀에 대한 경질 목소리가 여야 가리지 않고 커졌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사실상 ‘필드’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 부총리를 임명 강행했던 박 대통령의 ‘수첩소신’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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