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예산을 지원하는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됐고, 2월19일에는 그가 중앙정보국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김종훈 후보자가 해군 장교 시절 핵잠수함에서 찍은 사진. KBS 화면 갈무리
김종훈 후보자 부인 소유의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건물. 김정효 기자
2014년 2월14일 0시. 박근혜 정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였던 김종훈씨의 대한민국 국적이 다시 지워졌다. 미국 국적을 지난 1년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한 까닭에 국적법 제10조에 따라 애써 회복한 우리나라 국적이 자동상실된 것이다.
정확히 1년 전인 2013년 2월14일. 미국 시민권자인 김종훈 사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법무부에 국적 회복 신청을 신청한 지 엿새 만이었다. 그는 “조국에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했고, 국적 회복을 신청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기로 서명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국적 회복을 신청하지 않았다.
1조원대 부를 이룬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인 김종훈 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은 국적 회복 사흘 뒤인 2월17일이었다. ‘신선한 인선’이라는 평가는 채 반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곧바로 ‘자격’ 문제가 불거졌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김 후보자는 20대에 미 해군 장교로 7년간 복무하기도 한 ‘진짜 미국인’이었다. 그는 군 복무 뒤 “진짜 미국인이 됐다”고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행정부 서열로 따지면 대통령과 국무총리,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네 번째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을 총괄 수립하고 정보통신산업, 원자력 안전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무회의에서 국가기밀을 다루고, 미국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각종 산업·과학·국방정책 등에 관여하게 된다. 국가공무원법은 국가안보와 관련되는 정보·보안·기밀, 외교관계·통상교섭, 기업의 영업비밀 및 신기술 보호 등 민감한 분야를 다루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복수 국적자의 채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별도 규정을 두고 있다.
김 후보자를 포함한 ‘2·17 장관 후보자’ 인선 발표는 여러모로 박 대통령이 저지른 ‘반칙’이자 ‘불통 행보’였다. 박 대통령이 짜놓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가 서로 밀고 당기는 상황에서,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미래창조과학부 등의 장관 후보자들을 먼저 발표해 버렸기 때문이다. 국회는 안중에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장관 후보자들을 발표하면서 역시나 인선 배경은 물론, 제대로 된 후보자 프로필도 제공하지 않았다. 김종훈 후보자에 대해서도 그의 국적을 바로 확인해주지 못하다가 “한국 국적을 회복한 것으로 안다”는 답변을 뒤늦게 내놓기도 했다.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고 하루 뒤인 2월18일부터 김 후보자의 ‘장관 자격’을 묻는 의혹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 후보자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예산을 지원하는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됐고, 2월19일에는 그가 중앙정보국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김 후보자는 2009년 참여한 미 중앙정보국 자문위원회의에서 “중앙정보국 임무 달성을 위해 기꺼이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오로지 우리나라의 국익만을 위해 업무에 매진하겠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김 후보자의 공언은, 미국 시민권자로서 그가 쌓아온 경력·행적과 충돌했다. 그는 단순히 성공한 재미 이민자가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전면에서 수호하는 중앙정보국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한-미 동맹이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양국의 국익이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국익이 서로 충돌할 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김종훈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언론에 의해 단 하루면 확인될 수 있는 상식적 사안들이었다. 보안 유지에 급급한 ‘밀실 인사’, 자신이 눈여겨본 인사만을 고집하는 ‘수첩 인사’ 탓에 제대로 된 사전검증 없이 이뤄진
김종훈 후보자가 2013년 3월4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창중 대변인이 2013년 3월4일 김종훈 후보자의 사퇴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박 대통령의 첫 장관 인선은 곧장 실패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야의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이 진행되던 2013년 3월4일. 김 후보자가 지명 보름 만에 국회에서 돌연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 17명 가운데 첫 사퇴자였다.
이유는 엉뚱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정부조직 개편안 논란과 여러 혼란 상황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대통령 명령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한 해명은 없이 엉뚱하게도 정부조직 개편안을 두고 여당과 협상중이던 야당 때문에 장관직에서 사퇴한다는 말이었다. 정확한 사퇴 이유는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자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관련된 각종 의혹에 더해, 미국 시민권 포기로 인한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 등이 갑작스런 사퇴 배경으로 거론됐다. 김 후보자는 장관직 사퇴 바로 다음날인 3월5일 미국으로 출국한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던 김종훈씨는 장관직 사퇴 한달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한국 언론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에 ‘새로운 세상의 낡은 편견’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한국 민족주의’와 ‘마녀사냥’ 탓에 장관직에서 사퇴하게 됐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김씨는 그로부터 한달여 뒤인 5월 박 대통령과 다시 만난다.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만찬(7일 워싱턴), 창조경제 리더 간담회(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김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즈음 ‘박근혜 1호 인사’였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여대생 인턴 지원요원을 성추행한 뒤 미국 경찰을 피해 한국으로 도망치듯 귀국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종훈씨 사이의 ‘인연’에 대해서는 으레 그렇듯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항간에 알려지기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대통령과 처음 알게 됐다는 것이 전부다. 박 대통령은 김 후보자의 사퇴 의사를 접한 뒤 곧바로 대국민 담화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취임 1주일 만에 ‘파르르’ 떨며 국회를 향해 종주먹을 흔든 바로 그 ‘3월4일 대국민 담화’였다.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일주일이 되도록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과학기술과 방송통신 융합에 기반한 아이시티(ICT) 산업 기반 육성을 통해 국가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저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화가 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시종일관 싸늘하고 굳은 표정이었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다. 주먹을 불끈 쥐는 등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담화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담화문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했다. ‘모든 것’에는 박 대통령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수첩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 역시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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