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큰딸 이주여성과 한국의 남성중심사회

사이박사 2009. 6. 12. 12:02

국제결혼여성, 가난은 더 깊어진다
이주와 노동자의 권리-7
 
여성주의 저널 일다 주현숙
<필자 주현숙님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 온 이주여성들에 대한 영화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주여성 관련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작업을 시작할 때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관련 주제나 소재로 머리가 꽉 차 있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머리 속은 온통 이주여성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도 이주여성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이주여성과 관련한 사건들은 하나 같이 충격적인 일들이라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맞을 거 알고 들어오는 거 아니냐”

우연히 진보진영(?)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게 됐는데, 난 역시나 자연스럽게 전날 만난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60대 남자와 만난 지 이틀만 결혼해서 한국에 온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이 많이 때린 이야기, 남편의 거짓말로 임신 중절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난 그 사건을 들을 때도 심장이 떨렸지만 말하는 순간에도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약간은 흥분한 상태에서, 그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데 어쩌면 좋을지 답답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국제결혼 해 들어오면 맞는다는 거는 다 알고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을 줄 알고 결혼을 한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번쯤은 봤음직한 영상들, 어눌한 말로 남편에게 혹은 남편의 가족들에게 맞은 이야기를 하는 이주여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올랐다. 그 사람에게 “맞을 줄 알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말했지만 너무 작은 소리여서 들리지 않았을 거다.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 들으면 그것이 처음에 줬던 충격은 무뎌진다. 그 무뎌짐이 도를 넘어서 처음엔 이상했던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종의 세뇌라고 해야 하나? 대중매체에서 보는 이주여성은 너무 단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의 모습, 이 이미지가 이주여성을 ‘맞는 사람’으로 각인시키고, 이제 어떤 한국인들에게 이주여성은 ‘당연히 맞는 사람’이 되었다. 무서운 일이다.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맞을 것을 알면서 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남편 동의 있어야 체류할 수 있어

이주여성의 본국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은 거대하다. 사회적으로 국제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대부분 여성들은 자신이 한국에 와서 맞아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가족들에게 전할 수 없다. 심지어 남편의 폭력에 맞서 이혼을 해도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살 수도 없다. 주변의 눈이 무서운 것이다. 그런 실정이니 한국에 가면 맞는다는 정보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조금만이라도 이주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국에 현재 결혼하는 10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한다. 작년에 25만 명이 결혼을 했는데 그 중 2만 5천이 국제결혼이었다. 국제결혼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주여성노동자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주의 여성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으로 들어오든, 관광비자나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생으로 2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성 산업으로 유입되든, 이주여성을 가장 옥죄고 있는 것체류 문제다. 체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모든 문제가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된다.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이주여성은 한국국적을 얻기까지 2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998년 국적법 개정 이후론 결혼을 해도 2년 동안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해야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2년 동안, 6개월에서 1년씩 체류를 연장해주는데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즉, 남편이 아내를 맘에 안 들어 하면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 2년 동안은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이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혼하게 되면 남편에게 이혼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 체류할 수 없다. 한국여성도 힘든 판국에, 체류신분이 불투명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성이 남편의 귀책사유를 밝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이혼하고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너무 큰 상처다. 살림의 주름을 펴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딸이, 누나가, 빈 손으로 이혼녀가 되어서 돌아온다면 어떨까. 가족들은 외면하기도 하고, 주변에 그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본국으로 돌아가려 한다 쳐도 아이가 있으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아이를 데려갈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이주여성들은 방황하다 다시 남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들

2차 산업이나 성 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도 체류문제로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반에 한국에 온 한 이주여성은 얼마 안돼서 다니던 공장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 불법체류 신분에 경찰서에 갈 수도 없었고 사장이 소문내면 돌려보내겠단 말에 두려워서 아무 대응도 못한 채 다음날 조용히 짐을 싸서 공장을 옮겼다. 그때는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준 5백만 원만 생각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주여성은 성폭력이라는 또 다른 위협 속에 놓여있다. 그러한 고통을 호소할 곳들에 대한 정보도 이주남성노동자를 중심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여성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주여성들은 가족과의 관계 때문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들과 떨어져 길게는 12년 짧게는 몇 년을 지내다 보니 가족에게 있어서 그녀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 받을 때가 있다. “거기(본국) 사람들은 내가 여기서 쓰고 남는 돈을 보내는 줄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해서 그 돈을 버는지 그걸 몰라. 그래서 답답해. 나랑 전화통화만 하면 돈 달라 그래. 누가 결혼해. 누가 아파. 누구 학교 가야 해.” 이제 돈 보내지 말라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고 말해도, 그녀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우연이었을까. 내가 만난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큰딸이거나, 어찌 되었든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학교를 가야 하는 동생이 줄줄이 있어서 뒤를 돌봐줘야 하는 그녀들은 “왜 그렇게 맞고 살았어요?”라는 질문에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 보려고 했지. 내가 언닌데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언니가 되어서 이혼하고 그러면 동생들 결혼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라고 말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우리의 어머니, 이모 뻘 여성들이라면 저런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그녀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왔다. 하지만 가난은 벗어나지는 게 아니라 더 깊고 넓게 번진다. 나이는 들고 한국 땅에서는 계속 미등록이고, 결국 그녀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전히 가난할 그녀들, 혹은 어떻게든 버텨서 한국국적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그녀들의 삶을 생각하면 빈곤은 여성의 한 특징이란 생각까지 든다.

이주여성을 만나면 만날수록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덧씌워지는 역할의 잔인함을 본다. 본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작업장의 성폭행도 참아냈을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볼 때면 그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라 치가 떨린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이주여성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인가? 아니다. 이혼한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키워줄 사람이 없어서, 밭일 할 사람이 없어서, 노부모 모실 사람이 없어서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남성들의 사연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주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은 남성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모든 여성들이 겪게 되는 차별의 연장선에 있다.

기사입력: 2005/08/15 [23:59]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