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이주여성의 국적취득의 어려움

사이박사 2009. 6. 12. 12:14

이주여성 “국적취득 위해 학대 참는다”
인신매매성 결혼의 희생양 돼
 
여성주의 저널 일다 문이정민

“정상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만 있다면, 폭력과 학대를 일삼는 남편과 이혼하고 싶습니다.”

국제결혼으로 입국한지 1년 된 한 이주여성의 간절한 소망이다. 그는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일도 하며 돈도 벌면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의처증으로 인해 남편은 폭행을 일삼고, 걸핏하면 집밖으로 내쫓으며 “집에서 나가라, 가출신고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국제결혼으로 입국한 이주여성들은 남편의 무차별적 폭력과 학대를 피해 집을 나가면 꼼짝없이 ‘불법체류자’ 딱지가 붙고 만다. 따라서 남편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으면서도 참고 견디는 것밖에 별 다른 방도가 없다. 지난 11월 26일, 이주여성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이주의 여성화와 국제결혼’ 심포지엄에서는 법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노출돼 있는 이주여성의 현실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비자 연장 무기로 이주여성 억압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빈곤의 여성화’ 속에서 가족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추세며, 그 결과 ‘이주의 여성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이주의 여성화 현상에서 특히 문제로 떠오른 것이 여성의 이주와 인신매매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점”이라면서 “인신매매적 결혼은 곧 인권억압으로 이어지기 마련인 바, 배우자 여성은 구타와 외출 금지, 의처증으로 인한 학대, 노동활동 강요 등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대표는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인 남편과 살고 있으나 거주비자로 체류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의 신분이기 때문에 복지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있고, 어떤 이유라도 결혼사유가 해소되면 법적으로 불법체류자의 신세로 전락하는 등 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주여성들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게다가 이주여성인권센터의 상담사례에 따르면, 대부분 이주여성들이 국적취득 전, 즉 2년이 채 되지 않아 열악한 인권상황에 내몰리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한 대표는 “일년마다 비자를 갱신하도록 돼 있는데 비자 연장 시 신원보증은 남편이 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남편이 비자 연장을 무기로 삼아 이주여성을 억압한다. 2년 후 취득할 수 있는 국적도 남편이 동행해야 가능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국적법 역시 남편에게는 무기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국적 취득을 통한 체류뿐 아니라 억울하게 내몰리는 여성들의 인권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한국에서 살수 있도록 체류와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제의 대상이 되는 이주여성들

이주여성인권센터 김상임 상담실장은 “내담자 남편들의 특징은 부인을 동반자가 아닌 통제의 대상,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부인이 자신을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들은 부인의 행동이나 언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고, ‘나가라’며 불법체류자로 만들겠다고 협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의 존재 근거를 오직 남편의 시혜적인 태도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있기 때문에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이혼 외에 다른 가능성을 찾지 못하게 되는” 극한적인 상황에 이르러서야 집을 나와 경찰에 신고하거나 쉼터를 찾는다고.

김 상담실장은 “합법적인 체류를 위해서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법적 장치가 뒷받침돼 있고, 이런 불평등한 결혼생활은 한국의 남성중심적 가족질서라는 테두리로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는 이주여성이 처한 법적, 심리적, 현실적 제약 때문에 그들 힘으로만 개선할 수 없기 때문에 전 사회의 관심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국적법, 이주여성의 종속성 심화시켜

소라미 변호사(아름다운 재단 공감 공익변호사)는 현행 국적법 조항에 대해 검토했다. 1997년 국적법 개정에서는 국적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위장혼인을 방지하기 위해 이주여성에게 ‘혼인’만으로 한국의 국적을 부여하던 종전의 제도를 폐지하고,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한 외국인은 국내에 ‘2년 이상 거주’하는 등의 일정요건을 갖추고 법무부 장관의 귀화허가를 받아야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양육해야 할 아동의 보호 및 외국인 배우자의 인권보장 차원에서 법무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국적취득을 허용하고자 2004년 국적법 개정안이 제안돼, 2년 이상 거주하지 않더라도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로 혼인관계가 파탄 난 경우 이주여성이 상대방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입증하면 국적취득의 길을 열어두도록 했다.

이에 대해 소 변호사는 “이러한 법률개정은 환영 받아 마땅하지만 이주여성에 대한 법률 지원 시스템이 취약한 상황에서 한국어도 모르는 이주여성에게 혼인의 파탄사유 입증서류를 구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실제로 국적취득의 길을 차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하면서 “새로이 개정된 국적법 조항이 실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배우자의 귀책사유 입증책임에 대한 탄력적 운영과 이주여성에 대한 법률지원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소라미 변호사는 “우리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국제결혼을 허용하는 한 국가에게는 국제 결혼한 가정이 건강한 가정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면서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프랑스 국적법, ‘결혼’만으로 국적이 취득되는 스위스 국적법 등을 검토, “현행 국적법 체계가 위장결혼을 선별하겠다는 미명 하에 요건 및 심사절차를 엄격히 규율하고 있는 것은 한편으로 이주여성의 한국인 배우자에 종속성을 심화시켜 국제결혼가정이 건강하게 자리잡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인신매매성 결혼, ‘피해자’ 권리 보장해야

토론에 참가한 법무부 김영문 검사(법무과)는 “사건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도 이주여성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행정 입장에서 위장결혼이나 취업의 문제를 엄격하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검사는 “현재 이주여성들의 진단서나 진술서가 있으면 거의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그나마 진단서도 발급 받지 못하는 경우, 이런 여성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고민된다”고 설명하면서 “법률 상으로 ‘기타 이에 준하는’ 조건들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책임을 입증할만한 주변인 진술, 확인서 등 가능한 모든 자료를 제출하면 계속적으로 받아달라고 싸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사무총장은 이주여성에 대한 모성보호관련법 등 사회복지관련법 적용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국적’은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이주여성들의 사회적 보호와 서비스, 시민권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리사회가 ‘외국인’을 어느 선까지 통합, 포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러나 결혼의 형태를 띈 인신매매에 대해서는, ‘피해자’로 규정될 수 있는 범주의 여성들에 대한 수급권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피해자 여성권리에 대한 보편적 보장 주장은 절실히 요구되며, 이들이 사회적 서비스의 일차적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입력: 2004/11/28 [22:43]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