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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우편주문신부

사이박사 2009. 6. 12. 12:16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우편주문신부
인신매매 속성의 국제결혼은 근절돼야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박현숙
‘우편주문신부’(Mail Order Bride)는 말 그대로 인터넷이나 한 번의 맞선 정도로 외모와 프로필만을 확인한 후, 신부가 될 사람을 주문하여 성사된 법적 신부를 지칭한다. 이 과정에서 주문을 하는 주체는 돈을 지불한 한국남성이고 그 선택의 대상은 베트남, 필리핀과 같은 나라의 젊은 여성들이다.

우편주문신부들이 어떤 경위로 어떻게 국내에 들어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조명된 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국제결혼을 주선하는 중개업체이 날로 늘어가는 추세 속에서 “우편주문신부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고발과 문제 제기가 하나 둘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열린 ‘우편주문신부-그 현황과 성매매로서의 의미’라는 제목의 강연회도 그러한 취지로 열린 것. ‘2004 인도 세계사회포럼 대학생참가단’이 주최한 이번 강연회에서 안양 전.진.상 복지관의 최근정(이주노동자의 집)씨는 우편주문신부들의 상담사례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행정기관 허가·감독받지 않는 중개업체

국제결혼의 경로는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결혼, 종교단체를 통한 결혼,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산업연수생의 결혼, 그리고 해외에서 만난 경우 등이다. 현재 급속하게 늘고 있는 것은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것인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 남성과 혼인 신고한 외국인 여성의 숫자가 1992년 2,057명이었던 것에서 10년이 지난 2002년에는 11,017명으로 5.4배 증가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3.5배로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태국, 필리핀, 러시아, 몽고 등 모두 1.5배 이상의 혼인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최근정씨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국제결혼중개업체는 약 7백여개. 과거 결혼상담소개소는 예식장, 장례식장과 함께 행정기관의 허가와 감독을 받아야했지만, 1999년 8월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예식장과 상담소개소는 영업신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제결혼중개업체 역시 자유업종으로, 세무서에 등록만 하면 영업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국제결혼은 혼인신고를 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개인 간에 성사시키기엔 여러 어려운 점을 안고 있다.

첫 단추 잘못 끼운 신부들

“가난한 나라 여성은 자신의 나라보다 나은 나라 남자의 신부가 됨으로써 집안에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소개소의 정보를 그대로 접수한다. 농촌총각이거나 나이가 너무 많아 결혼의 기회를 잡아보지 못한 한국남성은 고분고분하고 성적 서비스가 좋다는 필리핀, 베트남, 태국, 몽골 여성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원하는 사람을 고르라는 소개소의 정보에, 그동안 어렵게 번 돈 천만원을 기꺼이 투자한다.”

최근정씨는 “왜 남성은 우편주문신부를 원하고, 여성은 우편주문신부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여성들은 이주의 한 방법으로 국제결혼을 선택하고, 남성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으며 가부장적인 결혼생활에도 적합해 보이는 신부가 있다는 데 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편주문신부 중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에 의해 결혼중개소에 넘겨지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은 남편 될 사람의 선택에 의해, 현지에서의 한두 번의 만남으로 단 사나흘 만에 법적신부가 되고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들어온 우편주문신부들이 한국에서 별 무리 없이 결혼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최근정씨가 밝힌 사례들 중엔 필리핀 한 시골에서 살고 있던 18살 자클린의 이야기가 있다. 자클린은 결혼중개소의 소개로 마닐라로 간지 하루 만에 한 한국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한국남자는 자신을 43살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51살이었고 그에겐 자클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아들이 있었다. 자클린은 부모의 권유로 맞선 자리에 나섰고 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한국에 왔다가 자기 앞에 닥친 상황에 공포와 불안을 느껴 결국 탈출하게 되었다.

일본인 나까지마씨의 경우 통일교 합동결혼으로 택시운전을 하는 남편과 결혼을 했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어김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남편의 폭력으로 머리에서 피가 나고 고막이 터져 병원에 갔는데 돈이 없어 진단서를 끊지 못했다. 또 남편이 여권을 뺏어가 나까지마씨는 일본으로 가지도 못하고 폭력을 피해 아이 둘과 함께 쉼터로 입소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갈등하다가 남편의 각서를 받아내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는 힘든 선택을 했다.

국제결혼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국제결혼을 원하는 한국남성들의 대부분은 결혼적령기를 넘겼거나 결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30대 후반부터 60대에 이른다. 반면 신부가 될 여성들은 10대 소녀부터 주로 20대 여성이기 때문에 평균 나이차가 15년부터 30년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최근정씨는 “한국남성들이 딸과 같은 나이의 여성에게 성적서비스는 물론이고 지극히 한국적인 가부장적 관념에 따른 아내의 임무를 요구하니 서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상당한 나이차 때문에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 대한 의심을 늦추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방법으로 국제결혼한 한국 내 이주여성들은 우선 언어소통과 문화차이에 있어 큰 곤란을 겪는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울 기회조차 없었고, 남편을 비롯한 식구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렵다. 문화적 차이 그리고 종교관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오해와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이 남편의 폭력이나 아내의 가출 등의 형태로 외부로 드러나기도 한다.

최근정씨는 “결혼생활 중 남편에게 잘못이 있어 이혼을 하거나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때, 이들 여성들에겐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남편에 맞춰 살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 외엔 없다”고 말했다. 이들 중엔 돌아갈 돈이 없어 본국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남편의 폭력이나 소개받은 상황과 전혀 다른 대우 등으로 인해 이혼을 원할 때도 한국어를 모르고 정보에 어두워 속수무책으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 수도권에 두세 곳 있는 쉼터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우편주문신부들을 보호하는 것도 한계가 크다. 우편주문신부들, 특히 정보가 상당히 차단돼있는 섬이나 농어촌으로 온 여성들은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최근정씨는 우편주문신부의 실태에 대해 “근본적으로 인신매매와 같은 국제결혼은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인신매매, 성매매, 인권유린 당한 여성들의 피해사례를 고발하고 알려야 하며, 결혼중개업소에 대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는 등 행정당국의 영업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이주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사입력: 2003/11/30 [22:05]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