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고용허가제 이후 여성들

사이박사 2009. 6. 12. 12:17

고용허가제 이후 여성들은?
외국인근로자고용법 제대로 보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양혜우
<필자 양혜우님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www.migrant114.org) 소장입니다. - 편집자주>


고용허가제가 통과됨에 따라 한국에 입국한 지 4년 미만인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의 합법화 등록이 실시되고, 그 시행 기간이 9월 1일부터 11월 15일로 확정됐다.

새롭게 제정된 외국인근로자고용법은 홍콩·대만·싱가포르가 도입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들 신흥 아시아 공업국가들이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은 ‘이주노동자들의 정착화 방지’다. 즉 외국인력은 국내의 인력수요를 충족하면서도 ‘한번 쓰고 버리겠다’는 논리가 구현된 것이다.

외국인근로자고용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외국인 정착화 방지를 위해 국내 취업기간을 3년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국내 취업 후 출국하는 경우 일정기간(1년)이 경과해야만 재입국, 취업이 허용된다. 한편 4년 이상 된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침도 없이 11월 엄중히 단속해 강제 출국시키겠다는 말만 무성하다. 이들로선 지금까지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해 이제야 한국에 적응했다 싶은데 무작정 나가라고 하니 당혹스럽다.

합법화 대상이 된 이주노동자들일지라도 입국할 때의 송출비를 다 갚고 돈을 벌어가려면 2년은 매우 짧은 기간이다. 또 3-4년 사이의 이주노동자들은 재입국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의구심이 매우 크다. 언뜻 보면 내년 8월부터 외국인들이 내국인들과 동등하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로 일하게 되고 '불법체류자'들을 대거 사면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고용허가제를 찬찬히 뜯어보면 실상 문제되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특히 이주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은 암담하다.

작업장 이동 불가능해

“모 사무용품 제조회사의 필리핀 여성연수생들은 회사측의 잔업 요구에 의해 주 평균 84-105시간의 노동을 강요 받았다. 회사측의 잔업 요구를 거부할 경우 회사측에 의해 강제 출국될 것을 우려하여 한마디 항의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례1)

새로운 고용에 관한 법률 역시 산업연수제도와 마찬가지로 작업장 이동이 금지돼 있고 1년 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 측에서 아무리 부당한 작업지시를 한다고 해도 복종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연수제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강제근로의 경우와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고용허가제로 인력을 신청한 회사들의 경우 산업연수생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보다 훨씬 더 영세하기 때문에 강제노동 현상은 더욱 심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업장에서의 폭언, 폭행 역시 현재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동안 불법체류자들은 자유롭게 작업장을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작업장 내에서 폭언이나 폭행이 발생했을 경우 바로 퇴사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업장 이동이 불가능한 고용허가제에서는 작업장 안에서 발생하는 폭언 폭행에 대해 스스로 방어할 자구책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물론 노동부에서 상담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한국에 온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외국인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어디에다 어떤 방법으로 호소를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참을 수밖에 없다.

이주 여성노동자, 성폭력에 노출

현재 이주 여성인력은 총 외국인력 중 약 35%를 차지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외국인여성 인력 비율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외국인력을 필요로 하는 3D 업종에서는 여성인력보다 남성인력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인력의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여성인력을 요구한다 해도 20대 미혼여성이 그 중심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스물여섯 된 중국인 여성 왕하(가명)는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파주시 금촌에 있는 한 섬유공장에 취직되어 일하게 되었다. 사장은 새로 입사한 왕하에게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이 많을 것이라며 이불이며 생활 용품들을 장만해 주었다. 왕하는 친절하게 대하는 사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사장을 아버지처럼 잘 따랐는데 어느 날 밤, 술을 잔뜩 마신 사장이 기숙사에 와서 왕하를 겁탈하고 말았다. 왕하는 무섭고 겁이 났지만 이 공장을 나올 경우 오갈 데도 없고 수중에는 돈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한국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요청할 수 없었다. 그 후 사장은 상습적으로 왕하의 방에 와서 그녀를 강간했다고 한다. 왕하는 한달 월급을 받은 후 바로 공장을 탈출하였고, 어느 한국인의 도움을 받아 상담센터로 오게 됐다.” (사례 2)

지난 2002년 외국인 이주 노동자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조사결과에 의하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여성노동자 중 10% 이상이 사업장에서 성희롱,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한국인 상사가 55.6%, 한국인 남성 노동자가 27%로 이주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가해자 중 82%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이러한 성희롱, 성폭행의 사례는 오히려 더 증가할 것으로 보여진다. 고용허가제로 유입될 젊은 여성인력들은 피해를 당한 후에도 작업장을 마음대로 이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스스로 성희롱 및 성폭행에 대한 방어를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또 성희롱의 경우 피해 사실에 대한 뚜렷한 물증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들 대부분이 성희롱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며 간혹 성희롱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한국남성들은 한국인의 정서에 호소하는 변명을 하며 “외국인여성의 자유분방함이 원인”이라는 핑계를 대는데 이런 핑계가 사실상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용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외국인노동자 인권보장을 위한 공대위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성폭행을 당한 외국인 여성노동자 중 38.9%가 ‘혼자 참고 견뎠다’고 응답했고, 16.7%는 ‘직장을 옮겼다’고 대답했다. 이주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희롱, 성폭행을 예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제도와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임신하면 자동귀국… 모성모호는 ‘그림의 떡’

2002년 12월 외국인 노동자 인권보장을 위한 여성 외국인 노동자 실태 보고에 따르면 국내 체류하고 있는 이주 여성노동자들 중의 14.5%가 “임신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중 56.3%가 “유산을 했다”고 답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 여성의 모성보호가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의 57.7%가 “임신으로 일이 힘든 경우 회사의 관리자에게 쉬운 일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할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했고, 이들 중 67%는 “임신 사실을 숨겨야 했다”고 응답했다. 설문조사에 비추어 볼 때 여성 노동자들이 임신한 경우 모성보호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임신으로 해고를 당하는 피해를 겪게 되는 실정임을 알 수 있다.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에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경우 여성노동자들에게 6개월씩 정기 검진을 실시하게 임신여부를 확인하며 만일 임신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강제로 출국시키고 있는데, 고용허가제 실시 이후 한국의 상황도 싱가포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여성의 임신 사실이 드러날 경우 강제출국보다는 1년 마다 갱신하는 재계약을 체결해주지 않아 자동적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부의 두 얼굴

고용허가제 부칙으로 제정된 불법체류자 양성화 방안에 대해 출국대상인 이주노동자들의 90% 이상이 “출국하지 않고 버티겠다”는 반응이다. 법 제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수요가 있고, 버티면 거기에 스며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업주들 역시 당장 숙련된 노동자를 내보내고 난 후 이를 대체할 노동력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불법 고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불법체류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불법 숙련공을 원하는 사업주의 요구와 출국을 원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요구로 인해 불법 노동시장은 지속적으로 형성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측에서는 새로운 법안 제정 이후 그 동안 묵인해 왔던 불법체류 문제를 근절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서, 불법체류자들의 노동권 및 인권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해 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한 가지 법안을 만들어 놓고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산업연수제의 반인권적 요소를 비판했던 국내외 여론에 대해서는 노동3권 등 국내노동자와 차별없이 제도가 개선되었다며 호도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인 국내 영세자본가들이 우려하는 임금상승과 외국인노동자 노사분규 등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실제로 법안의 내용을 보면 후자의 얼굴이 진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노동 3권이 보장되지만, 3년 단위로 인력이 순환되고, 작업장 이동이 불가능하며, 1년 단위 계약 갱신으로 인해 사실상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을 쓸 수 없는 제도인 셈이다. 정부도 비록 노동 3권을 부여하였으나 노사분규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1년부터 현지법인 연수제가 시작되고 1994년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한 산업연수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그 폐해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이때부터 위헌과 반인권적 요소가 있고 시대착오적인 산업연수제도 폐지를 위한 운동이 전개됐다.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산업연수제도 철폐운동을 벌여왔으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의 막강한 자금력에 기반한 로비에 굴복해 번번이 법 제정이 무산되었고 급기야 지난 2003년 7월 통과된 외국인 근로자에 고용에 대한 법률에서도 산업연수제의 병행실시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한 나라의 정책이 대원칙을 어겨가며 임시적이고 편의적으로 땜질하듯이 만들어진다면 모처럼 제정된 고용허가제조차 정착되지 못할 우려 또한 크다. 산업연수제도의 병행실시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협동조합은 오히려 연수생 인원을 더욱 확대 강화시키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불법체류자 양성화와 형평성을 이룬다는 이유로 최장 3년의 노동기간을 5년까지 연장하는 등 조직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그 동안 특혜를 부여한 중소기업협동조합에서 운영해온 산업연수제도 운영권을 노동부로 이관해 산업연수생을 고용허가제로 편입시킨 후, 우선은 하나의 통일된 제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그리고 이미 드러나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가장 힘든 시기에 한국에 와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일해 온 숙련된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들을 무조건 쫓아내는 대신 그들에게 모종의 구제책을 마련해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기사입력: 2003/10/27 [01:20]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