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이중의 경계선_동등과 고유성

사이박사 2009. 6. 12. 12:12

‘동지’란 말 속에 사라진 여성들
이주와 노동자의 권리-5
 
여성주의 저널 일다 미친꽃

<필자 미친꽃님은 ‘작은대안무역’(이주노동자합법화를 위한 모임. www.stopcrackdown.net)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4년 3월부터 명동성당 농성단과 인연을 맺게 되어 이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했고, 농성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기 위해 약 3개월에 걸쳐 18명의 이주노동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편집자 주>




2003년 11월, 정부는 고용허가제 실시 사전작업으로 대대적인 단속 의지를 표명했다. 전국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 이주지부,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에 대응하는 농성을 전국적으로 진행했다.

“여자가 뭘 그렇게 나가는 거야”

농성은 남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처음부터 여성은 거의 없었다. 한국으로 이주해오는 여성노동자 수가 남성에 비해 적기도 하거니와,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출신 국가 문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물론 활발하게 참여하는 여성들도 존재하겠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농성장에서 만난 한 여성은 여성들이 집회나 농성에 참여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동안 집회에 나가도 여성이주노동자들은 별로 없었어요. 저는 집회 나가잖아요. 그러면 여자가 뭘 그렇게 나가는 거야, 그런 소리도 있구요. 여자들은 남자가 안 나가면 안 가요. 남자가 가면 따라가고. 저는 남자친구가 안 가도 몰래 집회 갔다 오고 해요. 남자친구는 이런 거 싫어해요.”(소하나/송강현주와의 면접)

집회나 회의에서 이주여성들이 소외되는 분위기는 명동성당의 농성단에서도 나타났다. 한 여성은 자신이 농성단의 의사소통 구조에서 계속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문제를 제기했다. 언제나 회의는 남성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들의 몫이었다.

“어디 갈 때나, 집회 갈 때, 회의 할 때, 농성장에는 여성이 3명 있었는데 우리한테는 안 물어보고 남성들과 한국사람들만 회의를 했다. 처음엔 그랬다. 우리한테는 한 번도 안 물어보고 그래서 맘이 많이 다쳤다. 우리도 싸우러 (여기에) 왔다. 그러다 한 달 가까이 여성들끼리 얘기를 해서, ‘우리는 당신들한테 말도 못하고 있다’ 그런 얘기를 한 뒤 조금 바뀌었다.”(라디카/부깽과의 면접)

자신도 똑같이 이주노동자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농성장에 왔지만, 농성장의 남성중심적 분위기는 여성들을 동등한 참여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농성장의 분위기는 이후에도 갈등을 유발했다.

다섯 달간 남성들 사이에서 자야 했다

처음 농성이 시작되었을 때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텐트4동에서 지내야 했고, 몇 명 되지 않던 여성들은 독립된 공간 없이 다섯 달 동안 남성들 사이에서 잠을 자야 했다. 농성은 위급 상황이었고 남성들 틈에서 자야 하는 것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런 것을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두들 결의에 차 있었고 농성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그런 사소한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독립된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고립된 농성장은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처음에 우리가 들어갈 때 여성 자리 남성 자리 구분이 없고 같이 지냈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는 사람은 괜찮았는데, 남자친구 없는 사람은 힘들었다. 불편했다. 그렇게 두 달이 넘게 생활했다. 우리는 ‘우리는 여성이니까 우리 자리 따로 만들어야 돼’ 그렇게 말했다. 그 때 문제도 많이 생겼다. 잠 잘 때도. 그 때는 머리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나중에야 4번 텐트가 여성텐트가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안에서도 얘기가 많았다. 여기 투쟁하러 온 건데 여성 남성이 뭐가 중요하냐, 그런 얘기가 많았다. 투쟁하는 것은 맞지만 여성들 우리 3명하고 한국여성들도 같이 있었는데, 그 때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그 때는 너무 힘들었다. 우리가 얘기하고 나서 3개월이 더 지나서 4번 텐트를 여성이 이용하게 됐다.”(라디카)

농성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 함께 투쟁하는 것이 중요했다. ‘노동자의 투쟁’이라는 대의 아래 여성과 남성의 구별은 중요하지 않았고, 이주여성들은 농성장 안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일상적으로 겪어야 했다. 한 여성은 농성장에서 남성들이 자신을 똑같은 동지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는 푸념을 했다. 자신이 여성이라서 그랬는지 유독 ‘농성하러 왔느냐 아니면 남자친구 만들려고 왔느냐’는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여성 공간이 독립되지 않은 농성단의 열악한 주거 조건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여성들은 자리를 정해놓고 자기로 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남성이 그 규칙을 무시한 것이다. 한 여성이 농성단 상황실 한국인 활동가에게 이 문제를 항의했으나, 그 한국인 남성은 ‘투쟁에는 남녀가 없다, 그리고 젊은 남성이 여성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응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농성단 내 이주여성 문제를 다루는 간담회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한 번 더 제기했다가, 해당 남성으로부터 ‘그런 개인적인 문제는 따로 만나서 제기하면 되지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하다니 너무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녀는 아무런 소득 없이 괜히 말했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에는 문제를 공개하기보다 덮어두는 것을 택했다고 한다.

‘가해자도 아닌데 왜 성교육을?’ 반발

한편, 외부와 고립된 채 집회와 교육, 지역조직, 회의로 일상이 채워져 있던 농성장의 사람들은 점점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고, 농성장에 찾아오는 여성들의 작은 호의에도 크게 감동하고 연정을 품게 되는 일도 생겼다. 당시 농성단의 한 이주남성이 연대단위의 한국인 여성에게 수시로 전화해 자신을 만나줄 것을 강요한 일이 있었다. 그 여성은 거절했음에도 계속 되는 전화와 성적인 암시를 하는 내용들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이 문제를 상황실에 알렸다. 상황실에서는 해당 남성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알게 된 몇몇 연대단위는 이 문제가 비단 일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향후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적극적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농성단 지도부와 이주노동자들은 마지못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후 농성장에서는 1회 성교육이 진행됐고, 이 사건에 대해서 아침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로 했으나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농성단 내에서 성교육을 실시한 것에 대해서도 이주노동자들은 별로 탐탁지 않아했다. 자신들은 농성을 하기 위해 온 것이고 ‘노동비자 쟁취’가 목표인데, 왜 이런 성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잘못한 사람을 징계하면 될 일이지, 학교도 아닌데 왜 모두 반성하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불만스러워했다.

“우리가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투쟁하고 있고, 또 돈을 버는 상황이고, 또 어려움이 많은 상황에서,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왜 그것(성교육)을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많아요. 그런 게 있어.”(농성장의 이주남성 A)

농성단의 한국인 활동가들 또한 이 문제를 앞으로의 투쟁을 위해서 덮어두고 싶어했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침묵하면서 어서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단속추방 반대, 노동비자 쟁취, 노동조합 건설을 위한 훈련이지, 성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인 남성활동가 중 한 명은 농성장에 찾아오는 여성들의 옷차림을 문제 삼았다.

여성/남성, 한국인/이주민 이중 경계에서

이 사건에는 묘한 경계가 존재했다. 여성/남성의 경계한국인/이주인의 경계가 그것이다. 여성들은 이 사건을 한국인남성과 이주남성이 만들어 낸 ‘남성공동체의 권력행사’라고 봤다. 반면 이주남성노동자들은 한국여성들이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여성들은 이주남성노동자를 연애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성장에서 한국여성이 연대하러 와서 ‘어떻게 왔느냐, 가족들에 대해서, 한국말 잘한다, 어떻게 배웠냐, 무슨 무슨 일을 했느냐’ 이런 것을 물어보면서 아픔까지 들어줘요. 그럼 무서워요. 여태까지 그런 일이 없었는데 공장에 일만 했는데 갑자기 어떤 여성이 와서 되게 가까이서 웃고 먹는 것도 사주고 그러면 분명히 착각할 수 있어요. 분명히 착각할 수 있고, 분명히 사랑을 느낄 수가 있단 말이에요. 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럼 그것을 여성동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죠. ‘나는 연대하러 갔는데 이주동지가 나를 좋아한다, 이건 아니다’라고 하면 그건 그 여자가 100% 잘못한 거에요. 그건 이주를 사람으로 안 보는 거예요.”(이주남성 A)

농성장에서 한국인 여성과 이주남성노동자 사이에 어느 한 쪽이 권력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가부장적 남성공동체의 사회에서는 여성이 약자지만,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이주남성노동자가 약자였다. 이중의 경계선이 존재하는 가운데, 아무도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대책위원회는 기존의 성폭력 문제 해결방식을 그대로 농성장에 적용해서 돌파구를 찾지 못했고, 농성단의 한국인 남성활동가들은 상황이 변하길 기다리면서 침묵했으며 이주남성노동자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권력 차’ 깨닫는 것: 연대의 전제조건

농성단의 한국인 활동가들은 ‘노동자’의 노동조합 운동만을 강조하면서 여성 참여자를 방치했고, 이주남성노동자들도 농성의 현실적 논리에 동조하며 여성문제를 방치했다. 이들은 여성문제를 이주노동자 문제에서 분리해 냈고, 노동자 조직들 사이 교류만을 연대로 인정하려 했다. 여성들을 연대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을 누나, 어머니, 부인, 연애대상으로 보았을 뿐이지 개인 혹은 동지로 인식하지는 못했다.

혹자는 이런 갈등을 고전적인 계급운동과 페미니즘의 충돌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비단 노동운동 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직장에서도 남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같은 직장 동료끼리 그 정도도 안 되나? 난 남자동료 대하듯이 대한 것 뿐이야”라고. 운동 판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쟁에는 남녀가 없다. 우리는 그냥 다 같은 동지일 뿐이다”라고. 남성들이 다같이 모여 대본을 만들어 연습한 것도 아닌데, 서로 다른 장소와 다른 상황에서 같은 말이 반복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같은 직장 동료’라는 말 속에, ‘같은 동지’라는 말 속에, 여성들의 삶과 경험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일상적 차별은 계속 된다.

인간은 동등하다. 그러나 ‘동등하다’는 말은 한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는 말이지, 특정 집단 사람들의 특성이나 고유한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곧잘 권력을 가진 집단에 의해 그 의미가 왜곡된다. 우리에겐 개인적인 일상에 숨겨져 있는 차별과 권력을 읽어내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 간 불평등의 폭을 좁혀갈 수 있다. 한국인과 이주인,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과 불평등을 인식하는 것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이주남성노동자들도, 한국인 남성활동가들과 연대조직들도 깨닫기를 바란다.

 

기사입력: 2005/08/02 [01:03]  최종편집: ⓒ www.ildaro.com

 

 

참고자료 05/08/28 [12:50] 수정 삭제  
  * 오로지 노동자/자본가 대립구도로만 세상을 바라보는게 얼마나 우스운 현실인식인가를 잘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외국인노동자가 한국 노동자들에 비해 차별받는 처지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부장제, 여성차별 사회인 이 땅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외국인 여성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보고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너무 외국인 '노동자'라는 환상에 젖어 있던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 이 사회를 좀 더 사람이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나가는데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학벌주의, 인종주의 등등을 두루두루 깨부숴 나가는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안녕히계세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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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스리랑카인, 여고생과 ’원조교제’ 영장 (2004/05/16)
작성일 2002-08-07

수원중부경찰서는 6일 여고생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로 스리랑카인 마헤스씨(28)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마헤스시는 지난 3일 새벽 3시께 수원시 권선구 고등동 외국인 고용센터에서 Y양(17)에게 5만원을 주고 성관계를 맺는 등 최근까지 3회에 걸쳐 Y양과 원조교제를 해온 혐의다.

/홍성수기자 sshong@kgib.co.kr



외국인 노동자가 10대 자매꾀어 원조교제 [경향신문 2003-10-20 18:45]

인천경찰청 외사수사대는 20일 가출한 10대 자매와 원조교제를 한 폴하드(41) 등 방글라데시인 8명과 파키스탄인 1명 등 모두 9명을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폴하드는 지난해 8월 중순쯤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서 우연히 만난 쌍둥이 자매(16)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용돈을 주겠다며 자신의 자취방으로 유인, 성관계 때마다 5,000~2만원을 주는 등 지금까지 20여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가진 혐의다.

폴하드는 또 자신의 친구를 자취방으로 불러들인 뒤 자매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갖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자매는 경찰에서 “사글셋방과 용돈이 궁해 외국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면서 “외국인들이 수신만 가능한 휴대폰을 사준 뒤 이 전화로 우리를 수시로 불러냈다”고 말했다.

〈유성보기자 ysb1010@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