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한국 농촌사회의 폐쇄성과 이주여성을 위한 다양성 부재

사이박사 2009. 6. 12. 11:48

“미화 3,500불만 주시면 됩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시민권 확보를 위해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베트남에 있는 한 결혼전문업체에게서 오는 스팸 메일을 받아보셨습니까? 한국인 사장님을 모시고 있다는 이 업체는 한국 신랑이 베트남 신부를 들여오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맞선비용과 신랑의 숙식비, 신부예물과 지참금, 결혼식과 피로연 등 지출내역을 공개하며, “미화 3,500불만 주시면 된”다고 합니다.

신랑의 일정표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토요일 입국한 사람이 오후에 맞선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택하면, 월요일에 그 여성의 건강진단서를 발급 받고 미혼증명서를 신청한 다음, 영사관으로부터 미혼증명을 수령하게 되는 수요일엔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식이 화요일로 일정 변경될 수도 있다고 하는 군요. 중간에 관광 및 마사지 코스가 있습니다.

더 상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신부가 결정되면 병원에서 자궁검사, 피검사, 초음파검사, 에이즈 및 성병검사를 실시해 “아기를 낳은 경험이 있는지”, “성관계를 한 경험이 있는지”, “처녀막은 있는지” 알려드린다고 합니다. 반면 신랑은 건강진단서가 아예 불필요하다는 군요. 이렇게 신부가 병원검진에서 “합격”하면, 이번엔 고향집을 방문해 “사귀는 남자가 있는지”, “부모님 몰래 남자하고 동거한 경험이 있는지” 등을 조사한 뒤 이상이 없을 경우 즉시 결혼식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돈으로 많은 가치가 거래되고 소유되는 사회에서 “미화 3,500불을 주고” 베트남에 가서 맞이한 신부가 가난한 신랑에게, 신랑의 가족과 친척들에게, 그리고 마을 공동체에 어떤 존재일까요. 더욱이 국제결혼 해 한국농촌에 온 아시아 여성들은 많은 경우, 한 살 나이 차도 위계로 굳어져버리는 한국사회에서 아버지뻘 되는 한국남성과 결혼해 살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 부부가 동등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임여성의 경우는 좀더 걱정이 됩니다.

최근엔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에게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데, ‘아내 혹은 지역주민’으로서 소통을 원해서라기보단 ‘한국남자의 아이를 외국여자가 기른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부부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가 아닌, ‘남자의 아이를 어떤 여자가 낳아 기른다’고 생각하는 그 몰상식하고도 뿌리깊은 가부장제의 통념이 이들 여성에게 자녀양육에 관한 의사결정 권리를 좀처럼 내주지 않습니다.

농촌사회에서 여성들은 고립된 생활을 하기 쉽고, 육체적으로도 노동강도가 너무나 세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향합니다. 농촌에서 얼마나 살기가 힘든가 하면, 마을마다 자식을 두고 도망간 ‘아내’들이 있을 정도지요. 지역의 한 외국인노동자 단체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달리 갈 곳이 없어 별로 전문성이 없는 이 단체에 찾아오는 이주여성들이 많다면서, “농촌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한 노동력 착취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이란 자신이 그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 때, 찾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때, 그리고 여럿이 함께 나눌 때 의미가 있습니다. 남편을 위해, 남편의 집안을 위해 하루 종일 노동해야 하고, 재산이 어떻게 모이고 운영되는지도 모른 채 노동의 성과에 대한 권한을 갖지 못한다면, 그 때의 아내의 노동은 노예노동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건은 이들 여성들이 어떻게 실질적인 ‘시민권’을 획득하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시민권에는 재산권, 성적자기결정권,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권리, 이혼할 권리, 구타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지 않을 권리,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제도적으로 구제 받을 권리 등이 포함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아시아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농촌에 이주여성들의 자조모임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말도 안 통하는 사회,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다고 배워온 한국사회에 뚝 떨어진 타민족 여성들에게 서로 간의 교류는 커다란 지지가 되어주는 일일 것입니다.

여기에 법과 제도, 그리고 인권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의 손길이 이들에게 닿았을 때 비로소 국제결혼 한 이주여성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최초로 국제결혼 이주여성에게 한국어 교육과 출산도우미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시기도 늦고 사업 자체는 그 내용이 미미한 수위지만, 전국 6개 권역 별 인권단체가 이 사업의 실무를 담당함으로써 앞으로 이주여성인권에 미칠 영향은 클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공동체 문화와 결속력이 강한 만큼 이방인에 대한 배척도 상대적으로 강하고, 남편의 문화를 배우라고 할 뿐 아내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를 배울 생각은 하지 않으며, 힘든 농사일에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까지 여성에게 전담시키고, ‘아들집착증’이 도를 넘어 여성을 집안의 대를 이어주는 도구로 삼아온 전력이 있는 우리 농촌사회다양성과 평등, 인간의 권리란 화두를 던져야 합니다.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의 운동조직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 하는 현실적 물음 앞에서 국제결혼 해 한국 농촌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여성들보다 더 절박한 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 같습니다.

기사입력: 2005/08/30 [05:50]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