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부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는 인문학계 뿐만아니라 사회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였고, 2002년 10월 인문콘텐츠학회 창립대회 때 역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인문학의 기본정신인 비판성의 결여와 자기안주에서 비롯되었다는 측면과, 또 하나는 자본주의의 세계체제 속에서 경제성, 효율성, 실용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수요자 중심의 대학교육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디지털이라는 기술과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문콘텐츠를 생산 유통하여 인문학을 향유하도록 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다양한 문화콘텐츠 관련 CEO들과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이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한국의 문화산업 전반에 관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반도체, 휴대폰으로 입증되듯이 기술력에 있어서는 세계의 1,2위를 다투고 있지만, 문화콘텐츠 산업이라고 분류된 애니메이션, 게임 등은 아직 세계속에서 순수한 창작품으로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다. 애니메이션 업계만 본다면 현재까지 OEM(일종의 하청)방식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 우리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름을 걸고 나갈 수 없는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물론 그동안의 이득도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함에 있어 한국의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고, 그 한 예로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금곰상을 수상하여 그 진가를 인정받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원화를 그리는 일에 한국인이 대거 참여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이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는 것도 불확실하다. 훨씬 노동력이 싼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하청시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도 1990년대말 이후 서서히 창작품을 개발해야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 창작품을 만들기에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여건, 즉 전문 인력난과 재정난 등이 열악하며 특히 그중에서도 기획력을 동반한 우리의 소재 개발이 아주 미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국가차원에서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애니메이션 업계만의 현실은 아니다. 콘텐츠 산업 전반적으로 기획력을 가진 인재가 없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우리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기초학문인 인문학의 바탕이 얼마나 얕은가를 깨달을 수 있는 현실이며 그동안의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안목으로 경제성, 효율성만을 강조했던 교육정책이 지금 이 시점에서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인문학뿐 아니라 학문 전분야에 있어서 우리의 학문적 깊이가 얼마나 얄팍한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모든 분야의 학자들이 더 많은 노력으로 학문적인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 새삼스레 지난 1년간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학계와 산업계 즉 문화산업이 긴밀하게 연계되어야만 이 정보화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으며, 인문학자들은 특히 기술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역할자로서의 책무가 크다.
콘텐츠 창출의 기본원천은 인문학적 사고와 축적물이라고 주장하였듯이, 필자 또한 문화콘텐츠 관련 사업의 아이템을 구상하다 보면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것은 결국 콘텐츠 개발사업에 있어 기술력만으로는 될 수 없으며, 그 기술을 개발하기까지의 원천소스 즉 내용을 알차게 제공해주는 인문학자의 역할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기술이라는 형식이 20세기까지 우리가 도달한 목표였다면, 바야흐로 지식기반사회라는 21세기에 있어서는 형식에 내용을 채워줄 인문학자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그 한 예로 이번 문화콘텐츠진흥원의 우리문화원형사업을 들 수 있다. IT나 캐릭터, 애니메이션 업체에서 문화원형사업의 아이템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우리문화원형사업에 참여한다는 의지 뿐만 아니라 진정 우리 문화의 콘텐츠 개발만이 현재의 글로벌 사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에 있어서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그들이 문화원형의 소재에서만큼은 인문학자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문화콘텐츠 산업에 있어서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우리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두번째는 미디어 플랫폼의 이해, 세번째는 콘텐츠 비즈니스의 이해이다.
첫째, 우리 전통문화를 콘텐츠로 개발하는데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건 마치 집짓는데 집의 구조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평소에 전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문화를 콘텐츠로 개발한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더군다나 콘텐츠로 개발하는 것 자체가 우리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획서 자체가 그다지 설득력 있게 작성되지 않을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획서란 객관적이고 사실대로 서술하는 보고서 형식이므로, 이해보다는 사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획서에는 의지가 반영되며, 그 의지란 이해에 바탕을 둔 애정이 표현된다고 생각된다. 우리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아이디어 조차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는 미디어 플랫폼의 이해이다. 이것은 일종의 콘텐츠를 전하는 매체로서 인터넷, 디지털 TV, 모바일 등을 말하며 이를 통해 대중화됨으로써, 결국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게 하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은 대부분 문헌을 비롯한 자료와의 싸움을 통해 새로운 학설을 입증하므로, 급변하는 매체의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모바일 문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단지 너도나도 휴대폰을 다 지니고 있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 휴대폰 속에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숨어있는지 관심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기획자라면 이들 변화하는 미디어 플랫폼을 이해해야만 한다.
세번째는 콘텐츠 비즈니스의 이해이다. 콘텐츠라는 것에 이제 겨우 익숙해져가는 데 비즈니스까지 이해해야 하는가 하고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콘텐츠를 개발하는 목적은 사용자, 즉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공하는 것이며, 이는 어떻게 기획하고 경영하고 전략을 짜느냐에 해당되는 것이다. 즉 사용자에게 콘텐츠라는 One Source를 multi-use로 개발하는 것이며, 이는 기획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좋은 기획서를 작성하려면, 흔히들 말하는 사업자로서의 경영 마인드가 아니라 사용자를 염두에 둔 기획 마인드를 말한다. 즉 좋은 책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처럼, 좋은 기획서는 사용자가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며, 이때 필요한 것이 콘텐츠 비즈니스의 이해이다.
기획서를 쓰기 전 이상의 세 가지를 기본적으로 이해한다면 기획서 쓰는데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한 단계라면 최소한 문화를 이해하는 바탕 위에 기획서를 작성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기획서를 쓰는 과정중에 저절로 갖추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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