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의 뜻매김>
구연상(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철학박사)
벼리: 요약(要約)은 본디 글(말)이 말하고자 하는 바(생생모습)를
제(자기) 말로 알기 쉽게 줄이기(짧게 바꿔 쓰기)이다.
주어진 글을 요약(要約)한다는 것은 그 글에 쓰인 낱말의 수를 줄이는 일을 뜻한다.
낱말의 수를 줄이는 기술을 흔히 “압축의 기술”로 부를 수 있다. 이는 정보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좋은 정보’는 알고자 하는 내용을 확실하게 알려 주는 신호를 말한다. 좋은 정보는 알고자 하는 것이 속할 수 있는 가능성의 수를 최대한 줄인 정보를 말한다. 보기를 들어보자. 누군가 내게 “내일 비가 온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내가 “오늘 참 날씨 좋네요.”라고 답했다면, 이 대답은 주어진 물음이 요구하는 확실성에 대해 너무도 많은 불확실성을 포함하고 있다. 정보의 좋고 나쁨은 불확실성의 정도를 잼으로써 결정된다.
글줄이기는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알맞게 줄이듯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는 일을 뜻할 수도 있고, 지도의 세밀함을 낮춰 지역에 대한 전체적 개관을 목적으로 하는 소축척지도(小縮尺地圖, small scale map)의 제작에 비유될 수도 있다. 옷 줄이기 방식은 모든 부분의 분량을 일정 비율로 줄이지만, 짜임새는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을 말하고, 축척 높이기 방식은 반드시 표시해야 할 부분만을 남기고 세밀한 부분들을 빼버리는 방식을 뜻한다.
글줄이기에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의 크기’를 재는 일이다. 본디글의 길이와 줄여야 할 글의 길이를 비교해 본다. 우리는 한 권의 책을 한 줄로 줄일 수도 있다. 글줄이기는 글의 바탕 뜻을 군더더기 없는 짧은 문장으로 다시 표현하는 것과 같다. 글줄이기는 ‘고쳐 쓰기’이다. 고친다는 것은 맞춘다는 것이다. 긴 글을 짧은 지면에 맞도록 고치는 것이다. 불필요한 내용을 잘라 내거나 쳐내는 것은 당연하다. 글줄이기는 본디글의 뼈대를 밝혀내어 그 골격만을 간결하고 알기 쉽게 쓰는 일이다.
글을 줄인다는 것은 남겨진 낱말들 사이의 자리매김을 새롭게 하여 새 글을 짓는 것을 말한다. 줄인 옷이 하나의 완전한 옷이어야 입을 수 있고, 더욱 성기게 제작된 지도일지라도 그 자체로 필요한 지도의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지도가 되듯, ‘줄인 글’ 또한 그 자체로 온전한 글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 즉 글 줄이기의 결과물 또한 글이어야 한다.
글을 줄이려는 이유는 본글의 핵심 내용을 손쉽고 빠르게 알리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글줄이기는 마치 광고의 일에 빗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글을 줄이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본글의 핵심 내용을 올바로 분석하고 파악하게 되어 본글에 대한 이해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이 이해한 바를 본글의 분량보다 줄여서 적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힘은 말할 것도 없고 표현력도 크게 좋아진다.
글줄이기는 본디 글에서 펼쳐진 뜻이나 생각의 흐름 줄기를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그 본디의 뜻을 서술하는 방식은 요약하미 자신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주어진 본디 글에 대한 읽으미의 압축 감상문을 써서는 안 된다. 글 줄이기에서 줄여지는 바는 그 뜻이라기보다 표현 방식이다. 줄이미는 가능 한 문체의 통일을 유지하는 가운데 ‘본디 글’을 자신의 언어로 바꿔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이 더욱 짧게 줄여질수록 글의 형태는 마치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한 그루의 나무 꼴을 닮아가게 마련이지만 글 자체는 자연스럽고 힘 찬 느낌을 자아내야 하므로 글 줄이기에도 그 나름의 기술이 요구된다.
이 기술은 금기 사항을 피하는 방식으로 연마할 수 있다. 우선 줄인 글은 ‘본디 글’에 담긴 생각이나 뜻의 흐름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줄이미 자신의 주관적 해석이나 주장을 펼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즉 줄이미 자신의 군더더기 생각을 덧붙여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본글의 핵심 낱말들을 그대로 베껴 쓰거나, ‘조각 짜깁기’의 방식으로 얼기설기 얽어내거나 그럴듯하게 이어 붙여서는 안 된다. 또 본글을 지나치게 독창적으로 줄이려다 “낱말의 꽈배기”를 꼬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글 줄이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은 줄임글이 본글보다 알기 쉽도록 쓰는 일이다. 이를 위해 줄임글 자체는 탄탄한 글 짜임새를 갖춰야 한다. 짜임새가 좋은 글은 글이 엮이는 흐름이 뚜렷하다. 글 흐름이 뚜렷하다는 것은 글 속에 담긴 생각을 잘 읽어낼 수 있다는 것, 달리 말해, 글 자체가 잘 이해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글이 이치에 맞을 뿐 아니라, 그 말하는 바가 일관성을 유지할 때만 가능하다.
글을 줄이는 근본 이유는 본글의 핵심 내용을 보다 손쉽고 빠르게 알리기 위함이다. 이는 이해를 위해서나 기억 또는 기록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요약의 생명은 일목요연(一目瞭然), 즉 “글의 뜻을 한 눈에 알아봄”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요약의 분량은 보통 “한 눈”에 읽을 만큼을 넘지 않아야 좋다. 물론 본글은 줄어들수록 그 글 속에 담긴 풍요로움을 잃게 마련일 뿐 아니라 줄이미의 이해와 표현력 등에 따라 크게 오해될 수조차 있다. 주어진 글을 올바로 줄이기 위해서는 본디글의 핵심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뒤 그 내용을 정해진 만큼의 길이로 다시 서술해야 한다. 이때의 ‘다시 쓰기’(재서술)는 글쓰미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게 아니라 본디글을 알기 쉽게 알리는 것이다.
요약문은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기 위한 게 아니므로 글줄이미가 요약문에 자신의 감상과 견해를 담고자 해서는 안 되지만, 요약문은 글줄이미가 자신이 파악한 핵심 내용을 자신의 말과 글로 다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본디글을 그대로 베껴 써서도 안 된다. 요약은 인용이 아니다! 글을 줄인다는 것은 본디글의 요점(要點), 즉 ‘가장 중요한 골자’를 보다 알기 쉽고 짧은 형태로 바꿔 쓴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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