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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_영화 ‘Brad’s status(브래드의 사회적 지위)’_외로움과 SNS에 대해

사이박사 2017. 9. 19. 15:31
제874호
경쟁을 넘어 고독과 친구 되기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거리, 지하철, 엘리베이터…. 어디서나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SNS에 접속하는 모습은 일상적 풍경이다. 이렇게 공기처럼 퍼진 소셜미디어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중년 남성이 고뇌에 사로잡혀 갈등하는 영화가 등장했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2017, 마이크 화이트)에서 브래드(벤 스틸러)는 ‘카페인 증후군(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앞글자를 딴 신조어)’에 시달린다.

SNS에 뜬 성공한 동창의 모습에

   20여 년 전, 보스턴에 있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그는 현재 비영리단체에서 공익적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그가 SNS로 찾아본 동창들은 물질적 자본에서 그를 압도한다. 이를테면, 백악관에서 일한 경력에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하버드대 겸임 교수도 하는 동창, 헤지펀드로 거부가 된 동창, 일찍이 큰돈을 벌고 은퇴해서 젊은 여성과 하와이에서 사는 동창도 있다. 이렇게 한때 같이 공부했던 동창들은 대부분 성공해서 잘 사는데, 그는 명분 있는 일을 하지만 돈은 많이 벌지 못해, 닥쳐올 아들 대학 학비를 걱정하며 열등 콤플렉스에 빠져든다. 

   빠르게 변하는 삶의 속도를 따라잡으며 SNS 과잉 정보에 휘말린 주인공 브래드는 정보화 혁명시대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영화의 원제목 ‘Brad’s status(브래드의 사회적 지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뒤처진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패배감까지 느낀다. 그 와중에 음악 재능이 있는 아들이 하버드대학에 입학하면 보상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보스턴 거리의 악사를 보며 음악 재능만으론 돈 벌기 힘든 아들의 앞날도 걱정한다. 이렇게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그는 자본주의적으로 성공한 동창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러나 그는 SNS에 뜬 동창들의 화려한 삶의 이면을 조금씩 발견하면서 그들과의 경쟁을 넘어 자신을 외롭게 성찰하는 탈주를 시도한다. 남들이 자신을 패배자로 여길까 전전긍긍하는 그를 부끄럽게 여기던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들 자기 자신만 생각하니까. 아빠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 나뿐이야.” 굳이 부자관계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나 홀로의 인생길이 와 닿는 순간이다.

세상과 접속하며 고독을 친구로

   이렇듯 무한 정보 접속이 가능한 SNS 시대,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본질적 토대로 작동한다. 압축 성장을 해 온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는 대가족 관계를 중시하며 외로움을 꺼리는 관습이 그 잔영을 드리우고 있다. 유독 세대차이가 심한 이유도 그 여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즐기는 욜로(YOLO)식 생활양식은 자신에게 몰입하는 삶의 방식으로 뜨고 있다. 먹기, 영화보기, 여행가기를 일컫는 신조어, 혼밥, 혼영, 혼행 등은 SNS 정보와 접속하며 혼자 삶을 즐기는 현상이다. 4인 가족을 넘어 빠르게 증가하는 1인 가구 통계가 보여주듯이, 1인 중심용품이 ‘1코노미’란 신조어를 파생시키며 번창하는 중이다(201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의 27.2%를 차지하며, 18.8%를 차지하는 4인 가구를 넘어섰다). 

   때론 ‘외로움’을 부정적으로, ‘고독’을 긍정적으로 나누어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유사어이기도 하다. 정보화 시대 이전에도 <나의 고독>(Ma Solitude)이란 샹송으로 세계적 인기를 얻은 음유시인 조르주 무스타키의 가사처럼, 고독과 함께 잠을 자기에 고독은 연인 같고, 그림자처럼 믿을만한 친구로 나를 따라다니기에, 내 자신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임을 보여준다. 고독한 산책이 사상가를 길러내는 것도 그런 이치일 것이다. 독일의 저술가 마리엘라 자르토리우스는 “외톨이는 혼자의 삶에서도 대가이지만 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적극적인 관찰자”(〈고독이 나를 위로한다〉에서)라며 고독을 권한다. 임재범의 노래 〈비상〉에서도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라고 노래하며, 고독과 외로움을 기쁘게 수용한다. 세상과 무한 접속하는 정보화 혁명의 파고를 타며 고독을 친구로 삼으며 거기서 깨닫는 기쁨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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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2005 동국대 명강의상〉수상 

· 저서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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