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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욱_입학사정관전형의 허와 실 I : 자소서와 추천서

사이박사 2015. 12. 7. 23:38

입학사정관전형의 허와 실 I : 자소서와 추천서

2015.10.23


요즘 전국 대학의 입학본부가 9월 9일에 시작되어 12월 7일에 마감하는 수시모집인 입학사정관전형(入學査定官銓衡)으로 바삐 돌아가고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전형(사정관전형)은 점수 중심의 경쟁 입시를 지양하고 학교 성적보다 인성과 적성 그리고 창의성이나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 방식으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이 전형의 평가 방법은 기존의 입시 전형과 크게 다릅니다. 과거 입시가 학생들의 수능과 내신 성적을 순서대로 나열하여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기계적인 평가였다면, 사정관전형은 지원자의 성적은 물론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그리고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이나 필요 시 추가서류 제출 요구 등 다양한 전형자료를 활용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종합적인 평가입니다.

기존의 대학입시 제도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제도가 마련되었지만 개선할 과제도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현행 대학 수시 전형이 사정관제도의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로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에 얽혀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개인의 환경이나 잠재력까지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입학사정관제가 본래의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아니요!'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도가 처음 시작될 때는 취지에 따라 수행되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각 대학이 제시해 운영하고 있는 수시모집의 전형 유형과 신입생 선발 방식이 너무 다양해서 수요자인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선택의 혼란을 겪고 있습다. 현재 내가 참여하고 있는 수시 전형 유형은 일반전형, PRISM 인재전형, 재능우수자 전형, 지역인재 전형,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 농어촌학생 전형 등 13가지입니다.

지난 9월 25일부터 위촉 입학사정관으로 수시전형에 참가해 평가를 수행하며 느끼고 있는 사정관전형의 허(虛)와 실(實)을 살펴봅니다. 본 칼럼에서는 지원 대학의 선택과 자기소개서 그리고 교사추천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다음 칼럼에서 본 제도의 평가에서 중심 사안이 되고 있는 학생부종합자료에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6개 대학에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수시모집의 문제점을 짚어봅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자 하는 방안이라고 하지만, 6개 대학에 동시에 지원하는 데 드는 40만~50만 원이 넘는 전형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수험생의 부모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역 대학에서는 학생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앞으로 지원 학교의 수를 2~3개로 축소해 운영할 것을 제안해 봅니다.

학생이 입학지원서와 함께 제출하는 서류는 크게 ‘자기소개서’, ‘학생부종합전형 교사추천서’ 그리고 ‘대입전형용 학생부자료’로 구분이 됩니다.

흔히 ‘자소서’라고 부르는 자기소개서의 기록 내용은 재학 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경험,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 학교생활 중 대인관계 등과 함께 지원 동기 및 학업계획을 자유롭게 기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소서의 평가 시 어려운 점이 많은데, 내용이 부풀려 작성되어 있거나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많은 것도 평가할 때 걸림돌이 됩니다. 그 실례로 수험생이 자소서의 ‘지원동기 및 학업 계획’에 쓴 내용을 적어봅니다.

“OOO학과에 들어가 글로벌 산업시대에 걸맞는 창의적인 사고력을 갖고, OOO 분야의 심오한 학술적 이론을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OOO에 대해 끊임없는 탐구를 하는 지도자적인 태도로 사람들을 위로해주며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행복의 체감온도를 높여주는 OOO연구원이 될 것입니다.”

내용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서술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학생이 직접 작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 내용을 보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사정관전형에 대비하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스펙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입학사정관제는 엄마사정관제’라는 말이 풍미하기도 합니다. 스펙 준비에 누가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정해진다는 측면에서 부유층에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지역의 작은 고등학교에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형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교육 시장을 향하게 되는데, 자소서 내용의 교정비가 20만~30만 원이나 든다고 합니다.

자소서 다음에 첨부되는 교사추천서에는 학업에 대한 목표 의식과 노력, 자기주도적 학습 태도, 수업 참여도 등 3개의 평가 항목을 포함하는 ‘학업 관련 영역’과 책임감, 성실성, 리더십, 협동심, 나눔과 배려 등 5개의 평가 항목을 포함하는 ‘인성 및 대인 관계 영역’ 그리고 지원자 평가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기술됩니다. 그리고 8개의 평가 항목들은 항목별로 매우 우수, 우수, 보통, 미흡, 평가 불가 등 5단계로 평가가 진행됩니다.

이런 교사추천서의 학생 평가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그 실례로 어느 학과 지원생의 1번부터 15번까지의 교사추천서 평가 내용을 살펴보니 어이가 없어집니다. 교사 평가에서 8개 항목 모두가 매우 우수인 학생이 8명이었고, 매우 우수 외에 한 항목만 우수가 4명, 2항목만 우수가 2명, 3항목만 우수가 1명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상자 중 보통 이하의 평가를 받은 학생은 전혀 없었습니다.  

전 항목이 매우 우수로 평가받은 학생들 중 학업 성적이 5등급인 학생들도 있고, 자소서의 내용이나 학생 활동이 미흡한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업 성적이 5등급이면 100명의 동급생 중 40등에서 60등에 속하는 학생입니다. 교사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학생을 어떻게 낮게 평가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과연 이런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성적 위주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사교육비도 줄여보자는 취지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전형이 속도전 식으로 무리하게 진행되며 많은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수시모집이 학생들의 인성이나 적성 그리고 창의성이나 잠재력에 중심을 둔 전형이 아니라 부모 대 부모 또는 학교 대 학교의 대결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본 제도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명문대학 인기학과만을 추구하려는 우리 사회와 학부모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부는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여 독자성을 인정하고, 대학은 객관적이며 신뢰도가 높은 세밀한 검증 제도를 마련해 대학이 우리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학생들이 꿈과 끼를 펼쳐나갈 수 있는 장(場)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