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조성진은 무대 뒤에서 무슨 책을 읽을까
주간경향 입력 2015.11.04. 11:18왜 읽는지, 뭘 읽는지, 그 다음에는 뭘 또 읽을 것인지도 끝없이 사유해야 한다. 그저 예술가의 장식으로 책 몇 권 읽으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되었어요’ 같은 공허한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 21살이다. 티라미수를 좋아한다. 콩쿠르 우승 직후 폴란드 매체 ‘폴스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인터뷰에서 조성진은 ‘음악 말고 다른 취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파리에 살고 있는데, 그곳엔 끝내주는 크로와상과 디저트 케이크을 파는 식당과 베이커리가 정말 많아요. 저는 맛있는 디저트 가게를 인터넷으로 찾곤 해요. 그리고 그곳에 가서 다른 종류의 케이크를 사 와서 비교해 보죠. 이게 제 취미예요. 저는 이탈리안 음식을 제일 좋아하고요. 티라미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랍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슴이 먹먹하여 도저히 잊히지 않는 책은 무엇이 있는가’ 라고 나는 묻고 싶다. 그런 질문은 없어 보인다. 하긴, 흥분과 팬심으로 질문하는 자리에서 정색하고 이런 질문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5년 전인 2010년 1월, 어느 신문은 조성진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여자친구는 있는지? 그리고 이상형은?” 그때 16살 소년 조성진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이상형은 ‘소녀시대’의 태연이다.”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아쉬웠던 인터뷰
여기서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 세 가지.
첫째, 어느덧 윤아를 제치고 태연이 ‘소녀시대’의 갑 중의 갑으로 등극했다는 사실. 축구계의 서형욱 해설위원, 한신대의 어느 동료 교수, 그리고 이 오래된 인터뷰까지 포함하여 최근 일주일 동안 확인된 것만 3건이다. 역시 ‘탱구’(태연의 애칭)인가?
둘째, 곱상하고 통통하게 생긴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겸손하기까지 하다는 사실.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스타일이라니.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조성진은 스스로를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국내는 물론 온 세계가 난리가 났다. 2016년 2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인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의 좌석 2500석이 50분 만에 동이 났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이 2006년 4월 내한공연했을 때 그 표는 한 달 전쯤 매진됐고, 2009년 1월 내한공연 했을 때는 티켓 판매 오픈 5시간 만에 매진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50분 만에 매진이다.
우리집에서도 난리가 났다. 고3 수험생인 내 딸이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세 번째 스테이지 ‘프렐류드’를 보고 또 본다. ‘멋찌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 옆에서 내 아내도, 나에게는 평생 단 한 번도 선사하지 않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콩쿠르 영상을 보고 있다. 특히 프렐류드 28번 중 24번째 곡의 연주에서 조성진이 그 곡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초저역의 건반을 오른손가락을 그러쥐고 심각하게 두드릴 때 내 딸과 아내는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이런 데도 ‘나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16살 때는 귀여워도 21살은 혼이 나야 한다.
셋째, 촉망 받는 예술가를 인터뷰할 때도 ‘여자친구가 있느냐. 이상형이 뭐냐’고 묻는다는 사실. ‘로봇 저널리즘’(Robot journalism)이라는 게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축적된 정보가 방대한 반면 그 기사 패턴은 일정한, 예컨대 스포츠 단신, 주식 시황, 날씨 예보 같은 기사들은 자동 로봇 프로그램으로 쓴다. 실제로 국내외에 그런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에 대해 손석희 같은 언론인은 ‘로봇이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하겠다’는 신념을 밝힌 적도 있다. 이를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기자들이 정형화된 기사를 쓰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어야 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하는 모습. |
템플릿(template)이라고 있다. 형판(形板)이나 견본이란 뜻인데,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템플릿은 거의 모든 개발, 연구, 발표 등에 쓰인다. 기본적인 형판을 두고 그 위에 특정한 사실만 따로 얹으면 과제도 되고 기사도 된다. 이게 상상력을 제한하고 사고를 제약한다. 그러니까 외국에서 누가 오면 무조건 공항으로 달려가서 이렇게 질문한다. ‘한국음식 중에 뭘 제일 좋아하나요? 애인은 있나요? 이상형은 어떻게 되나요?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서 아무거라도 하나 그냥 좀 해줘봐요?’
왜 조성진에게 쇼팽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걸까? 쇼팽 콩쿠르 우승자에게 쇼팽의 생애와 음악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걸까? 그날의 연주에 대해서, 함께 콩쿠르에 참여했던 다른 연주자들에 대해서, 최고점을 줬다가 최하점을 준 심사위원 필립 앙트르몽에 대해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거장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에 대해서, 무엇보다 쇼팽 협주곡 1번에 대하여 왜 묻지 않는 걸까?
오래전 심야에 차를 타고 가다가 들은 얘기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귀국연주회를 하게 되어 방송에 출연했고, 자신이 연주해야 할 곡들에 대해, 또 자신의 근황에 대해 사회자와 대화를 나눴다. 그러는 중에 사회자가 ‘이번 연주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게 뭐냐?’고 물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드레스요.’
농담일 수도, 우문의 현답일 수도, 실제로 그게 아주 신경을 쓰게 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 중국의 피아니스트 유자왕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연주한다. 강력한 쇼맨십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하이힐로 페달을 밟은 때에야 자신이 원하는 최적의 힘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일본계 독일 피아니스트 앨리스 사라 오트는 맨발로 올라간다. 맨발로 페달을 밟아야만 자신이 살아 있는 연주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많은 관중들의 집중된 시선을 받아야 하는 연주자로서 어떤 드레스를 입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팔을 써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날의 레퍼터리와 관련하여 색깔도 신경써야 한다. 그래서 질문은 계속 이어졌어야 한다. 왜 드레스인가? 그리고 답이 이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그날의 방송 대화는, 어쩌면 중요한 사안일 수도 있는 드레스에 대하여 진행되지는 않았다.
왜 쇼팽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걸까
다시, 정색을 하고 말하고자 한다. 2002년, 첼리스트 장한나가 음대로 진학하지 않고 하버드대 철학과로 진학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자신을 지도한 몇몇 선생님들, 그 이름도 찬란한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마이스키에게, 무엇보다 지휘자 시노폴리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이탈리아의 사유하는 지휘자 시노폴리는 이미 기량으로 완성되었으니 사유를 정련해야 한다며 음대 대신 철학이나 문학을 권했다. 그래서 장한나는 하버드로 갔고, 그 이후 장한나는 귀국연주회 등의 인터뷰에서 “최근에 읽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밤과 낮’이에요.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들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이어간다는 것에 있죠” 같은 내면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조성진에게 갑자기 쏟아지는 질문들은 열렬한 팬심과 호기심이 절반이다. 티라미수를 좋아하고 여전히 소녀시대 태연이 이상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성년이 되었고, 콩쿠르 우승자이며, 무엇보다 베토벤, 쇼팽, 차이코프스키 등 19세기의 고뇌와 갈등과 파국을 오선지에 기록한 뜨거운 피의 음악가들을 연주하는 음악가다.
그러니 그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뒤로 하고, 무대 뒤에서나 연습실에서나 파리의 카페에서 무엇보다 책을 읽고 사유를 강화할 일이다. 그 자신이 연습 이외의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또 읽는다고 했다. 왜 읽는지, 뭘 읽는지, 그 다음에는 뭘 또 읽을 것인지도 끝없이 사유해야 한다. 그저 예술가의 장식으로 책 몇 권 읽으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되었어요’ 같은 공허한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나는 음악밖에 몰라요’라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야릇한 분위기만 풍기는, 그런 인식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물론 조성진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자체만으로 그가 읽은 책들 이상의 강렬한 순간들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그에게 다른 질문이 가능해야 한다. “이번에 연주하게 될 차이코프스키에서 그가 추구한 러시아적 선율, 그것의 성격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아마도 조성진이라면 1번 협주곡의 러닝타임보다는 더 길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피아니스트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주하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철학(슬기맑힘,뜻매김),말글책 > 칼럼(네모속글·기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일축구 응원 걸개그림_이순신+안중근(워털루 역, 개선문)의 문제점_이승훈 (0) | 2016.01.06 |
---|---|
방재욱_입학사정관전형의 허와 실 I : 자소서와 추천서 (0) | 2015.12.07 |
국회와 대통령_모두 국민을 뒷전으로 밀로 있다_김영환 (0) | 2015.06.03 |
주역의 소리: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소인혁면(小人革面)_뉴질랜드 정치문화 (0) | 2015.05.08 |
참새 잡이 끝에 해충 들끓다_웃지못할 마오쩌둥 (0) | 201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