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몹쓰리)의 문제/ 정당방위

남편성기 절단 사건_bobbitt(미국)_1993년

사이박사 2014. 11. 4. 12:58

bobbitt

bobbitt은 '남자의 성기를 절단하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로레나 보빗(Lorena Bobbitt)이라는 여인이 남편의 음경을 절단함으로써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화제의 인물이 된 사건에서 비롯된 신조어다. 이 사건은 술 취한 남편이 강제로 아내와 성관계를 가진 데 격분, 그 아내가 남편의 성기를 식칼로 잘라버린 데서 비롯되었다. 이 단어가 신조어로 사전에 오른 데는 이미 쓰이고 있는 "bob it(짧게 자르다)"과의 유사성 때문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1)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3년 6월 23일 새벽 워싱턴에서 서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버지니아 주 매나사스(Manassas)에서 술집 경비원인 존 보빗(John Wayne Bobbitt, 1967~)이 술에 취해 돌아와 미용사인 부인 로레나(Lorena, 1970~)의 거부에도 불구, 강제로 관계를 가졌다. 화가 난 로레나는 남편이 잠든 사이 부엌칼로 그의 성기를 자른 뒤 차를 타고 나가 길가에 던져버렸다. 사건 직후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 의해 잘린 성기는 수거되어 9시간 넘게 걸린 봉합수술 끝에 존 보빗은 소변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을 만큼 되었다.

사건 직후 이들 부부는 성폭행 혐의고의적인 중상해죄로 서로를 고소, 법정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부부 간 성폭행죄(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는지와 부인의 정당방위가 인정될 것인지를 놓고 처음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1993년 연말에 끝난 제1라운드 재판에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성폭행 부분은 배심원의 무죄평결을 받았다.

1994년 1월 제2라운드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배심원들에게 "나는 그가 처음 나를 강간 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나는 그가 처음으로 나를 강요해서 항문 섹스를 가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낙태를 기억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합니다"라고 말했다.2) 이 사건에 대해 여권단체들은 로레나의 정방방위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이 사건이 아내 측의 일방적인 유죄로 끝날 경우 모든 여성의 인권과 자기방어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이 갈수록 화제를 모은 이유는 사건 자체가 갖는 '흥미성'에다 미국 언론의 보도경쟁, 부부 간 성폭행 성립 여부에 대한 공방, 아내의 행위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여권단체의 지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법정 주변에는 위성중계 차량 20대가 몰려드는 등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여기에다 상인들은 약삭빠른 상혼을 발휘해 존의 사인이 든 셔츠를 20달러씩에 파는가 하면 범행에 쓰인 것과 똑같은 칼과 남성 성기 모양의 초콜릿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또 이 사건으로 유명해진 이들 부부는 각기 홍보담당자까지 정해 TV나 잡지 등에 출연,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다.3)

1994년 1월 21일 로레나는 무죄 평결을 받았다. 이날 여자 7명, 남자 5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7시간의 토론 끝에 그녀가 잠자는 남편의 성기를 자른 행위를 '일시적인 정신이상'상태 에서 저지른 행위로 인정하여 무죄를 평결했다. 로레나는 이 평결로 버지니아 주법에 따라 정신 감정을 위해 최고 45일간의 보호관찰을 받게 되었다.

남편에 의한 강간을 문제로 인식한 시점은 스웨덴에서는 1965년, 영국에서는 1991년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비로소 보빗 사건을 통해서 그러한 인식이 이루어진 셈이다.4) 여성단체들은 크게 고무되었고 로레나의 출생지인 에콰도르에서는 수백 명의 주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허공에 공포를 쏴대는 등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미 남성 단체들은 "비극이다. 앞으로 남성들은 과거보다 훨씬 여성의 폭력 앞에 노출되게 되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5)

로레나 보빗은 심각했지만, 그녀의 남편인 존 보빗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로레나 보빗에 대해 무죄 평결이 내려지고 난 뒤, 기자들이 재판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 대리인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그랬다"고 답했다. 이 사건으로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그는 사건담당 변호사 외에 연예담당 변호사를 두어 대언론 관계의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하게 한 것이다. 그의 대리인인 연예담당 변호사는 이미 보빗을 〈아메리칸 저널〉이라는 폭로성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독점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존 보빗은 〈아메리칸 저널〉 이외에는 어떤 언론과도 회견을 할 수가 없었다.6)

이 부부는 1995년에 이혼을 했지만, 한동안 풍성한 화젯거리를 계속 제공했다. 존 보빗은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쓴 포르노 영화 두 편에 출연했고, 로레나는 자기 어머니를 때려 뉴스에 다시 등장했다. 두 사람은 2009년 5월 〈인사이더(The Insider)〉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했는데, 이 자리에서 로레나는 존이 그간 자신에게 계속 밸런타인 카드와 꽃을 보내온 것으로 보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2013년 뉴질랜드 가수 아라드나(Aaradhna)는 〈로레나 보빗(Lorena Bobbitt)〉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7)

각주

  1. 1 John Ayto, 『Movers and Shakers: A Chronology of Words That Shaped Our Age』(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p.231~232.
  2. 2 데이비드 프리드먼(David Friedman), 김태우 옮김, 『막대에서 풍선까지: 남성 성기의 역사』(까치, 2003).
  3. 3 정동우, 「"부부간 성폭행죄" 되나 안되나/미 "남편 성기 절단" 싸고 떠들썩」, 『동아일보』, 1994년 1월 14일 7면.
  4. 4 앵거스 맥래런(Angus McLaren), 임진영 옮김, 『20세기 성의 역사』(현실문화연구, 1999/2003), 347쪽.
  5. 5 정동우, 「남편 "강간"-부인 "성기절단" 모두 무죄」, 『동아일보』, 1994년 1월 23일 4면.
  6. 6 정연주, 「취재원도 돈주고 독점」, 『한겨레』, 1994년 2월 1일 12면.
  7. 7 John and Lorena Bobbitt,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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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bobbitt (교양영어사전2, 2013.12.3, 인물과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