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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집단 지성’ 국가 권력에 ‘맞장’(한겨레)

사이박사 2009. 7. 15. 10:51

진화하는 ‘집단 지성’ 국가 권력에 ‘맞장’
‘개체’ 모여 고도의 ‘무리 지능’ 체계 형성
이성적 다중이 지식인 빠진 ‘저항운동’ 주도
정보·전략 부재땐 파시즘·시장주의 포섭 우려
한겨레
촛불집회를 통해 등장한 ‘집단 지성’의 위력과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최근 촛불집회 참여자들이 보여준 정보 분석, 상황 판단, 행동 결정 등의 과정에서 사회과학적 개념인 ‘집단 지성’의 실체를 발견하고 있다. 근대 이후 한국의 주요 사회변동을 이끄는 자리에 지식인들이 빠진 경우가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지식인이 아닌 대중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집단 지성이 촛불집회를 낳았고, 그 촛불집회를 통해 더 강력한 집단 지성이 탄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설명하려는 국내 학계의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됐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이를 적극 평가한다. 그는 ‘이성적 군중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 조 교수는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90년대식 사회운동의 시대가 끝나고, 온라인 토론을 벌이다 이슈가 형성되면 언제든지 오프라인 직접 행동에 임하고, 그 결과를 성찰해 새로운 방향을 찾는 ‘이성적 군중’의 사회운동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이성적 군중’이 “시민단체는 물론 정당보다 훨씬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사회학)는 그 세계사적 의미를 평가했다. 그는 “인터넷이라는 신경망을 통해 개인의 창조적 발상이 또다른 개인의 창의성을 자극·촉발하고 있다”며 “서구 학자인 네그리와 하트가 21세기 새로운 저항의 주체로 ‘집단 지성’을 거론했는데, 이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실행한 것이 한국의 촛불집회”라고 말했다.

조정환 다중정원 상임강사는 근대 이후 지식·정보의 최고 권위를 상징했던 국가기구조차 넘어서는 힘이 ‘다중 지성’에게 있다고 본다. 그는 ”한국의 다중 지성이 갖추고 있는 정보 수집·분석 능력은 과거 공안기관의 수준을 넘어섰다”며 “과거에는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쳐다보는 ‘대중’만 있었지만, 이제 세계 첨단을 달리는 인터넷에 기초해 각 개인이 분석가·정치가·활동가가 됐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지식을 생산하는 동시에 향유하는 ‘지식의 프로슈머(pro-sumer)’”라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식인의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지성계에는 순수 이론만 추구하거나 상업주의에 영합하는 극단만 있는데, 시민들은 정보를 창출해 온라인 네트워크에 올리고 다시 시위자로 참여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사회지성의 구실을 하고 있다.”

집단 지성의 미래엔 걸림돌도 있다. 조정환 상임강사는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소용돌이 속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시행착오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항상 잠복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가 제한된 상태에서 소수가 선동하여 특정한 방향으로 대중을 끌고가면 파시즘 등으로 치우칠 수도 있다”며 “피동적 ‘대중’과 능동적 ‘다중’을 구분하는 것은 개인이 갖고 있는 정보력”이라고 말했다.

여건종 숙명여대 교수(영문학)는 최근 상황에서 ‘대중 지성’의 가능성과 함께 ‘대중 독재’의 위험성을 발견한다. 그는 “대중이 지식인이 되고 지식인이 대중이 되는 ‘대중 지성’의 가능성을 어떻게 더 생산적으로 분출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 전략이 없다면 오히려 시장주의 동원체제에 포섭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 교수는 언론 지형의 변화가 이를 판가름지을 것으로 봤다. “대중은 정보를 비교·분석할 수는 있지만 정보 자체를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공중파 방송 등을 권력의 하수인으로 두면서 대중 지성의 토대를 대중 독재의 토양으로 전환시키려는 정치권력의 기획이 진행 중이라고 우려했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큰 맥락에서 볼 때, 집단 지성이 결국 한국 사회의 또다른 출구를 찾아낼 것이라고 전망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진경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적절한 조치 없이 집단 지성이 지치기만 기다리는 가운데 아무런 제도적 해결 없이 이번 일이 끝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 상황이 와도 진짜 위기에 처하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대중의 뜻을 수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이며, 대중은 촛불집회를 통해 느낀 즐거움과 기쁨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앞으로도 계속 반복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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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2008-06-19 오후 01:48:52 기사수정 : 2008-06-19 오후 03: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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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이여, 더 많은 헌법을 노래하자!              

                                                                                        변호사     유제성/ 오마이뉴스

 

  
지난 6월 15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이명박 정부 심판 39차 촛불문화제에서 시민, 학생들이 함성을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촛불문화제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현장. 사람들이 길바닥에 앉아 안치환·양희은씨의 노래와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듣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 틈 속에 서 있던 어느 신문사 기자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지금 시위대를 취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시민 한 분이 흥분해 그 기자에게 항의를 했다.

 

"왜 우리 보고 시위대라고 하느냐? 우리는 시위대가 아니다."

 

그분은 왜 '시위대'라는 말에 그토록 흥분하고 항의를 했을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에서 정의하는 '시위'란 '다중이 공동의 목적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위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바닥에 모여 앉아 가수의 공연과 시민의 자유발언을 듣는 행위를 시위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그분이 그런 법률적 또는 사전적 의미에서 '우리는 시위대가 아니다'라고 항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분은 자신이 집회·시위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집회·시위는 불온하고 과격하고 순수하지 못하고 정치적이며 폭력적인, 그래서 불법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집시법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법

 

  
지난 6월 8일 청와대 진입로인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밤샘 농성을 벌인 시위대를 경찰이 인도로 밀어내며 강제해산시키고 있다.
ⓒ 남소연
강제해산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단적 형태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적 인권이다. 따라서 집시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법이어야지 이를 침해하는 법이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 집시법은 그렇지 않다.

 

일몰 후 집회금지 같은 비현실적인 규제와 금지로 가득하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은 정당한 기본권 행사인 집회·시위를 "떼법"으로 폄하하고 주동자를 끝까지 엄단하겠다고 한다. 좌파세력의 선동과 괴담에 현혹된 사탄의 무리 또는 실업자들이라고 매도한다. 정치적 요구로 변질되어 순수하지 않다고 한다.

 

무장하지 않은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해 관련규정을 위반해가며 물대포를 쏘면서도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방패로 찍고 군홧발로 짓밟으며 연행한다. 그리고는 경찰차로, 컨테이너로 장벽까지 쌓는다.

 

명백한 불법이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은 공권력이 평화적인 시위대를 강제진압하거나 시위대를 차단하기 위해 도로 한가운데 장벽 쌓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원래 집회나 시위란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이므로 순수성 여부, 정치성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시민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경찰차에 '주차위반' 딱지를 붙인다. 그리고 해산명령을 하는 경찰을 향해 외친다.

 

"평화시위 보장하라. 우리가 시민이다. 이명박이 불법이고 시민들이 합법이다."

 

아울러 '집시법 개정', '대운하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조중동을 보지 말자', '조중동에 광고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지 말자'와 같은 정치적인 구호도 거침없이 외친다.

 

파업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

 

최근 화물연대와 건설노조가 파업중이거나 파업을 했고, 민주노총도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집회·시위 못지않게 노동자의 파업에도 언제나 과격·폭력·정치·불법 같은 딱지가 붙는다. 경제가 위기라서, 가뭄이라서, 국가 경제를 망쳐서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지겹도록 해왔다.

 

노동3권의 하나인 파업할 권리는 노동자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것은 특별히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한 정당한 권리의 행사일 뿐 불법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걸핏하면 노동자의 파업은 불법으로 매도되고 진압당하며 처벌받는다.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금지 등 노동관계법에 위헌적 요소가 많은데다 사법기관 역시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형식적으로 이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누구나 외치지만 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는 것은 무언가 위험하고 불온하며 경제를 망치는, 시대에 뒤처지는 짓이 된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공간을 초월해 실시간으로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기존의 질서와 의사소통 방식을 뛰어넘는 집단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이 집단지성이 노동자를 향한 연대의식으로 발전할 때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느니, 불법이니 하는 정부와 기업의 주장에 대해 이제 이렇게 말해주자.

 

"우리도 노동자다. 파업하는 노동자도 시민이다."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던 지난 6월 11일, 한 집회 참가자가 '국민이 주인이다'라고 적은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태극기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모든 헌법조항들을 불러내자

 

그리하여 시민의 정당한 요구와 권리 행사가 불법이 되는 이 불법적인 현실에 저항하자. 법이 오로지 권력과 자본을 지키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하는 수단,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게 하자. 우리는 촛불시위를 통해 헌법 제1조를 법전 속에서 불러냈다.

 

이제 헌법 제1조뿐만 아니라 제21조(집회의 자유)도, 제31조(교육을 받을 권리)도, 제32조(근로의 권리)도, 제33조(노동3권)도, 제35조(환경권)도, 그리고 그 외에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데 필요한 모든 조항들을 불러내자.

 

그리고 당당히 요구하자.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이 기본적 인권들을 보장하라고. 헌법을 위반하는 법률도 공권력도 물러가라고.

덧붙이는 글 | 유제성 기자는 변호사입니다.

2008.06.19 19:11 ⓒ 2008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