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점이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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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시선
- 조회수 : 14
- 09.05.11 09:13
조정환 선생이 제기한 '반비판들'을 읽어보니, 나하고 '논쟁'을 하실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좀 머쓱하다. '간주곡'이라고 올려놓으신 내용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택광은 벤야민의 환(등)상 개념을 촛불에 적용함으로써 촛불은 유령이요 환상이라는 견해를 거들었는데, 나는 『미네르바의 촛불』에서 이러한 견해에 맞서 동일하게 벤야민을 원용하면서 촛불은 '환(등)상의 사건'이 아니라 '(비메시아적) 지금시간의 사건', 업res gestae의 사건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즉 촛불을 물신의 시간이라고 본 이택광과는 달리 촛불이야말로 혁명의 시간을 보여준다고 썼다. 이로부터 시간 여유가 나는 대로 내가 서술해야 할 다음의 쟁점 주제는 분명해진다. '촛불이 환등상이 아니라 MB 정부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환(등)상이다. 2008년 5월 2일, 그 환(등)상이 깨진 곳에서 각성의 지금시간이 시작된다. 그 중지의 자리에 켜졌던 것이 촛불이다.' 참고로 나는 촛불을 '유령'이라고 말한 적도 없고 그 견해에 동의한 적도 없다. 나에게 촛불은 엄연히 '중간계급'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는 벤야민의 '판타스마고리아'라는 개념을 쓴 것이다. 이때 판타스마고리아는 지젝의 '판타지'와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남이 사용한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그 맥락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흥미로운 건, 조정환 선생이 나를 비판하다가 갑자기 '벤야민 비판'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아마 내가 기대고 있는 벤야민을 비판해서 '다중주의'(조정환 선생이 이 용어를 선호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 이렇게 쓴다)의 이론적 우월성을 증명하면 내 논지도 무너진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벤야민의 주장마저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에 이미 포섭당해버린 '이론'이라는 걸 '폭로'하면 내 글의 논리구조가 얼마나 친이명박적이고 친자본주의적인 것인지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조정환 선생은 촛불을 '각성의 지금시간'으로 보셨지만 나는 반대로 보았다. 그 까닭은 조정환 선생의 주장과 달리, 벤야민의 이론에 내가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벤야민은 내 주장을 위한 이론적 근거로 불려나오지 않았다. 나는 벤야민의 '개념'을 은유적으로 빌려 썼을 뿐이다. 내 글은 이론에 현실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석적인 것'이다. 나는 이론에 끼워 맞춰 현실을 판단하는 것보다 현실에서 이론을 도출하는 일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지금까지 제출된 조정환 선생의 논의에서 나는 조정환 선생이 진정한 '네그리주의자'인지도 조금 의심스러워졌다. 네그리에 대한 독서가 조정환 선생보다 일천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지금 조정환 선생의 태도는 네그리보다 알튀세르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조정환 선생이 아직도 '완벽한 이론은 완전하게 현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졌다는 뜻이다.
이런 논리구조라면 결국 '다중주의 최고'라는 결론밖에 나올 게 없다. 이론의 우월성과 완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촛불논쟁을 동원하는 전도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단순한 나의 오해이기를 바라지만, 어쨌든 지금 논의는 '대화'의 차원을 넘어서 '방언'의 단계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런 결과는 논점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정환 선생은 지금 논점을 '촛불비판'과 '촛불옹호'로 몰아가고 있지만, 정작 여기에서 논의해야할 사안은 이게 아니다. 나를 포함해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의 필자들이 제기한 문제는 조정환 선생과 '다른' 관점에서 나온 것 뿐이다. 그렇다면, 조정환 선생이 해야할 일은 이렇게 다른 관점이 제기한 문제들을 '현실'과 비교해서 논파하는 것이다. 조정환 선생이 지금 해야할 일은, 내 글이 얼마나 친이명박적이고 친신자유주의적인지를 '이론적'으로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의 대중은 다중이다'는 자신의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다. 조정환 선생의 <미네르바의 촛불>이 이런 질문에 대한 미흡한 답이라는 게 나의 평가였다. 그렇다면, 이런 의구심을 해소시킬 정당한 주장을 하면 될 일이다. '이택광'이 얼마나 '모자란 놈'인지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물론 이건 조정환 선생이 나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대상에 대한 기술적(descriptive)인 분석을 '이택광의 주장'과 혼돈하는 건 이 논쟁을 위해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밝혔듯이, 내가 촛불을 '비판'하는 이유는 조정환 선생이 촛불을 '옹호'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촛불을 대접하는 것이 촛불의 정치성을 되살리는 길이다. 문제는 누가 더 혁명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결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촛불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해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서로를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설득시켜야할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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