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겉과 속'
-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1999/ 9,000원
< 몇 년 전 어느
토론회장에서 언론운동과 관련된 주제 발표를 맡았던 필자는 한 고등학교 교사로부터 가벼운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언론과 대중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그 관심을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발전시켜 보겠다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청소년들을 외면한 채 전문가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여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느냐는 꾸짖음이었다. > (머리말, 12쪽)
저자 스스로가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그동안 지식인, 일반대중을 주요독자층으로 하는 글을 써왔던 강준만씨가 '10대 청소년'을 가상독자로 설정하여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작업 역시 그동안의 강준만씨가 늘 주창해온 '성역과 금기의 파괴'라는 모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사실 기성세대들은 '대중문화'라고 하면
일단 우습게 보는 경향이 대다수인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따라서 강준만씨는 이 책을 청소년 대상으로 썼다고 하나, 내가 보기엔 사실
이책을 정말로 읽어야 할 사람들은 대중문화를 무조건 무시하거나 저질로 치부해버리는 기성세대들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기본적
이해없이 실효성없는 비판만 가하는 것은 안그래도 자본중심적, 상업적 의도로 가득찬 현사회의왜곡된 문화형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꼴만 되고 말테니깐
말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저자의 의도답게, 이 책에서 강준만씨는 대중문화를 분석함에 있어서 어려운 분석틀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원래 강준만씨의 글쓰는 방법이 그렇긴 하지만 이 책의 사례인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신문이나
방송매체에 실린 내용들이다.
그가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 담론에 대해 비판하는 주된 요점은 한마디로
'거식증'
이다. 문화현상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이론중심적이고, 외국의 이론틀을 빌려다 쓰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런 어려운 글만
쓰다보니, 정작 대중문화를 직접적으로 소비하고, 이끄는 일반 대중들은 그러한 담론으로부터 소외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그러한 '거식증'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제한된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먹고, 입고, 듣고, 보는 데 소비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실상 그런 식의
분석이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게 마련이다.
주위에 있는 서점에 가봐도, 이러한 대중문화를 다루는 서적들은 지극히 양분화되어 있지 않은가. 무크지 형식의 대중문화 관련 서적들은 다소
담론위주의 어려운 글들로 채워져 있고, 그 반대편엔 스타급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다룬 '하이틴'류의 잡지들이 청소년들을 타겟으로 삼고 있는 등,
지나치게 양극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TV에서 방송되는 '연예가 중계'나 '한밤의 TV연예' 등 그나마 현실 대중문화를 다루고 있는
방송프로그램의 경우도 연예인의 신변잡기(결혼, 이혼, 염문설 등등)를 중심으로 다루는 포맷으로 흐르고 있고, 스포츠 신문은 말할 것도 없다.
이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결국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왜곡과 올바른 문화담론의 형성을 가로막는 꼴이 되고 있지 않은가.(한낱
개인문제로 국한되어야 할 백지연씨의 친자확인문제나 서갑숙씨 소설 문제가 상업주의적 대중매체에 의해 왜곡된 방향으로 진행되어온 것을
보라.)
이런 전제 하에서 강준만씨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분석을 진행해나간다.
청소년 문제부터 연예인, TV,
광고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분석하는 과정 속에서 그가 행하는 주된 비판의 요점은 대중문화의 생산주체가 자본에 의해 종속되어있고, 그에 의해
대부분의 소비자 대중이 수동적으로 세뇌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세뇌당한 대중들은 다시 그러한 수동적 소비를 강요하는 문화물을
찾게되는
'악순환'
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대중들 스스로가 수동적인 소비지향적 태도에서 벗어나'능동적 주체'가 될
것을 제시한다. 그는 아직도 '신세대'의 창의적, 적극적인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러한 긍정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살려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대중문화에 대해 대학들이 훨씬 더 문호를 개방하고, 고등학교에서도 대중문화에 대한 교과과정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방향의 전제에 앞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역시 대중문화 생산매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참여제도를 강화시키고, 비판적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강준만씨의 글을 좋아하고 나름대로 많이 읽어봤던 탓인지, 그다지 눈에 띄게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대중문화의 중요성 및 그것을 올바로 수용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이 예전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나 역시도 지금까지
대중문화를 소비하기만 했을뿐, 이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바꿔나가려는 노력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의 '장수퀴즈'를 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초등학생들도 맞출만한 문제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무지 웃곤 하지만, 정작 이 웃음의
의미를 따지고 보면, 현세대들의 지적 기준을 근거로 '과거세대'의 '무지'를 조롱하면서 대리적인 유희와 만족감을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두 가지 모순된 사고를 함께 공유하는 게 나의 문제이긴 하지만, 어쩌다 TV채널이 그쪽으로 옮겨지게 되면 또 다시 그걸 보고 웃게 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문화소비행태가 나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라면 나만 바로 잡으면 되는 문제겠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러하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강준만씨가 요구하는 능동적, 공동체적인 대중문화 소비능력의 개선이 더욱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완전개정판).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1999.
저자는 우리의 삶의 거의 모든 것이 되어가고 있는 대중문화와 이 대중문화의
가장 큰 영향 속에서 살아가고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이면서 생산층이기도 한 청소년이라는 두 항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저자가
청소년과 관련하여 대중문화에 접근하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분히 변증법적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한 사회의 문화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영향력 있는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대중문화 특히 TV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고와 이끌고
유행을 만들며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체제를 좌지우지하기도 하는 대중문화의 막대한 영향력과 빈부와 계급, 계층 간의 소비적 불평등의 해소라는 긍정적
인식 사이에서 힘들게 적절한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큰 틀 속에서...
그러나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은 조금 편향적이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에 바탕을 두었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를
위시한 현대 대중문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허우적대고 대중문화가 던져주는 쾌락과 교양, 정보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이 대중문화의 힘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대중문화를 통해 발견하는 세계를 찬양하고 그의 매니아들이 되고 그 속에서
열광하며 그의 신도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성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즉각적으로 느끼고 이를 또한 여과 없이 표출하는데 기성세대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신세대와 TV와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접해지는 대중문화는 더 이상의 좋은 짝을 구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중매체와 문화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은 당연히 보통의 사람들이 보는
'겉'
보다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더 중요하고도 본질적일 수 있는
'속'
을 보여주는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청소년과 대중문화가 왜 그렇게 밀월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지, 대중문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스타와 창조과정과 그 이면, TV라는 매체가 가진 보이지 않는 속성들과 헤아리기 힘든 막대한 영향력,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의 본질,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또 다른 세계를 궁극적으로 창조하는 테크놀로지, 대중문화가 만들어내는 유행의 '속'을 특유의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설명해나간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대중문화의 발전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에게 대중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를 위한 제대로 된 대중문화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제대로 된 대중문화 교육은 곧 새로운 의미의 교육 개혁을 요구하고 이는 반드시
대중문화와 이를 생산하는 사회, 이를 소비하는 사회, 그리고 그 중심의 청소년 전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어른과 청소년이 함께 읽고
나눌 수 있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