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바[우리말답게 바로쓰기]

융합의 뜻매김, 사고(사유), 생각하기

사이박사 2019. 9. 3. 13:53

2) 융합적 사고에 대해

 

융합(融合)convergence의 번역어이다. “은 무쇠솥에 여러 가지 식재료를 넣고 삶는 일이고, “은 닫는 일을 뜻한다. “convergence”“divergence”의 반대말이다. 보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여러 속들이 있었다. 다이버젼스는 종이 나뉘는 것이고, 컨버젼스는 한데 모아지는 것을 뜻한다.

 

컨버젼스는 사이언스(science)에서 쓰였던 낱말이다. 사이언스는 에피스테메의 번역어로서 속속들이 앎또는 증명된 앎이라는 뜻이다. 염색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증명할 수 있고, 재연할 수 있다. 배움은 밖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앎은 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증명 요구가 강해지면 앎은 점차 쪼개질 수밖에 없다. 쪼개지면 창의성이 줄어든다. 창의(創意)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뜻한다. 융합은 창의를 위한 수단이다.

 

융합은 [한데/함께] 아우르기이다. 여럿으로 갈라져 있는 것들, 사람, 방법, 공간 등을 한데 아울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곧 사랑(가치 추구)하는 것이다. 융합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가치(價値)는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서 을 뜻하고, “갚아야 할 것을 말한다. 융합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갚아야 할 바를 이루기 위한 방법(걸을 길)이다.

 

사고(思考)골똘하게 생각하기로서 주어진 물음에 대한 올바른 대답(갚음말)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이다.

 

3) 융합적 글쓰기에 대해

 

(1) 글쓰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글쓰기는 클레오스, 노래하는 것이다. “영웅은 시인이 필요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에이는 그가 노래하는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가 나온다. 시인이 없었다면 영웅은 태어나지 못했다. 노래한다는 것은 기림이다. ‘는 나를 기려줄 시인의 노래로써만 영웅(英雄)’이 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탁월성을 가장 잘 발휘한 인물을 영웅’(heros)이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 서사시에서는 영웅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탁월성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고대의 영웅들은 누구보다도 탁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반신’(half-gods)을 의미하는 헤미테오이(hemitheoi)라 불렸다. 그들은 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존재들로 신적인 부모를 가졌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과 달리 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호메로스는 영웅들을 헤미테오스라고 총칭하기도 했다. 헤시오도스는 일반적으로 테베와 트로이에서 전사들을 헤미테오스라 불리는 신과 같은 영웅종족으로 불렀으며, 나중에 인류의 다섯 종족에 관해 말할 때 청동종족과 철종족 사이에 영웅종족을 포함시킨다. 플라톤도 크라튈로스에서 반신 영웅들(hemitheoi hoi heroes)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 대한 뜻매김: 현실에서 벌어진 일을 완전한 모습으로 내보이는 것이다. 시인은 겉모습을 통해 온전한 참 모습을 그려내는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취재 기자들이 영웅을 만든다.

 

(2) 아우르는 글쓰기

 

나는 글쓰미로서 하늘땅의 의미 체계, 의미의 그물, 의미의 존재의 자리들을 그물짓는다. 시각 장애인에게 노랑색을 설명해 보라는 요구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노랑색은 나의 생각의 지도 안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색깔의 나라에 놓여 있을 것이다. 노랑색 옆에는 주황색이 있고, 내 머릿속에는 색깔의 지도가 그려질 수 있다.

 

의미는 우리 머릿속에서 머지가 생겨나 의미의 그물이 짜이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는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 냄새) 등을 말로써 이미지로써 짜나가는 자이다. 이 그물은 몸피 그물’, 덤불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의미 체계가 만들어지면 나는 그것으로써 이 세계를 바꿔 나간다. 이것이 곧 짜임이다.

 

나는 여러 생각들을 한데 아울러 글자로써 이야기를 짜 나아가는 것이다. 글쓰기는 글자를 쓴다는 것과 그것으로써 세상을 바꿔 나가기 위해 써 나간다는 뜻이 들어 있다.

 

글쓰기는 통합 시스템이다. 21세기 학문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이렇게 짜인 것을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이것은 거미줄 또는 짜인 것이다. 글은 사람을 닮는다. 사람이 아울러 짜 나가기 때문에 글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텍스트는 삶이 글자로 짜이는 것이다. 용포 짜기. 24개의 손길이 동시에 작업을 한다. 짜이는 손은 그 짜인 것 자체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짜인 글 자체에는 들어오지 않지만 반드시 함께 짜여야 하는 것, 컨텍스트(한 사람, 여러 사람)가 있어야 한다. 작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가 살던 시대도 짜인 것에 들어오지만, 그 시대는 숨겨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하이퍼텍스트(숨겨진 채 짜인 것)이다. 이것은 드러나지 않는, 시대 전체 또는 역사를 말한다.

 

우리가 짜인 것을 읽을 때는 짜임의 세 단계를 다시 일궈내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이것을 읽어내는 사람도 이다. 글쓰미 나와 글읽으미 나는 서로 다른 나이다. 다음 시간에는 읽기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