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바[우리말답게 바로쓰기]

가습기살균제 악행의 눈에 띄지 않았음 분석

사이박사 2019. 5. 3. 09:11

가습기살균제 악행의 눈에 띄지 않았음 분석

구연상(숙명여대)

 

<요약문>

이 글의 목적은 가습기살균제 악행이 17년 동안 한국사회 그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은 채 저질러진 과정과 그 이유를 분석하는 데 있다. 이 글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재난(참사)이 아니라 악행으로 규정된다. 이 악행의 특징은 그 몹쓸 짓이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을 매개로 저질러졌다는 것, 달리 말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직접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과 피해자들이 그 제품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들 자신이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데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을 통한 악행이 그 자체로 눈에 띄지 않음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에 대한 분석은 하이데거의 일상성과 빠져 있음 개념을 통해 잘 드러낼 수 있고, 아울러 눈에 띄지 않음의 이유들은 한국사회가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 사회와 가습기 사용을 부추기는 건강주의 사회로 진입했다는 사실, 나아가 그 악행의 인과관계가 일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제어] 가습기살균제, 가습기, 일상성, 도구, 눈에 띄지 않음, 위험 사회

 

1. 들어가기

 

이 글의 목적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사건으로 줄임)에서 나타난 악행의 특징을 눈에 띄지 않았음의 측면에서 분석하는 데 있다. 이 악행은 그것이 제품(도구)의 매개로써 저질러지는 바람에 그 행위자와 악행 자체 그리고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마저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정부의 역학조사에 의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밝혀질 때까지 하나의 사건으로 인지되지도 않았었다.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한국사회에서 17년이 넘도록 대규모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각종 질병을 일으켜 왔음에도 우리사회가 그 사건의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까지 저 인과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까닭은 이 사건의 악행이 철저히 눈에 띄지 않음의 특성으로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악행의 눈에 띄지 않음은 하이데거의 일상성(日常性, Alltäglichkeit) 개념을 통해 잘 분석될 수 있다. 이에 따를 때 사람들은 나날의 삶에서 우선 대개그때마다 그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일이나 목적에 빠져든다. 빠져듦은 사람이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순간에서 벗어난 채 삶이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상태로 접어들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 우리는 눈앞에 닥친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이러한 삶은, 한 마디로 말해, 아무 걸림이 없는, 그래서 권태롭기조차 한 모습을 띤다.

가습기살균제는 그것이 누군가의 일상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분명 새롭고 놀라운 상품으로서 그의 삶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었을 테고, 비록 잠시나마 그 제품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방안의 건조함을 해결해 주는 하나의 도구(道具)’로 자리를 잡자마자 그 위험 걱정은 일상성의 마술에 걸려 연기(煙氣)처럼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에 띌 때는 우리가 그것을 새로 갈아줄 때나 그것을 사러 대형마트로 갈 때뿐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 제품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그것의 위험성을 의심하기가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죽음의 물보라가 뿜어져 나오는 바로 그 자리에서가장 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는 이미 수십만 종의 생활용품이 쓰이고 있고, 그에 따라 우리사회는 그 제품들 속에 든 화학물질들의 독성에 대한 안전대책들을 갖춰 나가고 있다. 이 사건은, 간단히 말해, 이러한 대비책들, 즉 법 체계, 행정 체계, 그리고 연구 체계와 시민 감시 체계 등이 한꺼번에 뚫림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체계들은 우리사회가 갖가지 제품들의 눈에 띄지 않는 위험을 안전성 관점에서 검증(檢證)하기 위해 마련해 둔 것들이다. 검증의 눈을 지배하는 눈길은 일상성을 지배하던 둘러봄의 눈길이 아니라 바라봄의 눈길인데, 이 눈은 우리 자신이 에 쥐고 쓰고 있는 도구 자체의 위험성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점 등을 찾아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바라봄은 밝힘으로서 단순히 눈여겨봄과 같은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과학적 관찰과 실험 그리고 정밀한 분석과 재연(再演) 등과 같은 전문 연구를 가리킨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들은 기업이나 정부 또는 대학의 지원을 받는 별도의 기관이나 연구 집단에 의해 수행되고, 그 연구자들은 진리 탐구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이나 명예를 바라보며 연구한다. 일반 사람들은 그 연구결과들을 스스로알 수 없고, 그것들이 특정 매체를 통해 공개될 때 비로소 간접적으로듣고 보게 된다. 사람들은 누군가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알려 줄 때 비로소 그것의 위험을 알아볼 을 뜰 수 있는데, 이 사건은 그것을 알려줬어야 할 전문가 집단마저 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가장 먼저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내용을 짧게 기술할 것이다. 이때 나는 이 사건을 악행으로 전제할 것이다. 이 사건이 재난(사고 또는 참사)인지, 아니면 악행인지의 문제는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다음으로 나는 이 사건의 악행의 눈에 띄지 않았음을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의 측면과 악행 자체의 측면으로 나눠 따로 다룰 것이고, 또한 피해 사실의 뒤늦은 알아차림과 피해 범주의 애매함 문제도 이런 종류의 악행의 눈에 띄지 않음에 속할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 악행의 눈에 띄지 않았음의 까닭을 다음 세 가지로, 첫째, 이 사건이 개인적(personal) 차원을 넘어 공동체 전체로까지 확장된, 그리고 잠재성의 형태를 띤 현대적 위험에 속한다는 점, 둘째, 가습기살균제가 가습기 생활화에 발맞춰 보편상품이 되었고, 살균제에 대한 거짓말 광고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 셋째, 이 사건이 환경재난으로서 그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점 등으로 제시할 것이다.

 

2. 풀어내기

 

1)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 사건은,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우리사회가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관련하여 미리막을 수 있었지만 끝내막지 못하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많은 인명 피해와 사회 혼란을 낳은 참사(慘事)이자 악행(惡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20185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피해 신고자는 5,253명이고, 이 가운데 죽은 이는 1,233, 살았지만 각종 질병에 고통을 받는 이가 4,020명이다. 이 사건이 일반적(一般的)으로 참사로 불리는 까닭은 그 피해자 규모가 재난이나 재해 수준에서나 나올 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악행을 막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사회적 참사는 언제든지 거듭될 수 있다.

2016년 검찰 조사에 따를 때, 이 사건은 살균제를 만들어 판 기업(“살균제 기업으로 줄임)들이 돈벌이 탐욕(貪慾)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제품 원료가 위험한 물질인 줄 알면서, 또는 그 위험성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것으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면서 그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고지(告知)’하기는커녕 언론과 광고 그리고 제품 표시 등을 통해 인체 무해라는 거짓말로 소비자를 속임으로써, 아울러 정부가 살균제를 만들고 파는 과정을 이미 마련되어 있던법으로써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은 탓에,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이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기만적 홍보에 속아 넘어감으로써 발생했던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8월 폐 손상에 대한 가습기살균제의 교차비(Odds ratio)‘47.3’이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차비는 특정 요인이 질병을 불러일으키는 정도를 나타내는 통계학적 지표로서 환자-대조군사이의 발병 건수를 견주어 계산한 값을 말한다. 그 값이 1이면 특정 요인(살균제)이 관련 질병(폐 손상)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고, 그 값이 1보다 크면 그 요인이 해당 질병을 일으킬 위험을 높인다는 것을, 만일 그 값이 1보다 작으면 그 요인이 관련 질병의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교차비가 47.3이라는 것은 폐 손상을 입은 환자 집단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비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47.3배 높았다는 것, 말하자면, 가습기살균제가 폐 손상을 일으키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은 그것이 제품으로 팔린 지 17년 뒤인 2011831일 정부의 역학조사 발표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사회에 알려졌다. 뒤이어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해서 노출재현시험과 세포독성시험 그리고 흡입독성 동물실험 등을 실시했고, 그 결과에 기초해 폐 섬유화가 확인된 6개 제품을 강제회수하고 다른 살균제 제품들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정부의 발표와 그에 따른 살균제 제품의 리콜 조치 뒤인 2012년부터는 2006년부터 매년 봄철에 나타나곤 했던 살균제 호흡곤란환자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만일 정부나 기업이 이러한 정보를 2011년보다 앞서 알아냈더라면 피해자는 그만큼 줄었을 것이고, 나아가 그들이 가습기살균제로 쓰였던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을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팔기에 앞서 철저히 검증했더라면, 이 사건은 아예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래의 표는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주요 화학물질들, 독성값, 본래 용도, 판매 회사, 판매량 등을 정리한 것이다.

<1>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대표 화학물질 관련 주요 내역

물질의 이름(약어, 영문 한글)

PHMG

(polyhexamethylene guanidine phosphate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 포스페이트)

PGH

(oligo(2-(2-ethoxy)ethoxyethyl guanidinium

염화에톡시에틸 구아니딘)

CMIT/MIT

(chloromethylisothiazolinone/methylisothiazolinone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

메틸이소티아졸리논)

CAS No.

89697-78-9

374572-91-5

26172-55-4/2682-20-4

독성값

2,500

10,500

9.41

성분포함

원료물질

SKYBIO1125

AKACID

SKYBIO FG

유해성 심사

(신청시용도)

카페트·플라스틱 향균제수처리제, 섬유유연제

섬유제품·음식물 포장재, 향균제

목재·화장품 향균제, 페인트 방부제

가습기

살균제

제품명

옥시싹싹 뉴 가습기당번,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홈케어 가습기클린업, 세퓬 가습기살균제 등

세퓨 가습기살균제, 아토오가닉 가습기살균제 등

SK 케미칼/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 GS마트 함박웃음 가습기세정제, 다이소 산도깨비 자습기피니셔, 코스트코 가습기클린업, 헨켈 홈키파 가습기 한번에 싹 등

제품 개수와 비율(전체: 998만 개)

459만 개(46%)

19천 개(02.%)

259만 개(26%)

이 표에서 카스 번호(CAS No.)’는 어떤 화학물질의 구체적인 정보를 알고 싶을 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번호만 알고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에서 필요한 물질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위 표에서 살균제에 쓰인 대표 물질들은 그 독성 값이 모두 1을 넘겼을 뿐 아니라 1만 배를 넘긴 것까지 있다. 여기서 값 ‘1’위험을 나타낸다. 살균제 기업들은 해당 물질들을 그 엄청난 독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리고 그들이 정부에 신청했던 용도와도 전혀 다르게 살균제를 만드는 데 사용했고, 1천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그 제품을 사 쓰도록 거짓말 광고를 이어갔다.

우리사회는 비록 사후약방문격이긴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비로소 화학물질에 대한 검증을 확대하면서 그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사건에서 가장 뼈아팠던 점은 만일 한국 정부가 적어도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된 200271일부터라도 기업이 결함 있는 제품을 만들거나 팔지 못하도록 엄격히 관리하고 규제하기만 했더라면, 그 피해 규모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19609월 미국 FDA 심사관 프랜시스 올덤 켈시 박사는 리처드슨-메렐(Richardson-Merrell)사가 제출한 탈리도마이드(콘테르간, Contergan)의 미국 내 약품 판매 신청을 약품의 안전성 자료 미흡을 이유로 허가하지 않은 덕분에 그 약품에 의한 미국 내 기형 유발 문제를 차단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정부가 제품의 안전성 검증 절차를 엄격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제품에 의한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나는 이 사건을 본질적으로는 살균제 기업의 탐욕에 의한 악행(惡行)으로 본다. 우리는 흔히 악행에는 반드시 그것을 저지른 악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집어 말해, 만일 피해가 있을지라도 그 피해를 불러일으킨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그 피해를 악행에 의한 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것이 제품을 매개로 벌어지는 바람에 그것이 마치 악행을 저지른 사람(“저지르미로 줄임)없이또는 저지르미가 눈에 띄지 않은 채발생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이 이 사건을 악행으로 보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 요소였다.

 

2) 악인(惡人)의 눈에 띄지 않음

 

이 사건은 토지에 나오는 호열자(虎列刺, 콜레라) 사건과 닮은 점이 있다. 질병에 의한 죽음은 그것이 누군가의 몹쓸 짓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닌 한 악()이 아니라 불행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려 죽은 일에는 죽이는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없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그 몹쓸 병을 피할 방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었다면, 모른 체함은 악행인가,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사고인가? 조준구는 윤 씨 부인이 콜레라에 걸려 죽으면 자신이 최 참판 댁 재산을 모두 걸터먹을 수 있을 거라는 요량으로 모두와 담을 쌓은 채 콜레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모른 체했다.

토지속 등장인물들은 독자들과 달리 조준구의 모른 체함의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지름이나 당함이 드러나지 않은사건은 불행한 사고일 수는 있지만 악(몹쓸 일)으로 여겨질 수는 없다. 악에는 반드시 저지름-당함-얼개가 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사리 사람들은 조준구가 저지른 모른 체함의 몹쓸 짓을 몰랐기에 그를 지탄(指彈)할 수 없었다. 악은 그것에 의한 피해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을 저지른 사람이 밝혀질 때에만 이 된다. 조준구는 그의 모른 체하기를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사람들이 죽도록 일부러 내버려 둔 몹쓸 놈(악인)이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는 그 또한 전염병의 두려움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끊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 기업들은 조준구 노릇을 한 집단과 같다. 그들은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팔 때부터 <1>에 보이는 바처럼 그것의 독성과 유해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제품을 사 쓴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을 은폐한 채 인체 무해(無害)’라는 거짓 광고로 소비자들을 안심시켰다. 그들은 또한 정부가 가습기살균제가 폐 손상의 직접 원인이라는 인과관계를 추정(推定)하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도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정조사에서는 살균제에 쓰인 화학물질들의 위험성을 몰랐다고 발뺌했으며, 나아가 검찰조사가 진행되자 청부과학자들을 동원해 안전성 실험을 조작하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는 등의 불법까지 저질렀다.

한국사회에서 이 사건은 오랜 동안 악행으로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 저지르미가 에 띄지 않는 바람에 하나의 사건이 되지도 못했고, 살균제 기업들의 조직적 은폐와 조작 그리고 발뺌 등 때문에 그것은 거대한 참사로 자라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저 악행의 숨겨져 있던저지르미가 다름 아닌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 기업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살균제 기업들은 살균제 제품을 만들어 파는 행위를 통해 악행을 저질러 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제품들과 동일시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악행의 저지르미는 아래의 제품 명단(名單)과 같다.

 

<가습기살균제 제품 명단>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4dc000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472pixel, 세로 4592pixel

우리가 가습기 살균제 제품들을 통해 저질러진 악행의 저지르미를 그 제품을 만들어 판 기업들과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들이 그 제품들을 직접 만들었고 시장을 통해 팔았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의 독성(毒性)’, 그것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실제적으로, 그리고 그들의 동기나 의지나 바람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즉 살균제의 독성은 객관적성분으로서 그것이 사람 몸에 닿거나 몸속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에게 여러 가지 해()나 손상(損傷)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은 말하자면 확률 인과(確率因果)’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확률 인과는 일기예보와 비슷하다. 태풍이 발생하면 그것은 반드시큰 바람과 비를 동반하고, 대부분은 큰 피해를 낳지만, 그것이 어떤 지역에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힐지는 우리가 미리알기가 어렵다. 그것은 태풍의 진로에 마치 운()이나 우연(偶然)과 같은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살균제의 독성도 그것이 사람 몸에 닿거나 폐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치명적인 질병을 유발(誘發)하지만 우리 가운데 누가 그 피해를 입을지는 확정(確定)’될 수 없다.

한국사회는 가습기살균제가 그 사용자들을 확률인과에 따른 거대한 피해 속으로 몰아갔음에도 정작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던 눈 먼 도시와도 같았다. 심지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당한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피해가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였고,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몹쓸 질병(원인 미상의 폐 손상)’에 걸린 것이 자신들이 운이 나빴던 탓이라고 생각하거나 순전히 우연 때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 사건의 악행은 그 피해가 운과 우연이 개입된 확률로써 발생하는 바람에 그것이 악행일 수 있다는 의심조차 너무나 뒤늦게 일어났고, 그 피해의 원인을 발견하는 데도 또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게다가 이 악행의 저지르미들은 정부의 진상조사 뒤에도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否認)하는 전략을 구사했고, 그 때문에 피해자들은 처절한 집단행동을 벌여 국정 조사와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고, 마침내 가까스로 저지르미의 고백(告白)’을 받아내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었다. 그 동안 피해자의 범위와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 사건의 악의 ()’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을 뜻한다.

 

3) 악행(惡行)의 눈에 띄지 않음

 

가습기살균제 제품(“살균 제품으로 줄임)은 그것이 나날이 쓰이는 생활용품으로서 도구의 성격을 갖는다. 하이데거의 도구 분석에 따를 때, 도구는 그것의 쓰임새 또는 사용사태가 그것이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앞서 정해져 있다. 사용자는 도구의 쓸모를 먼저 배워 그것이 에 익도록 만든 뒤에야 비로소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된다. 쓸모는 도구가 이바지해야 할 그것(기능, 용도)’을 말하고, 쓸데는 사람이 도구를 가져다 쓰고자 하는 목적을 말한다. 쓸모는 도구 자체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지만 쓸데는 사람이 도구에 가져다 붙여 넣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손에 익은도구를 어떤 일을 하는 데 쓸 때 그 도구는 손안의 것이 된다. 도구는 그것이 사람의 쓰는 목적에 잘 들어맞아 아무 걸림이 없을 때 마치 없는 것과 같이 된다. 이는 사용자가 마치 도구 자체를 잊은 채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도구는 그것이 제대로 쓰이고 있을 때 그것을 쓰는 사람의 에는 잘 띄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눈에 띄지 않음을 다른 말로 손안에 있음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나의 도구가 눈에 띄지 않은 채 손안에 있을 때, 그것의 사용자는 마치 자신이 도구와 한 몸이 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오로지 도구의 사용 목적에만 전심(專心)할 수 있다.

도구가 눈에 띄는 때는 그것이 고장이 났을 때이다. 망치는 그것이 부러지거나 너무 무거워 망치질이 힘들어졌을 때 고장이 난 셈이고, 이때 사용자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바를 잠시 멈춘 채 그 망치의 문제점을 고치려 할 것이다. 부러졌거나 너무 무거워 망치질이 힘든 망치는 손안에 있음의 성격을 잃게 되고, 바로 그 점에서 손에 익은 대로 쓰이지 못한 채 눈앞에 놓이게 된다. 눈에 띈 망치는 사용자가 자루를 새것으로 바꿔 끼우거나 좀 더 가벼운 망치로 바꿈으로써 다시금 손안에 놓일 수 있다. 하이데거는 도구의 눈에 띔, 손에 맞지 않음, 그리고 필요한 도구의 손안에 없음 등을 아울러 도구가 그것의 손안에 있음을 잃어버리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가습기에 생기는 물때나 곰팡이 그리고 그 물에 서식하는 유해 세균을 없애기 위한 도구이다. 이 제품의 쓸모는 나쁜균을 없애는 것이고, 그 쓸데는 가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살균제 사용자는 먼저 이러한 쓸모쓸데를 광고나 기사, 또는 이웃사람들로부터 보거나 듣거나 경험함으로써 배웠고, 그 제품을 주로 대형 마트에서 사 와 가습기 물 속에 올바로 넣어 썼을 것이다. 세균 없애기는 살균제 제품(도구)가장 중요한쓸모였고, 소비자들은 바로 그 쓸모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 제품을 시장에서 돈으로을 샀던 것이다. 사람들이 살균 제품의 쓸모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은 가습기에 물때나 물거품 등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맨눈으로 들여다보는 것뿐이었지만은 그들은 그 제품을 쓸 때마다 자신들이 유해 세균이 사라진 촉촉하고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신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군가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 물보라를 내뿜는 방식으로 쓴다는 것은 그가 스스로살균제 나노 알갱이를 아주 조금씩 들이마시는 것과 같았다. 이러한 사용 방법은 실제로는 일종의 무지에 의한 자해(自害)’와 같은 것이었지만, 살균제 피해자들은 누군가 그들을 직접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거나 주먹으로 때리는 등의 눈에 띄는폭행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살균 제품의 위험성을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살균 제품의 피해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를 챌 수 없었다.

소비자들의 알지 못함(무지, 無知)’은 조준구의 모른 체함과는 그 결이 다른 모름으로서 속아 넘어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살균 제품을 자율적으로 샀을 때 그들이 산 것은 살균제였지 살인제(殺人劑)’는 아니었다. 가습기살균제는 그것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 때 비로소 고장이 났던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몹쓸 도구였던 것이었다. 이 몹쓸 도구는 사람이 그것을 쓰기만 하면 저절로위험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는 거짓 도구였다. 가습기살균제가 몹쓸 거짓 도구였던 까닭은 그것이 살균 효과라는 착한 쓸모뿐 아니라 사람에게 폐 손상과 천식을 불러일으키는 몹쓸 쓸모까지 한데 아울러 갖추고 있었음에도 그 위험성이 인체 무해라는 거짓말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그 몹쓸 제품을 쓸 때마다 살균제 성분을 자신의 몸 안에 축적(蓄積)해 나갔던 셈이다.

도구는 사람이 그것의 쓸모와 쓸데를 둘러보는 가운데 그가 그 도구로써 이루고자 하는 일에 빠져들어 있을 때에는 결코 에 띄지 않는다. 이렇게 둘러보는 눈은 오직 그 목적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결국 도구 자체’, 나아가 그것의 위험성은 시야(視野)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은 그것이 가습기를 청소하는 데 쓰이는 편리한 제품이라는 도구로 위장해 있었기 때문에 아주 오랜 동안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떤 화학물질이 생활용품으로 만들어져 도구처럼 나날이 쓰이기 시작하면 우리사회는 그 도구를 위험한 것이 아닌 안전한 것으로 보려 한다. 이것이 안전 불감증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바로 도구의 익숙함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하나의 도구의 위험성은 누군가 그것을 둘러봄의 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 다른 눈은 기업의 제조 및 유통 과정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정부의 눈이거나 그러한 정부의 활동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눈과 같은 것이다. 정부는 시장에 유통되는 제품에 쓰이는 화학물질의 독성과 유해성을 제조물의 안전에 대한 검사와 관리를 전담하기 위한 법률에 따라 관리할 의무가 있는데, 이러한 의무를 지닌 기관과 전문가들이 바로 그 다른 눈의 임자들이다. 이 눈은 바라봄의 눈으로서 전문적 검증과 과학적 추정을 통해 모든 제품의 안전성을 속속들이 살펴야 한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疫學調査)와 같은 바라봄의 눈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밝혀낸 뒤에야 비로소 그 제품의 몹쓸 짓을 알게 됐고, 그 제품을 도구가 아닌 유독성 화학물질의 한 종류로 보기 시작했다. 바라봄의 눈은 하나의 도구를 그것의 쓰임새(쓸모와 쓸데의 통합성)로부터 도구 자체로 파고들어가 낱낱이 살펴보게 해 준다. 바라보는 눈은 낱낱이 살펴보는 눈으로서 가습기살균제에 쓰인 물질들의 독성에 대한 앞선 정보들을 찾아볼 뿐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각종 정밀 실험들을 고안한다.

바라봄의 눈을 얻기 위해서는 큰돈과 긴 시간 그리고 많은 고급 인력들이 필요하다. 살균제 기업들은 그 비용을 아끼거나 자신들의 제품 개발에 반하는 정보가 드러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저 눈을 잠재우거나 일그러뜨렸고, 정부는 살균제 제품에 쓰인 화학물질의 안전성 검사 결과를 낱낱이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 물질의 사용 허가를 내 주고 말았다. 정부가 안전 관리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는 사실은 기업들에게 사회적 감시와 견제가 느슨해졌다는 신호를 보낸 것과 같다. 그로써 스스로 검증 능력이 없었던 소비자들은 치명적인 위험 물질로 만들어진 살균제 제품을 마치 안전한 도구인 양 썼던 것이다.

살균제 기업들이 제품 생산을 위해 시험성적서까지 조작한 까닭은 돈벌이 탐욕 때문이었다. 탐욕은 악행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로서 자신이 갖고자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남이 입게 될 피해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악심(惡心)’이다. 이 악심에 가득 찬 사람들은 돈만 벌면 그만’, 또는 돈 버는 게 최고라는 값매김틀로써 삶을 살아간다. 살균제 기업들은 불행 돈벌이도 마다하지 않는 탐욕의 가치관에 따라 모른 체하기’, ‘발뺌하기’, ‘거짓말하기’, ‘조작하기등의 온갖 불법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무서운 부라퀴 집단이다.

심지어 살균제 기업들은 피해 사실이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것을 막으려 청부 과학자들을 동원하여 독성실험을 조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들이 소송의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당장의 합의금(사망자의 경우 1~2)이 절박했던 상황을 악용해 소송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변호사뿐 아니라 심지어 재판부로부터도 합의 후 소송 취하라는 옥시 요구에 응하도록 압력을 받기까지 했다. 그로써 살균제 기업들의 악행의 증거이자 증인들이었던 피해 사실과 피해자들의 흔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살균제 기업들의 발뺌 가운데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그들이 직접 사용했던 제품이나 제품 영수증, 또는 증인이나 폐 사진 등을 통해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운 난제(難題) 앞에 부닥쳤고, 그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자 되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의 종류와 사용했을 때의 농도, 노출의 집중도와 기간 그리고 개인의 민감도 등 때문에 피해자로서의 생물학적 시민권(biological citizenship)을 얻기가 매우 어려웠고, 그 시민권을 획득한 뒤에도 정부의 피해 산정 기준에 따라 재분류되는 험로(險路)를 걸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시민단체에 접수된 피해 신고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고, 그 피해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사람들은 증명의 어려움으로 신고조차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사회적-법적 인정 또한 매우 느리게 이뤄짐으로써 이 사건의 눈에 띄지 않음은 더 길어졌는데, 우리사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눈에 띄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고통에 눈길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의 에 정부는 군림하려는 듯 보였고, 문제 해결 능력도, 아니 문제 해결 의지조차 없는 것 같았다. 피해자 대표 강찬호 씨는 이러한 상황을 거대한 벽을 느끼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답답합니다.” 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대기업과 정부 앞에서 거대한 벽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든 변화될 수 없다는 거대한 무기력을 느꼈다.

 

4) 눈에 띄지 않은 까닭들

 

() 위험 사회의 시대

 

도대체 이토록 거대한 악행이 어떻게 17년 동안이나 눈에 띄지 않은 채 지속될 수 있었을까? 앞서 우리는 그 이유로 저지르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점과 살균제가 도구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두 가지를 제시했지만, 그럼에도 우리사회 전체가 도대체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다만 이러한 의문에 앞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벌어진 사건으로부터 그것의 원인을 찾는 일과 그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 일로부터 비롯될 결과를 추정하는 일 가운데 뒷일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놓을 필요가 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이 위험은 체계적이고 종종 되돌릴 수 없는 해를 끼치지만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 인과적 해석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에 대한 (과학적 또는 반(anti-) 지식의 견지에서만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은 화학에 관한 체계적 지식을 갖춘, 그것도 관련 물질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본 적이 있는 적은 수의 전문가 집단만이 미리알 수 있었을 뿐이지만, 그들도 그 물질의 쓰임이 가져올 인과적 위험에 대해서는 그들이 실험에 직접 참여하기 전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가습기살균제가 제거하고자 했던 세균과 물때 그리고 곰팡이 등이 위험하다고 믿었지만 정작 가습기살균제에 들어 있던 화학물질이 더 치명적(致命的)일 수 있다는 점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제품은 삶의 질을 높여 줄 상품으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마치 전쟁에 쓰이는 소리 없는 무기(武器)처럼 작동했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그 제품을 쓰는 모든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위협했다. 이 사건은 마치 방안의 세월호 사건과 같았다. “새로운 위험은 더 이상 그 발생지, 즉 산업시설에 묶이지 않는다. 그 본성상 이 위험은 이 행성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한다.” 이 사건은 전쟁과 복지의 경계를 넘어, 바다와 육지를 가로질러 우리 생활의 모든 곳에서 사람 목숨을 노렸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들이 평균적으로는안전하다고 믿는다. 비록 이 믿음이 전혀 그릇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평균성이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살균제 제품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결코 안전에 대한 확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환경보건피해는 오염행위가 발생한 때부터 그 피해가 나타날 때까지 일반적으로 주기나 경과가 길고 오래며, 증거 또한 소멸되어 사라지기 쉬우며, 아울러 인과관계의 복잡성도 매우 커 전문자들조차도 행위와 결과 간의 인과 증명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건강주의(健康主義) 사회의 위험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사건(totalizing event)이었다. ‘건강주의 사회는 건강주의(Healthism), 풀어 말해, ‘질병이 없는 건강함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건강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나 집착으로까지 이어지는 사회를 가리킨다. 건강주의 사회에서 건강을 해치는 요소들을 방치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한 위험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만일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여행 가방 등 수하물에 평균 8000만 마리 이상의 박테리아가 붙어 있다.”라는 보도가 나오면, 사람들은 즉시 세균이나 오염물질에 대한 공포를 느껴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뭔가 대비책을 강구하려 한다. 사스 열풍이 불 때는 전 국민이 손 씻기와 손 소독에 몰입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현대인의 집안은 건강-살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깨끗해야 한다. 집안의 깨끗함은 청소기, 세탁기, 바퀴벌레 약 등을 직접 활용하거나 특정 업체의 도움을 받거나 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사람들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시장에 나오자마자 곧바로 그들이 이미 쓰고 있던 가습기 사용으로 말미암아 발생했을지도 모를 수많은 건강 문제들을 발견했고, 그 제품은 이 골치 아픈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해 줄 만능열쇠로 보였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면서부터 자신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착시 효과까지 경험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살이를 위해 소비와 생활양식 전반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가습기와 가습기살균제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세균+곰팡이 등)’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대비(對備)를 했던 것이다. 갓난아기나 호흡기 질환자가 있는 집안에 가습기나 가습기살균제가 없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시대 문명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위험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습기살균제를 가습기 사용의 필수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 가습기살균제 사용의 생활화와 광고의 위력(威力)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가습기 보유율은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출시되었던 199424%, 201133%, 201310%였다. 2010년 정부의 주거 형태 통계에 따르면, 2인 이상 다인 가구의 경우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전체의 50.1%를 차지했고, 단독주택은 26.3%를 차지했다. 가습기는 아파트 주거 형태가 일반화되면서 집안의 습도 조절을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근대화 이전에 한국의 집은 대개 흡습 및 투습 성분이 뛰어난 황토와 한지로 지어져 별도의 습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콘크리트로 건축된 아파트는 그 자체로도 건조했을 뿐 아니라 겨울철 온돌식 난방 시스템이 더해지며 건조함이 더 심해졌다. 가습기가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1976년 금성사에서 전자가습기를 판매하면서부터였다.

가습기의 등장은 아파트 문화의 보편화를 뜻하고, 이는 생활의 과학화(엘리베이터, 냉난방의 현대화)를 기초로 하며,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은 생활의 불편함이나 문제점들을 과학적 해결책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려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아파트의 건조한 공기는 임산부, 영유아, 노인의 호흡기 건강에 좋지 않다고 알려졌다. 한 산모는 가습기를 육아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육아서에 습도를 60%인가 70%로 맞춰야 한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습기를 (방 안이) 뿌옇게 될 정도로 틀어놨거든요.” 사람들은 습도와 건강의 관계에 관한 전문가의 조언을 자신의 블로그에 퍼 나르며 건강 상식을 다져 나간다.

가습기 사용이 일반화되던 1980가습기 유해론’, 짧게 말해, 가습기에 물때가 끼고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음에도 1990년대부터 스모그, 황사,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등 신종 전염병 문제까지 불거지는 바람에 가습기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가습기 제조사들은 세균 문제를 디자인적으로 해결할 살균 가습기와 화학적으로 해결하려는 가습기 살균제가 만들었는데, 유공은 가습기살균제를 살균 가습기의 1/10 이하의 가격으로 출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가습기살균제의 일반화는 가습기 자체가 생활의 과학화에 기초해 그 수요가 급증한 탓도 컸지만, 무엇보다 언론 보도와 광고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신문의 기사는 습도조절을 위해 가습기 사용을 권고하면서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해서는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하이데거가 사람들의 일상성을 지배하는 삶의 방식으로 제시한 빠져 들어 있음(Verfallen)’의 세 가지 요소인 호기심, 잡담 그리고 애매성 등을 통해 잘 분석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이 안전하다는 믿음 속에 빠져 있는데, 그 일상성은 다음 세 가지 뼈대로 짜인다. 첫째,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나는 모든 것을 사람들-(잡담, das Gerede)’에 따라 이해한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남들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뒤따라 말하거나 그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려 말한다. 둘째, 사람들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말해 주는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好奇心, die Neugier)을 갖고 경험하려 한다. 셋째,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무엇이 진정한 이해이고 무엇이 그렇지 못한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애매하게(曖昧性, die Zweideutigkeit)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가습기살균제는 놀라운 쓰임새를 갖춘 새로운도구였는데, 그 놀라움은 단순히 청소(淸掃)가 편해졌다는 데만 있는 게 아니라 공포의 세균을 순식간에 박멸(撲滅)해 준다는 매력(魅力)에 있었다. 이 제품에 홀린 소비자들은 그 안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위력은 한국사회에서 세균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더 강력해졌다. 사람들은 더러운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세균이나 곰팡이 등이 자신의 몸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혐오(嫌惡)하다 못해 공포(恐怖)스러워 한다.

현대사회는 케모포비아(chemophobia, 화학용품 공포증)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사람들이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로 추정되는 44천종 가운데 그 유해성이나 독성이 밝혀진 것은 15퍼센트에 그치고 있어, 우리는 이미 모든 곳에서 화학물질의 위험이 현실화된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화학용품의 안전성에 대해 체념한 상태에서 자신에게는 화학물질로 말미암은 불행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200010월 출시된 가습기당번이라는 제품의 붙임표시(라벨)에는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2004년에는 살균 99.9%-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사용상의 주의 사항에는 어린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십시오. 용도 이외에는 사용하지 마십시오. 마시거나 피부에 닿거나 눈에 들어간 경우에는 흐르는 물로 잘 씻어낸 후 의사와 상의하십시오. 피부가 민감하신 경우에는 사용 시 고무장갑을 사용하십시오.”와 같이 인체에 안전하다는 말과는 걸맞지 않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사람들-세계에 빠져든 사람들은 스스로의 이해와 해석을 통해 세계를 검증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것을 보고 자신들과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자신들과 동일한 것을 의미할 때 안정감을 갖는다. 그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결정할 줄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조차 하다. 가습기살균제의 보편화는 곧 일상화를 뜻하는데, 많은 가정과 사무실에서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런 사회문화로 정착되자 사람들의 은 저 위에 쓰인 문구들 사이의 모순점조차 읽어낼 수 없는 까막눈으로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 인과관계의 사각지대(死角地帶)

 

가습기살균제 소비자들은 그 제품을 써본 뒤 자신의 몸이 어딘가 이상해졌다고 느꼈을지라도 몸의 나쁜 증상과 살균제 사이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알아낼 수도 없었고, 그것을 알려주는 전문가 집단도 없었다. 한국사회에서 가습기살균제는 소비자들에게는 안전의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무기력하게 깨지는 한 장면이 옥시 제품의 사용 후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용자: “어젯밤에 가습기당번을 넣고 가습기를 돌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좋지 못하고 계속 구토 증세가 나는데. 인체에 무해하다고 하는데 왜 이런 걸까요?”

옥시측: “물에 한 뚜껑 정도 희석하여 사용하시는 제품이며, 액성 자체 또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아님과 동시에 실수로 음용하셔도 특별히 인체에 해를 끼치는 성분이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가습기 내부 청소 상태 내지는 주무셨던 외부 환경으로 인한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20071126일 옥시 홈페이지 고객 상담글과 회사의 답글)

 

소비자는 구토 증세를 호소하면서 자신이 지난밤에 썼던 가습기살균제를 살짝의심하긴 했지만, 그것의 성분이 무엇이고, 그 성분의 안전성이 어떤 방식으로 입증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다. 그것은 소비자 일반이 이미가습기살균제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위 소비자가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증명(證明) 내용을 물었다면, 답변자는 아마도자신도 알지 못할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균제 성분과 인체 유해성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과학적 증명도 제시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균제와 인체 유해성 사이의 인과관계는 소비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답변자도 결코 알 수 없었다. 만일 우리가 저 사용자가 알고 싶었던 내용, 즉 그의 구토 증세가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밝히고 싶다면, 우리는 정부가 실시했던 노출경로에 따른 독성 실험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입증 실험이 없는 상태에서 답변자는 살균제 액성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마셔도 괜찮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구토 증세의 원인을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는 가습기 청소 불량이나 외부 요인 등에로 돌리려 하고 있다.

소비자는 자신의 구토 증세와 가습기살균제 사용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마치 사각지대에 갇힌 것과 같다. 그 인과관계는 소비자가 아무리 보려 해도 결코 볼 수 없는 차원에 놓여 있다. 사용자는 자신의 증세가 살균제 사용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결코 스스로 알 길이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살균제 사용을 포기하는 일뿐이었지만, 그는 사람들 세계에 빠져든 사람으로서 그가 이미 가습기살균제가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던 까닭에 그 제품의 사용을 멈출 수도 없었다. 다음의 사용 후기를 보자.

 

사용자: “얼마 전부터 이거를 사서 물에 넣고 나서 계속 기침을 하고 호흡기 쪽이 상당히 이상해진 거 같습니다. 왜 이런가요.”

옥시측: “가습기당번 제품의 구성 성분은 95% 이상이 물이며 그 외 인체에 전혀 무해한 유기염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로 인한 호흡기 질환에 관한 부작용 보고가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전문의와의 상담을 권유드리는 바입니다.”(2010128일 옥시 홈페이지 고객 상담글과 회사의 답글)

 

소비자는 살균제를 쓴 뒤부터 기침이 일면서 호흡기 전체가 이상해졌다는 이상 증세(異常症勢)’를 캐묻고 있다. 이 소비자는 자신의 호흡기 이상이 살균제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에 대한 답글은 권위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크게 세 단계로 쓰였다. 첫째, 자신들의 제품이 인체에 무해한 유기염 성분으로 되었다는 점, 둘째, 이 제품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에 관한 부작용 보고가 없었다는 점, 셋째, 호흡기 문제가 지속되면 병원에 가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는 점. 답글은 소비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쉽게 설명하려 하기보다 유기염 성분”, “부작용 보고”, “전문의등의 권위적낱말들로써 일반 소비자를 주눅 들게 만들고 있다. 소비자는 여기서 몰이해(沒理解)라는 또 다른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화학물질의 사용과 그로 인한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는 일은 한 개인의 노력으로써 가능한 게 아니라 우리사회가 둘러봄의 눈길을 거두고 바라봄의 눈길을 펼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눈길 바꾸기는 법이나 행정 그리고 독성학 등의 여러 분야에 걸친 복잡한 지식 체계로 짜인 과학적 합리성을 갖춘 사람에게나 가능할 뿐 일반인에게는 거의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아산병원 소아과 홍수종 교수 등은 2006년 집단 발생했던 급성간질성폐렴 어린이 환자 15례와 전국 현황을 20083월과 20094월에 각각 대한소아과학회지에 논문으로 보고하긴 했지만 끝내 그 원인이 가습기살균제였다는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여기서 전문가들의 실패는 곧바로 일반 소비자들의 피해가 지속된다는 것을 뜻했다.

심지어 20118월 질병관리본부가 역학조사를 통해 그 인과관계를 밝혀냈음에도 옥시레킷벤키저코리아는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조명행 교수와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유일재 교수 등에게 그 결과를 반박하기 위한 자료를 마련해 달라고 청부하기까지 했다. 2012년 옥시가 이 실험 결과로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피해자들의 폐 손상이 가습기 살균제가 아닌 황사나 꽃가루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그 결과 검찰은 과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가해자 기소를 중지했고, 민사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유공(SK케미칼의 전신)이 처음 가습기 메이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해서 한국에서 2011년까지 17년 동안 20여 종이 출시되어 연간 60만 개가 판매되었으며, 800만 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일반 소비자들은 그들이 아무리 큰 피해를 입었을지라도 그 피해의 원인이 살균제 사용에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말하자면, 인과관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살인 가스 지대로 내몰렸던 셈이다.

 

3. 끝맺기

 

이 글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이라는 하나의 도구를 통해 저질러지는 악행의 특징을 눈에 띄지 않음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했다. ‘눈에 안 띔은 사람들이 살균제(도구) 피해를 당하면서도 그것이 안전하다고 믿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용자가 이 도구의 안전을 믿은 까닭은 그가 기업이 설마 독성이 있거나 유해한 물질로 도구를 만들었거나, 그러한 유해 상품을 소비자에게 팔았을 리가 없다고 막연히 믿었기 때문이고, 또 정부가 기업의 제조 및 판매 활동을 잘 검증하고 있어서 위험한 제품은 만들어지거나 팔릴 리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사회가 울리히 벡이 진단한 그대로의 위험사회로 들어선 단계에서 건강주의 열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습기살균제의 소비자들은 가습기 청소의 편리함에 빠져 들어 그 제품의 성분이나 그 성분의 화학물질이 갖고 있던 독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도 못했고, 설령 그들이 그 성분의 위험성을 알고 싶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물론 사용자는 그 도구의 위험성이나 그 재료에 포함된 원료의 독성 등에 대해서는 그것을 처음 사용할 때 이미충분히 검증한 셈이다. 다만 그 검증의 엄밀성은 대개 상품에 적혀 있는 설명서 내용이거나 다른 사용자나 판매자에게서 들은 정보가 고작이었다. 사람들은 호흡기 건강을 위해 가습기와 살균제를 쓸 필요가 있다고 믿으면서 순진하게도 그것의 사용에 관한 믿을 만한 정보를 중립적이고 양심적인 기관이 아닌 돈벌이 탐욕에 이끌리던 제조사 자체로부터 얻고 있었던 것이다.

소비자가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속임을 당하는 순간, 그들에게 그 위험성을 알려 준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다만 환경시민단체가 그 위험을 알리고 그들의 피해를 대변해 주긴 했지만 그것은 악행이 이미 저질러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이 사건은 흔히 기업 범죄에 의한 소비자 피해 사건정도로 규정되지만, 그것은 이 사건의 겉모습만을 말해 주는 것일 뿐 그 속모습은 돈벌이 탐욕에 눈이 먼 기업들이 정부의 관리 소홀(管理疏忽)과 소비자의 무지(無知)를 이용하려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피해를 일으킨 사회적 악행인 것이다.

나는 이 악행이 확률인과의 특성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사회적으로는 참사(慘事)로 간주됐다는 점도 밝혔다. 이런 악행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른바시간과 공간 상 멀리 떨어져 있고, 또 당한 사람이나 당할 사람이 누구인지도 정확히알 길이 없다. 악행의 저지르미(기업)가 실제로 행한 것은 상품을 기획하거나 제품을 만드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는 일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제품을 매개로 한 악행은 시장을 거쳐 소비자가 그것을 스스로가져다 쓰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그 피해는 확률적으로 발생하기에 이 저지름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는 한, 이 악행은 하나의 악행이 될 수조차 없게 된다.

만일 이 사건이 사고(事故)도 참사도, 나아가 재난도 아닌 악행이라면, 우리는 우리사회가 이러한 악행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제품 사용에 잠재된 사회적 위험들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을 더욱 키워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미 위험 사회로 진입해 있다. 만일 우리가 눈에 띄지 않게난동을 일삼는 부라퀴 집단의 고삐를 꽉 움켜쥐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사회에 안전의 사각지대가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악의 고삐를 그러쥐기 위해 법과 상식(기업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양심을 키워 나가야 한다.

모든 화학물질은 이 될 수도 있고 이 될 수도 있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성격을 갖는다. 제품의 유용성과 유해성을 잘 가려낼 줄 아는 지성이 제대로 발휘될 때 우리사회는 이 사건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눈에 띄지 않는 악행들을 막아나갈 수 있다. 우리는 결함 있는 제품들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도록 그것이 만들어질 때부터 검증하고 감시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의 둘러보는 눈을 넘어선 바라봄의 과학적 눈으로써 모든 제품의 안정성을 밝혀 나가야 한다. 과학이 사물의 인과관계를 철저히 증명하는 노릇을 해야 한다면, 철학은 그 관계가 놓인 우리사회의 현실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 그로써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증명된 지식 체계와 철학적으로 분석된 현실 인식에 기초해 거듭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데이비드 마이클스 지음, 이홍상 옮김, 청부과학-환경·보건 분야의 전문가가 파헤친 자본과 과학의 위험한 뒷거래(Doubt is their product), 이마고, 2009.

박경리, 토지2, 지식산업사, 1982(5).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성염 옮김, 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388-396년 사이에 쓰임), 분도출판사, 1998.

안종주, 빼앗긴 숨, 한울, 2018.

에리히 프롬 지음, 장혜경 옮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Authentisch Leben, 2000), 나무생각, 2016.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을 향하여, 새물결, 1997.

임종한, 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담배보다 나쁜 독성물질 전성시대, 예담Friend, 2013

정현기, 세 명의 한국사람-안중근, 윤동주, 박경리, 채륜, 2018.

존 헤이글 지음, 이세형 옮김, 고통과 악, 생활성서, 2003.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푸시퍼 이펙트, 웅진지식하우스, 2007.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Petryna, Adriana, Life Exposed: Biological Citizens after Chernobyl,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논문>

 

구연상, 서양 철학의 전통적 악 개념과 토지의 악() 개념에 대한 비교 검토, 大同哲學(Vol.63), 大同哲學會, 2013.

김관욱, 가습기 살균제참사와 사회적 대응, 인문과사상(233), 인물과사상사, 2017.

김지원, 가습기살균제그 이후의 삶 : 위험사회에서 부모의 피해자 되기,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18.

김지원, 누가 진짜 피해자인가?, 비교문화연구(Vol.23 No.2),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2017.

류주현, 건강주의 관점에서 살펴본 가습기 살균제 소비 확산의 원인 분석, 한국환경정책학회 학술대회논문집(Vol.2017 No.2), 한국환경정책학회, 2017.

임종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보상 현황 및 인정기준의 확대, 한국독성학회 심포지움 및 학술발표회(Vol.2016 No.10), 환경독성보건학회, 2016.

최예용,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행과 교훈(Q&A), 한국환경보건학회지(43권제1), 한국환경보건학회, 2017.

최예용·임흥규·임신예·백도명,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과 교훈, 한국환경보건학회지(38권제2(2012), 한국환경보건학회, 2012.

Krishnendu Mukherjee, 이영주(번역), 한국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 환경법과 정책(Vol.16),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2016.

 

<보고서>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보도자료(2011-8-31), “가습기 살균제 원인 미상 폐손상 위험요인 추정”, 2011.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사건 백서 사건 인지부터 피해 1차 판정까지, 도서출판 한림원, 2014.

 

 

 

<기사>

 

김선식 기자, 당신들의 숨 누군가에겐 다시 없을 숨, 한겨레21, 2016-09-08 17:07: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6&aid=000003697

문주영 기자, 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 경향신문, 2004-12-01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32&aid=0000096495

안종주(사회안전소통센터장), 가습기 연쇄 살인범, 환경부 탓에 놓칠 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 환경부 이기주의, 프레시안, 2016.05.16. 07:25:52.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6599

안종주(사회안전소통센터장), 옥시와 합의를 권한 판사는 누구인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 옥시와 합의한 피해자의 눈물, 프레시안, 2016.05.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7240

이대희·강양구 기자, 대한민국에 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프레시안, 2016.10.26. 11:20:05,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3169&ref=nav_search

이동수(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화장품은 되는데 치약은 안 된다? 모든 성분 공개해야,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2016. 10. 11, http://ecotopia.hani.co.kr/363805

장영권, [사건일지] 환경부, ‘가습기살균제 사건피해자 54명 추가 인정피해자 총 522명으로 증가, Topstarnews, 2018.05.14. 주소: http://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10881

 

<인터넷 검색>

 

Online Etymology Dictionary, “disaster”

Vogue.com. : http://www.vogue.co.kr/2016/01/25/%EA%B0%80%EC%8A%B5%EA%B8%B0%EC%9D%98-%EB%B6%88%ED%8E%B8%ED%95%9C-%EC%A7%84%EC%8B%A4/?_C_=11

<Abstract>

 

Analysis on How South Korea's Humidifier Disinfectant Case Could Go Unnoticed

Yeon-Sang GU

(Sookmyung Women’s Univ.)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overall process of South Korea's humidifier disinfectant case (hereinafter "the case"), which has been lasted about 17 years while unnoticed and inconspicuous nowhere in Korean society and then to examine how that could have been possible. The case, in this paper, is defined more as an evil deed than as a disaster, since the case indicated some features enough to be considered as an evil deed: Firstly, the case has been committed through the product sold on a daily basis in the market, which made it difficult to identify who is really responsible for the evil deed. And secondly, the victims of the case got irreversible damage by the humidifier disinfectant product, but could not recognize in the meantime whether they were being victimized or not. This was all possible because the case, when committed by and through the daily selling item, became hardly recognizable in itself, regardless of the fact that it is good or bad.

Such a feature is also reasonably well-represented in Martin Heidegger's concept of dailiness (Alltäglichkeit) and fallenness (Verfallen). In addition, the reasons why the case has been overlooked can be explained by the fact that Korean society has entered the phase of the risk society, which is the term coined by Ulrich Beck, the fact that Korean society also has been transformed into the health oriented society, using extensive advertising to encourage people to use humidifier as a daily necessity, and the fact that considering the case's feature, it was difficult to exactly identify the causal relationship of the case, which has remained unnoticed over a decade, like a blind spot of the society.

 

Keywords: Humidifier, Humidifier Disinfectant, Dailiness, Means, Being Unnoticed, the Risk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