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몹쓰리)의 문제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_김홍묵칼럼

사이박사 2016. 1. 6. 10:40
미친 개는 살아남지 못한다
김홍묵2011년 03월 03일 (목) 01:52:57

‘개 팝니다.’ 목에 쇠고랑을 두른 투견으로 묘사된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Muhammad al-Qaddafi). 수렁에 빠진 민초들을 짓밟는, 그리고 쓰레기통 속에서 “나는 악마다”라고 외치거나 머리에 악마의 뿔을 단 카다피. 반정부 시위대의 손에 들린 그의 희화(戱畵)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권력무상을 실감합니다. 

북 아프리카 튀니지를 기점으로 한 사하라의 모래폭풍이 이집트를 덮치고 중동 국가들을 세차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모래바람은 편서풍을 타고 극동의 중국과 북한에까지 밀어닥쳐 권부를 전전긍긍케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리비아만이 도도한 민주화 열망을 거부하는 카다피의 독선과 철권으로 인민을 대량 살상하는 피바다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국(Socialist People's Libya Arab Jamahiriya)은 고래 베르베르 유목민이 살던 곳입니다. 국토 면적이 176만㎢에 이르지만 해안과 내륙 오아시스 주변의 농경지는 1.42%, 목초지가 5.1%, 삼림지가 0.28%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총 면적의 6.8%에 불과합니다. 

기원전부터 지중해 연안부는 페니키아 카르타고 그리스 로마 등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7세기 아랍인의 서진 이후 급속히 이슬람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16~19세기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아 오다 1911년 이탈리아가 투르크를 몰아내고 트리폴리타니아(수도 트리폴리)와 카레나이카(중심도시 벵가지) 지역을 하나의 식민지로 합쳐 리비아라고 불렀습니다. 

리비아 민중은 파시스트 압제 속에서도 거세게 이탈리아에 저항해 오다 2차대전 후 연합군의 식민지 처리 방침에 따라 1951년 리비아연합왕국으로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18년 만인 1969년 이드리스 1세 국왕의 외국 방문을 틈타 육군대위 카다피가 주도한 쿠데타로 왕정은 폐지되고 아랍 리비아 인민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1941년 미수라타에서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난 카다피는 벵가지에서 리비아대학을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를 나왔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그는 이듬해 약 2만 명의 이탈리아인을 추방하고 영국과 미국의 군사기지를 철폐했습니다. 이어 전 석유회사를 국유화하고, 석유가격을 일방적으로 공시하여 산유국들의 시장독점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1973년에는 보도기김관도 모두 국유화했습니다. 

철저한 아랍 민족주의이슬람 사회주의를 표방한 카다피는 절대적 카리스마와 급진ㆍ강경정책으로 서방국들에게는 골칫덩어리 이단아였습니다. 정치목표인 △이스라엘 박멸단일 아랍국가 건설중동지역으로부터 강대국의 영향력 배제전 세계 제국주의와의 대결이 그의 기질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이슬람 공동체에 의거한 독자적 직접민주제인 자마히리야(인민공동체의 뜻)를 지향해 온 그는 줄곧 아랍 맹주의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중동전쟁 때 석유 무기화를 주창하고 나섰는가 하면 1971년 9월 이집트ㆍ시리아와 함께 아랍 공화국연방을 결성하였습니다. 친미 성향의 이집트와는 두 차례(74년, 77년), 온건노선을 취한 요르단(70년)ㆍ모로코(71년)와의 단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카다피의 철권통치를 뒷받침해준 것은 오로지 석유입니다. 왕정독립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던 리비아는 1959년 유전이 발견되면서 주요 산유국으로 발돋움해 부국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수출총액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 및 석유제품ㆍ석유가스에서 나온 오일머니는 카다피의 입지를 뒷받침하는 원천이 된 것입니다. 

검은 황금’ 석유를 바탕으로 리비아의 영웅이자 국부임을 자처해 온 그 카다피가 한 순간에 ‘미친 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을 42년간의 일당ㆍ족벌 독재에 항거하는 민중에게 거침없이 총부리를 들이댄 것입니다. 수류탄ㆍ박격포ㆍ미사일ㆍ전투기까지 동원해 수천 명의 인민을 살상하는 동족상잔을 자행했습니다. 

카다피와 그의 8남 1녀는 모든 이권에 개입해 국부(國富)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소위 ‘카다피 주식회사’로 불리는 그의 족벌은 석유ㆍ가스ㆍ미디어ㆍ유통ㆍ통신과 사회기반 시설을 소유, 1년에 수백억 달러를 챙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외의 투자ㆍ부동산매입ㆍ비밀계좌로 빼돌린 재산은 정확히 파악하기도 힘든 거액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를 엄청난 경제혼란에 빠뜨리는 범죄도 자행하고 있습니다. “석유 관련 시설들을 파괴(사보타주)하라”고 카다피가 명령했다는 시사주간 타임의 보도로 국제유가는 단번에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석유 매장량 세계 8위(443억 배럴), 1일 수출량 세계 11위(177만 배럴)의 위력은 가공할 만큼 큽니다. 

하지만 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반정부 시위대 말고도, 카다피는 측근의 암살 기도, 일부 군부의 반기, 전ㆍ현직 관료들의 이탈 등 안팎의 적을 맞고 있습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그의 퇴진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전가의 보도임을 자랑하던 그의 칼은 이미 날이 넘었습니다. 

여차하면 화학무기 사용도 불사할 것인지, 아니면 히틀러처럼 자살을 택할 것인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지만 카다피의 운명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어린 소년들에게까지 총을 나눠주며 권력 유지에 발악하고 있지만 그 총부리가 언제 자신에게로 돌려질지는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카다피가 남길 교훈은 ‘절대 권력은 절대로 망한다’, 그리고 ‘민주화 열풍’은 ‘이슬람 율법’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