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몹쓰리)의 문제/ 정당방위

‘도둑 뇌사’ 논란… 정당방위와 과잉방어 경계_"공격에 대한 저항"이냐 보복 또는 처벌이냐(201410)

사이박사 2014. 11. 4. 14:51

[기획] ‘도둑 뇌사’ 논란… 정당방위와 과잉방어 경계는

입력 2014-10-30 02:56 수정 2014-10-30 14:51
‘절도범 뇌사사건’을 두고 정당방위의 한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소극적 방어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해 이를 넘어서는 ‘공격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판단해 왔다. ‘상대 피해가 나보다 크면 안 된다’ 등 2011년 제시된 경찰청의 정당방위 인정요건 중 일부는 실제 판결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A씨(55)는 지난해 말다툼 끝에 사실혼 관계인 B씨(52·여)를 밀어 넘어뜨려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차에 타려는 자신을 B씨가 계속 잡아당겼고 이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남성인 A씨의 체격이 월등하고, 굳이 B씨를 밀지 않고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고 봤다. 오히려 A씨의 행위에는 피해자를 공격하기 위한 의사까지 포함된 것으로 판단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이처럼 법원은 폭행·상해 등이 정당방위인지 판단할 때 해당 행위가 급박한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했는지를 엄격하게 따진다. 최근 집에 침입한 절도범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지게 했던 최모씨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절도범은 최씨에게 제압당해 쓰러진 후 도망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가 ‘급박한 위협’에서 벗어난 상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법원은 이후 이뤄진 폭행은 방어를 넘어선 공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29일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할 경우 정당방위를 빙자한 ‘복수’에 가까운 공격까지 용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법원의 엄격한 해석 때문에 경찰청은 2011년 정당방위 수사지침을 냈다. 여기에는 먼저 폭력을 쓴 경우, 상대방 피해가 본인보다 심한 경우, 3주 이상 상해를 입힌 경우는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는 항목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는 실제와는 다르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모(56)씨는 시비 끝에 자신의 사무실 옆 음식점 주인인 박모(51)씨에게 멱살을 잡혔다. 김씨는 멱살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박씨의 팔을 내려쳤고, 그 과정에서 박씨의 오른손 약지 손톱이 빠졌다. 법원은 상해죄로 기소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행위가 공격에 대한 저항에 불과한 이상, 상대방의 상해가 더 심하다는 이유만으로 과잉방위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상대방이 먼저 폭력을 쓰지 않았을 때에도 상황에 따라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한 헬스장 관장 윤모(40)씨는 시비를 걸어오는 문모(35)씨를 쓰러뜨려 제압했다가 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지난해 “문씨가 먼저 시비를 걸었고, 윤씨는 시비가 확대되자 몸을 잡고 넘어져 문씨를 제압한 것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당방위를 판단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가해행위를 하게 된 경위·동기·정도 등을 상황마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어떤 경우에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