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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불안, 김홍묵 칼럼

사이박사 2014. 8. 11. 10:28

불안은 숙명인가

2014.08.05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불안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또한 ‘불안은 삶과의 관계’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덴마크 태생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인 그는 인간 존재의 근원은 불안이며, 인생을 사는 한 불안과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것이라면 생에 대한 고뇌는 숙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대 철학자의 심오하고 난해한 철학적 사고를 범속으로서 이해할 능력은 솔직히 없습니다. 다만 봄부터 여름 내내 온 나라를 불안의 도가니로 몰고 간 ‘세월호 참사’가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끝나는가 하는 불안이 우리의 숙명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의 명언을 되씹어 봅니다.

사건의 진원으로 지목 수배해 온 구원파 교주 유병언의 시신 발견은 검·경은 물론 전 국민을 어처구니없게 만들었습니다. ‘숲속의 추억’(순천의 은신 별장)은 공포의 지옥이 됐고, ‘꿈같은 사랑’(고인의 책 제목)은 매실 밭의 백골로 막을 내렸습니다. 당사자의 허망한 죽음은 업보로 치부하더라도, 산 사람 모두가 닭 쫓던 개꼴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속웃음을 짓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이름 한 번 빌려주었다가 부동산 횡재를 하리라 달떠 있던, 고가 골프채와 검은돈을 받고 이름이 알려질까 전전긍긍하던, 죽을 고생을 하고도 지휘와 수사 부실로 욕만 싸잡아 먹던 이들이 아닐까 합니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원인을 멀리서 찾을 것도 없습니다. 다섯 살짜리 어린이를 마주 앉혀 놓고 서로 때리게 하는 유치원, 군대를 보내도 사고… 학교를 보내도 사고… 공포영화 같은 현실, 시신 쟁탈전을 벌이는 장례업체, 남편과 내연남을 죽여 물통 속에 처넣고 아들마저 버려둔 채 사라진 모성, 노인 수만 명을 울린 가짜 수의(壽衣) 폭리. 최근의 뉴스들입니다. 남녀노유가 다 불안합니다. 살아도 걱정, 죽어도 걱정입니다.

불안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첫째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불안입니다. 전지전능이니 무(無) 공(空) 영겁(永劫)이니 하는 불가해한 개념 앞에 인간은 무력해지고 자학도 합니다. 둘째는 내연적 불안입니다. 양심과 관습, 법과 규범에 반하는 생각이나 행위를 했을 때 나타나는 초조 가책 갈등입니다. 셋째는 외연적 불안입니다. 공포 분위기 조성 또는 범죄 전쟁 질병이나 천재지변으로 겪게 되는 공포와 존재감의 상실입니다.

안에서 벌어지는 것만이 불안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존립마저 말살하려는 위협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오래전부터 협박해 온 북한은 "워싱턴과 남한 괴뢰도당을 핵찜질 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인간 오(誤)작품’ ‘사악한 검은 원숭이’로 비하하는가 하면, 혈맹이라던 중국도 ‘줏대 없는 나라’라고 몰아붙입니다. 미사일·핵과 함께 제 발등을 찍는 막말 공세입니다.

군국주의 팽창주의로 회귀하려는 일본, 역사공정 서남공정 동북공정에 이어 장백산(長白山)에 비행기로 씨앗을 뿌리는 중국의 ‘인삼공정(人蔘工程)’도 우리의 앞날을 불안하게 하는 기도들입니다. 나라를 지탱하던 전자 자동차 조선 산업도 환율 급등과 국제 경쟁에 밀려 앞날이 불투명합니다. 강 건너 불이 아닙니다. 다가올 불안의 기폭제입니다.

불안은 신체적 생리적 현상으로 온갖 전조를 보입니다. 귀가 가렵고, 입이 벌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턱과 손발이 덜덜 떨리고, 오금이 저리다 못해 간이 콩알 만해집니다. 정도가 심하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분노로 이가 갈립니다. 오래되면 멀쩡한데도 살얼음을 밟거나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고, 헛것이 보이며, 새우잠을 자다 악몽에 시달리거나 가위에 눌리기도 합니다.

불안은 불평불만을 자아내고 불화와 불행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숙명일 수밖에 없는 불안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달걀에도 뼈가 있다.’
‘밀가루 장사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사하면 비가 온다.’
운수가 나쁘면 무슨 일을 해도 안 된다는 푸념입니다.

대신 선현들은 불운을 탓하기보다 불안의 요인을 만들지 않는 삶을 강조했습니다.
‘때린 놈은 가로 가고, 맞은 놈은 가운데로 간다.’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한 마리의 쥐, 한 집안의 두 아내, 이런 것은 화합하는 일이 없다.’
‘불안은 질투에 끊임없이 붙어 다니는 동반자다.’
‘불행에 바르는 약은 없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