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몹쓰리)의 문제

공과격(功過格)_선악을 수량적으로 측량한다

사이박사 2014. 4. 29. 11:03

공과격(功過格)

2014.04.28


중국 팔선(八仙)의 한 사람인 여동빈(呂洞賓)이 만들었다는 실천도덕 공과격(功過格)이 명(明ㆍ1368~1644)나라 말엽 책으로 나왔습니다. 사람의 일상적인 행위를 선과 악, 즉 공과 과로 나누고, 그 정도의 차이를 수량화하여 구체적으로 분류한 저술입니다. 금욕주의 생활로 민중도덕의 실천을 권장하는 권선징악적 수양서(修養書)입니다. 온 나라를 비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지난 16일의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문득 책의 내용이 떠오릅니다.

매일 잠들기 전에 그날의 행적을 스스로 채점하여 격도(格圖)에 적어 놓은 다음 월말 소계와 연말 총계를 내는데, 그 결과에 따라 화복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공에서 과를 상쇄한 공덕이 3,000점을 넘어야 신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간의 행ㆍ불행은 그 사람의 생각[意]과 말[語]과 행위[行]의 옳고 그름에 따라 정해진다는 인과응보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선과 악을 분류한 공격과 과격의 항목이 사실적이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덕을 쌓는 공격은 의선(意善) 54, 어선(語善) 31, 행선(行善) 43조로 분류하여 모두 128개 조입니다. 과격은 공격보다 많은 167개 조로 의악(意惡) 53, 어악(語惡) 37, 행악(行惡) 77조입니다. 그 시절에도 선행으로 적덕하는 사람보다 해악을 저지르는 자가 더 많았는가 봅니다. 공격과 과격 모두 평가치를 매겨 100, 50, 30, 10, 5, 3, 1점짜리 항목으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공격에 반대되는 과격 항목을 짚어 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우선 100점짜리 과격으로는 ‘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 ‘한 사람의 후사를 끊는 것’ ‘한 부녀자의 정절을 강탈하는 것’이 있습니다. 온 국민을 비탄에 젖게 한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무려 300여 명의 생령을 팽개치고 맨 먼저 탈출한 대타(代打)선장과 선원들···. 그들은 수만 점의 과격을 쌓았으니 이미 신선 반열에서 한참 멀어진 것 같습니다.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리거나(5점), 무식한 사람 등쳐먹고(3점), 자기 분수를 모르고 탐하고 추구하는(3점) 짓거리는 요즘 법 감정보다 허물(과격)이 적습니다. “해경이 민간 잠수부의 구조 활동을 막는다”고 퍼뜨린 가짜 여성 잠수부, 허위 구조 동영상으로 국민과 유가족들을 농락한 스미싱 사기꾼, 연고도 없이 유가족 대표를 자청하거나 SNS에 위로의 말을 올려 자기 이름을 알린 6ㆍ4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 천당과 지옥 사이의 림보(limbo) 쯤에 버려질 난세의 불나비들인데도.

나쁜 사람을 천거하여 등용시키는 것은 10점이지만, 대중의 공익을 위배해서 사리를 취하는 것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는 것들은 1점짜리 과격에 불과합니다. 선박안전관리공단의 선박 검사 합격률이 99.9%인데도 대형 사고가 나고, 버스만 운전한 사람에게도 항해사 자격증을 주는 해양수산부와 산하단체···. 사단이 벌어지고 보니 또 다른 기득권 세력과 전관예우 세계가 드러났습니다. 이른바 ‘해양 마피아’들입니다.

세월호가 소속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는 수천억 재산가라고 합니다. 1997년 2,000억 원의 빚을 지고 부도를 낸 유병언(73) 세모 전 회장은 불과 10년 만에 2,400억 원의 개인 자산을 모았고, 현재 소유하고 있는 13개 계열사 보유 자산은 5,600억 원에 이릅니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이 과정에서의 횡령, 배임, 탈세, 뇌물 공여, 재산 해외도피 등 오만 혐의를 잡은 검찰이 칼을 댄다고 합니다. 구원(救援)받지 못할 비리백화점입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쓰나미가 덮친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시에서 오카와(大川)초등학교 학생 108명 중 74명, 교사 11명 중 10명이 숨진 참사입니다. 교장이 휴가 중이어서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 교사들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몰라 40여 분간 우왕좌왕하다 학교에서 200미터 떨어진 제방으로 학생들을 이동시켰습니다. 그 순간 쓰나미가 덮쳤습니다. 장고 끝에 택한 호랑이 굴이었습니다.

그래도 교사들은 건물이 흔들리자 책상 밑에 엎드렸던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대피시켰습니다. 학생 수도 점검했습니다. 매뉴얼대로 한 조치였습니다. “학교 뒷산으로 가자”, “산에는 나무가 넘어질 우려가 있다”며 갑론을박하기도 했습니다. 쓰나미 발생 때 고지대로 대피하라는 매뉴얼만 있었지, 고지대가 어딘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 것이 생사의 갈림길이 됐습니다. 일본식 ‘매뉴얼 문화’ ‘상명하복 문화’가 빚은 인재였습니다.

두 사건은 대형 참사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대처 방식은 판이했습니다. 세월호에는 선장이 있었지만 오카와초등학교엔 교장이 없었습니다. 배에는 대피명령 방송조차 없었지만 학교에는 매뉴얼에 따른 조치가 있었습니다. 배에서는 선원들이 먼저 탈출했지만 학교에서는 교사 대부분이 희생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은 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하면 죽는다’는 쓰디쓴 교훈뿐입니다. 지도자가 엉터리일 때 말입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