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08:23 수정 : 2013.08.0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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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신발 ‘오츠’ 독점판매권 청년들
돌연 계약해지 통보 받아
“이랜드가 회사인수 직전 요구” 주장
이랜드 “판권엔 개입 안했다” 반박
이랜드그룹이 청년 창업자가 어렵게 개척한 외국 제품의 국내 판매권을 사실상 가로챈 정황이 드러났다. 대기업이 막강한 자금력을 이용해 저지른 ‘갑의 횡포’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한 청년 창업자 이아무개(33)씨와 박아무개(31)씨는 지난해 12월 미국 컴포트화(발이 편한 기능성 신발) 업체인 ‘오츠’(OTZ)로부터 5년 동안의 국내 독점판매권을 따냈다. 이씨 등이 2011년 만든 해외 브랜드 수입·유통회사가 얻어낸 첫 대형 계약이었다. 이씨 등이 회사를 만든 뒤 2011년 12월부터 오츠 제품을 조금씩 수입해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발로 뛰며 ‘맨땅에 헤딩’ 식으로 판로를 개척한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다.
올해에는 갤러리아백화점 등 유명 매장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지난해 약 1억원이던 매출이 올해 들어 한달에 1억원가량으로 뛰는 등 사업이 급성장했다. 이씨는 “올 4월부터 이랜드 신발 편집매장인 ‘폴더’에도 물건을 공급했다. 여름을 앞두고 물량을 늘려 8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도 올 초에 세웠다”고 말했다.
청년 창업 신화는 거기서 멈췄다. 오츠는 지난 5월 초 갑자기 독점판매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부당한 해지 통보에 이씨는 당황했다. 이씨가 대량으로 신발 주문을 하는 대신 가격 경쟁력을 위해 판매가를 낮추자고 한 제안을 오츠 쪽이 긍정적으로 검토하다 돌연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실제 신발 가격을 낮취 판 것도 아니라 논란이 될 여지도 없었다. 계약 해지가 이랜드그룹이 오츠를 인수하기 직전에 벌어진 일임을 이씨는 뒤늦게 알게 됐다. 이씨는 “당시 오츠 쪽에서 ‘회사(오츠 본사)가 인수된다. 인수하려는 회사(이랜드)가 현재 한국 판권자와의 계약 해지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이 넘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만난 변호사들은 “석연찮은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오츠에 소송을 걸면 이길 확률이 높다”고 했지만 국제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문제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는 이랜드와 직접 법정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20일 이랜드그룹은 자회사인 ‘이랜드 유에스에이(USA)홀딩스’가 오츠 지분 90%를 약 100억원에 인수했다. 이랜드그룹은 인수 이틀 뒤 보도자료를 내어 “2016년까지 오츠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 4000만달러(약 445억6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밝혔고 언론이 다퉈 이 소식을 전했다. 이씨의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씨는 “이랜드가 오츠 신발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아예 회사를 인수하고, 그 조건으로 국내 판매권 해지까지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국내 판매권 계약이 유효하다는 내용증명을 이랜드 쪽에 보내고 해명을 요구했지만 이랜드그룹이 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재고를 떠안고 창고 임대비만 내고 있다. 소송비용조차 부담되는 작은 회사를 (이랜드가) 고사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5일 <한겨레>에 “정상적인 인수합병(M&A) 과정이었다. 인수 전 오츠가 이씨와 계약을 해지했고 (우리는) 이런 계약 관계를 그대로 인수한 것”이라며 “외국 브랜드 인수는 국외 시장을 겨냥한 것인 만큼 무리하게 국내 판권자와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다. 그동안 외국 브랜드를 인수하면 국내 판권자와 외국 업체의 계약 관계는 그대로 인정해왔다”고 밝혔다. 오츠를 인수한 건 맞지만 이씨의 국내 판매권 계약 해지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씨가 공개한 이씨 회사 직원과 오츠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오츠는 지난 5월 “다음주에 받기로 한 (이랜드로부터의) 투자는 귀사의 동의가 있건 없건 귀사와의 계약 해지를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이랜드의 행위가 유통업계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갑의 횡포’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계열 의류회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이런 경우 (판로 개척 기업의) 재고를 떠안아주거나 판권 개척에 대한 보상을 해줬는데 최근에는 이런 관행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개별 기업 사이의 복잡한 계약 내용은 법적으로 따져봐야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