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다스리기)/외교

일본과 중국의 외교 전쟁_다보스 포럼

사이박사 2014. 1. 27. 10:56


세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뒤늦게 통역 탓하는 아베

미디어오늘 | 입력 2014.01.27 00:36

[백병규의 글로벌 포커스] "중·일 전쟁 시사는 통역이 덧붙인 말"… 그런다고 그 '본뜻'이 달라질까

[미디어오늘백병규 언론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다보스 발언 파문이 크다. 중국과 일본 관계를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과 독일 관계와 비교하고 "지금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말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돌아가신 영령들에 대한 추도는 어느 나라 지도자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정당성을 강변한 것.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가뜩이나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던 때, 뇌관을 건드린 셈이 됐다.

특히 유럽 언론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가 전쟁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풀이가 지배적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 BBC, 로이터 등 주로 유럽 언론들이 주요 기사로 다뤘다. 아베 총리가 중∙일 관계를 1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 관계에 빗대 말한 것도 그 한 요인이 됐을 터이다.

중∙일 전쟁 가능성?…외교무대선 이미 "전쟁중"






▲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기조강연에 나선 아베 일본 총리. 사진=아시히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24일자 사설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베 총리가 현재의 상황(중∙일 관계)을 1차 세계대전에 비유한 것은 선동적"이라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에게 '문제의 발언'을 이끌어낸 질문을 던졌던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리스트 기디언 라크먼은 "그는 어떤 군사적 충돌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영국 BBC의 경제 에디터는 "예상 밖의 발언이었으며,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아베는 이날 중국의 호전성을 부각시키려 했지만 결과는 반대가 됐다.

아베 총리의 다보스포럼 발언 파문은 결과적으로 지난 20여 일 전 세계 각국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던 중∙일 양국 간 외교전이 결국 일본의 패배로 귀결된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이후 전 세계 각국의 중국 대사들이 나섰다. < 뉴욕타임스 > , < 가디언 > , < 르몽드 > 등 각국의 주요 언론에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고문을 일제히 게재한 것.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도전이다."(주미대사)"히틀러의 묘에 헌화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주 프랑스 대사)"소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라는 어둠의 제왕처럼 군국주의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주 영국 대사)"일본은 아시아 최대의 트러블메이커다."(주 유럽연합 대사)"동양의 나치스를 참배한 것"(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아시아 각지에서)일본군이 대학살을 자행했다. (참배는) 피해국에 대한 공공연한 도발이다."(주 캄보디아 대사)"중∙일, 한∙일 관계에 그치지 않고, 과거 침략의 역사를 직시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다."(주 러시아 대사)"독일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한 것에 대해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성실하게 사과했지만 일본은 아베 총리와 각료들이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아시아의 히틀러 도조 전 총리 등 A급 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주 이스라엘 대사)…

무려 50여 개국에서 일제히 시도된 중국 대사들의 기고문 공세는 현지 여론을 자극할 수 있는 핵심을 잘 짚고 있다. 유럽에서는 '히틀러'와 '나치스'에 빗대,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전후질서에 대한 도전'이란 측면을,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부각시켰다. 작심하고 전 세계적인 여론전에 나선 것. 중국으로선 댜오위다오(센가쿠열도) 영토 분쟁의 불씨도 상존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일본을 '아시아의 트러블 메이커'로 확실하게 낙인찍어 두려 한 계산도 있었을 터이다.

"아베, 아시아의 히틀러에 헌화" vs "중국이야말로 아시아의 평화 위협"


일본 대사들은 덕분에 힘겨운 방어전에 나서야 했다. 일본 외무성은 중국의 여론전에 적극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일본 외무성의 대응 지침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 지침은 아베 총리가 "일본은 결코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화선언을 했음을 강조하라는 것. 두 번째 지침은 중국이야말로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반격토록 한다는 것. 중국의 군비확장을 집중 부각시키라는 지침이었다.

일본 대사들은 역부족인 상황에서도 자국의 총리를 방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 영국 일본대사는 "중국이야말로 매년 군비를 10% 씩 늘리고 있는, 아시아의 볼드모트가 되려 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그는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해 주중 대사와 '칸막이 논쟁'을 불사하기도 했다. 대사들이 방송 대담에 나와 서로 비난전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 그만큼 중∙일 여론전이 뜨거웠다는 반증. 일본 외교부로서는 중국의 전면전에 맞서 겨우 방어선을 쳤다고 한 숨 돌리는 찰나 '다보스 폭탄'이 터진 셈이다.

아베 총리의 다보스 발언에 대해 중국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중국의 친강 외교부 대변인은 "(아베의) 역사적 기억은 번지수가 틀렸다"고 공박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독 관계를 말하기 이전에 '청일전쟁', '한반도 식민통치', '러일전쟁', '파시스트 전쟁'부터 살펴보란 것. 자신들이 저지른 가까운 역사의 과오는 외면하고 웬 먼 나라 옛 이야기냐는 핀잔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잘못된 역사관을 증명할 뿐"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중∙일간 무력 충돌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자 일본 측은 크게 당황했다. 총리의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23일 발언 파문 직후 "중∙일 사이에 전쟁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라면서도 "총리가 정확히 어떻게 발언했는지는 모르지만"이라고 단서를 달 정도였다. 스가 장관은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총리의 발언 내용이 왜곡됐다"며 "대사관을 통해 각국 언론에 이해를 구할 것"이라며 적극적 해명에 나섰다.

< 아사히신문 > 은 24일 총리의 다보스 발언 파문은 통역의 '첨언' 때문이란 기사를 실었다. 아베 총리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은 최대의 교역 상대국이었지만 결국 전쟁이 일어났다. 우발적 사고가 야기되지 않도록 상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만 말했다는 것. 현재의 중∙일 관계가 당시 "영∙독 관계 같다"는 내용은 통역이 덧붙인 말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가 영∙독 관계를 언급한 의미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 이 통역은 일 외무부가 현지에서 수배한 외부 통역이었다는 것. 스가 관방장관이 언급한 이른바 '왜곡'의 경위다.

민주주의∙인권 가치 강조한 아베, 그러나 개헌안은…






▲ 류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 대사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을 보도한 < 가디언 > 기사. 사진은 지난해 12월 26일 야스쿠니신사를 찾은 아베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

일본 재외 공관에서 현지 언론에 이를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총리가 하지도 않은 말을 통역이 덧붙였다고 해명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런 해명이 또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을까. 더구나 총리의 발언 취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첨언'이라는 것 아닌가. < 아사히신문 > 이 이런 뒷이야기를 단독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외교부가 이 신문을 국제적 해명의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삼은 것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외국 언론도 일본 외교부의 이런 해명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24일 시정연설에서 '가치의 공유'를 역설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의 연대와 제휴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아사히신문 > 은 그러나 아베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은 이런 '기본적인 가치'를 외면하거나 변경한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현행 헌법 전문의 '인권 보편의 원리'나 '인권은 영구불가침하다'는 조문을 삭제한 것을 그 사례로 들었다.

< 아사히신문 > 은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은 이른바 '전후체제의 탈피'를 그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밑바탕에는 일본은 서구와는 다르다는 생각, 일본 고유의 가치와 문화, 전통이 중요하다는 믿음, 현행 헌법질서는 전후 미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아베류의 신념이 깔려 있다는 것. 그런 아베 총리가 새삼 민주주의와 인권 등 서구적 '가치의 공유'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곱지 않은 서구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란 풀이다. 그런 점에서도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일갈이 매섭다.

"중국에는 '진상을 감추려고 하다가 도리어 드러난다, 닦으면 닦을수록 검어진다(欲盖彌彰 越抹越黑)'란 격언이 있다. 아베의 해명은 그가 인류 양심과 국제적 도리와 정반대인 잘못된 역사관을 완고하게 견지하고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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