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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 / 저자 제임스 포사이스 | 역자 정재겸 | 출판사

사이박사 2009. 6. 25. 11:44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 / 저자 제임스 포사이스 | 역자 정재겸 | 출판사 솔


시베리아인의 시각에서 본 그들의 역사 / 한민족 시원 연구의 길잡이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 러시아사를 필요로 하는 영국의 언어학자 제임스 포사이스는 방대한 출판물과 다양한 정보를 집대성하여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시베리아에 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민족지학적 정보들을 최초로 제공한 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극동 만주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많은 참고 서적들을 담고 있어 전공자와 비전공자 모두에게 충분히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시베리아 민족사에 대한 진실

동경 60도와 북위 50도 사이에 위치하는 시베리아는 우랄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러시아 영토를 말한다. 아시아 대륙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며 미국이나 호주보다 더 큰 이 북아시아는 소련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이며,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의 관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인 동시에 21세기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베리아에 대한 전문서적이 없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최근 시베리아에 관한 많은 책들이 유럽 언어들로 출판되었지만, 시베리아의 정복과 약탈의 단계들을 서술하고 그 과정을 러시아사와 세계사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서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러시아사를 필요로 하는 영국의 언어학자 제임스 포사이스는 방대한 출판물과 다양한 정보를 집대성하여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를 저술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민족들이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의 후손인 것처럼 현재 시베리아 거주자들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은 러시아인이다. 그러나 18세기까지만 해도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러시아인이 침입하기 전 시베리아 원주민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았으며, 침입 후에는 그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또한 그들의 현재 상황과 미래 전망은 어떠한가 등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1581년 예르마크가 우랄산맥을 넘어 탐험을 시작한 이래 350년 이상 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였던 원주민들이 과연 러시아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을까? 1989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시베리아 전체 인구 3,200만 명 중 원주민 수는 160만 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역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의미가 미미한 것일까? 원주민들의 문화적 동질성과 30여 개에 이르는 원주민 공동체들은 모두 사라져버릴 운명에 놓인 것인가? 이들의 운명이 과연 아메리카 대륙 인디언의 운명과 비슷했던 것은 아닌가?

소비에트 역사가들은 레닌주의 민족 정책이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포함한 소수민족 세계를 인도주의와 정의로 이끌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집단화, 반유목 생활 운동, 전통 문화와 생업의 파괴 등 모든 원주민들에게 압제와 고통을 가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고르바초프가 표방한 글라스노스트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했지만, 이들에 대한 포괄적인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시베리아 민족사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러시아인 이주자들의 사회와 역사의 변화하는 상호관계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여러 원주민 공동체들의 생활양식에 대해 하나의 보고서를 쓰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었다. 그는 러시아인들에게 정복당하기 전 먼 옛날부터 인간이 활동했던 이 거대한 지역의 연구에 공헌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지금까지 다른 저자들이 다루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다루기 쉽지 않을 주제인 “러시아인 지배자들의 속민으로서의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왜 시베리아를 이야기해야만 하는가?
시공간적으로 방대한 규모의 이 책은 1992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래 아직까지도 영어권에서 보기 드문 역작으로 꼽힌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시베리아의 주인으로서 살아온 다수민족의 원주민들은 16세기 코사크 용병 예르마크 원정대가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동진을 시작하면서부터 러시아가 19세기 캄차카반도와 알래스카를 정복하고 20세기에 무자비한 탄압을 가한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서서히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책은 이러한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 과정을 추적하면서 원주민들의 민족지학적 그리고 언어학적 특성들을 분석한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저자의 관점이다. 저자는 러시아인의 시베리아 정복사가 아니라 원주민들의 시베리아 피정복 ? 피착취사를 썼다. 그런 과정에서 구소련 시절의 선전 정책들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는가가 잘 드러나 있다. 이들 원주민의 운명은 강대국에 휘둘리다 집어먹힌 약소국 한반도의 슬픈 운명과 닮았다. 특히 근현대시기에 러시아가 극동 연해주와 만주에 침입하여 그곳에 이미 자리 잡고 살던 우리 동포들의 운명을 좌우했던 부분에 이르면, 그곳 원주민들과 우리 동포들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동포들도 소비에트체제가 벌인 집단화운동의 희생양이 되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고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또한 1917년경 오호츠크 금광에 약 1,000명, 그리고 1923년경 야쿠티야의 알단 강 금광 등에서 많은 수의 우리 동포들이 중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우리 현대사의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이 책은 역사 왜곡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소련 저작물들에 나타나는 체제찬양적 내용들의 허구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시베리아사의 왜곡을 밝혀냈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크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해가는 과정에 대하여 아무 갈등 없이 원주민 마을 사이에 러시아인 마을이 들어서 자연스레 동화됐다는 소련 역사가들의 사실 왜곡을 비판하는 자세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일본의 역사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 우리에게도 당당히 저들의 왜곡을 정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저작물들이 나와야 함을 소망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원주민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원주민의 생활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들을 적절하게 담고 있어 우리 민족의 인류학적 시원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중에서 투바 지역의 알타이족, 바이칼 호수 주변의 호리 부리야트족, 만주 및 흑룡강(헤이룽강) 지역의 여진족, 에웽키족, 나나이족, 길략족 등을 비롯한 현지 원주민들간의 유전학적인 혈연관계는 우리 고대 문화의 비밀을 밝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알타이 지역의 파지리크 쿠르간들과 그 유물들은 신라 왕릉과 그 유물들에 비교되고 있으며, 원주민들의 샤머니즘은 우리의 무격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그들의 부르하니즘(최남선의 불함문화)은 우리의 고대 천신 숭배 사상인 제천의식 및 천손 사상과 비교되고, 천신의 아들이 하강하여 인간을 구제한다는 주제의 부리야트족의 영웅 서사시 <게세르 칸 신화>는 우리의 단군 신화와 구조적 유사성을 보이는 등 많은 연구가 요청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시베리아에 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민족지학적 정보들을 최초로 제공한 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극동 만주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많은 참고 서적들을 담고 있어 전공자와 비전공자 모두에게 충분히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현대 문명에 의해 파괴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고발이다.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원시림과 북극 빙하, 그리고 청정한 바이칼 호수를 품고 있는 시베리아를 이제 더 이상 문명의 이름으로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원주민들 역시 그들의 언어와 함께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지구상의 원주민 언어와 원주민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은 인류 문화의 다양성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전조이다. 따라서 남아 있는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방도를 세워야 할 때임을 이 책은 깨닫게 해준다.

만주, 시베리아의 빗장이 풀린 지 10여 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는 직접 발로 뛰면서 시베리아와 만주의 현장을 돌아보고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서구의 시각이 아니라 우리의 시각으로 역사를 서술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특히 우리 고대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만주, 시베리아와 연관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의 유적들은 우리의 발길과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주요 내용

제1장 시베리아의 ‘발견’
13세기 몽골의 침공 이래 러시아를 지배해온 타타르족의 세력이 서서히 약화되고 분열되는 틈을 타 힘을 키운 모스크바 공국은 계속해서 이들을 공격하여 물리쳤다. 러시아인들은 비싼 담비모피를 좇아 전초기지들을 세우며 점점 동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던 중 우랄산맥 너머의 동쪽 땅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제2장 17세기의 시베리아 침략
이반대제의 통치시기에 북부 드비나 지역과 우랄산맥 사이의 땅에 대한 위치를 공고히 한 모스크바 공국 사람들은 우랄산맥 북쪽 통로를 이용해 그 너머로부터 모피와 같은 귀중품들을 조달했다. 계속 동진을 하여 산과 강을 이용한 북동쪽 통로 이외에도 백해를 통한 바닷길이 열리게 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이 세력권을 넓혀나가며 세운 도시에 러시아인들이 이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직까지 세력을 미치고 있던 타타르족은 그들에게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더 먼 곳으로 도망가거나, 모스크바 공국에 공물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다.

제3장 17세기의 중부 및 북동부 시베리아
러시아인들이 중부 시베리아로 드나드는 통로의 대부분은 퉁구스족의 영토였다. 러시아인들은 주변의 다른 부족들을 이용하여 퉁구스족을 복속시키며, 이들에게서 야삭을 징수하였고, 영토를 계속하여 동쪽으로 확장시켜나갔다. 러시아의 야삭 징수 부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계속해서 진군해 들어갔고, 이들에게 투항한 부족들은 다른 부족들에게 보복당하고, 또 이들은 침략군의 보복을 당하는, 쫓고 쫓기는 피의 역사가 계속됐다.

제4장 17세기의 몽골과 중국의 국경
근처 원주민들에게서 조공을 받는 부족과 은광이 있다는 소문을 좇아 들어간 러시아인들은 험한 지형과 더불어 강력한 부리야트족과 싸워야만 했다. 여러 전투를 치르며 야쿠츠크로부터 남쪽으로 산악지대를 통과하며 전초기지를 세운 러시아인들은 이들보다 더 강력한 몽골족과 만주-중국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국경지대에 있는 원주민들은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다툼에서 희생양이 되었으며, 때로는 이중 공물을 바쳐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중국의 힘에 밀려 아무르 강 지역에서 쫓겨나며, 아르군 강을 따라 쉴카 강 합류점까지, 그리고 거기서부터 아무르 강 분지의 북부 분기점인 스타노보이산맥 봉우리들을 따라 태평양 연안까지로 확정되었고, 그 후 150여 년간 이 지역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했다.

제5장 러시아의 북부아시아 식민 지배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배는 착취와 압박 그 자체였다.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지방 공무원들의 비리는 그 한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착취한 사람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개인 사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17세기 말경 시베리아에서 중요한 생산품은 모피가 아니라 광물로 전환되었다.

제6장 18세기
17~18세기 러시아인들이 남부 우랄 지역을 정복을 시작하여 바쉬키르족, 카자흐족, 오이라트족이 저항하며 끊임없이 전쟁이 계속됐다. 러시아인들이 광산과 야금 작업장을 세우면서 도시들이 생겼고, 이에 점점 침해받는 원주민들의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원주민들끼리도 분열되어 남부 우랄 지역은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들 원주민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짜르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러시아는 평화롭게 초원지대로 국경을 확장했다. 1760년대의 모스크바-시베리아 간선도로의 건설은 시베리아의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청제국이 중가리아의 오이라트 칸국을 합병하자, 러시아 정부도 경쟁적으로 알타이 남부 산악지대를 합병함으로써 알타이 지역은 긴장이 감돌았으나, 1864년 중국이 약해진 틈을 타 러시아는 남부 알타이 지역을 손에 넣었다.

제7장 북태평양으로의 영토 확장
17세기 말 동부 시베리아에서 무분별한 남획으로 검은담비가 멸종 상태에 이르자, 서방과의 전쟁에 충당할 재원을 찾아 뾰뜨르 대제는 검은담비에 대한 국가의 완전 독점권을 선포함과 동시에 더 멀리 새로운 모피 산지를 찾아 나설 것을 군 지휘관들에게 명령하기에 이른다. 코사크 용병들은 가는 곳마다 원주민들을 복속시키며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이들은 오호츠크 항로를 발견하여 캄차카 반도까지 그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분명 강력한 저항을 받긴 했지만 이로써 러시아인들은 북태평양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제8장 19세기 러시아제국 치하의 시베리아
러시아가 부과한 더 많은 할당량과 러시아 상인들의 간계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극빈 상태가 된 데 더하여, 점차 죄어오는 정착생활에의 압박은 원주민 공동체들을 몰락하게 만들었다. 트락트의 건설과 더불어 러시아 이주자들은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멀리 그리고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이들 민족이 이동하는 과정에 전염병에 걸리고 다른 종족들과의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의 침략이 부족간 결집 세력을 형성하는 효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은 모두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계속된 러시아인들의 착취는 급기야 원주민들로 하여금 독립운동을 일으키게 한다.

제9장 19세기의 시베리아 식민지 이주민
시베리아가 개방되자 이를 따라 들어온 러시아인들에 의해 육로가 만들어졌다. 대규모로 트락트 즉 대모스크바 간선도로의 건설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부설은 이들의 이주 속도를 가속화시켰다. 또한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의 세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러시아 정부의 이익과 맞아 떨어져 극동 지역 인구를 늘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그들이 분명 주류를 이루었고, 러시아 사회와 정부의 모든 필수요소들이 도입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시베리아가 식민지 혹은 별개의 분리된 지역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시베리아의 자치를 주장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제10장 19세기의 극동
1689년 네르친스크조약으로 정해진 스타노보이산맥을 분수령으로 한 중국과의 국경이 범접하지 못할 경계가 되자, 러시아는 19세기 초까지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았던 사할린에 관심을 두고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중국이 국내외의 어지러운 정세를 이용하여 아무르 강 북쪽의 모든 영토를 차지하였다. 중국의 영향하에 있던 이곳의 원주민들은 유럽 쪽 러시아와 시베리아 이주민들에게 피해를 당하고, 더 깊은 오지로 피했으며, 러시아 당국은 극동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계속해서 강제 이주정책을 펼쳤다. 불안한 중국의 내부사정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아무르-우수리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들은 ‘황화黃禍’에 대한 두려움으로 중국인들을 박해하였다. 일본인들 또한 모두가 스파이라는 생각으로 경계를 하였지만 한국인들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들과 동화되어 갔다.

제11장 러시아 혁명과 시베리아에서의 내전
1917년 뻬쩨르부르그에서 2월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 임시정부가 탄생한다. 당시 시베리아 전역에서 대중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혁명 정당은 마르크스주의 계열의 볼셰비키도 멘셰비키도 아닌 농민 중심 SR당이었다. 전시베리아 임시 회의는 볼셰비키 정부를 거부하고 시베리아의 자치를 주장하였다. 또한 독립된 우크라이나 정부와 접촉하면서 러시아 연방제를 구상하기도 하였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서로 다른 목적과 이해관계를 갖고 시베리아 내전에 개입함으로써 시베리아 내전은 더욱 복잡하고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며 4년 이상 지속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와의 전쟁 발발과 일본의 위협을 느낀 레닌 정부는 위장전술로 1920년 4월 명목상 극동 공화국을 탄생시키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자가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1921년 백군의 몽골 진출을 빌미로 소비에트 군대를 몽골에 파견하여 그들을 섬멸했고, 이것은 몽골이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전락하는 계기가 됐다.

제12장 1917~1929년의 원주민
혁명과 내전은 시베리아 원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의 북쪽 거주 원주민들은 지리적으로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러시아인들도 비교적 적고 정치적, 경제적 가치도 별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큰 통제 없이 자기들 전통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반면, 남쪽 거주 원주민들은 주요 러시아인 정착촌과 가깝게 위치하여 내전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2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이 이룩한 안정을 바탕으로 범국가 개혁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는데, 이에 대한 원주민들의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지역의 소비에트화는 서서히 진행됐다. 이 시기부터 새로운 정부 당국은 오랜 세월 유지돼온 원주민들의 관습을 인정하지 않고, 연방정부의 법에 따라 통치하였으나, 실제로 과거 짜르주의 국가 시절과 비교해서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사회경제적으로 공산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제13장 1930년대의 소비에트 시베리아
1930~1940년대 시베리아의 삶은 유럽 쪽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정치적 상황에 좌우된다. 1920년대와 달리 이 시기에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계급투쟁 정신과 소비에트 러시아 민족주의로 무장한 공산당에 의해 전통적 생활방식이 부정되면서 거의 모든 관습을 계몽이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대부분의 원주민에 대한 교육은 러시아어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종교적 믿음과 의식인 샤머니즘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러시아 공산당의 사회 정책인 전러시아의 집단화로 시베리아 원주민 공동체를 집단화하였다.

제14장 1930년대 소비에트 러시아의 극동 지역
1930년대의 극동 지역 원주민들의 삶은 러시아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그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대륙으로 뻗어나가려는 제국주의의 일본의 야욕과,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의 이익 등 복잡한 양상의 국제 관계하에서 소련은 극동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그곳의 많은 인구와 강력한 산업기지들이 있는 소비에트 러시아 세력의 강력한 요새를 구축할 필요를 느낀다. 1930년대 말 내부 반대 세력에 대한 공포 정치의 일환으로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만들어낸 일본 스파이 열풍과 인위적인 민족 이동 정책은 16만여 명의 한국인을 극동에서 6,400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그 자리에 유태인을 이주, 정착시키려고 시도하였으며, 러시아 공산당 체제에 의한 대규모 자연개발이 시작됨에 따라 원주민과 환경은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제15장 1941년 이후의 소비에트 시베리아
제2차 세계대전은 시베리아가 공산당의 주도하에 소비에트 인민체제로 흡수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41년 6월 히틀러 군대에 패한 이후 소련 전역에 대규모 군 동원령이 선포되면서 시베리아의 오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인민들이 다민족 혼합부대에 징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까지 일본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내륙아시아로 팽창해오던 소련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후 미국과 연합국이 된다.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가한 이틀 후인 1945년 8월 8일 러시아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타격을 가한다. 전후 스탈린 사후까지 중국과의 긴밀했던 협조체제는 평화공존을 주장하는 흐루시초프(흐루쇼프)의 타협적 정책으로 말미암아 양국간 이념 반목과 국경의 긴장이 발생하여 극동에 대규모 군대가 유지된다. 그 결과 극동은 1959~1982년에 인구가 48퍼센트 증가함으로써 소련에서 인구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된다. 러시아인들이 진출하여 정착지를 확장하자 원주민들은 점차 깊은 오지로 밀려가게 된다.

제16장 1945년 이후의 시베리아 원주민
시베리아를 포함한 소련 전역에서 집단농장은 더 큰 단위인 국영농장으로 통합된다. 이 통폐합 작업은 시베리아에서 반유목 생활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은 북부 지역에 분포하던 순록 유목 공동체들을 천막 생활 대신 러시아식 오두막 생활을 하도록 유도했으며, 이전에 형성된 많은 정착촌 거주 원주민들이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 새로 형성된 농업 중심지로 집결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오지나 해안가 등 일정 지역에서 거주민들의 절멸현상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조상대대로 거주하던 땅에서 내몰린 소수민족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일하는 임시 노동자의 지위로 전락하게 되고, 많은 소수민족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 다수인 러시아인 아이들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자신들의 언어를 상실하게 됐고, 결국 시베리아 원주민 전통사회가 붕괴하게 된다.

제17장 1980년대의 시베리아
소비에트 체제하에서의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역사에 관한 정보는 1986년 이후 고르바초프가 출현하면서 공식적인 언론을 통하여 비로소 정확하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시베리아 소수민족들은 구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등 14개 공화국들과는 다소 다른 위치에 있다. 14개 공화국 대부분은 주요 토착민족이 공화국 인구의 59~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원래 소수민족들의 주 활동 부대였던 시베리아에는 유럽 쪽 아시아에서 러시아인이 차지하는 것보다 더 높은 비율의 러시아인들이 거주한다. 1960~1989년의 통계에 따르면 시베리아에서 원주민과 러시아인의 비율이 5 : 95로 원주민에 비해 러시아인이 압도적인 다수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절대적인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외부 유입자들로 말미암아 원주민 공동체들은 민족 동질성 보존에 어려운 상황에 놓였으나 시베리아의 많은 지역에서 일종의 원주민 권리운동 같은 것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대중적인 의견이 일부 영향력을 갖게 되었으며, 또한 정부 내각에 대해 산업개발에 관한 정보와 자문을 미리 요구할 수 있는 실체로 존재하게 됐다.

 

 


시베리아 원주민이 걸었던 수난의 길 [연합뉴스] 2009-03-10


시베리아는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북아시아 지역을 의미한다. 아시아 대륙의 3분의 1에 해당하며 미국이나 호주보다 더 크지만 척박한 기후 때문에 인구는 3천200만명(1989년 러시아 정부통계 기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시베리아 원주민은 160만명, 나머지 3천40만가량은 러시아인이다.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약 30개의 소수 민족은 러시아의 동화정책과 이주정책에 밀려 고사 직전에 놓이게 된 것이다.

국내에 첫 번역 돼 출간된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출판사 펴냄,정재겸 옮김. 540쪽. 3만5천원)는 원주민의 시각에서 본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기다.

영국 에든버러대의 제임스 포사이스 교수는 러시아의 '동진'(東進)이 시작된 16세기부터 1980년대까지 고난으로 점철된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를 540여 쪽에 걸쳐 조명한다. 원전은 1992년 영국에서 출간됐다.

특히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정복해가는 과정에서 별다른 갈등 없이 원주민들과 융화해갔다는 기존 러시아 학자들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한때 광대한 영토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어떻게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됐는지를 다룬다.

러시아 정복자들은 담비가죽, 광물, 농토 등을 빼앗는 한편 관리들의 횡령 등으로 원주민 사회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저자의 말처럼 "원주민들의 자급자족 경제기반과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방식"을 통해 가혹한 수탈을 한 것이다.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러시아 농민들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땅을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러시아 농민들은 경작지를 만들고자 원주민의 사냥터인 숲을 모두 태우고 동물들을 죽이거나 쫓아냈다. 러시아 농민들은 이주하는 모든 곳에서 이런 거친 남벌을 했다"(116쪽)

더구나 순진하기만 했던 알타이족 공동체에 보드카를 전해주면서 원주민들은 알코올 속으로 빠져들게 됐고, 점점 궁핍한 삶 속으로 떨어졌다. 저자는 "알타이족은 전에 몰랐던 나쁜 짓, 예를 들면 도둑질과 사기도 알게 됐다"고 개탄한다.

특히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적 수탈뿐 아니라 러시아어 교육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강력한 동화정책을 펴 원주민 전통사회는 철저하게 붕괴한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저자는 소비에트공화국이 무너진 지금(1992년 책 출간 당시)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자신들이 시베리아의 주인임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저자는 "원주민 스스로 다시 한 번 자신들이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동무들을 위해 일하는 날품팔이 노동자가 아니라 산림, 강, 순록떼, 목초지 등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이 더는 러시아 지배자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한다는 보장을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시베리아 원주민…’ 러 동화과정 역사왜곡 밝혀 [헤럴드경제] 2009-03-12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출판사)는 영국의 언어학자 제임스 포사이드가 시베리아에 관한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민족지학적 정보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종래 시베리아 정복사가 18세기 침입자인 러시아인의 입장에서 기술된 것과 달리 순수하게 원주민의 입장에서 썼다. 즉 그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았으며 침입후에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적한 첫 보고서인 셈이다.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왜곡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러시아 동화과정이 아무런 갈등없이 이뤄졌다는 허구를 드러낸다. 러시아 정복자들이 담비가죽, 광물, 농토 등을 빼앗고 관리들의 횡령 등으로 생활이 피폐해져간 실상도 그대로 밝힌다.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자급자족 경제기반과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방식으로 수탈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면밀히 소개하고 있는 바이칼 호수 주변의 호리 부리야트족 등 원주민의 생활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은 우리 민족의 시원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 / 제임스 포사이스 지음·정재겸 옮김 / 솔·3만5000원 [한겨레] 2009.03.13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원주민의 역사를 추적한 '영어로 쓰인 최초의 시베리아 원주민사'. 우랄산맥에서 캄차카반도까지 시베리아 원주민의 생활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들을 적절하게 담고 있어 한민족의 인류학적 시원을 연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역사! 아는 만큼 보인다 [경향신문 | 2009.03.13]


유홍준씨의 책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 말은 세계지도를 펼쳤을 때도 적용될 듯싶다. 세계지도에 그려진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를 모른다면 그 땅은 물리적인 '육지'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름은 친숙하지만 공백으로 남아있을 법한 지역을 다룬 묵직한 역사책 두 권이 번역돼 나왔다. 등장하는 인명·지명의 생소함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머리 속 세계지도를 제법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제임스 포사이스 | 솔 / 정재겸 옮김. 3만5000원

부리야트 몽골족, 야쿠트족, 타타르족, 사모예드족, 퉁구스족, 축치족….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해안까지 대체로 북위 50도에 걸쳐 있는 시베리아라고 불리는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 종족들이다. 시베리아는 1581년 우랄산맥을 넘어 탐험에 나선 예르마크에 의해 정복된 이래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다.

러시아에 정복당하기 이전의 시베리아에 대해 역사가들은 대체로 극히 적은 수의 원주민들이 흩어져 사는 '사실상 비어 있던 땅'으로 기술했다. 영국의 언어학자인 저자는 이런 기술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자세라고 비판하면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시베리아 원주민에 관한 민족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소련 역사가들은 레닌주의 민족정책이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을 인도주의와 정의로 이끌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말 그랬을까. 조선 유민인 시베리아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듯 누대로 시베리아에 살았던 원주민들은 집단화, 반유목 생활 운동, 전통문화와 생업파괴 등을 통해 고통을 받았고 서서히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

정복자의 관점이 아니라 원주민의 관점에서 시베리아 정복사·착취사를 써내려간 이 책은 1992년 출간됐지만 시베리아 역사에 관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도 한민족의 연원을 광활한 대륙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이 유행하면서 시베리아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시베리아를 단순한 자원의 보고가 아닌 사람이 숨쉬는 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다.

 

 


언어학자가 쓴 시베리아 토착민 명멸사 / 양민종 부산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세계일보 | 2009.03.13]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제임스 포사이스 지음/정재겸 옮김/솔출판사/3만5000원


한국이 옛 소련과 수교한 지도 이미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소련의 옛 땅에는 15개의 개별 독립국들이 탄생했다. 1991년 이후 한국인들이 러시아와 시베리아 땅을 직접 방문하기 시작한 이래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베리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왔지만 국내에 소개된 관련 서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솔에서 펴낸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는 시베리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통사이며 서구의 연구 성과를 집성한 대표적인 저작이다. 국내 독자들이 시베리아 역사에 대한 포사이스의 견해를 접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책은 언어학자가 쓴 역사서이며, 시베리아의 역사를 다룬 본격적인 인문학 담론이다. '본격적'이라는 수사를 붙인 까닭은 이 글이 취미 삼아 쓰는 기행문이나 인상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사이스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 시베리아 관련 논저들을 섭렵하여 객관적인 서술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주와 참고문헌을 통해 시베리아 관련 자료의 대부분을 소개하는 친절을 보여준다.

저자가 '러시아어 상(aspect)'을 비롯해 다수의 어학 관련 논저를 집필한 언어학자라는 사실 때문에 책의 내용에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휴턴과 험프리즈와 같이 시베리아 지역을 연구하는 서구 사학자들이 자신들의 논저에서 적극 인용하는 사실을 보면, 이 책이 '언어학자가 쓴 역사서'이면서 사학자들의 인정을 받는 탁월한 저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시베리아 지역 전문가들에게 소비에트기에 간행된 시베리아 역사서들의 단점을 보완하게 해주는 객관적인 자료이며, 일반 독자에게는 시베리아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필독 교양서라고 생각한다.

포사이스는 정치권력의 교체나 지배 이데올로기의 기술과 같은 접근에서 벗어나 '문화-민족지 역사서술(cultural ethnic history)'을 제안하였으며, 실제로 제목에서부터 본문의 세세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시베리아지역 토착민족들의 명멸사와 문화를 기술하고 있다. 시베리아 역사와 관련한 기존 연구들이 대체로 ▲제정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 과정 ▲시베리아의 도시 발생사 ▲고고학 관련 보고서 ▲문화와 민속, 신화 등에 대한 지역적인 접근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포사이스와 같이 시베리아 지역의 역사를 토착민의 문화를 중심으로 통시적으로 다루는 묵직한 저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편 소비에트체제 와해를 전후해서 간행된 서적이라는 한계 때문에 1990년대 이후의 시베리아 관련 자료가 본문에 포함되지 못한 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제정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을 시베리아의 식민지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나 현재의 시베리아 지역민들을 소비에트 사회의 식민지 주민으로 이해하는 입장 역시 논쟁의 가능성이 있으며, 부분적으로 동서 냉전 당시의 서구 시각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역사와 토착민족들의 문화사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공부하거나, 시베리아 지역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길 원하는 독자에게는 이 책의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변한다. 시베리아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와 함께 1990년 이전 서구학계의 시베리아지역 연구 성과의 공과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소비에트 해체 이후 홍수같이 쏟아져 나온 시베리아 관련 자료들을 요령 있게 살펴볼 수 있는 비교연구의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동화·이주정책에 소수민족으로 전락 시베리아 원주민 수난사 [서울신문] 2009-03-13


1492년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 이는 유럽 또는 서구인의 시각에서 비롯된 서술이다. 그 땅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존재했고, 아메리카 원주민 쪽에서 보면 콜럼버스는 유럽 침략의 단초를 제공한 불청객이었을 뿐이다. 콜럼버스가 자신이 도착한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까닭에 그곳 사람들은 ‘인디언’으로 불려 왔다.

서구의 시각으로 미화된 미국의 서부 개척사나 유럽인의 아프리카 탐험사로 가려졌던 토착민들의 수난사는 시베리아에도 닮은꼴로 존재한다. 1992년 영국에서 출간된 뒤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베리아를 방대하게 고찰한 역작으로 손꼽히는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출판사 펴냄)가 우리말로 옮겨졌다. 영국 에버딘 대학 러시아학과장으로 재직했던 제임스 포사이스 교수가 지었다. 언어학자의 저작이지만, 시베리아 지역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자주 인용할 정도로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러시아인의 시베리아 정복사가 아니라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피정복·피착취사에 초점을 맞춘다. 번역자인 정재겸 봉우사상연구소 편집위원은 “유럽의 작고 미개한 나라였던 러시아가 어떻게 그 광활한 시베리아, 동아시아, 알래스카의 원주민을 정복하면서 오늘날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이 어떻게 오늘날 이류 국민,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시베리아는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북아시아 지역으로 넓이가 13억㎢에 이른다. 아시아 대륙의 3분의1, 러시아 영토의 77%를 차지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터전을 꾸렸던 30여개 민족은 러시아의 동화정책과 이주정책으로 주인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원주민은 시베리아 전체 인구 3200만명(1989년 기준) 가운데 불과 5%인 160만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16세기 코사크 용병인 예마르크 원정대가 비싼 담비 모피를 쫓아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동진하면서 원주민의 수난사는 시작된다. 또 러시아가 19세기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를 정복하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고르바초프 시대를 거치며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400년 동안 러시아인들은 시베리아에 착취와 수탈, 가난, 자연 환경의 파괴, 천연두 등 이전에는 없었던 질병, 보드카 등 알코올, 게으름과 불결함을 몰고 온다.

특히 레닌주의 민족 정책이 시베리아 원주민을 포함한 소수민족 세계를 ‘인도주의’와 ‘정의’로 이끌었다는 옛 소련 역사가들의 주장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도 고스란히 조명된다. 강력한 집단화 정책으로 야기된 전통 문화와 생업의 파괴, 공동체의 붕괴 과정이 원주민과 러시아인이 자연스레 동화되는 과정으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 시베리아에 있었던 한민족의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포사이스 교수는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조언한다.

시베리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베리아 원주민과 우리 민족의 관계는 유전학적인 혈연 관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유물이나 풍습, 언어, 신앙, 영웅 설화까지도 많이 닮아 있다. 시베리아는 우리 민족의 기원과 연결되는 것이다. 때문에 전통, 종교, 사회, 언어 등 시베리아 원주민에 대한 인류학적인 고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데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바이칼포럼 공동대표인 이홍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아프리카를 떠나 동아시아로 이동해온 우리 선조의 도정을 알아내기 위해 이 책은 좋은 반려가 되어 줄 것이다. 시베리아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얽혀 있는 땅이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광활한 기회의 땅”이라고 말했다. 540쪽, 3만 5000원.

 

 

 

시베리아 원주민, 그들은 어떻게 스러져갔나 [한국일보 | 2009.03.14]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제임스 포사이스 지음ㆍ정재겸 옮김/솔 발행ㆍ540쪽ㆍ3만5,000원


러시아가 시베리아 공략을 시작한 것은 짜르 이반4세 때인 16세기 말이다. 그 때까지 그 땅의 주인은 한민족과 시원(始原)을 함께하는 북방계 몽골리언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대륙 서쪽 우랄산맥에서부터 동쪽으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이 광대한 동토에서 선사 이래 아무런 통치권력이나 문명의 간섭을 받지 않고 씨족이나 부족 단위로 점점이 흩어져 자유롭게 살아왔다.

하지만 러시아가 동진하면서 이들 120여개 부족공동체 20여만명의 운명은 격랑을 타야만 했다. 영국 에버딘대학 러시아학과장을 지낸 제임스 포사이스 박사가 1992년에 펴낸 <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 > 는 시베리아 원주민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았으며, 러시아에 복속된 후 그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최초로 세계에 알린 역작이라 할 만하다.

러시아의 동진은 1581년 이반4세의 지원 아래 코사크 용병들이 우랄산맥 동남부 타타르족 거점인 시비르를 공격해 점령하면서 본격화했다. 목적은 16~17세기 러시아에 거대한 부를 안겨준 모피였다. 당시 서유럽과 비잔틴제국 등에서 최고품으로 꼽혔던 시베리아 검은담비 모피의 가격은 사냥꾼 한 명이 검은담비 몇 마리만 잡아도 생애를 편안하게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북미의 서부개척이 '골드러시'였다면, 러시아의 시베리아 공략은 '모피열병'이었던 셈이다.

시비르 점령으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첫걸음을 내디딘 러시아는 이후 코사크 용병을 앞세워 서부와 중부시베리아를 거쳐 극동의 오츠크해 연안까지, 이르는 곳마다 요새를 구축하며 종횡의 동진을 거듭했다.

과거 소련의 역사가들은 18세기까지 이어진 이 과정을 '고립되고 뒤떨어진 시베리아 원주민 공동체들을 발전해가는 러시아 국가경제 속에 편입시켜준 것'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저자는 지역별로 기껏해야 수백, 수천명씩 모여 사는 데 불과했던 원주민들이 거칠고 사나운 코사크 용병의 말발굽과 가혹한 모피착취체제 아래 힘없이 스러졌다고 고발한다.

원주민 수난사가 이 책의 모두는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스키토ㆍ시베리안 원주민의 생활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이 흥미롭게 읽힌다. 그 중에서도 투바 지역의 알타이족, 바이칼호 주변의 호리 부리야트족, 만주 및 흑룡강 지역의 여진족, 어웽키족, 나나이족 등 우리 민족과 혈연 및 문화적 연관성이 깊은 부족들의 '원초적' 생활모습은 희미한 기시감까지 느끼게 한다.

이 책을 번역한 정재겸 봉우사상연구소 편집위원은 "많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사실 한민족의 시원 연구와 잇닿아 있는 사람들"이라며 "일례로 바이칼호 부리야트족의 영웅서사시인 '게세르 칸' 신화는 천신의 아들이 하강해 인간을 구제한다는 내용으로 단군신화와의 유사성에서 관심을 모아왔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책은 러시아의 동진 시대에 이은 19, 20세기 원주민의 역사 부분에서 극동 연해주 등지 한인들의 고단했던 생활과 스탈린 체제 하에서의 강제이주 등도 서술하고 있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제임스 포사이스 지음, 정재겸 옮김, 솔, 540쪽, 3만5000원) [중앙일보] 2009.03.14


러시아에 의한 시베리아의 정복과 약탈의 역사를 다룬 책, 영국의 언어학자가 원주민들 시각에서 16세기에서 1980년대에 걸쳐 30여 공동체의 문화와 영욕을 포괄적으로 다뤘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제임스 포사이스 지음·솔, 3만5000원) [동아일보] 2009.03.14


우랄산맥에서 캄차카 반도까지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생활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들을 담아냈다. 알타이족 등에 대한 현지 원주민 연구 및 우리 민족의 시원과 고대문화의 비밀을 밝히는 데 시사점을 준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 / 제임스 포사이스 지음, 540쪽, 3만5000원, 솔 [뉴시스] 2009.03.19


우랄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러시아 영토가 '시베리아'다. 아시아 대륙의 3분의 1 크기인 시베리아는 러시아 경제와 외교에서 중요한 전략적 지역이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는 시베리아 원주민을 집중 탐구한다. 러시아인이 침입하기 전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침입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핀다.

러시아 혁명과 시베리아 내전 등이 원주민들의 삶에 미친 영향도 분석한다. 시베리아의 정복과 약탈의 역사, 그 과정을 시베리아인의 시각으로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