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으로부터 듣다④

사이박사 2009. 6. 12. 12:25

“친구들 앞에서 본명선언 하겠습니다!”
[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림혜영으로부터 듣다④
 
여성주의 저널 일다 림혜영
이름. 부모가 태어난 아이에게 여러 소원을 담아 보내는 첫 선물이기도 한 이름은 누구에게나 아주 소중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이라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의 경우 타 민족과의 구별, 즉 일본인과 구별해 우리말로 된 본명을 짓는 절차가 간단하지 않다. 본명만 지을지, 일본이름으로만 할지, 둘 다 지을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부모는 아이의 탄생에 행복해하면서도 동시에 복잡한 심경이 된다.
 
일본사회의 차별구조, 일본이름이 아니면 살아가기 어렵고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힘든 현실 앞에서 고삽(苦渋)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은 한국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일일 것이다.
 
▲ 림혜영님의 어린시절 모습
재일조선인이 택하는 방법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은, 본명이든 일본이름이든 통하는 한자를 골라 이름을 지어 필요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이다. 집밖에선 일본식으로, 안에서는 조선식으로. 그러나 부모 세대에서 뿌리 깊은 차별을 경험한 탓에, 아이는 일본사회에서 제외되지 않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나머지 아이에게 일본이름만 지어주는 경우도 많다.

 
다음으로 많은 경우가 본명은 철저히 조선식으로, 일본이름은 철저히 일본식으로, 이렇게 따로 두 가지 이름을 지어서 경우에 따라 바꿔 쓰기를 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소수지만, 아예 본명만 짓는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반면, 일본에서 나 같은 한국국적 소유자(일본 특별영주권자)나 조선적(籍)자가 상시적으로 휴대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는 외국인등록증과 각종 신분증 등 공적 서류들은 모두 다 본명으로 작성된다. 일본이름이 있는 경우는 본명 바로 옆 괄호 안에 병기된다.

 
투명인간처럼 ‘동화’되어 살아가는 재일조선인

 
언뜻 보기에는 조선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이, 일본에서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요인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에 오히려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스스로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일본어를 모어(母語)로 하는 일본어 화자로써 유창하게 일본어를 하는, 다르게 말하면 일본어밖에 못하는 대부분의 재일조선인들은 마치 ‘일본인’인 것처럼 생활에 필요한 이모저모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더더욱 우리 재일조선인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아, 더불어 사는 사회구성원으로 인식하지 않은 채 지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일본이 정말로 단일민족국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투명인간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왜곡된 인식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계속 당연시되는 악순환.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이름’이 본명이라면, 일본에서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도록 거의 강요 당하는 이름은 ‘일본이름, 통명(통칭명)’이다.

 
이 통명으로 인하여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사회에 ‘동화’되어 섞여 살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악명 높은 창씨개명을 아직까지 재일조선인들은 늘 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토록 굴욕적인 상황이 한국사회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학창시절, 이름에 얽힌 가슴 아픈 기억들

 
나의 이름은 받침 없는 일본어로는 ‘링 혜영’이 된다. 조부모가 이북 개성과 평양 출신이라서 발음을 ‘이’가 아닌 ’리’로 한 것과 상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모두 한국국적 소유자이지만, 성 발음에 ‘ㄹ’자를 사용하는 것은 월경의 흔적일까.

 
한국에서 혜영씨, 혜영, 혜영아! 라고 불리면 마냥 좋기만 하다. 거기에는 나의 이름을 둘러싼 가슴 아픈 일본에서의 기억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

 
▲ 학창시절 친구와 찍은 사진. 왼쪽이 림혜영님
벚꽃이 환하게 피는 4월, 일본에서는 새학기가 시작된다. 내가 살던 도쿄도23구에서는 공립소학교는 격년으로, 공립중학교는 매년 새로운 반으로 올라가 담임교사도 반 친구도 모두 바뀐다. 따라서 새 학기 첫날에는 새로운 반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시업식(始業式, 새 학기 첫날) 전야에는 자기 소개할 것을 생각만 해도 너무 싫어서, 이불 속에서 ‘내일 아침에 깨면 부모님이 알게끔 아프기를’ 바라며 잠을 잤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음 날 아침 건강에 이상이 있던 적은 없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어느 반인지 발표된 게시판을 확인하여 각자 자기 반 교실로 향한다. 내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담임교사가 명단을 들고 교실로 들어오면 자기소개가 시작된다. 명단은 한국의 ‘가나다 순’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식 ‘아카사타나 순’으로 되어 있다. 아카사타나하마야라와(あかさたなはまやらわ)중에서 ‘링’(림)은 ‘라’행이라서, 거의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내 소개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 가슴이 두근거려 1초라도 빨리 내 차례가 되어 이 지옥 비슷한 순간이 지나가버렸으면 하고 앉아 있었다.

 
드디어 일어서야 할 때가 왔다. 교실 뒷쪽 구석 자리에서 앞에 있는 선생님하고 반친구들에게 이제 내 이름을 소개해야 한다.

 
“…링 혜영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말끝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일본인들에게는 워낙 익숙하지 않은 발음인데 중얼거리기까지 하니 주목을 더 받게 된다. 교사도 “잘 들리지가 않는데 다시 한번 말해줄래요?”라며 내게 부탁을 한다.

 
어린 마음에 참 궁금했던 것이, 왜 담임선생님이 예전 담임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을 때 내 이름에 윗주 정도 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이렇게 마음 고생 안해도 될 텐데. 어린아이를 교육하는 교육자가 그 정도 배려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일이 중3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것은 대부분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는 사립여고를 택했다. 부모의 일 때문에 어릴 때 영어권에서 살다 온 재외국민자녀(일본에서는 귀국자녀‘帰国子女’라고 함)들이 많은 학교라서, 원래 구미(欧米)지향이 강한 일본사회에서도 특히나 그런 경향이 눈에 띠는 학교였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의 ‘혜영’이라는 이름을 발음하기 부끄럽다고 했다. (학창시절 내게는 별명이 있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왜 내 이름을 네가 부끄러워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휴대폰이 없던 당시만 해도 친구에게 할 말이 있으면 친구 집전화로 연락을 했다. 그 친구 말이, 우리 집에 전화 걸었을 때 우리 부모가 전화를 받으면 나를 바꿔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때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말하면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다. 내 이름은 ‘일반’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발음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냥 “혜영씨 있냐고 물어보면 돼”라고 아무렇지도 않는 척하며 말했다. 최선을 다한 것이다.

 
최근 와서 ‘한류 붐’ 때문에 한국 연예인 이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외워서 수다 떨고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 감격이 아닌 놀라움이 앞선다. 한국에서 온 한국인(진짜 한국인)과 오래 전부터 일본에 살며 ‘이웃’이었던 재일조선인들(경계인)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를 볼 때, 정말 가까이에 있었던 우리는 일본인들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을 새삼 통감한다.

 
본명선언의 결심을 밝히고 응원하던 친구들

 
대학에 입학하여 한국계열 동아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거기서 만난 친구 중에는 동아리에서만 본명을 사용하고 대학에서는 일본이름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는, 일본인 친구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우정이 무너지거나 차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본명으로는 채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면접까지 순조롭게 갔지만 채용조건으로 ‘일본이름 사용’을 제시하는 회사들도 꽤 있었다. 재일조선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일본사회, 즉 권력이 요구하는 대로 일본이름을 사용하고 일본인인 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힘든 차별구조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일본사회에 맞서는 일은 쉽지 않는 일이지만,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자기 마음 속에 민족심이 싹을 틔워 자발적으로 대학에서 본명선언을 하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매주 모이는 자리에서 1명, 2명, 본명선언의 결심을 밝히는 것이다. 활동을 마치고 다 같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눈물 지으며 “다음 주 우리 대학 친구들 앞에서 본명선언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장면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주적으로 그렇게 마음을 정할 때까지 남들이 헤아릴 수 없는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힘내!’’, “우리가 항상 함께한다!”고 응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 그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일본사회는 ‘한류 붐’을 통해 오랫동안 외면했던 재일조선인 문제를 과연 얼마나 직시하게 되었을까.

 
한국에 와서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일본이름 뭐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네 이름이 뭐가 돼?”라는 질문을 받을 때,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힘이 빠진다. 본명밖에 없다고 말하면 “일본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왜?”라는 식으로 거꾸로 신기해 한다. 마치 나나 우리 부모가 합리적인 사고가 결여되어 있고 처세술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다.

 
본명을 잘 지켜왔구나 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많이 못 들어 보았다. 정반대인 반응에 상처도 받았고, 이름을 일본식으로 알려달라는 요청에 대해 나는 모욕적인 창씨개명을 떠올리게 되는데 내가 느끼는 거부감과 위화감이 상대에게 의외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답답했다.

 
이렇게도 쉽게 피해의 역사를 잊어버릴 수 있다니,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의 기억력에 전율을 느낄 정도다. 그러기에 나는 더더욱 스스로 겪어온 내용을 전달하고 싶고, 끊임없이 대화하는 노력을 거듭함으로써 차별에 허덕여 온 우리 일상생활을 조국과 공유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 역사도 우리 조선반도 역사의 일부이니까.

 
남과의 구별이 차별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이어져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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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3/27 [17:33]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