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모여살이)

[스크랩]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를 막는 언론

사이박사 2007. 11. 11. 17:23
뉴스: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를 막는 언론
출처: 미디어오늘 2007.11.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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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1일 (일) 09:15   미디어오늘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를 막는 언론

[김창룡의 미디어창]중앙일보의 ‘세 군데 직장...’

[미디어오늘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현직 국세청장이 6천여만 원의 돈을 받고서도 ‘받지않았다’고 처음 부인하다가 뒤늦게 ‘상납관행’이라고 말을 바꿨다. 상납관행이라는 말은 국세청에서 이런 식의 부정한 돈거래가 오랫동안 전통처럼 이어져오고 있다는 말이다. 국세청 취임식날에도 1천만 원을 받았다고 하니 취임식날, 해외출장가는 날 등은 상납금 공식지정일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국세청장이 그렇게 돈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그 조직 전체가 그런 집단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대다수 국민은 그런 상납구조 속에 검찰에 드러난 것만 6천만원이지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이 먹었을 것이다라고 단정한다.

▲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지난 5일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정부 조직은 물론 일반 사회조직에서도 ‘부정한 돈’ ‘상납관행’이 거의 사라져간다고 믿었건만 국세청의 상납관행은 얼마나 그 고리가 단단하고 뿌리가 깊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국세청장을 내부에서 발탁한다는 것은 이런 관행을 단절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국세청에서 이런 관행은 문제있다고 내부고발자가 나왔다면 현직 국세청장이 처음으로 구속되는 국가적 수치스런 일은 막을 수 있었을텐데...그런 곳은 왜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내부고발자는 정의감의 발로에서든, 사적 불만의 표출이든 ‘왕따’를 당한다. 조직에서 버림받고 주변에서 ‘밀고자’ ‘배신자’ 취급을 한다. 이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언론마저 나서서 ‘이상한 사람’ ‘잘못된 행위’로 비난하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부정,부패를 막자는 언론이 정작 이런 구체적 행위가 나왔을 때는 ‘거꾸로 보도하기’ ‘내부고발자 인격파탄자’로 치부하기식 보도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

중앙일보 2007년 11월 7일자 “세 군데 직장 옮긴 김용철 변호사 왜 떠날 때마다 … ” 제목의 기사를 한번 보라. 삼성과 특수관계에 있는 중앙일보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한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입을 막고 ‘김 변호사 때리기’에 나선 전형적인 기사다. 이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기사가 아니고 삼성을 보호하기 위해 물타기에 나선 ‘삼성홍보성’ 작품이다. 기사를 쓴 기자도 이를 기사화한 부장, 국장도 진정으로 언론인이라면 아마 중앙일보를 떠날무렵이면 이 기사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 중앙일보 11월7일자 8면
내부고발자의 동기가 적어도 사사로운 자기불만을 표출하고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용기와 도전을 존중해줘야 한다. 한국에서 내부고발자들이 어떻게 대접받았으며 그들의 말로가 어떻게 끝났는지 언론이 더 잘 알고 있지않는가. 한국에서 내부고발자가 나온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에 가깝다. 선진국에서 내부고발자를 그 사회의 영웅으로 잡지모델 사진으로까지 내세우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대조적이다. 내부의 비밀과 불법을 내부자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고 이들의 용기있는 고발이 사회와 나라를 투명하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확신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언론마저 이렇게 내부고발자의 용기를 짓밟고 입을 막는 풍토에서 누가 감히 엄두를 내겠는가. 더구나 막강한 힘을 가진 삼성을 상대로 고백 내용 하나하나가 한국의 사법부를 유린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뭉개버리는 충격적인 것들인데...특히 이런 고백으로 자신이 사법처리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희생을 감내하는 내부고발자에게 중앙일보의 이런 보도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김 변호사는 조직을 나올 때마다 '원칙을 지키려다 탄압받아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삼성· 서정의 얘기는 좀 다르다”면서 그의 주장이 신뢰할 만한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양쪽의 주장을 중립적으로 보도하는 듯하면서도 비중은 ‘김 변호사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곳에 두고 있는 기사다.

중앙일보도 독자도 김 변호사가 고백한 삼성의 불법행태와 ‘떡값검사’ ‘30억원 재판매수 행위’ 등의 진위에 대해 현시점에서 알 수 없다. 적어도 김변호사가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충격적인 자기고백을 했을 때 그가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면 그 진위여부를 취재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검찰의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촉구해야 한다.

언론이 사회정의 수호에 나서고 국민의 알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언론 스스로 주장하지않는가. 이런 식의 보도는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독자를 배신하는 것이고 사회정의를 불법의 구조, 재벌의 논리에 함몰시키는 것이다. 내부고발자를 언론에서 먼저 단죄하는 한국사회의 투명성 지수는 얼마인가.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한국의 투명성지수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는 매년 꼴찌수준이다. 한국처럼 1인당 국민소득 2만불대에 있으면서 투명성지수가 4.9-5.1점(10점 만점)대에 머무르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잘 사는 나라 그러나 부패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패방지법으로 태어난 국가청렴위원회가 국세청 비리, 청와대 불법, 삼성 내부자 고발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형편을 보라. 국가청렴위원회가 노력을 하지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조사권도 수사권도 없는 형편에서 한계가 뻔하다는 것이다.

내부고발자를 언론이 먼저 여론재판으로 단죄한다는 것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 내부고발자를 무조건 찬양하라는 주장이 아니라 그 주장에 대해 진위여부를 취재해야 하고 취재가 되지않는다면 검찰의 수사를 촉구해야 한다. 국회 법사위에서 김 변호사의 진술을 듣겠다는 행위를 저지시키는 행태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면서 약자를 때리는 행위는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리는 반저널리즘적 행위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부패구조, 상납관행, 재벌의 횡포는 하루아침에 바뀌지않을 것이다. 당장 벌어지는 이런 구체적 사건에 대해 언론이 보여주는 행태가 바뀌지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미리 실망할 필요도 없다. 미래는 미래에 맡기고 지금 이 시간, 이 사건에 보다 충실하고 정직해지자.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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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cykim200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