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슬기맑힘,뜻매김),말글책/책걸림

요코이야기_번역문제

사이박사 2007. 1. 31. 07:50
[별첨 4]

“번역이 왜곡 혹은 순화되었다”고 의혹을 제기한 부분과

검토 과정에서 망설였던 부분(한국인이 일본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장면)의

번역문/원문 비교




한글판의 번역이 ‘왜곡투성이’라는 주장에 대한 번역자 윤현주씨의 답변

“국가나 민족이라는 거대한 단위의 틀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개인, 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거대단위가 일으키는 소용돌이 속에서 무력한 개인들을 만나게 되고, 이런 삶의 비애를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제 안의 질문이 이 책을 번역하게 된 동기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청소년들과 이런 질문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전쟁의 광기는 결국 피아 모두를 그 광기의 피해자로 만드니까요. 이런 마음으로 번역에 임했기 때문에 ‘영어판의 신랄한 묘사를 누그러뜨리면서 한국인들의 반감을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굳이 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전쟁을 고발하고자 하는 어느 작품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인 오역이나 누락은 결코 없었다고 말씀드립니다.”


1. p.17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본”에 관하여

조선의 북동쪽에 살고 있었지만, 우리는 일본인이었다. 기억에 없는 내 나라 일본은 사 년 간이나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Though we lived in northeastern Korea, we were Japanese. My country, Japan, which I had never seen had been fighting America and Britain for four years. (원서 p.2)

*당시에 이 부분에 관해 저자에게 물었을 때, 저자는 자신이 아주 아기였을 때 일본을 떠나온 바람에 본 적이 없다고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분명히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번역해야 하는 저로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읽힐 거라는 판단 하에 “본 적이 없는” 보다는 ‘기억에 없는’이 더 나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자에게 이렇게 번역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저자 역시 그게 더 좋겠다고 동의해서 이렇게 옮기게 되었습니다.


2. p.38~39 요카렌을 학도병으로 번역한 것에 관하여

어느 날 저녁 오빠가 어머니에게 자기 결심을 털어놓았다. 자신도 학도병으로 자원하겠다는 것이었다.

One night Hideyo told mother he had made a decision: to join Yokaren, the student army. (원서 p.16)


3. p.40

“지금 우리나라는 젊은 군인들을 한 명이라도 더 필요로 합니다.”

드디어 어머니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진주만을 공격한 건 하나도 잘한 짓이 아니야. 우리 정부가 내렸던 이 결정에는 아버지도 동의하지 않으신다.”

어머니의 음성이 점점 더 떨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있잖니. 평화라든지, 사랑, 행복 같은 것들 말이다. 남편이나 아들을 잃느니, 차라리 우리나라가 지는 걸 보는 편이 낫겠다.”

마침내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Our country needs young soldiers."

Mother became more angry.

"This Tojo government attacking Pearl Harbor to start the war was bad enough. Your father disagrees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Mother's voice began to shake.

"The government has been taking away everything we have-peace, love, happiness. I would rather see our country lose the war than lose my husband and son!" She burst into tears. (원서 p.17)


4. p.52~53

“점점 강 쪽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나는 어머니 쪽으로 몸을 더 바짝 붙였다. 어머니는 나를 꼭 감싸안았다. 가슴이 두근두근 사정없이 방망이질을 쳤다.

한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빠른 물살 소리가 남자의 말을 삼켜버리긴 했지만, 행진 소리는 차츰차츰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조선말로 커다랗게 구령을 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둘, 셋, 넷!”

그들은 우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너무도 무서워 옴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조선인들이 틀림없어. 반일 공산군 말야.”

언니가 속삭였다.

그때 또 한 번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 모두 뛰어서 강변으로 달려간다. 이제부터 적들을 죽이는 연습을 할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적이란 일본인이 틀림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강둑을 달려가는 군인들의 발걸음 소리가 쿵쿵거리며 울렸다. 나는 바들바들 떨었고, 나를 세게 끌어안고 있던 어머니의 팔도 몹시 떨리고 있었다.

우리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대장인 듯한 사람이 ‘적들’을 칼로 찌르는 기술, 자신을 방어하는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체를 끌고 가서 강물이나 도랑 속으로 처넣는 요령에 대해서도.

"They're coming toward the river."

I moved toward Mother and she put her arm around me and pulled me close. My heart was thumping.

I heard a man's shout. The swift-running river drowned his words, but then they came nearer. one, two, three, four!" The vigorous voice was shouting in the Korean language. one, two, three, four!"

They were close to us. I did not dare move an inch.

"They must be Koreans, from the Anti-Japanese Communist Army," Ko whispered.

The voice was shouting again. "Stop! All run to the river field. We are about to practice killing our enemies!"

They mean us, I thought, the Japanese.

There was the thudding of feet as the troop ran down the bank. I could not stop shaking, and Mother's arms, holding me tightly, trembled.

Very close to us the troop commander was explaining how to stab "the enemies" and how to defend themselves. And how to drag bodies into the river of into trenches.

(원서 p.24)


5. p.91~92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고 주섬주섬 식기들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인민군 군복을 입은 군인 세 명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일어서!”

한 군인이 소리쳤다. 그가 기관총을 우리 앞에 들이댔다.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후들거려 간신히 일어섰다. 나는 어머니에게로 좀더 다가갔다.

“움직이지 마!”

군인들이 소리쳤다.

입 안이 마르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거기 있는 것들은 다 뭐야?”

북쪽 사투리를 쓰며 언니가 대답했다.

“우리 소지품들이야요.”

군인들이 일제히 언니를 쳐다보았다.

“너는 몇 살이냐?”

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데리고 놀기에 적당히 자란 것 같은데.”

첫번째 군인이 말했다.

“짐들 거기다 다 놔두고……”

그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비행기 한 대가 우리 머리 위를 휙 쓸며 지나갔다. 그 즉시 우리는 평소 훈련받은 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We're putting our cooking utensils away when suddenly, from nowhere, three soldiers in Korean Communist uniforms stood before us. We froze.

"Stand up!" yelled one of the soldiers. He was pointing a machine gun at us. The other two did the same. We stood. I moved closer to Mother.

"Don't move!" they screamed.

My mouth went dry. My knees hardly held me.

"What have you got there?"

"Our belongings," Ko said in the northern Korean accent.

All three soldiers were looking at Ko. "How old are you?"

She did not answer.

"The right size to have fun with tonight," said the first soldier. "Leave all your belo-"

A plane swept above our heads and instantly we three, well trained, flattened ourselves. (원서 p.48)


6. p.104~109

“아니, 이럴 수가!”

오빠가 외쳤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현관 문 역시 열린 채였다. 다들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어머니!”

오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인민군들이 왔었던 거야.”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을 살펴본 마코토가 말했다.

“나도 우리 집으로 가봐야겠어!”

불안한 목소리로 신조가 말했다.

“그럼 나중에 쇼이치네 집에서 만나자!”

달려나가는 친구들의 등뒤에 대고 오빠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엉망진창으로 약탈당한 집을 보고 오빠는 할 말을 잃었다. 우선 방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거실에 걸어둔 두루마리 족자는 칼에 찢겨 너덜거리고 있었다. 옷장 문은 열린 채였고, 옷들을 함부로 끄집어낸 흔적이 보였다. 털외투, 모자, 동생들의 토시들은 이미 도둑맞은 뒤였다. 어린아이용 털외투 하나만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중략)

마코토와 신조는 벌써 와 있었다. 마코토가 흐느끼고 있었다. 신조와 쇼이치의 부모님은 친척들이 살고 있는 남쪽으로 피란을 떠난 뒤였으나, 마코토의 늙은 부모님이 죽은 것이다. 외아들이었던 그는 이제 갈 곳도 없었다.

“친척도 없니?”

오빠가 물었다.

“조선에는 없어. 너랑 같이 가는 게 좋겠어. 여기는 지금 일본인들을 다 죽이고 있잖아. 너무 무서워.”

훌쩍거리면서 마코토가 말했다.

“그래, 그러자. 근데 일본 교복을 입고는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다들 막막한 표정이 되어 서로 바라보았다.

“어떡해야 좋을까?”

마코토는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What the hell" yelled Hideyo. The main entrance door had been burst open. The service entrance door stood wide. They rushed into the house.

"Mother!" Hideyo called.

Makoto surveyed the desolation before them. "The Korean Communist troops have been here," he said.

"I'm going to my house!" Shinzo cried.

"Let's meet at Shoichi's house later," Hideyo called after them.

He was shocked at the ransacking of his home. He examined the rooms carefully. The hanging scroll painting in the receiving room had been slashed to pieces. Closet doors stood open, their contents pulled out. Fur coats, hats, and his sisters' muffs had been stolen, except for a tiny fur coat lying on the floor.

(중략)

Makoto and Shinzo were already at Shoichi's. Makoto was sobbing. Shinzo's and Shoichi's parents had fled south, where their relatives lived, but Makoto's aged parents were dead. An only child, he had no place to go. "Don't you have any relatives at all?" Hideyo asked.

"Not in Korea." Makoto sniffed back tears. "I want to go with you. They are killing Japanese. I am scared."

"You can," said Hideyo. "But we cannot flee from this town in Japanese students' cloths."

They looked at each other. "What are we going to do?" asked Makoto, still crying.

(원서 p.57~60)


7. p.127~128

사방을 헤매던 언니의 눈앞에 옥수수밭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다. 생각지도 못한 음식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언니가 옥수수 몇 단을 막 뽑아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옥수수밭 주인이 나타나 언니를 붙잡았다. 그는 언니에게 일본말로 욕을 해대며 옥수수들을 다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조선말을 능숙하게 할 줄 알았던 언니는, 자기는 일본 사람이 아니라고 둘러댔다. 어머니와 동생이 굶주리고 있으며, 게다가 동생은 부상을 당해 아파하고 있다고 울먹거렸다.

“일본 경찰이 나남에서부터 우리를 쫓아오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 서울에 있는 친척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몇 날 며칠을 굶은 채로요.”

농부는 언니에게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었다.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머리를 박박 밀어주었노라고 언니가 대답했다.

그는 일본인을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채소를 훔쳐가는 도둑을 잡기 위해 그러잖아도 마침 망을 보고 있던 중이라 했다. 일본이 전쟁에 지는 날은 참 경사스러운 날이 될 거라고 말하면서 농부는 땅에다 침을 퉤 뱉었다. 언니더러 우물물을 길어 물통을 채워가라고 했다. 잘 익은 토마토와 옥수수를 가득 채운 삼베자루도 하나 건네주었다.

언니가 숨 가쁘게 이야기를 다 마쳤다. 그러자 어머니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가 그토록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She had looked for a stream and found a cornfield. All she thought of was bringing an armful of corn to surprise Mother and me. Then the Korean farmer caught her. He called her a damned Japanese and told her to drop the corn.

Ko, in her perfect Korean, had denied she was Japanese. She had told him her little sister was wounded, that her mother was with her. "The Japanese army police chased us away from Nanam," she told him, "and we are heading for relatives in Seoul. We are starving."

He asked whether she was a boy or a girl and she told him about Mother shaving her head.

The man hated the Japanese. He had been lying in wait for thieves who stole his vegetables. It would be a great day, he said, when they lost the war, and he spat on the ground.

Then he let Ko fill the canteens at his well, picked ripe tomatoes for her, and gave her a burlap sack to fill with corn.

Mother gave a deep sigh when Ko's story was finished. She had never expected Ko to become a liar and robber. (원서 p.71~72)


8. p.144~145

오 주째 서울에 머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겁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달려온 언니가 소리쳤다.

“서울을 떠나야겠어요, 어머니. 조선 남자들 여러 명이 숲으로 여자들을 끌고 갔어요. 거기서 한 여자애가 강간당하는 걸 봤어요.”

언니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여자애들이 일본말로 막 고함을 질렀어요. 제발 좀 도와달라고요. 너무 무서워요, 어머니. 머리카락을 좀더 짧게 깎아야겠어요.”

어머니는 우리를 강가로 데려가 머리카락을 다시 밀어주었다. 한때 다케다 선생님이 내 가슴을 싸매는 데 썼던 붕대로 언니의 가슴을 꽁꽁 싸맸다. 언니는 이전보다 더 남자애 같아 보였다. 날씨가 추워져서 군복도 꺼내 다시 입었다.

We had been in Seoul for five weeks when one day Ko brought a warning. "We must get out of Seoul. I saw several Korean men dragging girls to the thicket and I saw one man raping a young girl." Ko was shivering. "The girls were screaming for help in Japanese. Will you shave my hair again now?"

At the river Mother shaved both our heads. Then she bound Ko's breasts tightly with the long cloth Dr. Takeda had used to wrap my chest, so that she would look even more like a boy. We all put on our filthy uniforms, protection against the chilly autumn air. (원서 p.82)


9. p.151

이번에도 언니가 귀퉁이 자리를 하나 찾아냈다. 콘크리트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누웠더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게 잘 수도 없었다. 누워 있는 나를 본 한 남자가 어머니에게 고함을 질러댄 것이다. 자기도 자리가 필요하니 나를 일으켜 앉히라는 말이었다. 딸아이가 몹시 아프니 좀 이해해달라고 어머니가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남자는 어머니의 말에 콧방귀만 뀌며 점점 기세등등하게 굴었다. 어머니에게 바싹 다가온 남자가 어머니의 목을 조르려는 듯 보였다. 순간 나는 남자의 다리를 힘껏 붙들었다. 그 바람에 남자가 벌러덩 넘어졌다. 분통이 터진 남자가 뭔가 상스러운 욕을 내뱉더니 내 쪽으로 험악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어머니가 남자의 가슴 쪽으로 칼을 들이미는 것이 보였다.

“그애를 건드리기만 해봐!”

무섭도록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어머니가 말했다. 그제야 남자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돌아서 갔다.

Again it was Ko who found a corner, and I put my blanket on the concrete floor and fell asleep. But I was not allowed to sleep long. A man was yelling at me, telling me to sit up and make room for him. Mother told him I was ill but he looked about to choke her. At that, I grabbed his legs and he fell. Angrier than ever, he got up and came toward me, threatening.

Then I saw Mother, the sword blade pointing at his chest. "Try and touch her!" she said in a low voice. And the man went away. (원서 p.86)


10. p.152~155

그 건물의 끝 부분에는 여섯 개의 칸막이 화장실이 있었다. 그러나 문도 달려 있지 않은데다 여자용, 남자용으로 구분되어 있지도 않았다. 우리 앞에 서 있던 한 여자가 몹시 당황해하면서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쭈그려 앉았다. 그 여자 쪽을 보지 않으려고 나도 딴 데로 눈을 돌렸다. 그때 어머니가 앞으로 나서더니 여자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몸을 가려주었다. 잠시 후 그 젊은 여자가 나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조금 전의 그 여자가 줄 끄트머리쯤에서 네 명의 남자에게 붙잡혀 있었다. 제발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여자가 울부짖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우리 자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 언니가 자기도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입술이 창백해 보였다.

“가슴의 끈은 단단히 묶여 있니?”

어머니가 물었다.

“코야, 너도 이제부터는 남자들처럼 서서 소변을 봐라.”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남자애들처럼 서서 소변을 봐야 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몸은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던 옷도 다 젖어버리곤 했으니까. 그러나 그 덕분에 안전하게 지낼 수는 있었다.

악몽 같은 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번은 해방을 자축해 마신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 조선 남자 몇 명이 우리를 빙 둘러쌌다. 한 남자가 앞뒤로 몸을 비틀거리면서 언니를 붙잡고 늘어졌다.

“야, 너 남자야, 여자야?”

언니가 대답했다.

“남자예요.”

“여자 목소리처럼 들리는데. 어디 한번 만져보자.”

언니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만져봐요.”

나는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 제발 누군가 달려와서 우리를 좀 구해주었으면. 제발.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젊은 여자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혹시 조선 사람들을 더 화나게 만들면, 창고와 창고 안의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몽땅 불태울지도 모른다고 겁을 냈기 때문이었다. 조선인들은 수십 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이제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한 남자가 언니의 가슴에 커다란 손을 집어넣었다.

“밋밋하잖아. 사내놈들은 흥미없어.”

남자들은 다시 사람들 틈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자기들을 만족시킬 만한 여자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누구라도 하나 눈에 띄면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귀를 찢을 듯한 여자들의 비명이 허공에 메아리쳤다.

(중략)

물이 졸졸 흐르는 작은 냇가를 지나게 되었다. 물을 좀 마실까 하고 발길을 멈추는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잡초더미 안쪽에서 한 남자가 소녀의 몸을 덮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들은 소리는 남자를 떨쳐내려고 거칠게 발길질을 하던 여자가 질러댄 것이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나는 머리에 인 배낭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어머니와 언니가 있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There were six toilets at the end of the building for us to squat on, but no doors and no separate toilets for men and woman. A woman ahead of us, embarrassed, pulled down her trousers and panty and squatted, and I tried not to look at her. Then Mother went and stood in front of her, and I saw the young woman come out. In a moment she screamed for help. I turned to see that she had been seized by four men at the end of our line. There was nothing we could do.

When we got back to our space Ko wanted to go. Mother's lips were pale. "Is the wrapper around your breasts tights?" she asked. "Ko, you must do it the way boys do."

From then on we did it the way boys do. It was awful. We were wet and our clothes were wet. But we were safer.

That day was a nightmare. Drunken Koreans, celebrating their independence, were all around us. one who swayed back and forth demanded of Ko, "Are you a boy or a girl?"

"A boy," she answered.

"You sound like a girl. Let me feel."

"Go ahead," Ko said.

How I prayed someone would come to rescue us. No one was trying to help young women, for they knew that if they made the Koreans even angrier they might burn down this warehouse and the people in it. The Koreans were free of the Japanese Empire after all those years. The drunken man put his large hand on Ko's chest. "Flat," he said. "Boys are no fun."

The group of men left us but they staggered among the people, hunting maidens for their pleasure, and whenever they found one they dragged her outside. Women's shrieks echoed.

At a small stream I stopped to drink and I heard a cry. In the weeds was a Korean man on top of a girl. She was kicking wildly and screaming. My knees began to shake, and, holding my sack on my head with both hands, I walked as fast as I could to Ko and Mother. (원서 p.86~87)


11. p.163~164

갑자기 잠이 깼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사람의 목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오빠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선말로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였다. 담요와 배낭을 나무 사이로 얼른 밀어넣고 털외투로 머리를 덮었다. 제발 자기를 동물로 착각해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모닥불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워서 멀리 도망치지는 못했을 거야.”

발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손전등 빛이 너무 환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인민군들이 산 속을 정찰하고 있구나. 몇 명이나 될까?’

오빠는 주머니에서 살며시 칼을 꺼냈다.

여기저기를 살피는 발소리가 부산스레 움직였다. 오빠의 심장도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두워서야…… 더이상 찾아봐도 소용없겠는걸.”

조금 전에 말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일단 부대로 돌아가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나와보지요.”

또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어쨌든 오늘은 포로들을 많이 잡았으니까요.”

“몇 놈이나 잡았는데요?”

처음 듣는 목소리가 물었다.

“열여섯 놈. 일곱은 일본 놈들이고, 나머지는 반공주의자들.”

손전등 불빛은 여전히 원을 그리면서 오빠가 숨어 있는 나무 쪽을 여러 번 스치고 갔다. 불빛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손에 주머니칼을 단단히 쥔 채 싸울 준비를 하면서 오빠는 바짝 긴장했다.

Suddenly he awoke. In complete darkness he sat up and listened. There were human voices mingling with the wind and coming toward him. Speaking Korean. Hideyo pushed his blanket and rucksack into the trees and covered his head with the fur coat, hoping he looked like an animal.

"The campfire was still warm," a voice said. "The escapee cannot have gone too far in the dark." The footsteps came nearer and nearer, and a powerful flashlight blinded Hideyo. Korean Communist Army, he thought, patrolling the mountain. How many? Silently he pulled his jackknife from his pocket.

The searching footsteps went this way and that. Hideyo's heartbeats went faster and louder.

"Not much use looking in the dark," said the same voice.

"Let's go back to the squadron and patrol early in the morning," said another voice. "Anyhow, we've caught more than enough today."

"How many?" a different voice asked.

"Sixteen. Seven Japs, the others Communist resisters."

The flashlight was still circling and several times aimed at the tree where Hideyo was hiding. It came closer. Hideyo shrank behind the tree, still holding his jackknife in his right hand, prepared. (원서 p.93~94)


12. p.165~167

그런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기관총 소리가 터져나왔다. 걷고 있는 사람들을 겨냥해 위에서 쏘아대는 소리였다. 오빠는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다 몸을 돌려 다시 낭떠러지 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도 그쪽이었다.

‘덫을 놓고 기다렸던 거야! 나쁜 놈들, 나쁜 놈들!’

이런 울부짖음이 터져나오려고 했다.

공터는 점차 덤불로 이어졌다. 길도 없었다. 덤불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철로 아래쪽은 아수라장이었다. 오빠가 있는 곳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진 곳보다 좀 위쪽인 것 같았다. 사람들을 살펴보기 위해 밑으로 내려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 죽었어.”

인민군들의 목소리가 오빠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자, 짐보따리를 뒤져봐.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챙기라고.”

또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옷을 다 벗겨버려. 금니를 하고 있는 놈이 있으면 이도 다 뽑아버리고.”

오빠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옷을 다 벗겼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군인들은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숨을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오빠는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수풀이 우거진 곳도 없었다. 있다 해도 그쪽으로 달려가는 도중에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소나무 한 그루만 빼고는 숨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도 없었다.

‘차라리 죽은 척하고 있어볼까?’

그러나 만일 그랬다가는 군인들이 오빠의 옷을 벗기고 금니며 예금통장이며 다 훔쳐갈 것이 뻔했다.

Suddenly machine gun shots burst in the air beyond where the people were walking. Hideyo froze. Then he ran back up the cliff and headed in the direction of the shots. They trapped those people! Damn, damn, damn! He spoke to himself.

The clearing became woods. No path, but he pushed through.

There was commotion on the tracks below. He seemed to be above the spot where the people had been shot, but he did not dare go down the cliff to look.

"All dead." The voice speaking Koran came up to him.

"Check their belongings. Take all valuables," said another voices. "Strip the bodies. If they have gold fillings, pull out their teeth."

Hideyo was shaking. He waited.

"All stripped," a voice shouted.

The soldiers were climbing the cliff, and he looked frantically around for a hiding place. There was no thicket, and they would see him if he ran for shelter. Except for one tall pine, the trees were not large enough to hide him. Shall I play dead? he thought. Then they would strip him, pull out his gold-filled tooth, and take the savings book. (원서 p.95~96)


13. p.278~279

갑자기 허공으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총소리는 수천 갈래로 메아리치면서 퍼져나갔다. 자기를 겨냥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탈출자들에게 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야생 동물을 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불빛이 다시 오빠가 있는 곳을 훑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깊이 잠수해서 나아갔다. 강기슭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거센 물살이 오빠를 자꾸 하류 쪽으로 밀어내는데다, 계속 잠수를 해야 하는 바람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또다시 총이 불을 내뿜었다. 한 발이 오빠의 머리 위에 얹힌 보따리를 뚫고 지나면서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 뒤를 잇달아 주변의 물살 위로 총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는 더욱더 깊이 잠수하여 물살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후 다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강 건너편 기슭에 도착했다. 불빛이 다시 비췄을 때는 마치 시체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잠시 후 나무 덤불을 찾아 기어올라갔다. 그곳에서 마침내 지친 몸을 쭉 뻗을 수 있었다.

Gunfire burst in the air, echoing in a thousand directions. Hideyo did not know whether it was aimed at him, at some other escapees, or at wild animals. The light swept over him again and he submerged deeper. He could see the shore not far from him, but the current kept pushing him downstream and so many submerging slowed him.

Again gunfire. A bullet hit the bag on Hideyo's head and dropped to the surface. He could hear the bullets piercing the waters all around him. He dove deeper and let the current carry him. Then he swam again. When he finally reached the south side he lay as dead when the light shone his way, then crawled toward the bushes, exhausted.

(원서 p.16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