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일의 뉴스공감 ◈
2024년 7월 18일 목요일
● 방송시간 : 7월 18일 목 저녁 6시25분~55분 (30분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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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 목요일 - 내일] (18:25~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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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오늘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입니다.
목요일 공감 칼럼, 박상준 sf 평론가 나오셨고요 -안녕하세요?
그리고 특별한 초대손님 한 분 모셨습니다.
<AI 몸피로봇, 로댕>이라는 sf 소설을 쓰신 숙명여대 구연상 교수님, 안녕하세요?
1. 간단히 소개를 드리자면, 구연상 교수님은 하이데거를 전공하신 철학자이십니다. 그런데 철학 교수님이 어떻게 sf 소설을? 혹시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철학자’ 이런 경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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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 음식에 빗대어 말하자면,
철학은 ‘먹기 힘든 샌드위치’와 같고,
과학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만두’와 같으며,
소설은 ‘먹기도 쉽고, 그 속까지 속속들이 드러나 있는 비빔밥’과 같다고 봅니다.
철학은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끝맺을 때 가끔 필요한 법인데, 한 입 물어뜯어도 그 속에 든 게 너무 딱딱하거나 쇠심줄처럼 질겨 잘 씹히지도 않고, 맛도 없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기도 나쁜 샌드위치 같이 공부해도 그 뜻을 알기 힘들고,
과학은 먹기 좋은 만두와 같지만, 그 속에 든 내용이 너무 복잡해 삼키면 즉시 소화불량에 걸리기 쉽지요. 과학의 발견물이나 기술의 발명품은 단순하고 감탄을 자아내지만, 과학이 요구하는 수학 공식이나 관찰 그리고 실험의 엄밀성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요.
하지만 소설은 철학과 과학을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 속에 한데 아우른 비빔밥과 같습니다. 저는 철학과 과학 그리고 소설이 사람의 삶의 의미를 밝혀낼 수 있는 삼체(三體)와 같아서 그 셋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ᄉᆞ)]
(비유 대신 제 말로 말하자면, 철학은 뜻매김의 학문이고, 과학은 증명된 앎을 짜나가는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만일 누군가, 보기컨대, ‘AI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면, 철학자는 AI에 대한 뜻매김을 시도할 테고, 과학자는 AI의 제작 원리를 증명하려 할 것이지만, 소설가는 AI에 대한 뜻매김을 바탕으로 AI의 제작 원리를 설명할 뿐 아니라, AI가 우리 현실에 출현했을 때 벌어질 일들까지 모두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낼 것’입니다.)(ᄉ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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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르고 보면 과학자가 쓴 책 같습니다. .
AI를 구성하는 데이터 알고리즘, 생물학적 뉴런 칩 배양, 양자컴퓨터 원리까지... 박상준 평론가께서는 어떻게 읽으셨어요?
2. 그래서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이냐? 줄거리의 뼈대를 말씀드리면, 주인공인 우빈나 박사는 철학잡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목 아래로는 모두 마비된 전신불수가 되는데요. 이때 자신이 참여했던 AI 로봇 프로젝트의 로봇 ‘로댕’을 사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느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가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고 하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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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의 핵심 주제는 ‘AI 로봇’이라기보다 윤리(倫理)입니다. 윤리는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社會)[=모아리]에서 함께 모여살이를 할 때 지켜야 할 원리를 말합니다.
만일 아들딸이 돌봄이 필요한 자신의 어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윤리적인 일, 아니 패륜(悖倫)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초고령 사회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고, 이미 다사사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가 약자 돌봄의 의무를 저버리는 사회를 매정한 사회, 비윤리적 사회, 또는 패륜 사회라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사회적 돌봄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제 소설은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GI 돌봄로봇’을 도입한다는 가정 아래 우리가 이러한 몸피로봇 로댕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고, 그러한 람봇[=사람 로봇]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등의 완전히 새로운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ᄉ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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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원 만난 ‘살아있는 나무’ 같았던 할머니
- 2026년부터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수가 전체 인구의 25%를 넘는다.
- 가족의 돌봄을 받을 수 없다면, 사회적 돌봄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 로댕은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 서비스를 스스로 알아서 제공하는 몸피 로봇.
3. 몸피? 몸피가 뭐지? 이런 분들 많으실 것 같아요. 몸피가 뭔지 알려면
우선 교수님의 호부터 알아야 하는데요. 우박 구연상. ‘우박’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박은 아닐 테고... 무슨 뜻인가요?
- 우리말 뜻매김, 바로 쓰기 박사의 줄임말
-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소개.
- 몸피란? 몸소란?
↳ 갑옷처럼 사람의 몸 전체를 감싸는 로봇이라면, 아이언맨이 입는 로봇 슈트를 상상하면 될까요?
- ‘몸피로봇’이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자의 몸이 되어 주는 일종의 외골격 로봇. 우주복처럼 입어 자신의 몸에 찰 수 있고, 거꾸로 풀어 벗을 수도 있다. 겉모습은 아이언맨과 비슷하지만, 그 작동방식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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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박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싸락눈보다 그 얼음덩어리가 큰 얼음비를 말하는데, 삼국사기에는 매실 크기, 밤톨 크기, 달걀 크기, 사람 주먹 크기 등의 우박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박은 식물이 자라기 시작하는 초봄과 열매를 거둘 늦가을에 많이 떨어져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거나 고라니·사슴·까마귀·참새 참새 등을 죽이는 ‘하얀 재앙’으로도 불리지만, 역사적으로 통치자에게 ‘경종을 우리는 하늘의 메시지’, 조선시대 한자숭배와 현재의 영어광풍을 방치한다면 결국 한국말이 학문어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는 경고(警告)의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우박의 두 번째 뜻은 ‘우리말다움 박사’의 줄임말로서 ‘우리말다운 우리말로 뜻매김을 해낼 줄 아는 박사’입니다.
보기컨대, 기억(記憶)이라는 한자 우리말은 ‘바르게 적어 추억한다’, 즉 ‘돌이켜 떠올린다’는 뜻이고, 기억의 영어 낱말 메모리(memory)는 ‘노랫말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일’이라는 뜻인데, 이 두 낱말은 사람의 실제 기억 현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합니다. 하여 저는 저 두 낱말의 본디 뜻을 파헤칠 뿐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실제 기억 현상을 설명한 뒤 ‘아로새김’이라는 우리말로 새롭게 뜻매김하는 것과 같은 연구를 해 오고 있습니다.(ᄉᆞ)]
[⇒ ‘몸피’라는 말은 ‘몸의 부피’로서 사람의 몸을 감싸는 껍데기를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우리말로 몸집과 몸통이 있느데, 몸집은 몸이 들어가 움직이는 집이라는 뜻이고, 몸통은 가슴과 배를 싸잡아 일컫는 말로서 심장이나 창자가 들어 있는 용기를 뜻합니다. ‘몸소’라는 말은 ‘몸이 놓이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은소는 은이 나는 곳을, 금소는 금이 나는 곳을 뜻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우빈나 박사는 몸피로봇 로댕의 몸소로서 로댕을 마치 갑옷처럼 ‘입차’하거나 ‘풀벗’할 수 있습니다. ‘입차’는 몸소가 몸피로봇을 입어 차서 한 몸을 이루는 일을 말하고, ‘풀벗’은 몸소가 람봇과 분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몸소 우 박사가 몸피로봇 로댕과 ‘둘한몸’을 이루면 전신마비 환자였던 그가 자신의 손발과 몸을 제 맘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몸피로봇은 사람의 신경과 직접 연결된 우주복 형태의 외골격로봇으로 볼 수도 있지만, 외골격로봇은 골격의 강화를 목적으로 설계되지만, 몸피로봇은 일상 생활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됩니다.(ᄉ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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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로봇입니다. sf 박사이신 박상준 평론가께 묻고 싶어요. 책에 보면 몸피 로봇의 각 부위를 설명한 설계도가 있잖아요. 이런 로봇 보신 적 있으신가요? 기술적으로 이런 로봇이 가능할까요?
- 솔리토닉스 ai 컴퓨터, 뇌파감지빨판, 시냅스 SQL 커넥터, 근육섬유, 눈(카메라) 귀(마이크) 입(스피커) 코(냄새분자포집틀) 등등... 기술적인 면에서 가장 놀랍고 신선했던 것은?
- 가장 큰 어려움은 배터리 문제였을 것.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의 가슴에 아크 원자로라는 무한의 에너지원을 장착했다. 그럼 로댕은?
- 로댕이 계속 움직이려면 전기 배터리도 자기 몸통만큼 크거나, 아니면 계속 충전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로댕의 설계자들은 로댕의 컴퓨팅 단위를 일렉트론에서 솔리톤 입자로 바꿨다.
↳ 교수님, 이런 기술적인 아이디어들은 교수님이 직접 상상하신 건가요, 아니면 논문이라도 샅샅이 뒤지신 결과인가요?
- ‘솔리토닉 컴퓨팅’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 염한웅 단장에 의해 제안된 이론. ‘솔리토닉 컴퓨팅’은 에너지 손실이 제로이기에 한번 충전으로 영원히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를 4진법정보(0·1·2·3)로써 처리하기에 속도와 정확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 로봇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내는 엑튜에이터를 ‘근육옷감’으로 바꾸는 아이디어는 한국기계연구원 박철훈 박사팀의 연구. 이 옷감은 형상기억합금으로 짜인 것으로 아주 작은 전류만 흘러도 즉시 오그라들고, 냉각되는 순간 즉시 이완되는 성질을 갖는다.
[⇒ 저는 SF(Science Fiction), 즉 과학 소설(小說)을 ‘과학적[=올바른] 앎’과 거기에 기초한 기술적 제작(製作)을 전제로 한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관한 이야기, 짧게 말해, 삶에 관한 문제들을 과학적 원리에 근거해 풀어내는 이야기로서 뜻매김합니다.
작가는 이야기 실로써 옷감을 짜고, 그것으로 옷을 짜며, 옷을 입고 삶의 일을 하고, 그 일의 일어남의 처음과 끝을 말과 글로써 이어나갑니다. 이야기는, 서양철학의 분류에 따라 말씀 드리자면, 뮈토스, 히스토리아, 로고스 세 가지가 있습니다.
뮈토스는 흔히 신화(神話)라고 번역되지만, 그 근본 뜻은 ‘처음의 처음과 끝의 끝’에 관한 이야기, 달리 말해, 밑도 끝도 없는, 시원이나 종말에 관한 이야기이고, 히스토리아는 역사(歷史)로서 사실들의 흐름을 기록한 이야기이며, 마지막으로 로고스는 어떤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따져 밝히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과학 소설은 특정 사실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학적 앎에 기초해 꾸며낸 사실들로써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ᄉᆞ)]
5.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하고 사람을 돌보고, 사람과 인격적 관계도 가능한 로봇인데, 딱 한 가지, 없는 게 있습니다. 바로 얼굴인데요.
책 표지에도 부체처럼 적혀 있어요. <AI 몸피로봇, 로댕> -얼굴이 없어야 하는 이유. 로댕에게 얼굴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 사람에게 얼굴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 얼굴은 인류가 이 지구 생존의 과정에서 스스로 갈고 닦아온 종적인 특성이다. 기계 생명체인 로봇이 사람의 얼굴을 달게 된다면, 로봇은 감정이입의 능력을 얻게 되어 사람의 마음에 감정과 정서의 자기장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것으로 사람을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 인류가 로봇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로봇에게 사람의 얼굴을 다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 외모지상주의니 루키즘(Lookism)이라는 말은 “예쁘면 모든 게 다 된다.”라는 가치관을 담고 있는데, 이는 얼굴과 몸매 그리고 어떤 신체적 매력이 사람의 가장 고유한 가치로 인정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얼굴의 아름다움은 타고나기도 해야 하지만, 스스로 쉼없이 갈고 닦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사들일 수 있는 부자도 아름다운 사람을 돈으로 사서 물건처럼 소유할 수는 없지요. 외모가 능력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호모 사피엔스가 2백만 년 동안 격변의 지구 변화를 이기며 진화를 거듭해 온 결과로 획득한 ‘고유의 승리관’입니다. 특히 사람의 얼굴은 사회성, 제 말로 말하자면, 모여살이의 산물입니다. 이는 누구를 친구로 환대할 것이며, 누구를 적으로 물리쳐야 할지를 빠르게 소통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진화한 것입니다. 야생에서 쥐을 알아채는 고양이의 반응속도가 0.05만 더 빨랐어도 쥐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겁니다.
만일 다음사람들이 임신에서 육아, 교육, 집안일, 공장,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의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있는 AGI 람봇[사람로봇]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에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들은 출산로봇에게서 태어나고, 육아로봇에게서 길러지며, 교사와 교수 로봇에게서 교육을 받고, 집안일이나 노동의 모든 분야에서 로봇과 서로 팀을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고, 심지어 그들은 감정 교류뿐 아니라, 투자 자문에 이르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람봇의 도움 아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때 람봇은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따라 사람과 동등해지게 되거나 사람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갖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람봇들의 말과 얼굴 그리고 그 뛰어난 능력에 압도되어 람봇의 자발적 노예로 전락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사이보그나 람봇으로 바꾸려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이러한 인류멸종을 막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될 것입니다. (ᄉᆞ)]
↳ 박상준 평론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봇에게 사람의 얼굴을 달아주는 게 맞을까요?
6. 로봇의 이름도 로댕 - 로댕의 대표작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소설에서 우빈나 박사와 로댕은 둘이자 한 몸처럼 움직이는데요. 자의식을 가진 AGI 로봇과 인간의 관계, 어디까지 가능할지,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로봇과 인간의 둘한몸 살이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 자의식을 가진 AGI로봇과 인간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충돌과 공존은?
- 로댕과 우빈나의 관계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 자의식을 갖는 로봇 로댕, 그런 로댕을 벗으로 존중한 우빈나 박사.
자의식이 형성된 로봇에게 인격을 부여할 수 있을까?
[⇒ 이 물음은 제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제, 사람과 람봇이 ‘둘한몸 살이’를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의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제 소설에는 크게 세 종류의 람봇이 나옵니다. 낮은 단계의 람봇은 현재도 이미 실현된 ‘지키2’와 같은 ‘경비 로봇’이고, 중간 단계의 람봇은 사람의 옆이나 곁에서 사람의 일을 돕는 ‘우디’나 ‘쁘다’ 그리고 ‘모시2’와 같은 ‘도우미 로봇’이며, 가장 높은 단계의 람봇은 로댕과 한나와 같은 ‘몸피 로봇’입니다.
사람의 지위도 아기로부터 청소년, 어른 등으로 나뉠 수 있고, 여자나 남자, 사장과 직원 등 헬 수 없이 다양하듯, 람봇의 지위 또한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람봇은 아마도 덩달아 높은 신분을 가질 수가 많고, 사람과 친밀한 영역에서 서로하기를 해나가야 할 람봇은 동료나 친구 또는 가족의 지위를 얻게 될 것입니다.
람봇과 사람의 관계는, 반려견이 야생개로부터 사람의 가족 관계로 변화해 온 것에 비춰 보자면, 람봇이 해내는 일뿐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 나아가 정치적 공론장에서 펼쳐질 권리의 인정 정도에 따라 급진적으로 가까워질 것입니다.(ᄉᆞ)]
7. 로댕이 우빈나 박사와 외로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외로움이란 어떤 감정인가요?” “사람들은 서로를 외롭게 할 거면서 왜 모여 사는 거죠?” 이 대화 장면을 보면서 궁금해지더라고요.
AI 로봇과 인간 사이에 정말 유대와 소통이 가능할까?
- AI 로봇은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을까? 로봇의 공감은 단지 프로그래밍된 반응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과 AI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만들 것. 그렇다면 AI가 인간의 감정을 대체하거나 인간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까?
- 인간과 AI 로봇의 종을 넘어선 이해와 존중, 소설처럼 가능할 것인가?
[⇒ 이 질문은 제 소설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람봇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또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에이아이의 본질에 대한 물음일 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본질에 관한 물음입니다.
에이아이는 입력되는 모든 것[=데이터]을 전자 비트, 달리 말해, ‘01로 이뤄진 숫자’로 바꾸고, 그것을 빛의 속도로 처리합니다. 오늘날 에이아이는 딥러닝을 통해 ‘수 조 개의 01로 이뤄진 숫자’를 빛의 속도로 계산하면서 그 숫자 안에 담긴 특정한 규칙이나 패턴[=꼴본]을 스스로 찾아내 배우고, 그렇게 알아낸 패턴을 바탕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용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는 출력물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만일 에이아이가 갖가지 센서를 갖춘 로봇으로 진화하면서 사람과 함께살이를 하게 된다면, 그 독립된 로봇 에이아이는 사람의 감정뿐 아니라 사회성까지 모두 배울 수 있게 될 것이고, 마침내 사람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람봇의 생각 능력이나 이해 능력 그리고 감정 능력 등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까닭은 람봇의 뉴럴네트워크가 비트의 전자열로써 이뤄지는 물리적 과정일 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두뇌 신경망 또한 뉴런 시냅스의 네트워크로써 이뤄진다는 점에서 람봇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막대기가 그것에 달린 가지로써 스스로 뭔가를 집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막대기를 손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 기능이 비슷하거나 같은 것들은 같은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람봇이 사람의 물음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고, 추론할 수 있고, 논문의 개요서를 짜 주거나 계약서의 오류를 지적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람봇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ᄉᆞ)]
8. 이것 말고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저는 --- 내용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박상준 평론가께서는 이 책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 어떠셨나요?
- ‘AI’의 정신질환과 트라우마 또는 로봇학대 문제
- 사람을 죽인 경비로봇 ‘지키2’
- 로댕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디톡스 치료
- 우빈나 박사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비트코인 해킹을 시도하는 로댕
- 우리는 AI에게 어디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
- 로봇도 죽을 권리가 있을까?
9. 이런 독자평도 있습니다. “AI와 인간관계의 미래에 대해서 너무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 아니냐?” 여기에는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 로댕은 자신의 몸소[=사용자] 우빈나 박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사람의 의식과 감정 그리고 사회성과 도덕성 등을 배워 나간다.
- 그런데 만약 인류가 람봇의 도덕 교육에 실패한 채 AI로봇 개발만 지속한다면? 만일 로댕의 출현이 ‘돌이킬 수 없는 악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 AI에게 비도덕이고 부정한 자의식을 심어주면서도 마치 도덕적이면서도 바른 자의식을 가진 것으로 교육시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 AI 로봇과 인간, 공존의 조건은
[⇒ 현실의 긍정은 지혜의 근본입니다! 위험한 현실조차도 우리 모두가 서로 지혜를 모을 수 있다면, 언제나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바뀔 수 있습니다. 미래는 사람의 꿈바라기가 실현되는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꿈은 자신의 바람을 빚을 지고 미래로부터 꾸어 오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은 갚아야 할 빚도 함께 떠맡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책임의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미래를 긍정하는 사람은 그 안에 놓인 모든 부정적인 것까지 더불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정확히 모르는 어떤 미래를 계획하려 하는 사람은 우리가 포기해선 안 되는 매우 값진 일을 위해 스스로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첫발을 내딛는 사람이 갖춰야 할 마음의 자격입니다!”
10. 이 소설의 배경이 2029년과 2030년, 바로 코앞입니다. 5년, 6년 뒤에 정말 몸피로봇 로댕이 나타날지도 몰라요. 그런데 과연 우리는 준비가 되었는가 - 이런 걱정부터 되는데요. 이 책을 읽은 분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로봇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
- 로댕 같은 로봇이 등장하면 우리는 AI의 주인으로서 똑바로 행동할 수 있을까?
- 만약 AI 로봇이 얼굴을 가진다면 어떤 얼굴을 달아야 하는가?
[⇒ 사람은 지구의 가장 흔하고 기본적인 원소들로써 이루어진 ‘유기물에서 진화된 생명체’라고 한다면, 람봇은 사람에 의해 제작된 ‘기계 생명체’입니다. 흙을 파거나 뜨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유압 기계장치인 포클레인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에봇[=에이아이 로봇]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에봇 포클레인은 사람과 자연어로 대화하며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할 뿐 아니라, 사람과 사회적 대화까지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는 에이아이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다면, 사람들은 신체적 노동뿐 아니라 정신적 노동 그리고 나아가 사회적-감정적 활동까지도 람봇에게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람봇은 사람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이때 사람이 람봇의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고, 람봇 또한 사람의 지배자가 되려 하지 않으려 한다면, 사람뿐 아니라 람봇은 그 얼굴이 명백히 달라 서로의 사회적 지위가 엄격히 구분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람봇이 사람의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 한, 그 둘 모두가 기초해야 할 도덕과 윤리는 반드시 ‘사람다움’에 뿌리를 내린 것이어야 합니다.(ᄉᆞ)]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본 오늘의 세상,
숙명여대 구연상 교수님, 그리고 박상준 SF 평론가와 함께 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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