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모여살이)

개성 없는 '좋아요'에 목메는 '픽미 세대'_디지털 세대의 놀이터, SNS가 위험하다, 자아가 주체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공감능력' 상실할 수도

사이박사 2016. 7. 8. 14:18

개성 없는 '좋아요'에 목메는 '픽미 세대'

디지털 세대의 놀이터, SNS가 위험하다, 자아가 주체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공감능력' 상실할 수도서울경제 | 정수현 기자 | 입력 2016.07.08. 11:45

하얗고 뽀얀 얼음 가루에 주르륵 흐르는 분홍색 액체. 오늘 먹은 팥빙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곧이어 붙는 ‘좋아요’ 하트. 클릭 수가 늘수록 엔도르핀이 급격히 상승한다. 내일은 어떤 사진을 올릴지 궁리하느라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나의 외모나 특별한 행동을 인증하고 ‘좋아요’를 받는 데 열정적인 1020 ‘픽미(pick me) 세대’. 최근 젊은이들은 거세게 불고 있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인증 열풍을 타고 자신의 일상이나 경험을 찍으며 ‘나를 선택해달라’라 외치고 있다. 이같은 인증 게시물에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른다. ‘좋아요’ 수는 유명할수록, 자극적일수록, 스릴이 있을수록 높아진다. 덩달아 ‘인증 문화’는 조금씩 과감해지기도 한다.

■개성 없는 인증 열풍은 자아를 ‘주변’으로 밀어내기도문제는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인증 문화가 자칫 잘못하면 왜곡된 인정 또는 공감 문화를 만들어 일종의 강박처럼 개인의 주체성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 있단 점이다. 직장인 윤미영(28)씨는 “사진을 올릴 때 ‘좋아요’를 받고 싶은 욕구와 내가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고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있다”며 “처음엔 개성있는 사진을 올리다 점차 인기가 있을 법한 사진들을 골라서 올린다. 대중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트렌드를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인증 문화에 속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고등학생 김지연(18)씨는 “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하는 애들은 잘 나가는 애들이다. 이성친구 사진을 올리거나 방과 후 놀러 가는 곳, 패션 등을 주로 올린다. 그런 친구들과 비슷한 취향을 가져야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 씨는 “반 친구들이 인증샷에 관심이 쏠려 있다. 쉬는 시간마다 해시태그 유행어 얘기를 하는데 관심이 없어 유행에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며 씁쓸해 하기도 했다.

직장인 정아진(29·가명)씨는 얼마 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을 중단했다. 정씨는 “SNS는 백수들이 잘났다고 글을 올리진 않는다. 잘나가는 애들이 올리는 건데 난 충분히 행복한 상태인데도 끊임없이 비교하고 우울해지는 면이 있다. 내 생각을 내가 납득하고 사유하면 되는 건데 왜 굳이 온라인에서 공감 받아야 하나”라고 답했다. 실제로 최근 모바일 리서치회사 케이서베이가 1,01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남성 88%, 여성 87.4%가 SNS를 이용하는데 이중 남성의 48%, 여성의 62.1%가 ‘SNS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씨는 “현실에서 공감 받고 주변 사람들이랑 잘 소통하고 있는데 온라인에서 인증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발간한 “안전한 셀피를 위한 지침서”. 러시아 경찰은 셀피 촬영 중에 사망하는 사건 이 빈번해지자 안전한 셀피 촬영을 위한 지침서를 발간했다. 이 지침서에는 총 12 가지의 아이콘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발간한 “안전한 셀피를 위한 지침서”. 러시아 경찰은 셀피 촬영 중에 사망하는 사건 이 빈번해지자 안전한 셀피 촬영을 위한 지침서를 발간했다. 이 지침서에는 총 12 가지의 아이콘이 포함되어 있다.

■주체성을 지킬 수 있어야 진정한 ‘공감 세대’가 된다올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셀피(셀프 픽처)는 안된다”며 미국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서 SNS 인증에 중독된 이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프랑스의 원로 배우 카트린 드뇌브도 SNS 인증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내가 쌓아온 이미지를 시시하고 진부하게 만든다”며 SNS에 중독된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결국 인증 문화의 지나친 개방성과 유행은 자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김태훈 KSM 소셜미디어진흥원 대표는 “학생들의 경우 본인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SNS를 접하면 마치 모두가 그런 것처럼 착각해 일종의 마약처럼 빠져든다”며 “유명인들이 멋진 곳에서 SNS 인증하는 보도를 보고 따라하며 유행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그것이 대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등 올바른 사용방법 등을 지속적으로 노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 교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걸 증명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말이 아닌, 증거를 남기는 행위. 즉, 밥을 먹어도 스스로 온전히 즐기는 게 아니라 주안점이 남들의 주목과 인정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일종의 강박은 인간이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 행동에 대한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변’으로 밀려 나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SNS 인증 문화가 불러오는 구속적인 측면을 우려했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