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에서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박근혜의 유체이탈 화법, 부끄러운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1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해 15분이 넘는 꽤 긴 모두발언을 했다(청와대 홈페이지에 가면 누구나 이 동영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수첩에 적힌 내용들은 별로 새로운 게 없었지만, 이 날 발언에 사용된 표현만 놓고 보면 상당히 강도가 센 편이었다. 특히 초반에 사고의 원인을 따지는 부분에서 박근혜는 강한 표현을 많이 썼는데, 사실 문제는 그녀의 표현 자체보다도 소위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에 있다.
세월호 선장과 마찬가지로 최종 책임을 져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순전히 자기 편의에 따라서 '피해자'와 '심판자'와 '관찰자'를 마구 오가는, 너무나 '변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박근혜는 자신이 스스로 고개를 숙여야 할 때 아랫것들을 꾸짖고, 자기가 직접 다짐을 해야 할 때 다른 이에게 명령을 내리며,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할 때 남들 눈치를 본다. 이 나라에서 공적 책무의 유일무이한 화신인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이런 식으로 전체 시스템에 유령처럼 빌붙어서 혼돈을 야기시키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할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이런 수사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대통령으로서의 '지시 사항(리더로서 명령을 내리는 것)'과 '대국민 메시지(국가의 주인을 향해 설명하는 것)'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자신의 유불리와 이해관계에 따라 기준 없이 혼용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자기는 책임이 없는 양 비판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하고, 스스로 피해자의 위치에 서기도 했다가, 또 필요하면 아직 제대로 결론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멋대로 심판을 내려버리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윤창중 성추행 사건 때 고위 관료들이 피해 당사자보다는 오히려 박근혜에게 사과한, 이른바 '셀프 사과'를 예로 들 수 있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공화국의 대통령은 한 국가의 대표자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거늘, 박근혜는 마치 절대왕정의 군주처럼 '모셔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는 국민과 정부 외에 아예 초월적인 '제3의 존재'인 박근혜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부에 대한 온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박근혜에 대한 지지율은 별로 변화가 없는 것 역시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이미지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동영상 갈무리]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마침내 외신까지도 박근혜의 유체이탈 화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미 CNN부터 Al Jazeera까지 수많은 외신에서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한 박근혜 정권의 무능을 다뤘는데,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WSJ)'은 21일 [Was Park Right to Condemn Ferry Crew?(박 대통령이 승무원들을 규탄하는 것이 옳았나?)]라는 기사에서 박근혜의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 내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한국 지국장 Alastair Gale의 기사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외국인이면서 한국 전문가인 두 사람의 반응을 인용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Bad decision on her part. How can the accused get a fair day in court, and they will be in court, when the POTROK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says that," wrote Seoul-based analyst Daniel Pinkston on Twitter.
"그녀로서는 나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말했는데, 그들이 피고로 법정에 서면 어떻게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가?" 라고 서울에 근거를 둔 분석가 다니엘 핑크스튼이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Surely v wrong of prez Park to pre-empt justice by declaring Sewol crew guilty of murder. Fears for June 4 (gubernatorial) elections?" commented Korea expert Aidan Foster-Carter.
세월호 승무원들을 살인죄로 선언함으로써 박이 미리 판결을 내린 것은 확실히 그릇된 일이다. 6월 4일 지방선거가 두려워서인가?" 라고 한국 전문가 에이든 포스터 카터는 논평했다.
(2014년 4월 21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Was Park Right to Condemn Ferry Crew?] 내용 중 발췌, 번역 출처: 뉴스프로)
두 외국 전문가의 말처럼, 아직 법적 판단이 확실히 내려지기 전에 최고 권력자인 박근혜가 특정 국민에 대해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박근혜는 행정부의 수반인데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이고, 또 지금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도마 위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다름 아닌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을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을 동원해서) 전체 시스템보다는 몇몇 개인에게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도대체 이게 절대적 '공인'인 행정부의 최종 '책임자' 박근혜가 하기에 적합한 발언일까? 대통령이 유체이탈을 해서 사법부의 '심판자' 역할까지 대신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정치 행위인가 이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원문 보기: Was Park Right to Condemn Ferry Crew?]
그리고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도 칼럼을 통해 박근혜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다뤘는데, 아무래도 칼럼이다 보니 작성자의 생각이 좀 더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 중국 특파원 Mary Dejevsky는 [The South Korea ferry disaster is truly awful, but it is not murder(세월호 참사, 끔찍한 일이지만 '살인'은 아니다)]라는 칼럼을 통해 "서양국가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는 결코 없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살인'이라는 두드러진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늦어버린 타이밍을 수사의 강도로 만회하려고 한다는 점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The desire of parents and public for retribution will be hard to resist, yet it will raise yet again the universal question about responsibility and intent. Is it just to label someone a killer if a death occurs as the result of an oversight, or of fear? Cultural difference may determine, in part, where that line is drawn, but it is nowhere as clear - not in the east, still less in the west - as where President Park seemed to place it when she spoke of "murder".
누군가를 벌하고자 하는 욕구가 끓어오르겠지만, 동시에 사회는 책임과 의도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에도 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과실이나 공포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그 사람을 "살인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어디에 선을 그어 "살인"을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요?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서양 어디에도 박 대통령이 "살인"이라는 발언을 했을 때 그은 선만큼이나 그 선이 명확하게 그어지는 곳은 없을 겁니다.
(2014년 4월 21일 가디언 칼럼 [The South Korea ferry disaster is truly awful, but it is not murder] 내용 중 발췌, 번역 출처: 뉴스페퍼민트)
가디언의 칼럼은 비단 박근혜뿐만 아니라 세월호 선장이나 승무원들에 대해 과도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하는데, 국가적 재난을 대함에 있어서 그저 몇몇 사람들을 탓하며 집중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보다는, 사태가 일어난 과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도 않은 '살인'을 들먹이며 대중의 감정적인 분풀이를 자극하는 건,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 시스템 개선에 필수적인) 재난 과정의 냉정한 분석을 수행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리더'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이제까지 수십 년간 우리는 봐오지 않았나? 엄청난 인재가 발생해도 그때뿐, 시간이 지나도 엉망진창인 시스템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또다시 재앙이 반복되는 걸.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 대구 지하철 참사(2003년) 등등.. 과연 '책임과 의도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 없이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박근혜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는 말로 이런 질문의 여지를 없애기 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근원적인 문제들을 살펴야 했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유체이탈 화법으로 대중을 자극하고, 그것을 이용해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가디언 원문 보기: The South Korea ferry disaster is truly awful, but it is not murder]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박근혜 정권의 위기에 대해서 무척 의미심장한 얘기를 하고 있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FAZ)'의 18일자 칼럼을 읽어보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FAZ의 정치 편집자인 Peter Sturm은 [Tragisches Fährunglück, Tod vor Korea(비극적인 선박참사, 한국 연안에서의 죽음)]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신문 역시 22일에는 [Schiffsunglück vor Südkorea, War es Mord?(한국 연안의 여객선 사고, 살인이었나?)]라는 칼럼을 통해 박근혜의 21일 발언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Dabei wird dann hoffentlich auch geklärt, ob den Behörden Versäumnisse vorzuwerfen sind. Vor allem muss man hoffen, dass nicht „unangenehme" Ermittlungsergebnisse unter den Teppich gekehrt werden. Im Augenblick des Unglücks sehen viele schnell sehr schlecht aus. Alle wollen Antworten auf ihre Fragen. Die Informationen können aber oft erst später gegeben werden.
행정 기관들이 과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지가 확실하게 수사되기를 바란다. 특히 무엇보다도 받아들이기가 "불편한" 수사결과들이 밝혀졌을 때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사고의 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원한다. 그러나 진실은 자주 뒤늦게야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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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on im Präsidentschaftswahlkampf hat der Dienst eine mindestens zweifelhafte Rolle gespielt. Von den Diskreditierungsversuchen gegen ihren wichtigsten Gegenkandidaten will Park nichts gewusst haben. Bisher hat sie alle Affären unbeschadet überstanden. Das gesunkene Schiff und der Tod so vieler junger Leute könnten ihr aber wirklich zusetzen. Das Schicksal von Regierungen entscheidet sich manchmal an Ereignissen jenseits der Politik.
국정원은 이미 대통령 선거에서 의심이 가는 일을 했다. 박근혜는 자신의 주된 경쟁 후보에 대해 평판을 실추시키려 했던 국정원의 작전에 대해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모든 위기들을 버텨 냈다. 그러나 침몰한 배와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정말로 치명타를 줄 수 있다. 정부의 운명은 때로는 정치와 전혀 연관되지 않는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
(2014년 4월 18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칼럼 [Tragisches Fährunglück, Tod vor Korea] 내용 중 발췌, 번역 출처: 뉴스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