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北, 공산주의 표현 없애고 김씨王朝 세습 명문화_조선일보

사이박사 2013. 8. 12. 09:34

北, 공산주의 표현 없애고 김씨王朝 세습 명문화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10대 원칙' 39년만에 개정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순결성 고수" 명시

체제 불안 김정은… "勢道배척" 등 곳곳서 간부 견제
공산주의 대신 주체혁명 강조, 서문에서 "핵 무력 갖춰" 명시
부르주아 사상 차단도 내세워
조선일보 | 황대진 기자 | 입력 2013.08.12 03:03 | 수정 2013.08.12 09:09
북한이 지난 6월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보다 상위 규범인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39년 만에 개정하면서 '백두 혈통', 즉 김정은 일가의 정권 세습을 명문화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북한은 '10대 원칙'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이란 말을 삭제하고 '공산주의 위업' 대신 '주체혁명 위업'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왕조 국가'를 선언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조선일보]

북한 사정에 밝은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1974년 4월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최고 통치 규범 역할을 했던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을 개정했다. 이번엔 명칭을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으로 바꾸고 내용도 서문 및 10조 65개 항에서 서문 및 10조 60개 항으로 축소·통합했다.

이 소식통은 "통치 이념을 김일성주의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변경하고 김정은을 이들과 동격화했다"며 "김씨 일가의 세습을 정당화, 규범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김씨 일가'의 정권 세습 명문화

북한은 개정한 '10대 원칙' 제10조 제1항에서 '당의 유일적 영도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며 대를 이어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제2항에서는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 그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고 했다. 과거의 '10대 원칙' 제10조 제1항은 '김일성 수령의 영도 밑에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 체제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였다.

제2항은 '김일성 동지의 혁명 전통을 헐뜯거나 말살하려는 반당적 행동에 대해서는 그 자그마한 표현도 반대하며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고만 돼 있었다. 국책 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북한이 '백두의 혈통'을 강조, 세습을 명문화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가계 우상화를 강화함으로써 전근대적 봉건 체제임을 자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10대 원칙'에는 '금수산태양궁전(김일성·김정일의 시신 보관 장소)을 영원한 성지로 꾸리고 결사 보위한다'(제2조), '백두산 위인들의 초상화, 동상, 영상을 담은 작품, 말씀판 등은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제3조)는 내용도 들어 있다. 김정은 일가를 '백두산 위인'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또 '수령님(김일성)의 교시, 장군님(김정일)의 말씀, 당(김정은을 지칭)의 노선과 정책을 사업과 생활의 지침으로, 신조로 삼으며 그것을 자로 하여 모든 것을 재어보고 언제 어디서나 그 요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여야 한다'(제4조)고도 규정했다.

'공산주의' 표현 빠져

북한은 '10대 원칙' 제1조 제3항의 '김일성 동지께서 세운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보위하고'라는 부분을 '김일성 동지께서 세우고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빛내어 주신 가장 우월한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를 보위하고'로 바꿨다. 김일성주의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바꾼 것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이란 표현을 삭제한 것이다. 이 역시 김씨 일가의 세습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은 '조국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제1조 제4항)는 부분도 '조국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주체혁명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투쟁한다'로 바꿨다. 반드시 달성해야 할 '위업'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빠지고 대신 '주체혁명'이 새로 들어간 것이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이는 공산주의 이념보다 김씨 일가의 유일 지도 체제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전국적 승리를 언급한 것은 대남 적화통일 노선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 간부 견제 조항 신설

개정 '10대 원칙'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당 간부들을 견제하기 위해 신설한 조항들이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제6조에는 '개별적 간부들의 직권에 눌려 맹종맹동하거나 비원칙적으로 행동하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또 '당의 통일 단결을 파괴하고 좀먹은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反黨)적 요소와 동상이몽, 양봉음위(陽奉陰違·보는 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먹음)하는 현상을 반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내용도 새로 들어갔다.

또 '낡은 사업 방법과 작풍을 없애야 한다'고 규정한 제7조에서는 관료주의, 주관주의, 형식주의 등 배척해야 할 대상에 '세도(勢道)'가 추가됐다. 그러면서 제9조에서는 '모든 사업을 당의 유일적 영도 밑에 조직 진행하며 정책적 문제들은 당 중앙(김정은을 지칭)의 결론에 의해서만 처리하는 질서와 규율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간부층의 병폐를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들의 체제 이반 심리와 기강 해이가 심각함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 간부들에게 사업 실적을 낼 것을 압박하는 부분도 신설됐다. 김정은이 '10대 원칙'을 통해 대규모 숙청을 예고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자본주의 바람 차단 고심

제4조에는 '부르주아 사상'과 '사대주의 사상' 부분을 신설, 적시하면서 '반당적·반혁명적 사상 조류를 반대하여 투쟁하며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순결성을 고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정부 소식통은 "중국이나 한국 등을 통해 북한에 자유주의적 생활양식이 유입되면서 당 간부와 주민들의 의식이 변질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 무력'도 명기

북한은 '10대 원칙' 서문에서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도에 의하여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군사력과 튼튼한 자립 경제를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핵과 관련된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북한은 작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서문에 '핵보유국'을 명기했고, 올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핵 무력, 경제 발전 병진(竝進) 노선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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