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모여살이)/언론(말바루기)

박정근 사건, 세계를 웃기다

사이박사 2012. 12. 7. 17:29

박정근 사건, 세계를 웃기다풍자와 조롱을 목적으로 북한 관련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기소된 박정근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272호] 승인 2012.12.06  09:53:09
트위터 페이스북 Pinsanity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msn
기어이, 농담은 유죄였다. 11월21일 오전 수원지방법원 410호 피고인석에 선 박정근씨(24)를 향해 형사3단독 신진우 판사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박씨가 자신의 트위터(@seouldecadence)에서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것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트위터 ‘우리민족끼리(@uriminzok)’의 “명언해설 <우리의 혁명력사는 적들이 한걸음 접어들면 열걸음 백걸음 맞받아나가는 전술로 승리하여온 력사이다>”와 같은 트윗 96건을 리트윗한 혐의. 또 북한 혁명가 등 29건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한 혐의. 직접 “천만이 총폭탄되어 결사옹위하리라!!!!!”와 같은 트윗 글을 76회에 걸쳐 남긴 혐의. 수사기관은 박씨의 행동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부장검사 김영규, 수사검사 문현철, 공판검사 차범준)는 “‘인터넷은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특별공간이고 인터넷 게시판은 항일 유격대가 다루던 총과 같은 무기’라는 김정일의 교시를 따라 북한 최고 권력기관인 노동당 등 국가 차원에서 대내외 사이트를 개설해 국내 젊은 계층에 공력을 들이고 있다”라며 위험성을 강조했다. 이 내용은 법원 판결문에도 그대로 인용됐다.

반조선노동당을 내건, 북한에 비판적인 사회당원(현 진보신당 연대회의)인 박씨는 모두 장난과 조롱이라고 맞섰다. 7만 개가 넘는 자신의 트윗 내용 중 약 0.3%에 해당하는 ‘이적 표현물’도 앞뒤 맥락을 보면 모두 유머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자신이 북한 체제를 조롱하며 쓴 “서울불바다 평양피바다 SES바다” “제가 수령님 생각만 하면 주체주체하고 웁니다만” “갓난아기들은 옹위옹위하고 웁니다”와 같은 트윗 585건을 탄핵 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시사IN> 제243호 ‘트위터 보안법? 코미디 보안법!’ 참조).

재판은 박씨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증명하려는 검찰과 이것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가려내려는 변호사 사이의 다툼이 주를 이뤘다. 지난 여덟 달 동안의 공판 기록을 재구성해 박씨의 유머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들여다봤다.


   
검찰이 문제 삼은 ‘뉴타운간첩파티’ 포스터.
검찰은 사태를 제대로 알고 있나


검사는 헷갈렸다. 김정일이 그 김정일인지, 아님 다른 김정일인지. 9월5일 피고인(박정근) 신문에서 검사와 박씨의 문답이다.

“피고인 친구 중에 김정일이 있나?”(검사)

“친구의 친구이다.”(박정근)

“김정일이란 사람 알죠?”(검사)

“네.”(박정근)

“(트위터에 남긴) ‘김정일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여기는 피고인 친구의 친구인가?”(검사)

“그런 뜻은 아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을 희화화할 의도였다.”(박정근) 

검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유달리 북한을 유머 소재로 쓴 이유는 무엇이며 일반 기준에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고 따져 물었다.

박씨는 “맞붙어 있는 곳의 체제가 굉장히 폐쇄적이고 고유문화라고 하는데, 그 과도한 표현과 모순된 점이 많아서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트위터 ‘우리민족끼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김정일이 영원히 함께 계신다’라고 남겼다. 사람이 그냥 죽은 건데도 찬양하는 게 우스워서 리트윗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박씨는 자신의 유머코드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걸 인정한다. 여기에도 그는 할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이 피고인이 탄핵 증거로 제출한 트윗을 다 웃기다고 생각할까?”(검사)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내가 모두를 웃길 순 없지 않느냐.”(박정근)

“팔로의 팔로, 팔로의 팔로의 팔로까지도 (리트윗이) 전달될 수 있다는 걸 알지 않나?”(검사)

“트위터 사용자는 그 정도는 다 안다.”(박정근)

“북 정권을 논리적으로 뭐가 문제라고 쓴 트윗은 있나?”(검사)

“독재자를 놀릴 수 있는 게 표현의 자유라 생각한다. 트위터는 140자 이내 쓰는 매체라 긴 글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전용이 아니다.”(박정근)

검찰 공안부가 트위터나 인터넷 하위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북한이라는 단어만 보고 기소에 급급했던 게 아니냐고 박씨의 변호인은 꼬집었다.

검찰은 박씨가 트위터 외에도 친북 활동을 했다는 의심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서울 대한문에서 열린 ‘뉴타운간첩파티’에 참석한 박씨가 “김정일 만세”를 부른 이유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간첩신고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매니저로 있는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의 노래 ‘김정일 만세’를 부른 거다. 수사받는 나를 위해, 친구들이 국보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기획한 행사이고, 나는 관여한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18일 밤섬해적단 멤버인 권용만씨(27)도 증인으로 출석해 말을 보탰다. “2010년 발매한 <서울불바다> 앨범에 ‘김정일 만세’라는 노래가 있다.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데, 동명이인 김정일씨가 얼마나 슬플까 생각하며 작사했다.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든데, 장난치듯 가볍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경찰, 방청객에서 웃음 터지게 해


6월20일 네 번째 공판. 검찰 쪽 증인으로 박정근씨를 수사했던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권영문 경장이 출석했다. 그는 2010년 12월부터 북한 혁명가 동영상이 링크된 박씨의 트위터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한다. 또 권 경장은 PC방에 가서 수시로 박씨의 트위터에 접속해 동영상 프로그램으로 캡처를 해뒀다. 트윗 내용은 3400개가 넘으면 오래된 순서대로 자동 삭제되기 때문에 증거 보존을 위한 바지런함을 보인 것이다.

또 서울에 살고 서울에서 트위터를 한 박정근씨 수사를 경기지방경찰청이 하는 이유에 대해 권 경장은 “박정근이 제주도에 살았어도 내가 수사했을 거다”라고 대답했다. 사건을 넘기지 않은 데에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처음 인지해서 계속 진행해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박씨가 ‘서울을 주사로 붉게 도색하리라’와 같이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반전반미를 선동하는 트윗을 썼다”라고 말했다. 이에 박씨 쪽 이광철 변호사는 비슷한 시기에 “‘김정일 개XX’ ‘요덕 숙박권 요덕행 특급행 표 선물해도 언팔할기야?’ ‘야구 감독님, 좌익수도 아오지로 원정 보내주세요’라고 쓰는데도 그렇게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 방청객 자리에서는 웃음이 터졌지만, 권 경장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대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반 시민이 트위터에 글 쓰면서 ‘서울을 붉게 물들인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는 트위터에 누가 그런 걸 쓰나. 이건 장난이 아닌 거 같다.” 그는 재판정에서 북한 비하와 장난을 구분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법원, 유머는 이해했으나…


판사는 ‘북괴상스’를 보며 웃었을까. 11월21일 박씨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이 기소한 모든 항목이 유죄 선고를 받은 건 아니었다. 일부 무죄가 난 부분은 ‘우리민족끼리’ 리트윗 3건과 박씨가 직접 쓴 트윗 17건이었다. 여기에는 일명 ‘북괴상스’라 불리는 패러디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따대고 신성한 우리 영해에 불질이야! 어디 맞설 테면 맞서보자. 아예 뼈다귀도 추리지 못하게 진짜 싸움맛이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

호전적인 이 말은 2010년 12월24일 SBS 보도를 통해 방송된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북한 군인이 한 발언이다. 문자로 볼 때와 달리, 영상으로 북한 병사의 발언을 보면 표정과 말투가 연극을 보는 느낌이 나 많은 누리꾼이 합성물을 만들었다. 공중파 개그맨도 흉내 냈던 말이란 변호사의 발언에 다시 방청석에서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밖에 박씨가 리트윗한 ‘우리민족끼리’ 3건은 북한 포스터에 박정근씨 얼굴을 합성하거나, 단순히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의 초상화가 담긴 그림이었다. 시종일관 진지했던 판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점잖게 유머라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위 각 게시물이…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행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

하지만 그 외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7월18일 박정근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기도 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 판례는 물론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7조를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조건으로 내세운 것도 ‘국가질서의 위협에 대한 해악을 입증하라’는 것이다. 박정근씨의 트위터 활동이 그런 해악을 끼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박정근씨 변호를 맡은 이민석 변호사는 “찬양고무죄로 걸린 박씨가 북한에 간다면, 오히려 요덕수용소로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철 변호사도 “재판에 임하는 내내 황당했다. 법정에서 자주 웃음이 터졌던 건, 공판 검사 개인이 재판을 이상하게 끌고 가서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구조에서 이 사건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는 자체가 코미디라서다. 국보법이 있는 한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외신에서도 한국의 SNS 규제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소개된 박정근씨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은 국제적인 웃음거리다”라는 긴급 논평을 냈다. 박씨 사례는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해 <뉴욕 타임스> <르몽드> <알자지라> 등에 보도되었다.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i.

김은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