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2-06-04 오전 10:26:12
"왜 자기 잎인지 산누에나방애벌레부터 말해봐."
떡갈나무 잎으로 기어온 자벌레가 두 애벌레를 번갈아 굽어보았다.
"난 이 잎에서 태어났어. 그러니 내 거야."
산누에나방애벌레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보다 먼저 내가 이 떡갈나무에 살고 있었어."
콩덕나방애벌레도 물러서지 않았다.
"욕심 부리지 말고 나눠 먹어. 내가 재서 공평하게 나눠줄게."
자벌레의 말에 애벌레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벌레는 온몸을 활처럼 한껏 굽었다 펴는 동작으로 나뭇잎을 재어 나눴다.
콩독나방애벌레가 반대편 잎이 더 넓다며 털을 곤두세웠다.
"내 자는 도덕적으로 완벽해! 하지만 다시 잴게"
자벌레는 몸을 살짝 굽어서 나뭇잎을 잰 후 넓은 면을 재빨리 갉았다. 이번에는 산누에나방애벌레가 자기 잎이 훨씬 작다며 못마땅해 했다. 몇 번에 걸쳐 재고 갉았지만 두 면은 같아지지 않았다.
"잴 때마다 달라. 도대체 재는 기준이 뭐니."
두 애벌레가 눈을 부릅떴다.
"내 몸이 자야."
자벌레는 일직선으로 물구나무를 서 보였다.
자벌레에게 계속 갉아 먹힌 나뭇잎은 양 귀퉁이만 남았다. 크기를 맞춘다며 그것마저 갉던 자벌레가 잎맥 사이로 툭 굴렀다. 자벌레는 황급히 제 줄을 뽑아 다른 나무로 건너뛰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주지 않았고 거리도 너무 멀었다.
자벌레는 오도 가도 못한 채, 희미한 줄을 붙잡고 대롱거리고 있었고, 잎맥에 엎드린 두 애벌레의 입씨름은 끝날 줄 몰랐다.
숲을 맴돌던 까치가 떡갈나무 가지로 내려앉았다.
ⓒ한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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