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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을사조약과 한-일 군사동맹_정현기

사이박사 2012. 7. 11. 09:32

[왜냐면] 을사조약과 한-일 군사동맹

등록 : 2012.07.02 19:48 수정 : 2012.07.02 19:48

정현기 문학평론가

‘기억은 곧 양심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과거 행적을 잊어버림으로써 양심을 잃는다는 뜻이다. 양심을 잃은 존재는 일체의 도덕적 잣대가 없어진 기계일 뿐이다. 키르기르스탄 작가 아이트마토프는 이런 사람을 ‘만쿠르트’라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불과 다섯달 남짓 남겨놓고 별의별 겁없는 일들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 그는 우리 앞에 나타난 ‘만크루트’처럼 보인다. ‘무뇌아’로 옮길 만한 이 낱말의 실상을 이 나라 대통령에게서 본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지난주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체결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협정안을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안으로는 4대강 파헤치기, 용산참사 무관심이다, 문화방송(MBC) 문제다, 도곡동 집 문제다 따위로 국민들을 맘 놓고 무시하면서, 이번에는 일본을 대하는 고약한 외교만행으로 국민들을 따돌린다.[=>권력의 오만] 참 겁도 없다. 국민들은 까맣게 모르도록 몇몇 이권 관계자들이, 쉬쉬하며 서둘러 이런 짓을 저지른다면 그 끝이 어떻게 될까? 1905년도에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저질렀던 일들을 우리는 까맣게 잊었다.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누른 일본은, 러일전쟁 승리에 취해 그들 필생의 꿈인 조선반도 공략을 실현할 국제조약으로 일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을사조약’이라는 이상한 다섯개 조항은 한국의 외교권 모두를 일본의 뜻대로 한다는 다섯가지 내용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2년 뒤 국내 정치의 모든 행정 권리를 빼앗는 내용으로 된, 일곱개 조항의 정미 7조약을 강제로 맺어 놓았다. 3년 뒤 1910년, 이 나라는, 일본에 완전히 합병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모든 일을 뒤에서 부추긴 것은 미국이었다. 1905년도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맺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책략이었다는 걸 알고 나면 그저 솜털이 일어설 뿐이다. 미국 정치가들이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지니고 있다는 이 ‘케넌 프로젝트’는 한국인 우리에게는 치욕적인, 저들만의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남의 나라 여러 자원을 노리는 어떤 조약이나 협약은 거의 해악을 품고 있기 쉽다. 이런 해악을 담고 있는 어떤 국제협약이든, 그것은 국민에게 반드시 공개하고 논의에 부쳐야 한다.

한-일 군사조약이 맺어진다는 뜻은 무엇인가? 공동의 적이란 정치권의 몇이 만들어 낸 정치적 이권의 이합집산의 결과물이다. 이런 이권집단이 만드는 정치행위 밀약들은 그래서 더욱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원칙의 근본이 그것 아닌가? 일본은 1900년대 이전부터 여기저기 쑤석거리는 재난을 일으켜 한국 근·현대사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들 나라가 키우고 있는, 무기 장사들의 배를 불려 왔다. 그 결과 동아시아는 물론 전세계가 불안에 떤 적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속의 일본을 기억하면 족하다.

임기 4년여 동안, 나라 안에서 엉뚱한 짓들만 저질러 온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음흉한 이웃나라 일본에 가까이 다가선다. 개인적 탐욕을 너무 드러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물신주의자,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사람은 남의 삶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거의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남한 정부를 대표하여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는다? 그것은 틀림없이 북한을 가상 적이라 치는 행위일 터이다. 게다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 동남아시아 제국에 끼치는 영향은 어떨 것인가? 이웃이 뭉치면 옆의 다른 이웃들도 뭉친다. 그게 만일 힘 싸움으로 번지면 전쟁의 참상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1905년도에 벌어진 참혹한 일본 침탈 발자취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라는 이런 협정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또 시도해서도 안 된다.

1905년에 나라를 판 문서 ‘을사늑약’에 도장 찍었던, 을사오적으로 찍힌 그들은 아직도 그 더러운 이름을 달고 우리 역사의 어둠에 잠겨 있다. 만일 이런 일을 끝끝내 이명박 대통령이 벌이려 든다면, 그는 엄청난 국민의 반대운동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일들을 잘 생각해야 한다. 임기를 마친 그가 어디로 갈 것인지는 요즘 국민들의 관심거리다. 한-일 군사 협의 얘기가 보류됐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이 대통령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고 조용히 떠날 준비나 하는 것이 그나마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