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그것은 무엇인가?>
구연상
[주제분류] 서양철학, 형이상학, 존재론, 해석학
[주 제 어] 철학, 필리아, 소피아, 헨 판타, 에피스테메, 테오리아, 놀라움, 오페라티오, 확실성
[요 약 문] 철학의 역사는 “철학,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의 역사로써 구성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물음에 대해 ‘로고스를 닮아나가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응답은 로고스에 대한 논리적 증명이 아니라 서사적 제시의 형태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응답의 형식은 당시의 언어적 한계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가 그 자신을 놀랍게 사로잡았던 탐구 대상(소폰, 헨 판타)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놀라움의 감정이 누그러들자 곧바로 후대 철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은 그 놀라움의 대상을 ‘그것이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관조하려 했다. 그들은 대상을 분석하고, 전체를 체계적으로 종합하며, 형이상학적 패러다임을 짜나갔다. 이러한 설명의 틀은 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심지어 데카르트조차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언뜻 놀라움과는 전혀 다른 의심의 기분에 의해 철학을 시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의심의 기능을 확실성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맞춰 놓은 이상, 데카르트도 놀라움의 기분과 다른 기분에서 철학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수학과 과학의 냉철함 또는 증명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감정은 고대 철학자들이 꿈꾸었던 ‘영원에 대한 열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대답은 물음을 전제로 한다. ‘물음과 대답’은 다시금 응답의 구체적 형태이다. 만일 이 말이 맞다면, 우리는 ‘물음과 대답’ 이전에 ‘응답의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응답은 부르는 것에 대한 직접적 경험으로부터 주어진다. 우리가 2천 5백년 이상을 이어온 서양 철학의 역사를 ‘응답의 역사’로 재해석할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던지는 “철학,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또한 철학의 사태로부터 들려오는 하나의 부름이 되어야 한다. 이 부름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들 자신을 근원적으로 조율하고 있는 근본 기분을 밝혀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답은 바로 그 기분에서부터 그 나름의 방향을 지시받고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기
하이데거는 철학의 역사를 필로소피아에 대한 ‘응답의 역사(Geschichte des Entsprechens/ History of response or correspondence)’로 규정한다. 응답은 누군가(무엇인가)의 부름에 응하여 답하는 것을 말한다. 응답은 언제나 ‘부름에 대한 응답’이다. 부름 없이는 응답도 없다. 부름이 물음의 형태로 다가올 때 그에 대한 응답의 방식은 ‘대답’이 된다. 물음의 구조에는 ‘물어진 것 자체(das Gefragte selbst)’가 속한다. 이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정형화 된 ‘문제(問題)’를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하이데거는 ‘철학의 역사’를 ‘철학적 문제에 대한 대답의 역사’, 한 마디로 말해, ‘철학함의 역사’로 규정한 셈이다. 여기서 나는 이러한 응답의 역사를 그 출발 시기(고대 그리스 철학)와 근대 시기(데카르트의 철학)를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런데 ‘부름과 응답의 구조’는 이미 서양 철학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사용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rhetorike)』에서 “수사학은 변증법의 상대항(antistrophos)이다.”라고 말했다. “상대항”이라는 말은 “정면으로 맞서는 것” 또는 “상대 짝(isostrophos)”의 뜻으로 풀이되곤 하지만, 원래는 음악에서의 대위법(對位法)적 진행을 일컫는다. 즉 ‘안티스트로포스(antistrophos)’는 앞선 ‘strophē(마디)’에 호응하거나 응답하는 형식의 ‘응답 마디’를 말한다. 이러한 해석 관점에 따를 때, 수사학은 변증법에 대한 응답으로서 변증법에 호응하여 진행되는 논변의 기술(techne)로 규정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비유법을 사용하여 ‘철학’을 ‘앞선 부름’에 호응(呼應)하는 ‘사유적 응답’이라고 본 것이다.
부름의 내용은 그 들음의 구체적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 응답될 수 있다. 응답의 종류나 방식은 부름의 양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여기서는 몇 가지 보기만 들어본다.
① 실존의 부름
양심은 불안의 기분 속에서 현존재를 ‘비본래성으로부터 본래성에로’ 오도록 부른다.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곧 결단성이고, 그 결단의 결과가 ‘양심의 부름에 대한 대답’이 된다. 이 대답의 내용은 본래성의 회복이다.(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56-58절)
② 예술의 부름
예술작품은, 낯섦의 충격 속에서, 감상자를 ‘진리의 개방성에로’ 초대한다(부른다). 감상자는 작품의 초대에 응함으로써 예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되고, 그로써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얻게 된다. 예술작품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은 그 작품이 열어 밝히는 작품 세계를 ‘충격의 사건’으로 경험한다는 것을 뜻한다.(하이데거, 「예술 작품의 근원」)
③ 기술의 부름
현대기술은, 경이와 경악의 기분 속에서, ‘있는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강제한다(부른다). 현대기술의 ‘세움-몰이(Ge-stell)’는 ‘그 자리에 있어 온 것(das Anwesende)’을 인식 주체의 ‘앞에-세워놓을(Vor-stellen)’뿐 아니라, 이 ‘마주 세워 놓은 것(Gegenstand)’을 그때마다의 기술적 필요와 주문에 따라 ‘부품(Bestand/맞춤품)’으로 ‘맞춰 세운다(Bestellen)’. 이 기술적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은 우리가 ‘세움-몰이’의 장단에 맞춰 세계 전체를 기술의 관점에서 탈은폐한다는 것을 말한다.(하이데거, 『기술과 전향』)
④ 서양 형이상학의 부름
서양 형이상학 또는 학문(과학)은, 시대마다의 근본 기분 속에서, 인간 자신을 포함한 ‘있는 것 전체’의 ‘있음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탐구하게끔 한다(부른다). 형이상학의 부름은 사람을 ‘있는 것 전체’의 ‘저편 또는 너머’로 초월하게끔 하여 그 전체 - 신, 인간, 세계 - 를 통일적으로 파악하도록 한다. 형이상학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은 ‘있는 것 전체’의 ‘존재-신-논리학적 연관’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하이데거, 『동일성과 차이』)
‘부름과 응답’의 사건에 대한 이러한 보기들에서 눈에 띄는 점은 부름과 들음의 현장에는 언제나 이미 특정한 기분들이 앞서 불러일으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부름에 대한 하나의 응답 방식인 물음은, 알게 모르게, 이러한 기분들에 의해 조율된다. 즉 우리는 물음을 던지거나 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할 때 이러한 기분의 영향을 받는다. 기분은 물음과 대답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만, 기분 자체에 대한 물음은 간과된다. 기분에 대한 물음이 던져지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대답 또한 이미 주어질 수 없다. 하이데거에 따를 때, ‘실존에 대한 불안’의 기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양심은 현존재(Dasein)를 부를 수 없고, 양심이 침묵하는 한, 우리는 본래적으로 결단하거나 행동할 수 없다. 하지만 양심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분석에서 기분의 문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부름의 근원적 지평을 형성하는 기분은 부름의 사건에서 탈락된다.
학문(과학)은 근원적 부름에 대한 ‘주제화된 탐구’로써 이루어진다. 주제화는 탐구의 주제를 분야별로 세분하는 것을 말한다. 보기를 들어, 생물학은 ‘생명에 관한 학문’으로서 생명을 주제화한다. 달리 말해 생물학은 ‘살아있는 것’과 무관한 것에 대해서는 응답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주제화를 가능케 한 것이 방법의 우위이다. 후설은 『위기』에서 갈릴레오가 정식화했던 기계적 자연관을 “자연의 수학화”라 불렀다. 이는 자연이 계산과 계측으로 대표되는 수학적 방법론의 지침에 따라 수학적 언어로 구성될 수 있는 한에서만 다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에서의 주제화는 부름의 영역을 방법론적 대답 가능성에로 제한한다. 방법의 틀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학문 영역에서 탈락한다.
학문적 대답에서는 언제나 ‘기분의 탈락’이나 ‘주제화에 의한 탈락’과 같은 “탈락의 사건”이 벌어진다. 이것이 곧 ‘존재 망각’이다. 이는 있음의 뜻하는 바가 그 있음에 대한 경험 자체로부터 온전히 드러나지 못하고(실존 탈락), 학문적 방법론이나 물음의 구조 또는 언어적 형식에 제한된다는 것(주제화에 의한 탈락)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철학, 그것은 무엇인가」에서 필로소피아의 역사를 근원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존재 망각의 부당함을 역설했다. 이는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에 대한 근원적 해체와 회복을 통해 필로소피아의 근원적 영역을 되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 망각을 회복하는 하나의 길로 우리에게 철학을 “필로소피아”라는 낱말로부터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이것은 철학의 부름에 대한 근원적 응답을 다시 경험하는 일과 같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망각된 ‘기분의 조율 방식’과 ‘존재 영역 전체의 통일성’을 다시 밝혀내는 일과 같다.
풀어내기
하이데거에 따를 때, 서양 철학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필로소피아”라는 고대 그리스 낱말을 그 말의 근원으로부터 끝까지 귀 기울여 듣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서양철학의 역사는 “필로소피아,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필로소피아”라는 낱말뿐 아니라 그 물음의 방식까지도 철저히 그리스적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리스 말로는 ‘티 에스틴(τί έστίν)’이다. 보기를 들어, 우리가 “저기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누군가 “그것은 나무이다.”라고 대답했다고 치자. 이 대답하미(답변자)는 물으미(질문자)에게 어떤 사물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물으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나무’라고 부르는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이러한 물음[꼴]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쳐 보였던 물음의 형식이다. 그들은 ‘아름다움, 그것은 무엇인가?’, ‘앎, 그것은 무엇인가?’, ‘자연, 그것은 무엇인가?’, ‘운동,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 물음을 통해 물어지는 것의 ‘보다 정확한 한계(限界, 페라스)’, 즉 정의(定義)를 밝히라는 요구이다. 우리가 이 물음에 올바로 대답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이 물음에서 물어지고 있는 이 ‘무엇’의 의미[뜻하는 바]를 앞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뜻하는 바의 그것’을 본질(quidditas)이라고 부른다. “필로소피아,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철학의 본질을 정의하라는 요구인 셈이다. 플라톤의 이데아(ἰδέα)는 이 본질에 대한 하나의 독특한 해석, 즉 하나의 대답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은 철학의 본질을 다르게 해석한다. 이러한 다름의 역사가 바로 철학의 역사를 구성한다.
1. 호모로게인 : 필로소피아에 대한 첫번째 응답
그렇다면 누가 “필로소피아,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최초로 던진 것일까? 아니 이러한 물음을 가능케 한 근원적 부름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이러한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필로소피아”라는 낱말의 정착 과정을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필로소피아는 필로소포스(φίλοσοφος)에서 나온 말이다. 이 낱말은 필라르귀로스(φιλάργυρος, 돈을 좋아하다)와 필로티모스(φιλότιμος, 명예를 좋아하다)처럼 형용사이다. ‘필로소포스’는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듯하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실로 많은 것들을 탐구하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금을 찾는 사람들은 많은 땅을 파내고 적은 것을 발견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필로소피아라는 말을 쓰지 않은 듯 보인다. 하이데거는 아네르 필로소포스(ἀνήρ φιλόσοφος)를 ‘철학적 인간’을 뜻하는 말로 새기지 않고 ‘소폰을 사랑하는 사람’(ὃς φιλει̂ τό σοφόν)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자면 “필로소피아”는 “소폰”과 “필레인”이라는 두 낱말의 의미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먼저, 필레인(φιλείν)은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는 호모로게인(ὁμολογει̂ν), 즉 ‘로고스가 말하는 대로 말함’ 또는 ‘로고스에 순응함(entsprechen, 순응하여 말함)’을 뜻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에 순응하는 것”이 지혜의 핵심임을 곳곳에서 주장한다.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과 불화하면서도 그 자신과 일치하는지(homologein)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활과 뤼라의 경우처럼, 반대로 당기는 조화이다.”
‘로고스에 대한 응답 또는 순응’은 하르모니아(ἁρμονία)를 위한 것이다. 하르모니아는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일치’를 말한다. 로고스를 통해 조화를 이루어야 할 대상이 곧 소폰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소폰은 ‘헨 판타(Ἑν Πάντα)’ 즉 ‘모든 것은 하나’라는 ‘숨겨진 진리’를 말한다. 이때 ‘판타’는 ‘판타 타 온타(Πάντα τὰ ὂντα)’, 즉 ‘있는 것 모두’를 뜻하고, ‘헨’은 ‘하나’를 말한다. ‘헨 판타’는 ‘모든 있는 것’이 그 있음에서 하나임을 나타낸다. 이 말은 달리 말하자면 ‘모든 있는 것은 [없음이 아니라] 있음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있는 것도 있음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있는 것은 그것이 있음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때만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사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있는 것은 있음에 근거한다.”는 말이 된다. ‘헨 판타’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대결했던 탐구 영역 전체를 드러내는 말인 셈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흐른다.”(판타 레이)를 주창한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그가 정작 놀라워했던 바는 ‘흐르는 모든 것을 관통해 그 흐름 자체를 지배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곧 로고스였다. 이 ‘영원히 살아있는 불’과 같은 로고스는 ‘있는 것 모두’를 지배하는 법칙과 같다. 지혜로운 자는 바로 이 로고스를 닮는 자인 셈이다. “필로소피아,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대답은 ‘헨 판타로서의 로고스를 닮아나가는 것’이 된다.
“하나이자 전체”라는 그의 대답은 언뜻 모순적으로 보인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형용사적 비례 관계’를 사용해 전체로부터 하나에게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사물을 포괄하는 완전한 것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러한 파악은 오직 비교와 은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은유는 설명될 수 없고, 사람들 자신이 스스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아이가 어른에게서 어리석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어른은 신에게서 어리석다는 말을 듣는다.”
“사람들 중 가장 현명한 자도 신에 비하면 원숭이로 보인다. 지혜에서도, 아름다움에서도, 다른 모든 것들에서도.”
단편 61의 비유를 관계 유비로 바꿔 쓰면 다음과 같다. “원숭이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아름다움의 관계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신의 아름다움과의 관계와 같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당시의 언어 체계로써는 표현할 수 없었던 ‘헨 판타’의 사태 앞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 ‘놀라운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관계 유비를 창안하게 되었다. 놀라움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떤 것’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일어나는 기분이다. 놀라움은 어떤 현상이나 결과가 누군가의 기대나 예상 또는 상상을 넘어서 있을 때 가능하다. 이것은 상식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매우 낯선 것일 수도 있으며,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흐르는 모든 것’ 가운데 그 흐름을 근원적으로 지배하는 ‘공통된 하나’로서의 로고스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은 ‘아래로 떨어지는 모든 것’이 중력(重力)에 의한 것임을 발견한 뉴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놀라운 사실로부터 달아나기커녕 오히려 그 사실에 사로잡혀 “그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고 그 물음에 스스로 대답했다. 그에게서 “그것”은 아직 열린 채 경험되고 있다. 그의 철학함을 조율했던 기분이 놀라움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두 개의 증언이 있다.
“실로 한 철학자의 이것은 파토스(πάθος) 즉 놀라움이다. 왜냐하면 필로소피아를 지배하고 있는 그 근원(아르케)은 이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놀라움에 의해서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비로소 철학함을 지배하는 첫걸음에 도달한다.”
이러한 증언에 따를 때 놀라움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뿐만 아니라 필로소피아 일반의 아르케(ἀρχή)가 되는 파토스이다. “아르케”는 발원지 또는 유래지를 뜻하지만, 그것은 흐름의 맨 뒤에 남아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흐름 전체를 끝까지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아르케로서의 놀라움은 필로소피아의 흐름 또는 역사를 발원케 하고, 그 흐름을 지속시키면서 철저히 지배하는 것인 셈이다. 하이데거는 일반적으로 “감정, 열정, 격정”으로 옮겨지는 파토스를 파스케인(πάσχειν)과 연관시킨다. 이 동사는 “견디다, 참아내다, 감수하다, 끝까지 견뎌내다, ~에 의해 지탱되다, ~에 의해 조율되어 있다” 등과 관계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연관에 기초하여 파토스를 “기분”이라는 모험적 낱말로 번역한다.
기분으로서의 놀라움(타우마제인, θαυμάζειν)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경우 필레인과 호모로게인의 태도를 이끌어 낸다. 즉 ‘소폰에 대한 놀라움’은 그것에 대한 사랑과 닮아나가기의 태도를 갖게 만들었고, 따라서 ‘헨 판타’를 ‘하나’와 ‘전체’의 공속성에서 끝까지 파악하도록 만들었다. 그로써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 전체와 신’을 ‘흐름과 로고스’의 관계에 비유하여 파악해 나갔고, 이 관계 유비를 ‘헨 판타’로서 명명할 수 있었다.
2. 에피스테메 테오레티케 : 필로소피아에 대한 결정적 대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놀라움을 극복한 철학자들이다. 여기서 극복했다는 말은 놀라움의 당혹스러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놀라움의 대상을 이론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놀라움의 기분을 억제했다. 대신 그들을 이끌었던 기분은 호기심, 달리 말해, ‘알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그들은 놀라움의 대상이었던 소폰에 순응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그 소폰의 근거를 밝히는 쪽으로 나아갔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전환을 필레인의 의미 변화를 통해 설명한다. 필레인 토 소폰(φιλείν τό σοφόν), 즉 ‘소폰을 사랑함’은 더 이상 ‘하르모니아’, 즉 ‘소폰과 조화하기’를 뜻하지 않고, 오렉시스(ὄρεξις/동경, 욕망), 즉 ‘소폰을 추구함(Streben nach dem σοφόν)’이 되었다. 이제 필로소피아는 소폰을 얻고자 하는 노력과 같은 것이 된다. 이러한 노력을 우리는 흔히 ‘변하지 않는 것’, 즉 영원한 것, 또는 이데아나 에이도스와 같은 것을 얻고자 하는 에로스(Eros)로 규정하기도 한다.
놀라움이 ‘얻고자 함(추구)’으로 바뀜으로써 ‘소폰(헨 판타)’, 즉 ‘흐르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지배하는 로고스’는 당연시 되고, 대신 그 로고스를 닮아나가고자 하는 실천은 사라진다. 실천이 사라진 자리에 “있는 것이 있는 한에서, 이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이 등장한다. “있는 것이 있는 한에서”라는 조건은 본질에 대한 탐구를 ‘있는 것’과의 관련에로 제한하게 만든다. 즉 없는 것은 탐구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물음으로써 ‘있음과 없음의 대립’이나 ‘흐름과 고요의 투쟁’과 같은 ‘근본적 전쟁’은 잊히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리하여 이미 일찍이 그리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언제나 [필로소피아가] 그것을 향해 가면서도 언제나 그것에로 나아갈 통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τί τό ὄν)’라는 물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를 때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시아는 무엇인가(του̂τό ἐστι τίς ἡ οὐσία)”라는 물음과 같다. 우시아는 ‘있는 것을 있게끔 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어떤 것이 있기 위한 근거이다. 필로소피아는 이로써 ‘있음의 근거 찾기’가 되었다. ‘필로소피아의 역사’는 ‘근거 제시의 역사’로 전환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근거 찾기로서의 필로소피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첫번째 아르케와 아이티아에 대한 관조의 학문(에피스테메)”
하이데거에 따를 때 ‘에피스테메’라는 말은 에피스타메노스(ἐπιστάμενος), 즉 ‘어떤 것에 능통한 사람’, 즉 ‘어떤 일을 능란하게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분사로부터 파생된 말이다. 정통(精通)함은 누군가 어떤 것에 대해 몸소 풍부한 경험을 쌓음으로써 그것을 훤히 아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 실천이 배제되지 않은 정통함으로서의 에피스테메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와서 “학문들 내에서의 이론적 연구”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에피스테메 퓌시케는 자연학이 되었고, 에피스테메 에티케는 윤리학이 되었으며, 에피스테메 로기케는 논리학이 되었다. 이러한 분류법에서는 이론이 실천보다 우위를 갖는다. 이러한 학문 분류에 따라 필로소피아도 ‘에피스테메 티스(ἐπιστήμη τις)’, 즉 ‘어떤 것에 대한 학문’으로 명명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필로소피아는 결국 위에서 인용한 바처럼 테오레인(θεωρει̂ν)을 할 수 있는 에피스테메로 정의된다.
테오레인은 ‘테아(θὲα)’와 ‘호라오(ὁράω)’라는 두 어근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동사이다. ‘테아’는 그 뜻이 “theater(극장)”라는 말에 남아있듯이 ‘보는 눈’이나 ‘보여진 모습’을 뜻한다. ‘호라오’는 ‘어떤 것을 주시함’을 뜻한다. 테오레인은 ‘어떤 것을 특정한 눈길로(관점에서) 주시함’을 나타낸다. 따라서 테오레인은 어떤 것을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인식되거나 서술되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테아’는 파르메니데스에게서처럼 여신을 의미할 수도 있다. 여신 테아는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 즉 숨어 있던 상태로부터 밝히 드러나 보이는 상태로 넘어오지만, 그렇다고 그 어둠에서 완전히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테오레인은 이러한 근원적인 ‘어둠이나 은폐’를 망각하지 않는 바라봄이다. 테오레티케(θεωρητική)는 어떤 것을 그 유래에서부터 바라보고, 그 바라본 것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 능력을 말한다. 필로소피는 근본적으로 ‘에피스테메 테오레티케’, 즉 ‘관조의 학문’인 것이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관조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번째 아르케와 아이티아(πρω̂ται ἀρχαί καί αίτίαι)”이다. 첫번째 근거[신]와 [네 가지] 원인은 곧 우시아와 같다. 플라톤은 그것을 이데아나 에이도스로 불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에네르게이아(ἐνὲργεια)라고 불렀다. 하이데거는 ‘에네르게이아’를 ‘완성된 것 안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석한다. 완성된 것은 자연적으로 산출된 것을 뜻할 수도 있고, 인공적으로 제작된 것일 수도 있으며, 우리에게 드러난 모든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완성된 것은 ‘어떤 원인으로부터 결과된 모든 것’을 말한다. 에네르게이아는 ‘있는 모든 것을 있게끔 하는 산출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의 중세에 이르러 ‘헨 판타’에 대한 놀라움은 그 흔적마저 희미해졌고, 에네르게이아는 악투스(actus)로 대체되었다. 그로써 자연 전체에 대한 연관은 ‘오페라티오(operatio)’에 의해 이해된다. 오페라티오는 인간의 능동적 작업 행위를 뜻한다. 이제 ‘있는 것 전체’는 인간적 행위에 의해 파악되는 것, 말하자면, 원인(causa)으로부터 파악된 결과물로 이해된다. 이로써 모든 것은 제일원인(causa prima)으로서의 신의 활동에서부터 설명된다. ‘있는 모든 것’은 ‘만드는 자(creator, ens infinitum)’와 ‘만들어진 것(creatum, ens finitum)’으로 나뉜다. 이러한 이분법에서 ‘있는 것을 있게끔 하는 것’은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의 활동성(actualitas)이 된다. 토마스에게서 ‘가장 활동적인 것’으로서의 신은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있어야(esse a se)’ 하며, 다른 모든 것의 원인으로 작용해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있는 것(ens necessarium)’으로 정의된다.
필로소피아의 역사가 놀라움으로부터 발원하여 호기심을 거쳐 기분의 억제와 정신의 고양이라는 방향으로 진행됨으로써 인간의 정신 능력 전반에 대한 연구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로 인해 자연과 인간의 분리는 더욱 심화되었고, 따라서 기존의 진리 개념인 ‘지성과 사물의 일치’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도식에 기초한 기존의 진리 개념의 타당성을 의심했다.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이 지금까지 참인 것으로 여겨온 ‘의견(意見/opinio) 전체’가 ‘실제로 참인지’, 달리 말해, ‘확실한지’ 여부에서 의심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소폰’에 대한 놀라움의 기분과 같은 것은 완전히 잊히고 만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티 토 온’, 즉 ‘있는 것이 있는 한에서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문제로 던져지지도 않는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의심’에 사로잡혀 ‘엔스 쎄르툼(ens certum, 확실하게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참으로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를 묻는다. 그가 말하는 ‘쎄르티투도(certitudo)’의 본질은 확실성(Gewißheit)으로서 중세의 그것과 다르다. 중세에서 ‘쎄르티투도’는 에쎈티아(essentia), 즉 ‘있는 것을 그것의 본질에서 확고히 한계 짓는 것’을 뜻했다. 데카르트는 사물의 본질적 한계를 규정짓는 타당한 근거를 의심하는 가운데 ‘확실하게 있는 것(ens certum)’을 탐구했다. 쎄르티투도(certitudo, 확실성)는 ‘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라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 자체에 근거하고, 이러한 확실성은 다시금 ‘정신(mens) 자체’ 또는 ‘자아(ego) 자체’에 의해 확정된다.
에고는 탁월한 ‘수브-옉툼(sub-iectum)’이 되고, 이로써 인간의 본질은 처음부터 자아성(Egoität)이라는 의미에서의 주관성(Subjektivität)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확실성에 의해 기분 잡혀진 상태에서 데카르트는 확실성의 기준으로 ‘명석하고 판명한 지각(clare et distincte percipere)’을 발견한다. 이러한 발견이 가능했던 까닭은 데카르트의 필로소피아를 조율했던 의심의 기분이 ‘실제의 기분’이 아니라 ‘방법적 기분’이라는 점에 놓인다. 방법적 의심은 기존의 진리를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에서 실제로 고민하는 의심이 아니라, 진리의 새로운 기준을 찾기 위해 기존의 진리를 해체하기 위한 사유의 한 방법이었다. 데카르트 철학의 근본 기분은 의심이 아니라 오히려 ‘확실성에 대한 열망’과 같은 것이다.
끝맺기
철학의 역사는 “철학,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의 역사로써 구성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물음에 대해 ‘로고스를 닮아나가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응답은 로고스에 대한 논리적 증명이 아니라 서사적 제시의 형태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응답의 형식은 당시의 언어적 한계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가 그 자신을 놀랍게 사로잡았던 탐구 대상(소폰, 헨 판타)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놀라움의 감정이 누그러들자 곧바로 후대 철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은 그 놀라움의 대상을 ‘그것이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관조하려 했다. 그들은 대상을 분석하고, 전체를 체계적으로 종합하며, 형이상학적 패러다임을 짜나갔다. 이러한 설명의 틀은 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거치면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심지어 데카르트조차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언뜻 놀라움과는 전혀 다른 의심의 기분에 의해 철학을 시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의심의 기능을 확실성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맞춰 놓은 이상, 데카르트도 놀라움의 기분과 다른 기분에서 철학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수학과 과학의 냉철함 또는 증명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감정은 고대 철학자들이 꿈꾸었던 ‘영원에 대한 열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대답은 물음을 전제로 한다. ‘물음과 대답’은 다시금 응답의 구체적 형태이다. 만일 이 말이 맞다면, 우리는 ‘물음과 대답’ 이전에 ‘응답의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응답은 부르는 것에 대한 직접적 경험으로부터 주어진다. 우리가 2천 5백년 이상을 이어온 서양 철학의 역사를 ‘응답의 역사’로 재해석할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던지는 “철학,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또한 철학의 사태로부터 들려오는 하나의 부름이 되어야 한다. 이 부름 앞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들 자신을 근원적으로 조율하고 있는 근본 기분을 밝혀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답은 바로 그 기분에서부터 그 나름의 방향을 지시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시대의 ‘소폰’을 찾고, 그것 앞에서 놀라고, 그것의 유래와 근거를 밝히는 새로운 사유의 여정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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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hilosophy, What Is It?
Gu, Yeon-Sang
The history of philosophy is constituted by the history of answers to the question “philosophy, what is it?” To this question, Heraclitus answered ‘trying to resemble logos.’ His response was not alogical proof concerning logos, but was made in the form of epical narrations. The form of his response could be due to the limitations of his language at that time, but it was rather because he was surprised and attracted by the objects of research(σοφόν, ΈνΠάντα) in a more fundamental sense.
As soon as the mood of surprise was subdued, the following philosophers like Plato and Aristotle tried to observe those objects of surprise dispassionately ‘as they really are.’ They analyzed them, synthesized them into a systematic whole, and continued to frame metaphysical paradigms. These frames were handed down to the Middle Ages and to the modern times in great development.
Even Descartes was not able to get out of these frames completely. Although Descartes seems to start his philosophy from the mood of doubt, not from that of surprise, he was set to obtain certainty through the mood of doubt; and we can not say that Descartes philosophized in a mood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surprise. Rather, he was obsessed with the yearnings for mathematical, scientific coldness and for such proof. This kind of mood is not radically different from the ‘yearning for eternity’ that ancient philosophers cherished.
Every answer presupposes a question. ‘Question and answer’ are again a reified form of calling and response. If this is truly the case, we have to pay attention to the ‘occurrences of response’ before ‘question and answer.’ Response is given as a concrete experience of a calling. If we can re-interpret the 2500 years of Western philosophy as a ‘history of responses,’ our question “philosophy, what is it?” should also be a calling from the occurrences of philosophy themselves. As the calling echoes, we have to enlighten the basic moods that attune us our selves fundamentally above all things. For answering is already being directed by these basic moods.
Keywords : philosophy, hen panta, episteme, theory, surprise, operation, certai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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