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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집에 위성접시가 85개 한국 농부' NY타임스 대서특필

사이박사 2009. 7. 6. 13:35
출처 : 미국아메리카
글쓴이 : 뉴시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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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위성접시가 85개 한국 농부' NY타임스 대서특필

뉴시스 | 노창현 | 입력 2009.07.01 00:46

 




【뉴욕=뉴시스】
자택에 위성접시를 무려 85개나 설치한 경북 영주의 한 농부를 뉴욕타임스가 30일(현지시간) 대서특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이시갑 씨.

이날 뉴욕타임스를 펴든 독자들은 A 섹션 7면의 사진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을 것이다. 적어도 위성접시만 놓고 보면 그의 집은 방송국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이 씨는 85개의 위성접시로 남아공화국부터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세계 100개국의 1500개 채널을 수신하고 있다.

주변에 사과나무와 인삼밭이 있는 시골의 농가를 뒤덮은 위성접시는 큰 것이 직경이 5m나 되고 앞마당과 뒷마당, 지붕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버섯꽃'처럼 뒤덮어 집의 형체가 온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국의 TV를 통해서도 화제의 인물로 소개된 이시갑씨 의 별명은 '안테나 맨'이다. 그는 안테나 덕분에 열광적인 팬들이 생겼다. 그를 통해 머나먼 모국의 방송채널들을 볼 수 있게 된 외국인 노동자와 신부들이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지난해말부터 '가난한 외국인 신부들'을 위해 무료 위성접시 달아주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고향의 소식을 모국어 TV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베트남 하이퐁에서 영주의 농부에게 시집온 부이티 황(22) 씨는 "이선생님 덕분에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많이 씻을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국에는 신부감의 부족으로 베트남과 중국, 필리핀처럼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신부들이 농촌으로 시집오고 있다"며 "영주같은 곳에선 이처럼 젊은 외국인 신부들이 지역경제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덕분에 노인들 위주였던 농촌에 아기들 울음이 울려 퍼지고 남편을 따라 논 밭에서 일하는 외국인 신부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때 단일민족을 자부하던 한국은 지난해 농촌으로 시집온 신부 10명 중 4명이 외국인이 될만큼 비중이 높아졌다.

영주의 경우 지난해 외국인 신부가 28%가 더 늘어 절반이 외국인 신부였고 이 중 절반인 250명이 베트남에서 시집을 왔다. 이시갑 씨는 "외국인 신부들이 한국에서 적응하기 위해선 힘든 시간을 보낸다. 지방정부가 한국어와 컴퓨터 기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이 여성들이 얼마나 고립된 채 단절감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독신인 이 씨는 80세 노모와 97세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위성접시를 만질 일이 없을 때 그는 농사를 짓거나 근처에 사는 외국인 신부들이 위성TV수신에 문제가 있으면 가서 고쳐주기도 한다.

일부 남편들은 아내들이 고향을 너무 그리워할까봐 TV 보는 것을 꺼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외로움을 극복하는데 모국의 TV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씨가 이들을 돕게 된 것은 사회와 단절해본 자신의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어렸을 때 자신과 엄마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그는 그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이웃과 학교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외출도 잘 안했고 심지어 전화하는 것도 꺼릴 정도였다.

그 때 그를 구제한 것은 음악과 위성TV였다. 음악이 유일한 친구였다는 그는 "우상이었던 미국의 헤비메탈 록스타였던 로니 제임스 디오를 만나고 싶은게 꿈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한국 TV에서 미국의 헤비메탈 음악을 대하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위성접시는 그에게 일본의 프로야구부터 태평양제도의 섬나라, 러시아의 포크뮤직과 인도의 종교, 네팔의 풍물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그가 위성접시를 처음 단 것은 23살인 92년이었다. 전문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때였다. 이어 중고 위성접시를 구해서 설치하는게 취미가 되버렸다. 보통 농부들이 하늘을 볼 때는 날씨 때문에 보는 것이지만 이 씨는 위성접시의 수신 상태 때문에 하늘을 본다.

이곳의 농부들은 이웃에 있는 이 씨가 집에서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하고 영국 문학 관련 프로와 일본 TV를 시청하고 있으리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만 종종 뜨거운 여름이나 별이 총총한 겨울밤 지붕위에서 위성접시를 다느라 몇시간씩 일하는 모습을 볼 뿐이었다.

물론 이 씨는 그 많은 위성채널의 언어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위성접시에 빠지다보니 계속 위성접시를 설치하고 새로운 채널들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미지의 나라에서 새로운 채널을 접하는 것만큼 즐거움은 없다"는 그는 "마치 넓은 바다에서 큰 고기를 잡는 것처럼 내가 사는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발견하는 일과도 같다"고 위성접시 예찬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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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현특파원 robin@newsis.com